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콘퍼런스 (2)
“으아, 상원이 이 새끼…….”
마도환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옆에 앉은 차도도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국대 교수라는 지성인이 뱉어낼 욕설이 아닌 까닭이다.
“손님?”
“어쨌든 표는 샀잖아? 감히 나를 도둑 취급해?”
“도둑이 아니라…….”
“네 눈이 그렇게 보고 있는데? 감히 누굴 도둑이라고 해?”
“손님, 객차에서 시끄럽게 굴지 마시고…… 잠시 나오시죠?”
“야! 내가 누군 줄 알아?”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이 나자 주변 승객들이 안면을 찌푸렸다.
“손님? 손님이 누구신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위에 누구야? 책임자 오라고 해! 감히 누굴…….”
승무원이 마도환을 일으키려 하자 마도환이 저항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강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마도환을 쳐다봤다. 이 사회에는 특권의식에 물들어 상식 이하의 갑질을 벌이는 자들이 있다. 마도환의 집안이나 신분을 보면 저 녀석도 딱 그런 놈이다.
보다 못한 차도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 교수님?”
“아!”
차도도의 시선을 의식한 마도환이 금방 실수를 깨닫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승무원과 차도도를 번갈아 보다가 가벼운 기침으로 화를 억누르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별일 아닙니다. 조금 실수가 있었군요.”
차도도에게 사과한 마도환이 먼저 객차 밖으로 나갔다. 주변에서 욕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강우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차도도 옆에 앉아 빈자리를 없앴다.
“강우야?”
“얼른 논문 줘보세요.”
강우는 차도도가 든 참고논문을 손에 잡히는 대로 폈다.
잠시 후 마도환이 돌아왔다. 여전히 얼굴에는 분노의 기색이 남아 씩씩대고 있었다.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강우가 점유하고 있자 눈을 찌푸리던 마도환이 위협하듯 말했다.
“강우 학생? 잠시 자리를 비켜주면 어떻겠나?”
“저 지금 논문 질문하느라 바쁜데요?”
강우가 빙그레 웃으며 마도환을 쳐다봤다.
차도도도 바로 보조를 맞췄다.
“마 교수님, 저희가 오늘 조금 바빠서요.”
차도도마저 정중하게 거절하자 마도환의 안색이 썩어들어갔다. 잠시 두 사람을 노려보던 마도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마도환이 다른 객차로 옮겨가자 강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 인성은 어쩔 수 없다니까요.”
“그러게.”
차도도도 곧바로 동의했다.
* * *
대한핵융합센터 플라스마 연구부 안정화 팀장인 우기준은 핵융합 콘퍼런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대한핵융합센터에 취직했다. 그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연구직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 한창 연구 열기가 뜨거울 때다. 센터에서 팀장을 맡은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그는 벽에 부딪혔다.
핵융합 분야는 아직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연구비를 국가에서 지원받아야 한다.
국책 연구과제의 고질병이라면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연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과제를 딸 수 있다.
이런 기조는 상당한 폐단을 불러온다. 실패하더라도 서류상으로는 어떻게든 성공한 과제로 보고서를 꾸며 둔갑시키거나 조금이라도 위험한 연구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상 이미 개발한 기술을 재포장해서 연구비를 타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모든 행위는 연구 발전에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젠장!’
미국의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에 젖어있던 우기준은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런 기조는 센터 내 위계질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기 어렵고 기존 연구의 단점을 지적하기도 힘들어졌다. 자칫 윗선에 찍히면 앞으로 연구비를 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인력 풀이 협소한 핵융합 분야에서는 이런 단점이 더욱 심했다.
그러던 차에 한국의 핵융합 연구인력이 모이는 콘퍼런스가 개최되자 우기준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오늘 제대로 된 연구가 무엇인지 보여주겠어!”
그는 국내의 연구원을 만나 문제점을 토론할 생각에 몸이 달아올랐다.
오늘 무엇보다 그가 기대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최근에 국제 저널에 네 편이나 논문을 실은 화제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그 논문 저자는 차도도, 강우, 프리드 요셉 세 사람이었고 이 중에 두 사람은 한국인이다.
“과학고 선생님과 학생이라는데…… 어떻게 고등학교에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지?”
그들과 논문을 열심히 토론하는 꿈에 부풀었다. 여차하면 그들의 연구에 도움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고등학교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만한 결과를 생성해냈으니 조금의 지원이 더해지면 더 엄청난 성과를 거두리라 예상했다.
아직 시작하려면 시간이 남았다.
기다림에 지친 우기준은 따분함을 날리려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차도도.
2저자인 학생보다는 1저자인 선생님의 작품이라 생각하며 검색어를 입력했다.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애초에 기대하진 않았다. 과학고 선생님이 대중이 시선을 받을 일이 없으니 별달리 검색될 일이 없으리라 여겼다.
놀랍게도 차도도와 관련된 문서와 영상이 우르르 쏟아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우기준은 영상을 클릭했다.
아름다운 여성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연예인답게 그 여성은 무척 아름다웠고 노래는 감미로웠다.
“흠, 차도도란 가수가 있나 보네.”
대충 영상 목록을 보니 티비 예능프로였다.
아무리 봐도 학교 선생님과 관련된 영상이나 문서는 없었다.
“역시 과학인이 검색될 리가 없지.”
영상을 끄려다가 여인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는 계속 노래를 감상했다.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국내에 들어온 지 불과 6개월이고 그간 미국과 한국에서 연구에만 매달렸던 우기준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 * *
강우 일행은 택시를 나눠 타고 대한핵융합센터에 도착했다.
