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평가원 모의고사 (1)
“이미 예상하셨잖아요.”
강우가 말하는 순간 신새벽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봤다.
강우는 바로 입을 닫았다.
“으…… 예상은 했지.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나를 막 나무라잖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뭘 못했는지 난 도무지 모르겠더라고.”
“뭐라고 하던데요?”
“이 논문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혼자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오류 아니냐? 이런 식이지.”
대충 감이 왔다. 노창열이 틀린 부분을 명확하게 짚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나무랐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은 논문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아볼 능력이 없고 그나마 이 분야 전문가인 노창열은 대답할 신새벽만 찍어눌러 높은 자리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됐다.
그것도 논문 내용이 아니라 논문을 쓰는 자세를 문제 삼았다.
노창열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이유는 신새벽에게 알아서 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못 참고 한마디 했다가…… 열 소리를 듣고 나와버렸어. 돌아오는데 눈물이 막 쏟아져서…….”
“잘하셨어요.”
신새벽 논문은 당연히 나무랄 부분이 없다. 설사 있다 해도 오탈자 수준이다. 그렇기에 노창열이 실제로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휴지로 눈 주위를 꾹꾹 눌러 눈물을 닦아내면서 신새벽이 연신 흐느꼈다.
대학원생과 교수의 사이가 나쁘면 항상 발생하는 문제다.
“강우야? 나 이제 어떡해?”
강우는 앞을 보고 운전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굳이 대응하실 필요 없어요.”
“왜?”
“어차피 판단은 노창열 교수가 내리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누가?”
“학회지에 보낸 논문은 어떻게 됐어요?”
“국내 학회지에 보낸 건 답변서 보낸 지 오래인데 소식이 없어. 해외 저널에 보낸 거는…… 질의 응답서를 얼마 전에 보냈으니까 곧 기별이 오겠지.”
“그럼 충분하네요.”
국제 유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수준을 문제 삼을 만큼 노창열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국내 학술지에는 노창열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도 국외 저널은 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국제 저널에 실리고 나면 국내는 저절로 실리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은 기다리는 게 답이다.
“한 달 이내면 저널에 실리겠네요. 그럼 만사가 해결돼요. 논문 2차 심사가 언제죠?”
“7월 초.”
“시간 많네요.”
태평스러운 강우의 대답에 신새벽이 찌뿌둥한 표정을 지었다.
“쌤이 졸업 못 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강우의 장담이 힘이 되었을까 신새벽이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노련한 강우가 보기에 별다른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논문의 질이지 노창열 교수의 기분이 아니니까. 쓸만한 논문인지는 해외 석학들이 판단해줄 거다. 애초에 강우가 노창열 교수와 다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노창열은 혼자서 저러다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되어있다.
“다만 앞으로 노 교수와 단둘이 있을 때 인신공격을 당하면 꼭 녹음해두세요. 혹시 모르니까요.”
“알았어. 근데 강우야, 넌 어떻게 논문심사를 그렇게 잘 알아?”
“에이, 제가 해외 저널에 지금까지 논문을 몇 편이나 실었는데요.”
다소 핀트가 어긋났음에도 신새벽은 별다른 의심 없이 강우의 대답을 믿었다.
“그러니까 쌤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논문을 마무리하세요. 2차 심사 때부터는 그럴 일 없겠죠.”
“그래, 강우만 믿을게.”
신새벽이 다시 밝은 미소를 되찾아 다행이다.
문득 강우는 궁금증이 생겼다.
“쌤? 쌤은 왜 화학을 전공하셨어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을까. 신새벽이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이게 뭔지 알아?”
“그거요? 무…… 으악!”
“이 자식이! 자꾸 기어오르고 있어. 내 다리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거든?”
한바탕 꿀밤 세례를 받은 강우는 툴툴대며 반문했다.
“그게 왜요?”
“이거 스타킹이잖아? 스타킹하면 생각나는 게 뭘까?”
화학과 스타킹을 연결하니 한 가지 물질이 떠올랐다.
“나일론.”
신새벽이 환하게 웃었다.
“잘 아네. 그래, 나일론. 나일론의 화학적 이름이 뭔지 알아?”
“어…… 그게…….”
“하긴 주기율표도 잘 모르는 네가 알 리가 없지.”
솔직히 강우도 할 말이 없다. 나일론은 고분자 물질이라 이름이 너무 복잡하니까.
“뭔데요?”
“나일론이란 이름은 올이 풀리지 않는다는 노런(no run)에서 따온 말인데 화학적으로는 폴리헥사메틸렌아디파미드란 물질이거든. 이 물질을 누가 개발했는지 알아?”
그렇게 긴 이름을 기억하면 물리 천재가 아닌 화학 천재지. 그런데 나일론을 개발한 사람이……. 또 막혔다. 이런 쪽으로 해박한 강우인데도 오늘은 연전연패다.
신새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윌리스 흄 캐러더스. 캐러더스는 어릴 때 평범한 학생이었어. 다만 매우 엄격하고 궁핍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해. 그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항상 다음 학기에도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걱정하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어. 그랬던 그가 대학 때 한 선생님을 만나 화학자로서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게 돼. 캐러더스는…….”
“아! 기억났다! 아서 파디!”
강우의 외침에 신새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떻게 그걸 알아?”
캐러더스를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은데 파디는 정말 기억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당연히 그런 강우를 신새벽은 감탄의 눈으로 쳐다봤다.
“아서 파디는 미국 타키오 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며 유망한 젊은이를 키웠죠. 지식보다는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죠. 캐러더스도 파디에게서 영향을 받아 화학자로 성공했는데…… 파디의 영향으로 유명한 과학자로 성장한 사람이 둘 있어요. 캐러더스와 어니스트 로랜스!”
