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콘퍼런스 (3)
순식간에 복잡한 질의응답 공방이 오갔다.
우기준은 예리한 질문을 퍼부었고 여기에 최대우도 가세했다. 물론 두 사람의 질문은 다른 내용이었다. 마치 블로그에서 벌어졌던 토론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었다.
발표자 오창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콘퍼런스에서 발표자에게 이런 식으로 매서운 공세를 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최대우는 콘퍼런스가 처음이었기에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우기준은 상관없다는 듯 질문을 퍼부었다.
“그 부분을 아직 검증해보지 않았습니다. 추가 연구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오창현이 연구의 미비점을 시인하고 마무리하려 했다. 이미 질의응답에 주어진 5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때 강우가 손을 들었다.
“발표시간이 지난 관계로…….”
세션 책임자가 종료를 선언하려 할 때였다.
“전 이 논문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강우가 일성을 발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는 가운데 책임자는 끝을 내기도 계속하기도 모호한 상황이 됐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강우는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앞에 나열한 수식 부분 다시 비춰주시지요.”
오창현이 어쩔 수 없이 ppt의 해당 부분을 스크린에 띄웠다.
“거기서 두 번째 수식 말입니다. 거기에서 주어진 초기조건과 가정이 있죠?”
강우의 지적에 오창현이 레이저 포인터로 해당 수식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미분방정식의 초기조건에 해당합니다. 아시다시피 플라스마의 안정을 결정하는 수식에는…….”
“1억K가 아닌 다른 온도에서도 적용하려면 더 보편적인 조건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 수식의 제한조건 때문에 풀이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거든요. 즉 그 수식은 1억K에 한정해서 맞아떨어지는 식이란 뜻입니다. 다른 온도에 적용하려면 그 조건을 없애고…….”
강우가 장황하게 수식을 설명했다.
복잡한 수식을 칠판에 쓰지 않고 단지 입으로 설명했기에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강우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도 있었다. 우기준과 최대우가 당사자들이었다.
특히 최대우는 강우의 설명을 듣자 어젯밤에 벌어졌던 논쟁이 어디에서 기인한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막연하게 틀렸으리라고 예상했던 짐작이 맞았다. 물론 그 원인은 그가 생각했던 부분이 아니었다.
강우의 눈에 이마를 탁 치는 우기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그 문제였군!”
몇몇 사람의 탄성이 이어지자 발표자인 오창현도 더는 고집할 수 없게 됐다. 강우의 지적에 누구보다도 뼈 때리는 아픔을 느낀 사람이 바로 발표자였다. 그는 강우가 지적하고 얼마 후에 바로 자신의 잘못을 눈치챘으니까.
어쩔 수 없이 오창현이 입을 열었다.
“노, 논문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창현이 서둘러 잘못을 시인하고는 자리로 들어갔다.
덕분에 발표자와 우기준, 최대우의 논쟁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들도 논문의 잘못을 지적했으나 제대로 핵심을 꿰뚫지 못했다. 반면 강우는 연구자의 오류를 확실하게 잡아냈다. 청중은 수식이 나열된 스크린만 보고 그 오류를 발견한 강우에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 대단하다…….”
“처, 천재야.”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물론 강우는 어젯밤에 그 논문을 봤었고 자면서 고민했었기에 알아챈 내용이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기에 다른 사람들의 감탄을 담담하게 즐겼다.
최대우가 강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어제 네가 알려줬잖아? 블로그에서.”
“바로 자지 않았어?”
“자면서 풀어봤지.”
“하아! 괴물 같은 놈.”
“너도 괴물인 건 마찬가지야.”
최대우와 잡담을 끝내자마자 이번에는 차도도가 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아는 내용이야?”
“쌤도 알잖아요? 평소 우리가 하던 거.”
“그건 아는데…… 스크린에 뜬 수식만 보고 어떻게 알아챘나 해서.”
“보면 아는 거 아녀요?”
강우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 그도 차도도의 질문을 이해한다. 그래도 정답을 알려줄 이유는 없다. 차도도에게 약간의 신비감을 남겨두어도 나쁘지 않으니까.
차도도가 빙그레 웃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다음 발표자가 등장했다.
이번에도 발표가 끝난 후 우기준이 매섭게 공격했고 발표자는 쩔쩔맸다.
같은 센터 직원임에도 우기준은 전혀 가리지 않았다. 평온한 직장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오전 발표가 모두 끝나고 점심시간이 됐다.
* * *
센터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치고 강우 팀은 건물 앞 화단에서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넓은 부지에 세워진 독립된 건물이어서 빽빽한 서울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차도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쪽에서 마도환과 나이가 제법 든 한 사람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강우가 차도도를 막아서자 마도환이 심히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차 선생님.”
