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33화 (233/325)

제233화 3학년 (1)

3월이 되고 신학기가 시작됐다.

3학년 3반.

강우의 학년과 반이다.

그는 1학년 때부터 내리 3반이었다. 그 이유는 차도도가 계속 3반을 맡았기 때문인데 강우는 자신이 3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담임도 3년 연속 차도도다.

차도도와 호흡이 잘 맞는 그에게는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고곽천재 모두가 1학년 때처럼 같은 반에 모였고 차도도의 지원으로 같은 조를 구성해서 대만족이었다.

한국의 고3은 모든 수업이 수능 위주로 돌아간다. 다른 학년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하면서 진학을 고민하는 시기다.

고려 과학고도 다르지 않다. 이곳에서도 수능과 내신이라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물론 그 예외가 있다. 바로 강우다.

강우는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할 일이 없었고 그가 목표한 대학은 국외여서 딱히 고3이라고 달라질 일이 없었다.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흐아, 세미나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어.”

강우는 열심히 공부하는 세 사람의 눈치를 보며 긴 하품을 했다.

고려 과학고는 학점제다. 그래서 다른 학교와 달리 강의실을 옮겨 다니면서 수업을 듣는다. 3학년이 되니 학점제의 장점이 마침내 드러났다.

빈 수업 시간, 즉 공강 시간이 자주 생겼다.

이수학점이 1, 2학년은 많고 3학년은 상대적으로 적다. 수능 공부를 하라는 학교 측의 배려다.

필수학점은 거의 끝났고 이제는 선택학점이다. 마치 대학교처럼 학생들은 반과 무관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업을 들었다.

덕분에 하루의 꽤 많은 시간을 공강 시간으로 짰고 갈 곳 없는 학생들은 도서관을 전전했다.

고곽천재도 다르지 않아서 공강 때는 세미나실을 점거했다.

“그래도 수업 없는 시간이 좋아.”

윤수아가 포카칩을 날름 먹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프로젝트에 더 많은 정성을 투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우는 며칠 전 받은 요셉 교수의 이메일을 떠올렸다.

“수아야, 예전에 수소 플라스마의 거동을 수치해석법으로 계산해보자고 했었지? 그거 기억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윤수아도 자신의 장점을 프로젝트와 연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요셉 교수에게서 답변을 받았는데…….”

윤수아의 눈동자가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다.

수소 플라스마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계산하는 작업은 엄청난 컴퓨팅 능력이 필요하다. 모델링하여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연구자의 능력 외에 슈퍼컴퓨터로 대변되는 연구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당연히 고려 과학고에는 슈퍼컴퓨터가 없고 한국 전역으로 넓혀보아도 카이스트 시스템 공학센터나 기상청, 국방과학연구소 등에 슈퍼컴퓨터가 있는 정도다. 고등학생이 접근해서 사용할 수 없는 기관이다.

강우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요셉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MIT에 갔을 때 양철로 만든 창고처럼 보이던 회색빛 허름한 건물 기억나? 지붕과 벽에 각이 팍팍 져 있던…….”

“그런 건물이 한둘이었어야지…….”

MIT는 공대랍시고 유달리 각진 건물이 많았다. 또 외형에 신경 쓰지 않아 허름하게 보이는 건물도 다수였다.

“하여튼 MIT에 링컨연구소 슈퍼컴 센터라는 곳이 있어. 거기에 슈퍼컴퓨터가 있는데…….”

강우가 열심히 설명했다.

MIT의 슈퍼컴 센터에 설치된 TX 슈퍼컴퓨터는 전체 프로세서 코어 수가 17920개이고 전체 노드 수가 448개에 달하는 페타스케일 슈퍼컴이다.

“결론만 말하면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계정을 하나 얻었어. 앞으로 MIT의 슈퍼컴퓨터에 접속해서 모든 계산을 수행하면 돼. 즉 우리도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거야.”

“와아!”

모두가 한호성을 터트렸다. 슈퍼컴퓨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그들도 가슴이 뛰었다.

“기본적인 사용 매뉴얼도 같이 왔으니까 수아가 읽어보고 연구를 시작하면 돼.”

지금까지 윤수아는 상온핵융합 연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위치였다. 최대우나 손차희처럼 수학과 물리에 유능하지 않아 자신의 장점을 내세울 영역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슈퍼컴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그녀 특유의 전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수식 모델링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을 거야. 그 문제는 나랑 차도도 쌤이 해결해 줄 거니까 막히면 물어보고.”

든든한 지원군마저 옆에 붙자 윤수아는 한결 자신감을 뿜어냈다.

“좋아! 나도 해보고 싶었거든.”

물론 윤수아가 기본적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려면 최소한 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만일 본인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도전하는 용기야말로 젊은 사람의 특권이다. 윤수아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강우는 윤수아에게 아낌없이 기운을 불어넣었다.

윤수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포부를 밝혔다.

“내가…… 올해가 가기 전에 확실한 성과를 거두고 만다! 아자! 아자!”

최대우가 윤수아의 입에 포카칩 조각을 잔뜩 넣어줬다. 그녀의 얼굴에 행복이 넘쳤다.

똑똑-

세미나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차도도였다.

“쌤?”

“뭐하니?”

“연구 중!”

“포카칩 연구?”

얼굴에 과자 부스러기가 잔뜩 묻은 윤수아를 발견한 차도도가 혀를 찼다.

“헤헤헤.”

