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논문심사 (2)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대학원생이어도 교수 앞에서는 쩔쩔맬 수밖에 없다.
지금 신새벽이 그런 상황이었다. 발표하는 논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신새벽이다. 정원재 지도교수와 학과장은 애초에 양자화학과 관련이 없어서 신새벽의 논문을 평가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노창열도 엄밀히 따지면 살짝 비켜나 있다. 그렇기에 이 논문을 제대로 평가할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노창열이 아니었다.
중간중간에 노창열이 쉴새 없이 질문을 퍼부었고 신새벽은 간신히 대답하며 방어했다.
수식이나 주요 내용에서 공격이 막히자 노창열은 학위논문을 쓰는 자세를 물고 늘어졌다.
“그 부분에서 그렇게 비약해서 설명할 수 있나요? 그 경우 참고논문을 언급하거나 아니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쓰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난감한 상황에서 신새벽이 강우를 곁눈질했다.
강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신새벽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여기 그림말이죠. 그래프가 불명확해요. 새로 그릴 수 없어요?”
이젠 별것에 다 딴지를 걸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신새벽은 고개를 조아리며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반지름 r과 전기력 관계 그림 새로 추가하고요. 이건 또 뭡니까? 발로 그렸습니까?”
강우는 상대를 노려봤다. 막연하게 권위만 세우려는 노창열의 행동이 슬슬 질린다. 1차 심사 때 신새벽이 울고 온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때는 이보다 훨씬 심했겠지.
보다 못한 정원재가 제동을 걸었다.
“잠시 쉬고 합시다.”
구원을 받은 심정으로 신새벽이 머리를 숙인 다음 밖으로 나갔다.
강우가 따라가려 할 때 정원재가 그를 불렀다.
“강우 군? 잠시 나 좀 보게나.”
학과장과 노창열도 밖으로 나가고 연구실에는 둘만 남았다.
“오늘 보기에 좀 그렇지?”
“예?”
“노창열 교수가 보통 저렇게 심하지 않은데 논문심사 때면 꼭 열을 낸단 말이지.”
정원재가 노창열을 두둔하듯 말했으나 백전노장인 강우는 그 이유를 안다. 논문심사가 갑질하기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문제를 자꾸 지적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강우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나도 그렇게 보네.”
정원재가 인자한 미소를 머금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새벽이 계획을 아나?”
“무슨 말씀이신지?”
“학위를 받은 후 어떻게 할 건지 몰라서 말이야. 고려 과학고에 계속 있을 예정인지 아니면 국내 연구소에 취업할 건지…… 물어봐도 도통 대답이 없어.”
“교수님께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신새벽의 미래를 지도교수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보통 파트로 학위를 밟는 경우 학위는 단순히 학벌 때문인 경우가 많아서 기존 직장을 고수한다.
“새벽이가 고등학교 교사로 남기엔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그래서 박사과정에 도전해보겠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대답을 안 해. 아직은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그 열쇠를 자네가 쥐고 있는 듯하여 말이네.”
정원재의 눈썰미도 대단했다. 지난번에 한번 보고 어느새 신새벽과 그의 관계를 파악했다.
어쨌든 정원재가 신새벽을 높이 평가한다니 강우는 기뻤다.
신새벽의 계획을 그가 밝히기에는 조금 염려스럽긴 했으나 말이 나온 김에 귀띔은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신 선생님께선 앞으로 일 년 정도 추가 논문을 쓰실 거예요.”
“벌써 계획하고 있나?”
“예, 오늘 발표한 학위논문의 후속편이고요. 대략 두 편 정도가 될 겁니다.”
“대단하군.”
그를 보는 정원재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신새벽 논문을 그가 이끌고 있음을 짐작한 표정이다.
“그 논문을 끝낸 후에 아마도 외국 유학을 떠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일세. 인재가 고등학교에 묻히지 않아서 말이야. 물론 고등학교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은 아니야. 단지 학계 입장에서 그렇단 거네.”
“신새벽 선생님을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자네 진로는? 한국대는 어떤가?”
“현재 유학을 고려 중입니다.”
“그래, 더 큰물에서 놀아야지.”
정원재에게 인사하고 강우는 물러났다.
노창열처럼 갑질을 일삼는 교수도 있고 마도환처럼 남의 연구를 베끼는 비열한 교수도 있다. 반면 한태규처럼 연구에 몰두하는 교수도 있고 정원재처럼 후학 양성에 열심인 교수도 있다.
복도로 나갔더니 저쪽 화장실 입구에서 노창열이 신새벽에게 뭔가 경고하고 있었다.
찜찜한 기분에 그 앞으로 갔더니 노창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도장 찍어줄 것 같아? 네가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면 호텔 방으로 도장 갖고 오라는 수도 있어.”
“교수님…….”
그가 나타나자 두 사람이 대화를 멈췄다.
강우가 상대를 쳐다보자 노창열이 화가 난 얼굴로 그를 노려보다가 돌아갔다.
“괜찮아요?”
“응, 괜찮아.”
강우는 그녀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 * *
논문심사가 속개됐다.
휴식 시간 동안에 전략을 새로 짠 듯 노창열의 공격 전선이 바뀌었다.
“뮤온 입자의 거동을 수학적으로 푸느라 고생했는데 과연 이 결과가 타당한가요? 수소 원자에서 전자구름과 뮤온 입자 구름을 비교했는데 이게 입증된 바가 없잖아요? 수식이 옳다고 해서 그 결과도 맞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죠?”
