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평가원 모의고사 (2)
6월 모의고사를 가장 신경 쓰는 부류는 진로를 의치대 방향으로 잡은 학생이다. 과학고 특성상 수시 입학으로 의치대 진학이 어려워 이들은 수능으로 정시 입학을 노린다.
그 난이도는 사실상 극악이다. 전 과목 1등급으로 합격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니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치대는 가장 인기 있는 계열이고 합격 커트라인도 가장 높다. 우수생이 밀집한 고려 과학고에서도 정시로 의치대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과학고임에도 이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과목이 바로 수학이다.
수학에 소질 있는, 수학 천재만 모인 집단인데도 수학 1등급이 아닌 학생이 의외로 제법 있다. 게다가 이들은 지금까지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던 학생이라 갑자기 성적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오늘 강우는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공부법을 강연한다. 물론 청중 속에는 수학을 잘하는 녀석도 다수 섞여 있다.
“수능 수학, 그것도 고난도의, 배점이 높은 문제 위주로 설명하겠습니다. 수학만점자 손들어 보세요.”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다. 사실상 여기에 올 이유가 없는 학생들이다. 당연히 강우는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 시험이 내신과는 또 다르죠? 경시와도 다르고요.”
수능 높은 배점 문제는 수학에서도 특이한 영역이다. 사고력을 요구하면서도 주어진 시간이 짧은 데다 가끔은 보지 못했던 신유형도 속출한다. 대한민국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문제다.
“먼저 간략한 예시를 위해 이번 모의고사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마지막 문제를 한번 살펴보죠.”
이미 해답지를 본 학생들이기에 굳이 풀이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에 강우는 출제자의 시각으로 문제를 분석했다. 출제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떠올렸을까. 교과서의 어떤 개념에서 출발했고 이 문제를 만들면서 무엇을 노렸는가.
강우의 분석은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우와! 신선한데?”
“이야! 출제자가 저렇게 우리를 엿 먹이려고…….”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강우처럼 한 단계 높은 위치에서 문제를 내려다보면 그 숨은 의도가 보인다.
우수한 고등학생이 초등 고학년 문제를 볼 때 느끼는 발상과 비슷하다.
“출제자는 고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대학 수학까지 완벽하게 통달한 사람이죠. 그 사람이 그 지식을 융합해서 고난도 문제를 떠올리고 이를 고등학교 개념으로 풀 수 있도록 문제를 조정하면…….”
위대한 수학자, 라그랑주나 라플라스가 유희처럼 다루던 미적분 문제 가운데 고등학교 수학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제에 현대적인 사고를 덧붙여 새로운 문제가 탄생한다.
좋은 문제를 내는 사람은 이런 문제를 잘 포장하는 사람일 뿐이다.
“다음 문제를 또 살펴보면…….”
강우는 학생들에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심히 설명했다. 평소 그가 내신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던 방식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문제를 풀면서 수학이라는 벽에 부딪혔던 학생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었다.
물론 이런 접근 방식이 맞지 않는 학생도 있다.
그래도 아직 수능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공부 방식을 바꾸어볼 기회는 있다. 적어도 꽤 많은 학생이 오늘 강우의 클리닉에서 도움을 얻었다. 최소한 수학 때문에 답답하던 마음을 풀어주는 효과는 충분히 있었다.
“자, 어때요? 한번 시도해볼 만하죠?”
강우는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학생들이 평소에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방법을 첨가했고 이것은 학생들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다음 시험을 훨씬 잘 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얻었다.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하죠?”
어떤 학생이 3년 전 모의고사 문제를 꺼냈다.
강우는 스크린에 해당 문제를 띄웠다. 그 문제를 읽음과 동시에 새로운 방식의 해법을 설명했다.
“이것도 같은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죠. 함수의 최대를 미분을 통해 접근하는 문제인데…….”
그 누구도 보자마자 풀 수 없는 고난도 문제였다. 오직 강우만이 가능했다. 당연히 강우는 수능 공부를 한 적이 없어 과거 기출문제를 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문제를 해석했다.
그 사실을 청중이 된 학생들도 알았기에 그들의 놀라움은 엄청났다.
다른 질문이 또 나왔다.
“이 문제는요?”
강우는 곧바로 마법처럼 문제를 설명하고 풀었다.
단순한 클리닉 강의임에도 학생들은 강우의 엄청난 능력을 엿보았다. 과연 이 고려 과학고 천재는 달랐다. 그의 앞에서 모든 수능 문제는 초등학교 저학년용으로 바뀐다. 그 마법을 배우고 싶다.
학생들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들었다. 강의실에 뜨거운 열기가 넘쳤다.
그들은 강우의 엄청난 능력에 좌절을 느끼기보다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강우가 수학 클리닉을 마치고 내려가자 이번에는 손차희가 올라왔다.
손차희는 고려 과학고 3학년 내신 1등이다. 전체 과목 합산에서 그녀보다 더 잘하는 학생은 없다.
수능에서는 국영수가 가장 중요하고 손차희는 국어 클리닉을 맡았다.
의외로 수학 과학에는 재주가 있으면서 국어에서 헤매는 학생들이 상당히 이 학교에 많았다. 그런 학생을 위해 손차희가 오늘 클리닉을 시작했다.
“국어를 잘하는 방법은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죠. 특히 어린 시절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가 수능 국어에 의외로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에이, 난 어린이가 아닌걸.”
“초등생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이미 짐작한 반응이기에 손차희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같은 효과를 고3인 지금도 누릴 수 있어요. 오늘 그 비법을 설명해 드립니다.”