윤수아는 이 순간 행복했다. 과자가 눈앞에 있고 그녀가 선망하던 슈퍼컴퓨터를 손에 넣었으니 지금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강우야?”

“네?”

“나 좀 보자.”

강우는 차도도의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을 발견했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어디 가세요?”

“교장실!”

“흐으!”

강우의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해마다 한두 번씩 교장실을 방문한다. 즐거울 때도 아닐 때도 있었으나 항상 중요한 결정이 뒤따랐었다.

“왜 그래? 도살장 끌려가는 개처럼.”

“지금 쌤 표정이…… 엄청 무서운 거 알아요?”

“너도 나를 무서워하니?”

“에이, 교장 선생님이 무서운 거죠.”

차도도가 눈을 흘기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난 만만하다는 거지?”

“아닙니다! 쌤은 좋은 선생님이시죠.”

강우는 후다닥 차도도의 뒤를 따라갔다.

뒤에 남은 친구들이 그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 * *

몇 번이나 왔던 교장실인데도 강우는 여전히 낯설었다.

백두섭 교장이 미소를 가득 머금고 차도도와 강우를 맞이했다. 2년 전 처음 봤을 때보다 백두섭 교장의 풍채는 훨씬 좋아졌다.

접대용 소파에 앉아 백두섭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정작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차도도였다.

“강우야, 광고 모델 섭외가 들어왔어.”

예상치 못한 내용이 화제에 올랐다. 연말에 예능 출연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올라갔어도 이 세상에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흔한 연예인에 비해 인지도가 훨씬 떨어진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과학고 학생이 전부가 아닐까.

그런 그에게 광고 섭외가 들어오다니? 기대하지 않던 사건이었다.

“광고가 왜 들어왔을까요?”

“정확하게는 너랑 나랑. 왜인지는 나도 몰라. 업체가 조사한 결과로는 일반 사람들은 너를 모르더라도 공부하는 학생 사이에서는, 또는 학부모 사이에서는 제법 네 인지도가 높다고 하더라.”

대치동의 어떤 강사가, 인강의 어떤 선생님이 일타인지 꿰뚫는 세상이다. 가능성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예능 프로 하나로 떴다고 하기엔…….

“어떤 광고인데요?”

“모두 두 개야.”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아마 이 자리는 광고 모델 수락 여부를 결정하려고 부른 듯했다.

“하나는 학습지 모델, 중고등학교 참고서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출판사야. 수학 참고서로 유명한 곳인데 수학 모델로 쓰고 싶다고 너와 나에게 요청이 들어왔어.”

사실 강우는 일반 학생들과 공부 스타일이 다르다. 일반 수학 참고서로 공부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이것은 강우만의 특이성이다.

그렇기에 수학 참고서 광고 모델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다. 그와 고곽천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 영양제 광고야. DHA가 함유된 영양제 광고.”

DHA는 불포화지방산의 하나로 등푸른생선에 함량이 높다. 유아의 지능발달과 노인성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성분이다.

강우의 천재 이미지와 학습지, 머리 건강기능 식품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모델료는 그리 많지 않아. 6개월 단발 광고이고. 어때?”

그렇더라도 강우가 전문 연예인이 아닌 학생임을 고려하면 업체에서는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셈이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라 대답이 쉽지 않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어차피 우리 둘은 같이 움직여야 해. 한 사람만 출연할 수는 없으니까. 난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강우는 모델로서의 상품 가치를 평가해봤다. 차도도의 미모라면 화장품 광고를 맡아도 어색하지 않다. 그렇기에 지성과 미를 합한 그녀의 이미지라면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 다만 강우 자신은 의문부호가 찍혔다.

머뭇거리고 있자니 백두섭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직 방침이 서지 않았네. 예술고에서는 광고에 출연하는 학생이 다수 있어도 과학고나 일반고에서는 정말 드문 일이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승인하고 싶어도 한편으로는 다른 학생의 학습 분위기를 저해하는 측면도 있어서…….”

그쯤에서 강우는 백두섭의 속내를 알아들었다.

백두섭은 광고 출연 거절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연예인으로 진로를 잡지 않은 이상 광고 출연이 강우에게 이롭지 않다고 여기는 듯했다.

강우는 차도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광고 출연을 권하고 싶지 않아. 네 이미지를 굳이 학습지나 약 파는 일에 소모하고 싶지 않거든. 물론 네 가정형편을 알아. 그래도 프로젝트 연구비로 꽤 벌고 있으니까 형편이 나아졌잖아…… 물론 외국 유학자금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알아.”

차도도도 말렸다.

강우는 그녀의 염려를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학생이고 연예인이 아니다. 또 그의 앞날은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 연구 실적 등이 결정하지 대중 인기도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괜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면 공부 리듬이 깨져 악영향을 미치기 쉽다.

특히 그를 주시하고 있을 학교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광고 출연은 득보다 실이 많다.

강우도 광고를 거절하자고 답하려 했다.

다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일반인들의 인지도도 필요해.’

언젠가는 발생할 마도환과의 일전에 대비하여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천재이며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라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예능 프로 출연도 이런 문제를 고려한 일이었다.

마도환과 그를 둘러싼 학계의 권력과 맞서려면 대중적인 인지도를 키워놓아야 한다. 또 항상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번 방송하고 끝나는 예능과 짧게 수시로 티비에 등장하는 광고는 인지도에서 차이가 크다. 연예인이라고 항상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대중적인 인기를 오히려 싫어하는 차도도의 내심도 이해했다.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기에는 아깝다.

고민에 잠겼던 강우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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