두 번째 보는 센터 건물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건물 입구에서 첫 방문 때 그들을 안내했던 박경묵 운영기술부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박경묵의 환대에 강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그들의 신분이 고등학교 선생님과 고등학생에 불과해도 연구 업적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실적으로는 가장 뜨거운 팀이기에 이 정도 환대는 당연하다.
“많이 오셨나요?”
“그럭저럭 행사는 될 정도입니다.”
박경묵의 얼굴이 활짝 피었으니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온 모양이다.
콘퍼런스는 대강당과 소강당에서 개최되었고 마침 대강당에서는 개회사를 비롯해 환영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강우는 대강당 뒤쪽에서 센터장의 환영 인사를 구경했다.
행사 후 콘퍼런스가 시작됐다.
오전에 대강당에서는 핵융합 기술개발에 관한 리뷰를 비롯하여 센터에서 개발한 여러 기술을 소개하는 전반적인 발표가 있었고 소강당에서는 세부적인 기술 세미나를 진행했다.
기술개발 리뷰 발표자에 마도환이라 적혀 있어 강우는 바로 소강당으로 옮기자고 제의했다.
“소강당이 더 흥미로워 보이죠?”
강우의 제안에 차도도도 동의했다.
“그렇지. 각자 알아서 관심 있는 발표를 듣도록 하자.”
강우와 차도도가 소강당으로 옮겨가자 다른 고곽천재 멤버들도 고민하지 않았다.
강우네 팀은 소강당에서 세부적인 기술개발 논문발표를 들었다.
발표 15분에 5분 질의응답이다.
첫 발표자는 무난한 주제를 발표했고 두 번째 발표자가 나왔다.
발표 논문 제목을 보는 순간 강우는 최대우를 쳐다봤다. 최대우도 이상함을 알아챈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젯밤에 네가 혈전을 벌였던 그 주제 아니야?”
“그 논문이야.”
고온 플라스마의 안정성을 수학적으로 다룬 연구로 어젯밤에 몽상가가 블로그에서 토론 주제로 잡았던 그 논문이었다.
강우는 연단에서 발표를 시작하는 연구원을 유심히 관찰했다.
대략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연구원이었다. 핵융합센터 운영기술팀 소속으로 이름이 오창현이었다.
콘퍼런스 자료집에서 개략적인 내용을 확인한 강우는 어젯밤에 도마 위에 올랐던 그 논문임을 확신했다.
“그럼 저 사람이 몽상가야?”
“그건 아닐걸? 자기 논문을 그렇게 칼질할 리가 없잖아?”
이것으로 보아 몽상가가 대한핵융합센터 직원일 가능성이 컸다. 그게 아니라면 이 콘퍼런스와 관련 있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루 먼저 발표할 논문 내용을 알 수 없을 테니까.
지금 이 자리에 몽상가도 함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강우는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소강당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불과 삼십여 명. 저 중에 몽상가가 있다.
최대우가 블로그를 개설했던 초기부터 몽상가는 여러 물리학 문제를 던졌다. 마치 간 보듯이 물리학 여러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묻다가 최근에는 핵융합 문제를 집중해서 던지고 있다.
그런 흐름이 몽상가 본인의 성장 덕분인지 아니면 순전히 블로그 주인을 시험하려는 의도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최대우도 몽상가를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특별해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몽상가도 대단한 사람이야. 그간 블로그에 올렸던 질문이나 토론으로 유추해보면.”
강우가 볼 때 몽상가는 평범한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발표에 집중하지 않아도 어젯밤 토론한 내용이었기에 이해하기 쉬웠다.
어젯밤 최대우, 애나, 몽상가가 토론한 내용이 질문으로 쏟아지면 곧 저 오창현이라는 연구자는 가루가 되도록 난처함에 빠질 게 뻔했다. 물론 공식 석상에서 그렇게까지야 하겠냐만.
“그럼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세션 책임자의 요구에 한 연구원이 벌떡 일어났다.
“원자력 연구소 김호 연구원입니다. 이 연구 결과와 센터에서 실제로 토카막을 운용한 결과가 부합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실험결과와 정확히 일치하죠.”
강우는 어젯밤에 이 연구의 수식 전개에서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었다. 그런데도 이론과 실험이 일치한다면 실험결과에 이론을 맞추었거나 아니면 우연의 결과일 뿐이다.
다른 연구원이 또 질문했다. 이번에도 오창현이 손쉽게 넘어갔다.
그때 저쪽 구석에서 한 연구자가 일어났다.
“안정화 팀장 우기준입니다. 이 연구는 1억K라는 온도에서 플라스마의 안정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만일 온도를 그 절반인 5천만K로 낮추어도 이 이론이 성립하나요?”
“저는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요? 실제로는 5천만K에서는 안정화가 유지되지 않지 않습니까? 이 논문대로라면 실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혹시 이 논문 결과가 1억K에서만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 아닐까요?”
질문을 듣는 순간 강우는 우기준의 의문이 어젯밤 몽상가와 비슷한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저 사람이 몽상가였나?’
그사이 오창현이 대답했다.
“이 논문 결과로는 5천만K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합니다. 실험에서 왜 구현이 안 되는지, 플라스마의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저도 모릅니다. 그건 단지 실험의 문제이지 이 연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논문은 오래지 않아 5천만K에서도 가능하리란 전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서 5천만K 온도에서 유의미한 시간 동안 수소 플라스마 안정화에 성공한 기술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기준이 다시 질문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최대우가 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질문 권한이 최대우에게 넘어갔다.
“저는 온도보다 안정화 해법상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보는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 논문에서 제시한 안정화 해법에 오류가 있다는 겁니다. 1억K이든 5천만K이든 2억K이든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수학적 모델이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거든요. 모델의 타당성이…….”
최대우의 질문에 우기준과 오창현의 시선이 집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