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31화 (231/325)

제231화 선배와의 대화 (3)

이 프로그램 전에 강우는 어떤 언질도 받은 적이 없다. 손차희도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순수한 선배와의 대화다. 어떤 주제로 무엇을 전달할지 그도 미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강우는 신입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 학생들이 과학을 사랑하고 과학에 정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후배들을 쭉 둘러본 강우는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우입니다. 이제 3학년 올라가고요. 모두 반가워요. 여러분에게서 2년 전의 제가 보여요. 그때의 저는…….”

강우는 신입생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섰을 때 그는 어리숙하고 정신이 없었다.

“저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뭘까요?”

“천재!”

앞쪽에 앉은 학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흠, 이런 말을 제가 하면 쪽팔리지만 그런 평가를 많이 들었습니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만점,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만점, 학교 내신에서 지금까지 수학과 물리는 전부 만점……. 그러니까 천재라고요.”

학생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방금 그가 꺼낸 업적은 그 누구도 경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강우는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물었다.

“그럼 제 학교 성적은 어떨까요?”

“전교 1등!”

“최상위권!”

비슷한 답이 쏟아졌다.

강우는 손을 저었다.

“정말 공부 잘하는 학생은 여기 두 선배입니다.”

강우가 손차희와 하은찬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멋쩍어하면서 손을 저었다.

“제 성적은 그냥 중간 정도예요. 수학과 물리를 잘해도 다른 과목은 못 하거든요. 심지어 예비입학 기간에는 주기율표도 제대로 몰라서 혼났어요. 그래서 주기율표를 20번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제가 복사해서 내는 바람에 혼쭐이 났죠.”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그 화학 선생님이 저기 신새벽 선생님이신데 지금도 저를 멍청이라고 막 갈구십니다.”

“야! 내가 언제? 네가 날 굴리잖아?”

단상 한쪽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새벽이 뾰족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푸하하!”

학생들이 웃으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강우는 다시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해요. 미래 사회는 현재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해질 겁니다. 현대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가 없어요. 현대의 천재는 특정 분야만 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고대 사회는 어땠을까요? 유명한 그리스인들은 철학자이자 과학자였고 수학자였으며 의학자이자 법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근대 과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석학들은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그들은 전 분야에서 천재였고 뛰어났었다.

“그래서 전 과목을 다 잘해보고 싶다. 난 전 과목에서 전교 1등을 노리겠다……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조금 어렵겠죠? 그래도 그 비결을 알고 싶으면 여기 두 선배에게 물어보시면 되고요. 전 수학과 과학에 한정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강우는 이어서 천재들의 삶을 전했다.

“우리는 뉴턴을 천재라 하지만 학창 시절의 뉴턴은 특별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뉴턴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 좋은 학생이 많았어요.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과 과학에서 뛰어났으나 언어 쪽은 평범했지요. 그래서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강우의 성적도 수학과 물리에 한정되어 있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천재였던 과학자도 많아요. 20세기의 대표적인 천재인 폰 노이만은…….”

폰 노이만은 헝가리 출신의 천재 수학자이자 과학자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맨해튼 계획에 참여해서 핵무기를 개발했고 게임 이론, 컴퓨터의 발달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수학, 언어, 암기에서 특히 강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다닌 것으로도 유명했다.

“폰 노이만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죠. 같은 헝가리 물리학자인 유진 위그너가 노벨상을 받을 때 기자가 물었습니다.”

- 왜 헝가리에는 뛰어난 천재가 많습니까?

위그너의 대답은 특별했다.

- 천재가 많다고요? 천재는 오직 폰 노이만 한 사람뿐입니다.

그만큼 폰 노이만은 동료에게 인정받는 천재였다.

평소처럼 강우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 학생들은 흥미진진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 폰 노이만이 회견 때 받았던 퀴즈를 우리도 한번 풀어보죠. 물리 문제입니다. 200마일 길이의 철로 양쪽에서 두 기차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서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두 기차가 충돌할 때까지 파리가 시속 75마일의 속력으로 두 기차 사이를 오갔다면 파리의 이동 거리는 모두 얼마일까요?”

학생들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물리에서 거리와 속력 공식을 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다.

문제의 함정을 눈치챈 한 학생이 얼마 되지 않아 손을 들었다.

“150마일요.”

두 기차가 서로 만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파리가 계속 날아다녔으니 파리는 모두 150마일을 날았다. 이렇게 접근하면 중학생 수준의 단순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를 본래의 방식인 등비수열 형태로 풀면…… 복잡해진다. 파리가 애초에 어떤 한 기차에 붙어 있었다고 가정하고 시작하면 파리는 기차보다 조금 더 빨라서 기차가 충돌하기 전에 반대편 기차에 도착한다. 그리고 턴해서 다시 반대편 기차로 날아간다.

결론적으로 두 기차가 만날 때까지 무한히 많은 횟수를 오가는 등비수열 합의 극한 문제가 된다.

“학생은 어떻게 풀었어요?”

“2시간이니 150마일이죠.”

“그때 폰 노이만에게 질문했던 사람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어요. 폰 노이만이 그렇게 빨리 풀었으니 이 문제의 함정을 잘 피하고 핵심을 이용했다고요. 그러자 폰 노이만이 대답하기를 ‘나는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즉 폰 노이만은 암산의 천재였죠.”

