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53화 (253/325)

제253화 유학 준비 (3)

8월 말에 신새벽은 코스모스 졸업했다.

한국대 석사과정을 파트로 입학한 지 3년 만이다. 일반적으로 석사과정은 2년이니 다소 늦은 졸업이다. 직장 생활을 겸한 파트 과정임을 고려하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기간이긴 하다.

노창열만 아니었다면 즐거웠을 대학원 생활이 고난과 인고의 시간으로 바뀌었으나 그녀는 무난하게 잘 대처해서 결국 성과를 얻었다.

졸업 당일 강우는 축하해주려고 한국대에 가려다 포기하고 차도도의 아파트에서 열심히 연구에 매진했다. 신새벽의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는 졸업식장에 학생인 그가 나타나기엔 어딘지 어색했다.

오후 늦은 시각이 되었을 때 초인종이 울리고 신새벽이 방문했다.

졸업이라고 평소와 달리 차려입은 그녀는 눈부셨다.

“강우야!”

거실에 난입하자마자 신새벽은 강우를 찾았다.

“나! 졸업했어!”

졸업이 엄청 기뻤나 보다. 실상 따지고 보면 그녀의 졸업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지도교수가 아니라 다름 아닌 강우다. 어쩌면 두 번째가 노창열이려나.

강우는 다시 졸업을 축하했고 신새벽은 으스대면서 감회를 풀었다.

“강우가 아니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몰라.”

“에이, 뭘요. 혼자였어도 잘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지금만큼은 아니겠지. 내 논문이 국제 저널에 실렸다고 칭찬이 자자했어. SCI급 논문은 박사학위에는 많아도 석사에는 드물다고 했거든.”

신새벽의 실적을 보면 박사학위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학생을 미워해서 괴롭힌 노창열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난 그렇게 훌륭한 논문을 쓸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었는데…… 어쩌다가 정말 해버렸어.”

일 년 전 강우와 처음 논문을 논의할 때에 비해 지금의 신새벽은 연구 능력이 크게 발전했다. 물론 논문을 쓰면서 본인의 능력을 새롭게 깨닫고 노력한 결과로 다른 사람에 비해 큰 변화를 겪었다.

“이게 모두 강우 덕분이야.”

“쌤이 잘하셔서 그렇죠.”

“아냐, 이번에 같이 졸업한 동료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거든. 강우가 좋은 영향을 준 게 분명해.”

신새벽의 주장에 차도도도 동의했다.

“강우 옆에 있으면 머리가 잘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풀리지 않는 문제도 이상하게 잘 풀리고.”

두 선생님의 주장에 강우는 자신의 천재성을 다시 떠올렸다.

주변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이 있다고 확실히 입증됐다. 생각해보면 그의 주변 동료들은 모두 괄목할만한 실적을 거뒀다. 단순히 본인들의 능력으로 치부하기엔 그 실적이 지나치게 많고 우수하다.

강우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을 심어준 하늘에 감사했다. 이는 연구 동료를 많이 확보해서 함께 연구하라는 하늘의 뜻이니 이 능력을 앞으로도 열심히 활용할 생각이다.

“그래서 강우에게 정말 고마워.”

신새벽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잡았다.

강우는 미소로 대답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직 확정하진 않았는데…….”

머뭇거리는 행동이 생각한 바가 있는 모양이다.

“설마 내일 바로 학교를 그만두시는 건 아니죠?”

“내가 너를 버려두고 어떻게 그만두겠니?”

“내가 있으면 강우는 아무 문제 없거든.”

차도도의 반박이 바로 돌아왔다.

“앞으로 일 년간은 학교에 계속 있을 거야. 은찬이랑 혜림이가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줘야지.”

강우가 바라는 것을 신새벽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MIT에 입학한 유성이를 보니까 나도 부럽더라. 예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나도 유학 갔으면……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옆에서 떠나는 녀석을 보니 마음이 또 달라지더라고.”

비슷한 이야기를 강우는 고곽천재에게서도 들었다. 작년에 MIT를 다녀온 후 유학의 꿈을 키웠어도 한편으로는 뜬구름 잡기였는데 정작 이번에 떠나는 권유성을 보니 의욕이 불타오르게 됐다.

그 덕분에 요즘 고곽천재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다. 고3이면서도 수능이 아닌, 수능 치는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예전엔 말로만 유학을 꺼냈었는데 정작 논문을 싣고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강우가 내년에 이 나라를 뜬다니까 나도 같이 가볼까 해.”

내년 여름에 강우가 MIT에 입학할 때 그녀는 MIT 화학과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겠다는 의욕을 확실하게 토로했다.

예전부터 신새벽은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했었다. 한국대나 아니면 해외 유학이나. 다만 그것은 실체화되지 않은 막연한 바람이기도 했다. 일단 석사학위를 따기까지 시간이 남았었고 학위 취득 후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고민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강우 때문에 급격하게 빨라졌고 권유성과 논문실적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강우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최근 신새벽의 능력을 평가해보면 천재가 따로 없을 정도였으니까. 애초에 한국대를 나온 재원인 그녀가 지금은 더욱 물이 올라 천재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래서 결심했어. 강우와 함께 유학 가기로.”

신새벽의 굳건한 결의가 돋보였다.

당연히 혼자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라면 힘이 덜 든다. 그렇기에 강우는 환영했다.

정작 차도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제 하지 말라고 해도 신새벽은 알아서 유학 가려고 노력할 테니 남은 사람은 차도도뿐이다.

강우는 차도도를 슬슬 건드렸다.

“그때 GRE 시험 대결 아직도 유효하죠?”

“당연하지. 내가 무조건 이길 건데.”

신새벽이 주먹을 쥐고 승리욕을 불태웠다.