환호성이 터지고 손차희는 국어 클리닉을 시작했다.
“타자 쳐보셨죠? 타자는 ‘신속 정확’이 중요하죠? 처음에 어떤가요? 마음만 앞서서 오타가 속출하지 않나요?”
손차희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수능에서는 모든 과목을 신속 정확하게 풀어야 한다. 그런데 국어에서는 문법 분야를 제외한다면 이 원리가 특히 더 중요하다.
“타자에서 급히 기본을 무시하고 타수만 올리려고 하면 나중에 발전이 없죠. 처음엔 일단 꼼꼼하고 정확하게. 국어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바로 이 부분을 어려워하죠. 급해서 지문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 바로 이거죠.”
손차희는 능숙하게 국어 공부의 문제점을 꼬집었고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국어는 모국어이기에 평소에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해결책을 찾기가 더 어렵다.
수학은 틀리면 무엇을 모르는지 비교적 정확히 안다. 그런데 국어는 틀려도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그녀의 클리닉이 거의 끝나갈 때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새 손차희의 방법에 수긍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천재들이 모인 이 학교에서 내신 1등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 학생이 알려주는 비법이기에 학생들은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자, 이번 모의고사 문제를 보면…….”
손차희도 모의고사 문제를 놓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지금 그녀의 풀이 방법은 흔한 학원의 설명과는 아주 다르다. 그녀도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강우의 수학 공부법에서 받은 영향이 컸다. 듣는 학생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다음은 영어클리닉.
이번에는 윤수아가 단상에 올랐다.
1학년 때 윤수아는 영어점수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런데 2학년부터는 영어점수가 완벽해졌다. 어릴 때 외국에서 자랐던 영향이 국내 영어교육과 맞물리면서 제대로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는…….”
윤수아는 외국 사람이 사용하는 영어와 수능영어의 차이를 설명했다. 수능영어는 단순히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만점을 받을 수 없다. 무조건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본다고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수능 영어점수는 절대평가여서 일정 수준만 넘어서면 된다. 윤수아는 그 방법을 열심히 알렸다.
이미 영어 1등급인 학생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해도 다른 학생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됐다.
다음에 단상에 오른 학생은 최대우였다. 이로써 고곽천재 네 학생이 모두 클리닉에 참여했다.
여러 학생 앞에서 발표하는 경험이 최대우는 처음이었다.
“하아! 3반 최대우입니다.”
소개하지 않아도 최대우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 최우수상이자 1학년 때 대비 물리에서 비약적인 성적 향상을 거둔 학생이니까. 또 곰처럼 우직한 외모 때문에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었다.
“물리를 잘하는 방법은 역시……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 됩니다.”
학생들이 그의 일성에 좌절했다.
“하아! 얼마나 공부하면 되냐 하면…… 전 1학년 때 물리 문제풀이 센터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최대우가 투입한 시간을 듣고 더 좌절했다. 그들이 상상치 못하던 많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노력했다면 물리 금메달에 모의고사에서도 만점이 당연했다.
비록 학생들은 물리 만점 비법을 얻어갈 수 없었으나 최대우 개인의 노력을 깨닫고 감동했다.
클리닉 시간을 마치고 학생들이 떠난 후에 고곽천재는 강의실에 남았다.
“학생들이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어.”
손차희가 희망을 피력했고 윤수아도 거들었다.
“똑똑한 친구들이니까 도움이 되었겠지.”
“근데 왜 애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정작 최대우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우는 그들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클리닉은 친구를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다. 공부하면서 그들이 느낀 비법을 진심으로 알려주었다. 어떤 친구에게는 도움이 되고 어떤 친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도움을 받은 친구가 훨씬 많다고 믿었다.
적어도 고3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의 해법을 알려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강우가 뿌듯한 마음에 잠겨 있자니 손차희가 물었다.
“그래서 모두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어?”
강우와 최대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수능보다 연구 실적으로 외국 대학을 뚫을 작정이다.
“넌?”
“난 열심히 할 거야. 대한민국 고3이니까.”
손차희의 발언은 과연 내신 1등다웠다. 그녀도 유학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수능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 가상했다.
“나도 열심히 할 거야.”
윤수아도 같은 반응이다.
강우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두 사람의 행운을 빌었다. 물론 그렇다고 본인이 수능을 진지하게 치겠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 * *
기말고사를 치기 직전에 강우는 핵융합 네 번째 논문을 국제 저널에 실었다.
논문 저자는 강우, 손차희, 윤수아, 최대우, 차도도, 요셉, 여섯 사람이나 되었고 제목은 ‘핵융합에서 뮤온 촉매의 거동 예측 수학적 모델 연구’였다.
강우를 제외한 고곽천재 세 사람의 첫 해외 저널 논문이다.
논문이 출간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강우는 차도도와 둘만의 간단한 자축연을 가졌다. 장소는 그녀의 아파트에서였다.
“고생했어.”
“고생이야 쌤이 더 많이 하셨죠.”
서로를 칭찬하며 무알콜 샴페인으로 잔을 부딪쳤다.
“난 이 논문을 언제 제출하나 항상 궁금했거든.”
“원래는 작년 연말에 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어요.”
사실 이 논문은 복잡한 사정에 엮여 있었다.
헌팅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감에도 구체적인 결과물이 없었기에 점차 외부의 의혹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물론 강우는 미리 준비를 완료하고 있었으나 전략상 공개를 꺼리고 있었다. 바로 마도환의 헌팅턴 프로젝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