강우는 폰 노이만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를 다수 소개하고 결론을 내렸다.

“폰 노이만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머릿속에는 가로세로 길이가 100미터인 거대한 가상 칠판이 있고 여기에 모든 내용을 써서 암산과 기억을 하는 사람이라고 평했죠. 실제로 그는 소설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외우기를 다반사로 했고 다른 수학자가 몇 달 동안 걸릴 수학 계산을 몇 시간 만에 해치웠으니까요”

위대한 과학자의 일화는 학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학생들은 경이로운 신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 됐다.

“당연히 우리는 그런 위대한 과학자와 암산 능력, 기억력을 대결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방식으로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면 되거든요. 이 세상에는 많은 과학자가 있고 그 과학자보다 더 많은, 우리가 연구할 분야가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겨야,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야 업적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아니거든요.”

천재에서 시작한 강우의 이야기는 학생들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연구 가치관으로 넘어갔다.

“여러분들은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학생이니까 수학과 과학에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남과의 경쟁이 아닌 수학, 과학의 본질을 파고드는 공부를 해보세요. 그 재미가 남다를 겁니다. 공부도 재미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학생들은 티비에서 강우를 보았을 때 천재라 여겼다. 그래서 여러 방면에서 다른 학생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강우를 만난 이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누구나 특정 분야에서 천재가 될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이를 깨닫는 순간 그들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홀가분한 심정을 느꼈다.

과학고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들은 전 과목에서, 수학과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될 작정으로 공부했었다.

이제 비슷한 능력을 지닌 학생이 다수인 이 과학고에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쉽게 좌절할 수 있었다. 강우의 말은 그들에게 한줄기의 햇살처럼 다가왔다.

“그럼 선배님은 어떤 분야를 잘하시나요?”

“저도 관심을 가진 분야가 있습니다. 잘해서 관심이 많은 게 아니라 관심이 많다 보니 잘하게 된 거죠. 제 인생의 꿈은……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하는 겁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기술은 이미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습니다.”

강우는 또박또박 말했다. 대중에게 그의 포부를 말하기는 처음이었다.

“저는 상온핵융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헌팅턴사와의 프로젝트 이야기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감탄했다.

강우의 이야기를 손차희가 이어받았다.

그녀는 주로 학습, 내신 측면에서 조언을 시작했다. 내신은 이 학생들이 부딪힌 가장 현실적인 문제다. 강우의 내용이 다소 뜬금없는 공상처럼 느껴졌다면 손차희의 강연은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였다.

신입생들은 손차희의 노력에 공감했다. 그녀가 입학 후 느낀 좌절과 극복은 그들에게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였다.

“선배님은 강우 선배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어려운 질문이 손차희에게 떨어졌다.

손차희는 강우를 힐끔 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강우는 띨띨한 천재죠.”

“푸하하!”

“여러분이 강우와 한 시간만 같이 생활해보면 천재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 실감할 겁니다. 그리고 곧 자괴감을 느끼죠.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고요.”

“선배님도 그랬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핵심은 그 자괴감을 금방 극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와 나는 능력이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죠. 그렇기에 내가 그를 능가할 필요는 없는 거죠.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되거든요.”

“그래도 남이 잘하면 샘나지 않아요?”

“인간이니까 당연하죠. 전 지금까지 물리 내신에서 한 번도 강우보다 나은 점수를 받은 적이 없어요. 반면 화학 내신에서는 항상 강우보다 나은 점수를 받았죠.”

뼈있는 말에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마이크가 하은찬에게 넘어갔다.

“제가 이 학교에 입학할 때쯤 우리 엄마는 항상 저에게 말씀하셨죠. 친구를 잘 사귀라고. 그것도 똑똑한 친구를 사귀라고요. 제가 처음 만난 친구, 아니 선배가 바로 강우 형이었는데요.”

“정말 똑똑한 친구를 사귀었네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는데 제가 처음 만난 강우 형은 정말 띨띨한 사람이었어요. 어찌 된 게 수학 리포트 문제를 하나도 못 푸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초딩 문젠데.”

하은찬이 강우와의 첫 만남을 재미있게 풀었다. 그리고 지난 일 년간 강우에게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하은찬은 강우 덕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 국가대표로 뽑혀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수상했고 내신에서는 전교 1등을 차지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내신 공부에 짓눌리지도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이 강우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강우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덕분에 저는 제 재능을 훨씬 자유롭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강우 형이 아니었다면 전 내신만 파고드는 그런 학생이 되었을 거예요. 미래의 과학자가 되기 어려운 공부법이죠. 결과적으로 저는 과학자가 된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꿈을 가슴에 품고 그 꿈을 더 크게 키워보세요.”

마지막으로 강우가 당부했다.

“꿈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좇는 사람이 빛나는 겁니다.”

그 말을 하는 강우의 머리에서 빛이 났다.

세 사람의 잡담이자 당부가 끝났다.

신입생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막막하고 두려웠던 과학고 생활이 인생을 정립하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리란 느낌을 받았다.

학생들은 세 사람에게 아낌없는 호응을 보냈다.

이어지는 질문 시간.

“신입생 김명수입니다. 과제연구는 어떻게 합니까?”

강우는 학생들이 본인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그 학생의 재능을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학생은 없었다. 장학금을 받는 3인방도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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