지금까지와 달리 논문 전체의 진위를 묻고 있다. 물론 이런 의문이 억지가 아니고 일부 타당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우도 안다.
신새벽은 어떻게 대답할까.
“알다시피 뮤온 입자의 거동은 실험적으로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전자의 확률분포는 원자의 화학적인 성질과 거동에 부합하죠. 최근 1세기 동안 이 이론이 옳다고 여러 차례 실험적으로 입증되었고요. 하지만 뮤온 입자의 확률분포는 입증된 바가 없죠. 단지 가설일 뿐이란 말입니다. 증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가설을 옳다고 승인하기엔 문제가 있어요.”
노창열의 공격이 대단히 날카로웠다.
그렇다고 뮤온 입자의 실험 결과를 구할 방법도 없다. 수명이 짧은 뮤온 입자를 실험으로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 신새벽의 답변이 벽에 부딪혔다.
떠오르는 답변을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무는 모습이 자신감이 떨어진 듯 보였다.
어떻게 대답할지 말문이 막힌 신새벽이 망연한 표정으로 강우의 눈치를 봤다.
지금일까. 참관인으로 머물고 싶었는데 무대가 마련되니 어쩔 수 없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원에 나섰다.
“노 교수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 연구는 아직 실험이 어려운 분야입니다. 그렇기에 실험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말씀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강우의 주장에 노창열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럼 결론이 옳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보어가 처음 수소 원자 모델을 들고나왔을 때도 전자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스펙트럼 등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확인된 결과로 모델을 구성했지요. 아인슈타인이 빛이 휘어진다는 상대성이론을 주장했을 때도 실험으로 입증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가설이었죠. 그 가설은 십여 년 후 에딩턴에 의해 증명되었고요.”
“뭔 소리야? 신새벽이 보어나 아인슈타인급이란 거야?”
“가설이 완벽하게 증명되어야만 논문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어긋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가설이 되고 논문이 되는 거죠. 유명한 법칙도 처음에는 가설에서 시작했습니다.”
노창열의 분노가 점점 높아졌다. 화를 참지 못하는 전형적인 다혈질이다.
“그럼 아무렇게나 가설을 세우면 다 된다는 건가?”
“이 논문은 지금까지 CERN에서 실험한 간접적인 여러 데이터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또 입자 표준모델과도 상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가설이며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연구 결과는 타당합니다.”
“나는 인정 못 하네.”
노창열이 단번에 끊어버렸다.
강우도 슬슬 화가 치밀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논문 결과를 두고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결말은 노창열의 굴욕이 될 것이다.
강우와 노창열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기세 싸움을 벌였다. 강우의 입가에 점차 비웃음이 일었다.
보다 못한 정원재가 끼어들었다.
“아, 진정하시죠. 참고로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퀀텀 캐미스트리 저널에서 신새벽 학생이 쓴 논문의 심사가 끝났습니다. 결과는 다음 달에 저널에 실린다고 합니다. 학계에서 이 논문을 인정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노창열의 표정이 확 굳었다.
세계적인 저널에서 인정한 논문을 틀렸다고 계속 우기기 어려워졌다. 공세를 취하던 노창열이 어쩔 수 없이 주장을 철회했다.
강우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옆을 힐끔 보니 신새벽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애초의 계획대로였다면 이 논문심사는 어려운 일이 없었다. 국제 저널에 실린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의 타당성을 밀어붙이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문이 늦게 실리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뒤늦게라도 결과가 도착해서 다행이다.
“자, 그럼 논쟁이 끝난 겁니까?”
학과장이 적절하게 수습했다.
그때 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퀀텀 캐미스트리 저널에 논문을 보내기 전에 국내 화학회지에도 논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더군요.”
이건 순전히 노창열을 겨냥한 말이다.
강우는 그 원인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국내 화학회지에 보낸 논문의 심사를 노창열이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이 결과를 내놓지 않으니 계속 미뤄지고 있다.
노창열은 이 논문을 거절하기도 승인하기도 곤란한 입장이다. 마음 같아선 거절하고 싶어도 공식적인 문서로 남기에 훗날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니까.
“아, 그래요?”
학과장이 노창열에게 눈치를 줬다.
노창열은 가벼운 기침으로 대답을 피했다.
이제 더는 미루지 못한다. 그렇다고 국제 저널에서 승인한 논문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대답은 정해졌다.
“그럼 논문 2차 심사를 마치지요. 오늘 지적한 내용을 보완해주시고 3차 때는 승인 도장을 갖고 다시 만나겠습니다.”
학과장이 마무리를 지었다.
신새벽의 험난한 논문 사투가 끝났다.
* * *
모두가 떠나고 신새벽과 강우 둘만 남았다.
긴장이 사라지자 신새벽은 그 자리에 무너졌다. 그날처럼 울지는 않았어도 기운이 모조리 빠진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응, 덕분에. 고마워.”
강우는 조용히 신새벽을 위로해주었다.
손강우 시절, 석사 박사학위 과정을 밟아보았기에 이 순간이 얼마나 힘든지 그도 잘 안다. 지금 신새벽의 심정이 어떨지도.
마무리했으니 떠날 시간이다.
“우리도 가죠.”
소지품을 챙기고 그들은 건물을 나섰다.
창과 방패가 튀던 연구실과 달리 바깥세상은 평화로웠다. 밝은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자, 이제 끝났으니까 뭐할까요?”
“음…… 그냥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영화 보러 갈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즐기고 싶다는 표정이다.
“그것도 괜찮죠.”
신새벽의 하얀 세단에 몸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막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차도도다.
- 강우야, 끝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