차도도의 한숨이 더욱 짙어졌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차도도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강우야, 뉴클리어 퓨전 저널에서 연락이 왔는데…….”

네 번째 논문을 저널에 실은 후 다섯 번째 논문은 아직 쓰는 중이다. 논문을 제출한 적이 없으니 저널에서 별도로 연락이 올 일이 없다. 설사 연락이 오더라도 요셉 교수를 통해서 올 거다.

궁금해하는 강우에게 차도도가 말을 이었다.

“논문을 심사해달라네. 어떻게 해야 할지…….”

저널에 논문을 제출하면 동료 연구자들이 크로스 체크하는 심사를 맡는다. 이 심사는 관련 분야에서 저명한 인물이거나 아니면 해당 저널 이사급 석학의 몫이다.

예전에 강우가 보낸 논문도 동일한 심사과정을 거쳤다. 사실상 모든 논문이 같은 과정을 밟는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논문제출자에게는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비밀이다.

그런데 갑자기 차도도에게 논문심사 의뢰가 온 뜻은…….

그만큼 차도도가 해당 분야에서 유명인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핵융합 논문만 세 편을 썼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뉴클리어 퓨전 저널에서 차도도를 중시한다는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고.

강우에게 의뢰가 오지 않은 이유는 그가 고등학생인데다 논문의 1저자가 아닌 2저자로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야! 이제 쌤도 유명인사예요. 학계에서 인정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죠.”

“그런 거야?”

차도도는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학위도 없이 학부 졸업이 전부인 그녀에게 논문심사는 실로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런데 누구 논문이죠?”

“우기준이라고…… 대한핵융합센터 플라스마 연구부 안정화 팀장이라는데……. 그 사람이 국제 저널에 논문을 제출했나 봐”

강우는 모르는 인물이었다. 지난번 대한핵융합센터에 갔을 때도 만난 적이 없고 들어보지도 못했다. 손강우 시절에도 전혀 인연이 없던 인물이다.

“저도 모르는 사람이네요.”

“그래서 내가 찾아봤는데…… 그 사람의 이력을 훑어보니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 국내에 들어온 지 대략 6개월 정도 된 것 같아.”

강우가 핵융합센터를 방문한 때가 올해 2월이었으니 대충 그 시점에 핵융합센터에 입사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직 국내 학계에선 이름이 낯설다.

제출한 논문은 국내에 들어와서 연구를 시작했다기보다 미국에서 연구했던 논문의 마무리 작업이라고 봐야 한다.

“내용은요?”

“고온 플라스마의 거동과 관련된 주제라 우리랑 연관성이 많아.”

물론 강우는 뮤온 촉매를 추가했기에 엄밀하게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수소 플라스마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같다. 그렇기에 저널에서 심사를 의뢰한 것이다.

“꽤 수준이 높겠는데요?”

“그럴 것 같아. 내가 심사할 수 있을지…….”

“당연히 쌤이 하실 수 있어요. 그동안 논문을 쓰면서 참고논문을 많이 읽고 연구하셨잖아요? 어차피 비슷한 작업이니까…….”

논문심사 기간을 무작정 길게 잡을 수 없다. 그것은 논문을 제출한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니까. 다행히 지금 강우와 차도도는 다섯 번째 논문이 급하지 않다.

“알았어. 그럼 시간을 쪼개서 내가 심사하도록 할게.”

“파이팅!”

강우는 손을 들어 차도도와 마주쳤다.

우기준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만나겠지. 대한핵융합센터에서 예전에 제안했던 센터 콘퍼런스에 참여하게 되면.

논문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자 신새벽이 제안했다.

“강우야, 우리 둘이 나갈까? 밥 사줄게.”

“예?”

“차 쌤은 논문 심사해야 하니까 바쁘잖아?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졸업을 위해 수고해준 그에게 신새벽이 보답하겠다는 뜻이다.

“나도 안 바쁜데?”

차도도가 눈을 흘기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바쁘댔잖아? 논문 심사하느라.”

“내일 해도 돼.”

툭탁거리는 두 사람을 강우가 바로 정리했다.

“그럼 같이 가죠. 오늘 물주는 신 쌤이고요.”

“불청객 차 선생님은 알아서 내세요.”

“으이그, 그렇게 하죠.”

투덜대는 차도도를 강우는 얼른 나가자고 재촉했다.

오늘 저녁은 거하게 얻어먹을 수 있을 듯하다.

* * *

“우리는 내일 학교에 안 가도 되는 거야?”

“그럴걸?”

침대에 누워 건성으로 대답하는 최대우를 보던 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최대우는 노트북을 켜놓고 정신이 없다. 언제 잠을 자려는지.

고3에 2학기가 되니 더 여유가 생겼다. 일반고에서는 고3은 수업시간에 EBS 교재로 수능 준비만 한다던데 여기 고려 과학고는 다른 의미로 한가해졌다.

학점제이다 보니 정작 고3, 그것도 2학기 때는 수업이 대폭 줄었다.

남는 시간에는 대부분 자습하면서 수능을 준비한다. 그렇다 보니 정작 수업 열기도 떨어졌다.

수업은 대부분 고급수학, 고급물리, 고급화학 같은 과목이고 주요 내용은 대학에 들어가서 배우는 수준이다. 외국이라면 AP 과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 여유로워서 이상할 지경이야.’

심화 과목이라 해도 강우는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이나 대학 수준 일반과정이나 그에게는 차이가 없다.

정작 학생들은 그 여유를 만끽할 수 없었다.

수능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다. 수시 입학을 노리는 학생도 만일을 대비해서 수능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고곽천재는 다른 의미로 바빴다.

그들은 수능이 아닌 연구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2학기 들어서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이래저래 한국의 고3은 바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