로랜스는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다. 강우가 연구하는 분야이니 로랜스를 모를 수가 없다. 물론 그는 화학 천재인 캐러더스는 잘 모르지만.
문득 신새벽이 과학고 선생님이 된 동기가 어쩌면 캐러더스와 파디의 관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도도가 한때 과학자를 꿈꾸다 지금은 학교 선생님이 된 것처럼.
볼수록 차도도와 신새벽은 유사성이 많다.
새삼 강우를 대견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신새벽이 말을 이었다.
“캐러더스는 파디의 권유로 화학자가 될 결심을 해. 파디가 캐러더스의 화학 천재성을 꿰뚫어 봤던 거지. 그리고 5년 만에 학부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고. 그 후 하버드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화학회사인 듀폰에서 화학 천재의 꽃을 피웠어.”
캐러더스는 천재였다. 그는 탄소화합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분자량이 1만이 넘어가는 중합체가 탄소의 결합으로 탄생한 거대한 분자라 믿었다.
그 당시에는 혁신적인 사고였다. 그는 에스테르 결합을 이용해 분자를 하나씩 첨가하여 사슬처럼 긴 분자를 만들어냈다.
캐러더스의 아이디어는 빛을 발하여 합성섬유의 시발점이 된 폴리에스테르를 만들었다. 분자 실험기에 넣어둔 중합체를 유리막대로 저어 실로 뽑아내어 가장 큰 분자를 합성하려다가 이 물질을 발견했다. 멈추지 않는 그의 놀라운 천재성은 에스테르 화합물과 아미드 화합물을 만들어 유기화학의 토대를 닦았다.
캐러더스는 듀폰 사에 재직했던 9년간 60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수많은 특허를 출원했다. 시장에 판매되는 최초의 합성섬유, 나일론도 이때 만들어졌다. 열정적인 연구 그 자체였다.
“그런데 캐러더스는 나일론을 발명하고 2년 후, 나이 41세 때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해. 어릴 때부터 앓았던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일찍 자살한 천재가 의외로 많아요.”
“비록 짧은 생애였으나 그는 고분자 화합물 연구로 인류의 의류산업에서 새로운 길을 열었지. 그의 발명품은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어. 아마 그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노벨상을 받았을 거야.”
신새벽의 설명에 강우는 언젠가 들었던 캐러더스의 일대기가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역대 유명한 천재 과학자 중에는 일찍 요절한 사람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캐러더스가 왜요?”
“고분자 화합물 연구로 인류 문화에 이바지한 캐러더스를 알게 된 후 나도 그런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캐러더스는 천재였으나 난 재주가 없었나 봐. 물론 지금은 내 주제를 알아서 직접 연구하기보다는 과학도를 기르는 일에 더 주력하고 있지만.”
신새벽은 화학이고 그는 물리이지만 신새벽의 꿈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하려는 그의 꿈과 화학으로 인류 문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그녀의 꿈은 일맥상통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과학이 얼마나 인류를 변화시키고 윤택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고 있다.
과학을 이해하는 동료를 만나면 즐겁다.
강우는 신새벽의 꿈을 들으면서 속으로 외쳤다.
‘쌤도 하실 수 있어요. 제가 그렇게 할 거거든요.’
강우는 신새벽을 연구 동료로서 점찍은 자신의 안목이 녹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한바탕 웃고 즐기다가 두 사람은 화제를 돌렸다.
“차 쌤이랑은 화해했어?”
“화해할 게 뭐 있나요.”
“그래도…….”
그날 이후 차도도와 특별히 달라진 일은 없다. 그는 차도도에게 설명하지 않았고 차도도도 그에게 해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원해진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연구와 토론을 했으니까. 마치 그날 하루가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행동했다.
“그날 아침에 내가 전날 일을 상세히 다 얘기했거든. 그러니까 오해할 일은 없을 거야.”
“고마워요.”
“차 쌤한테 선물은 전해줬어?”
“그날 거실에 두고 나왔잖아요.”
“별말 없었어?”
경황이 없어 미처 생일선물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아침에 그렇게 난리가 나는 바람에 선물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전혀요.”
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점차 서쪽 하늘이 붉어졌다.
신새벽이 앞을 가리켰다.
“강우야, 저기 멋진 카페 보인다. 저기서 저녁이랑 커피까지 해치우자.”
지난번에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던 것까지 더해서 오늘은 제대로 밥을 얻어먹어야겠다.
* * *
고3에게 6월은 평가원 모의고사의 달이다.
재수생을 포함한 모든 고3이 치는 데다 수능과 같은 방식이기에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좋은 시험이다. 문제도 수능과 가장 유사하다. 그래서 고3들은 이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수능 전략을 세우고 남은 기간을 매진하게 된다.
과학영재고 학생은 평균적으로 우수하기에 시험 성적이 대단히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과학고생들은 본인의 목표와의 괴리로 이 시험에서 더 큰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강우다!”
그를 본 학생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지금 강우는 고려 과학고 멀티미디어 강의실의 단상에 서 있었다.
이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같은 학년인 3학년이다. 대략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90여 명이 그를 바라보며 기대감을 불태우고 있었다.
“3학년 3반 강우입니다.”
요란한 박수가 그를 환영했다.
인사를 마친 강우는 학생들을 둘러봤다. 모두 기대감으로 눈동자가 반짝인다.
강우는 명실상부한 고려 과학고 천재다. 특히 수학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자리는 고3 학생들의 학습클리닉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시간이고 그는 수학 클리닉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