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유학 준비 (2)
“흐아, 나도 저기에 있어야 하는데!”
윤수아가 연신 처지를 한탄했다. 그녀는 국제 올림피아드에 출전한 경력이 없다.
저렇게 마음이 붕 떠 있으니 오늘은 연구에 집중하기 틀렸다. 어쩌면 친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어영부영할지도 모르겠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윤수아라면 먹는 거로…….
“수아야, 공부 안 되지? 배 채우러 갈까?”
“좋지! 역시 대우가 없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먹고 싶은 거 있어?”
“더운 날에는 팥빙수지!”
윤수아의 제안에 강우도 동의했다.
이 동네에서 먹을만한 팥빙수는 가우스 카페밖에 없다. 물론 그곳에서 둘이 단출하게 먹을 생각은 없었다. 돈을 낼 물주를 끌어들여야지.
강우는 신새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쌤? 팥빙수 드실?”
- 우와! 강우야! 네가 웬일이니? 팥빙수를 다 사주겠다니!
“쌤보고 사라는 건데요?”
- 뭬야?
“가우스 카페. 10분 후. 콜?”
- 알았어.
어쨌든 물주를 확보했으니 후속 작업이다.
그는 차도도에게도 톡을 넣었다.
- 강우 : 쌤? 학교에 계시죠? 신 쌤이랑 팥빙수 먹기로 했으니 쌤도 같이 오세요.
잠시 후 수락 답장이 왔다.
* * *
시원한 카페에 넷이 모여서 시간을 보냈다.
강우는 가져온 태블릿으로 윤수아가 할 일을 설명했다. 지금처럼 밖에 나와서 공부하기엔 태블릿이 제일 편하다.
가끔 팥빙수를 떠서 입에 넣으면서 강우는 태블릿에 수식과 그림을 그렸다.
“수소 플라스마의 거동을 생각해보자고. 항성 내부는 고온 고압이잖아? 그곳에는 원자핵의 척력을 능가하는 압력과 온도가 작용해. 그러니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지. 우리가 연구하는 핵융합 반응에서는 고압이 불가능해서 온도만 높아. 이때 각각의 원자핵에 작용하는 힘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윤수아는 MIT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수치해석 방식으로 플라스마의 핵융합 반응을 연구한다. 걸음마 단계부터 수행해서 이제는 난해한 연구로 진입했다.
그 난관 돌파를 강우가 인도하고 있다.
“각각의 원자핵에 작용하는 힘은 복잡한 미분방정식으로 정리되고 이를 수천만 개의 셀로 나눈 격자에서 해석하는 거잖아?”
말은 간단해도 수많은 원자핵이 어지럽게 움직이므로 슈퍼컴퓨터라 할지라도 계산이 쉽지 않다.
“각 입자에 고정된 격자를 기준으로 미분식을 차분하면 우리는 수천만 개의 연립방정식을 얻을 수 있어. 즉 미분방정식이 선형 연립방정식으로 변환되지. 이게 바로 수치해석법의 핵심이야. 그러면 이 문제는 새로운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연립방정식 수가 문제란 거지?”
“그렇지. 방정식 수가 수천만 개를 넘어가니까 아무리 슈퍼컴퓨터라도 해답을 얻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이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려면…….”
강우의 입에서 선형대수의 각종 이론이 쏟아졌다.
윤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제에 빠져들었다.
강우가 수식을 나열하고 그 특징을 언급하면 그녀는 이 문제를 프로그래밍해서 효율적으로 풀 방식을 고민했다.
물론 그들이 풀어야 할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수소 원자핵에 뮤온 입자가 끼어들면서 한층 복잡해진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이 팥빙수가 녹아 물로 변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차도도와 신새벽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얘들이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래?”
“공부가 좋은가 보지.”
“청춘이네.”
지금 강우와 윤수아의 집중력은 그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카페에 와서 놀 줄 알았더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두 선생님도 핵융합 반응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이 대화를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그 세부 내용은 그들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강우는 대체 모르는 게 뭐지?”
“나도 모르겠어. 3년 동안 담임을 맡아도 여전히 새로워.”
“흠, 양파 같은 남자군.”
“양파?”
“까도 까도 새롭단 뜻이지.”
신새벽의 양파론에 차도도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강우와 만난 행운을 항상 감사한다. 강우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연구의 즐거움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강우를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마치 이 세간의 범주를 벗어난 천재를 보는 심정으로 차도도와 신새벽은 넋이 나가 있었다.
한참 태블릿에 수식과 그림을 채우면서 의견을 주고받던 강우와 윤수아가 마침내 대화를 끝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가능해. MIT 슈퍼컴퓨터가 워낙 성능이 좋아서. 알고리즘만 제대로 구성하면 이런 계산은 며칠이면 답이 나와. 계속 조건을 바꾸고 수정해야 하니 문제지.”
“언제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졸업 전엔 무조건. 늦어도 연말까진 어떻게든 해볼게.”
윤수아는 고곽천재 내에서 유일하게 올림피아드 실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유학을 위해 연구에서 독자적인 실적이 필요하다. 고곽천재 중에 어찌 보면 가장 다급한 사람이 윤수아다.
강우도 이번 방학을 맞이하여 윤수아에게 더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제야 스푼을 들던 강우가 팥빙수를 휘저으며 투덜댔다.
“젠장! 물로 변했어.”
녹은 우윳빛 물에 떠 있는 얼음이 맛있다고 강우와 윤수아가 열심히 손을 놀렸다.
보다 못한 차도도가 넌지시 물었다.
“하나 더 시켜줄까?”
“아뇨.”
“네! 이번엔 망고빙수!”
강우와 윤수아의 대답이 엇갈렸다.
차도도가 카드를 내밀었고 윤수아가 잽싸게 받았다.
“역시 담임 쌤이 최고예요!”
“그거 프로젝트 카든데? 네 지분도 있어.”
차도도가 개인적으로 사주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연구비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역시 그럴 리 없지.”
강우가 투덜대자 차도도의 불평이 쏟아졌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이 사줬는데…….”
윤수아가 망고빙수를 하나 더 먹는 사이 신새벽이 제안했다.
“여름인데 우리도 놀러 갈까?”
손차희와 최대우가 부러웠던 윤수아는 바로 찬성했고 강우는 얼른 결정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놀러 가더라도 마음 편히 놀지 못할 게 뻔하다.
과학자나 연구원의 삶이란 그렇다. 항상 풀리지 않는 문제를 고민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느라 일상적인 삶에서는 마치 나사 하나가 풀린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물리학자의 사고실험은 실험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머릿속에서 수행되는 법이니까. 과학자를 선택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강우의 고민을 눈치챈 차도도가 말했다.
“그런데 시간은 되니? 특히 강우는. 강우야?”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모였다. 강우가 가겠다면 당장이라도 놀러 갈 기세다.
이래저래 바쁜 일정을 정리해봐도 강우는 마땅하게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뇨. 전 이번 주에 고향에 다녀와야 해서…….”
“그럴 줄 알았어.”
신새벽이 불만을 드러냈고 고민하던 차도도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멀리 놀러 가긴 힘들고 가까운 카페라도 다녀오자. 카페 가서 일하면 되지. 기분도 전환할 겸. 어디를 가든 여기 가우스보다 낫지 않겠어?”
요즘은 서울 근교에 테마형 카페가 많다. 하루 카페를 순례해도 기분이 전환된다.
“우와, 그게 좋겠어.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었는데.”
“전 인터텟만 되면 어디에서든 슈퍼컴에 접속할 수 있으니 상관없어요.”
강우를 제외한 모두가 찬성했다.
정작 강우는 카페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궁금해하면서 다수결에 의해 따라가기로 했다.
실상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데리고 가는 모양새다. 운전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까.
다음날 그들은 신새벽의 차를 타고 수도권 카페를 순례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좋은 기분 전환이 되었다.
* * *
올림피아드가 끝났다.
손차희는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했다. 그녀의 학창 시절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강우는 윤수아와 함께 인터넷상에서 그녀를 축하해줬다.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엔서답게 손차희는 많은 축하를 받았다.
하은찬도 예상대로 금메달을 받았다. 다만 최우수상은 아니었다. 올해 최우수상은 미국의 랜디 멀더 혼자였다. 강우가 없으니 랜디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
이민찬은 은메달을 수상했다.
최대우는 올해도 물리 금메달이자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연히 애나 스튜어드와 함께였다.
최대우는 애나와 더 가까워졌다며 좋아했다.
유혜림은 화학에서 금메달을 받아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 그녀는 돌아온 후 강우에게 축하선물을 달라고 우겼고 강우는 치킨 열 마리 쿠폰을 선물했다.
그밖에 소소한 메달 수상 덕분에 올해도 고려 과학고는 작년만큼은 아니어도 비교적 괜찮은 실적을 거뒀다.
더위가 점차 물러가는 8월 중순에 고곽천재는 세미나실에서 환송 파티를 열었다.
주연은 권유성이다. 떠나보내는 반응이 각각 다르다.
“유성아, 먼저 가 있어. 내가 내년에 따라갈게.”
“아직도 안 갔니? 입학한 거 맞아?”
“비행기 조심해라. 날다가 떨어질라.”
“여자 조심하고.”
권유성은 손차희, 윤수아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이다. 강우와도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쌓였다.
그렇기에 해외 유학을 떠나는 권유성을 모두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환송했다.
“뭐야? 아주 그냥 악담을 하세요! 악담을!”
투덜대며 친구들을 나무라는 권유성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권유성은 미국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입학 원서를 넣었다. 몇 군데 입학 제의가 왔었는데 그는 과감하게 MIT를 택했다.
강우가 보기에도 이공계에 특화된 천재인 권유성은 다른 학교보다 MIT가 더 적합했다.
“크흐흐, 내가 먼저 MIT에 짱 박고 있을 테니까 내년에 모두 따라와! 내가 선배다 선배!”
권유성은 고려 과학고에 이 년 일찍 입학하더니 결국 대학도 이 년 일찍 들어갔다. 손차희와 윤수아의 일 년 후배였는데 정작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는 일 년 선배가 됐다. 이쯤 되면 누가 선배이고 후배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권유성이 MIT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손차희를 비롯한 고곽천재가 MIT를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날 때마다 툭탁거려도 정작 이 녀석은 고곽천재에 애정이 있었나 보다.
강우는 권유성의 유학을 아낌없이 축하해줬다.
“내가 했던 거 그대로 따라 하면 너희도 입학할 수 있어.”
권유성이 으스대며 모두를 둘러봤다. 마치 SAT 시험은 쳤냐고 물어보는 눈빛이라 강우를 비롯한 모두는 찔끔 몸을 움츠렸다.
“혼자 보내려니 마음이 불편한데…… 가면 자주 소식 전해줘. 특히 그 동네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손차희가 언급한 살아남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천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주거를 비롯한 일상에서 유학생이 살아남는 법이다.
경험자를 따라가면 훨씬 편해지기에 그들은 아낌없이 권유성을 격려해줬다.
그렇게 축하 파티가 끝나고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 권유성이 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우 형! 내년에 꼭 와야 해.”
무심코 녀석과 악수하고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준 후 강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권유성이 그를 형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던가. 비록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이 녀석은 예전부터 그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나 보다.
강우는 재차 포옹하면서 녀석의 미래가 찬란하기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