강우는 마도환을 한차례 노려본 후 옆으로 비켜섰다.
차도도가 무심한 표정으로 마도환에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인사하시지요. 이쪽은 고려 과학고의 차도도 선생님입니다. 핵융합 분야에서 요즘 잘 나가는 인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대한핵융합센터 센터장이십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차도도를 비롯해서 고곽천재 모두가 인사했다.
센터장은 희끗희끗한 백발이 보이는 예순 초반의 남자였다. 비교적 인자한 인상에서 강우는 백두섭 교장을 연상했다. 센터장의 이름은 관심이 없어서 한쪽 귀로 흘렸다.
강우는 한쪽 옆에 서서 센터장과 차도도의 대화를 들었다.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수행한 놀라운 실적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마도환이 차도도에게 좋을 일을 손수 해줄까. 즉 순수한 마음으로 센터장을 소개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인사가 끝나자 마도환의 의도가 바로 드러났다.
“차 선생님, 핵융합센터에서 고려 과학고에 위탁연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받으시면 앞으로 안정적인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요.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대단히 좋은 조건이었다. 물론 연구비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국가 기관에서 추진하는 연구인 만큼 나중에도 계속 프로젝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군침을 삼킬 그런 프로젝트다.
“저희는 이미 헌팅턴사와 같이 하고 있어서…….”
차도도가 에둘러 거절했다.
“그 점은 한국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헌팅턴과 핵융합센터 양쪽 다 관여하고 있어요. 차 선생님도 가능합니다.”
차도도가 계속 머뭇거리자 마도환이 덧붙였다.
“다만 지금까지 고등학교와 국가출연 연구소가 바로 계약을 맺은 전례가 없어서…… 계약은 저희 한국대가 체결하고 다시 고려고에 위탁연구를 주는 방식입니다. 따지고 보면 헌팅턴사가 MIT와 체결하고 다시 고려 과학고에 프로젝트를 준 경우와 같지요.”
마도환이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고 옆에서 센터장 역시 온화한 음성으로 프로젝트를 권유했다.
강우는 금방 마도환의 의도를 눈치챘다.
겉으로는 차도도에게 유리하나 속내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설사 연구비를 떼어가지 않고 전부를 고려 과학고에 넘기더라도 마도환은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즉 마도환의 기분에 따라 프로젝트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마도환은 갑이고 차도도는 을이 되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핵융합센터에서는 좋은 의도에서 프로젝트를 체결하더라도 이를 중계하는 마도환의 속셈은 시커멓다.
위험을 감지한 강우가 차도도에게 알리려 할 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헌팅턴사와 프로젝트를 체결할 때 비밀 서약을 맺었습니다. 이 연구와 관련해서 다른 기관과 위탁연구를 체결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대이든 핵융합센터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저희는 계약하기 어렵습니다.”
완곡한 거절이었다. 물론 그런 서약을 한 적은 없다.
마도환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하! 이거 정말 좋은 기회인데…….”
강우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마 그 프로젝트는 차도도에게 좋은 게 아니라 마도환에게 좋을 것이다. 차도도가 수행하는 연구 내용을 빼내기에 안성맞춤이겠지.
연신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마도환과 센터장이 돌아갔다.
“잘하셨어요.”
강우는 차도도에게 눈을 찡긋하며 칭찬했다.
휴식시간이 끝나갈 때쯤 한 사람이 더 그들을 찾아왔다.
발표장에서 열심히 논쟁을 벌였던 우기준 팀장이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고등학생으로 아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논문의 문제점을 찾아냈는지…….”
우기준의 시선은 강우와 최대우를 향해 있었다.
강우도 우기준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성심껏 인사했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여서 쉽게 알아챘지요.”
“그래도 놀랍습니다.”
강우가 질문했던 세 논문이 오늘 발표한 오창현 논문의 주제와 공통점이 있기에 그 대답은 타당했다.
“사실 오히려 부족했습니다. 논문의 오류를 추가로 더 지적할 수 있었는데 시간 문제도 있고 발표자 체면도 있어서 그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강우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우기준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고등학생 맞습니까? 연구원도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과학에 나이가 어디 있습니까? 과학은 진리만을 다루지요.”
“역시!”
우기준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번에는 강우가 상대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우 박사님은 같은 연구소 직원의 논문을 그렇게 박살 내도 괜찮습니까?”
“뭐…… 어떻습니까? 오류를 잡아주지 않으면 그 친구는 계속 모르고 넘어갈 텐데요. 늦게라도 잡아주는 게 낫지요.”
“그래도 적정선이…….”
“남들 눈치 보고 살았다면 전 이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능력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자신감을 우기준이 드러냈다.
강우는 그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국내 과학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학연 지연으로 얽힌 연구비 나눠 먹기다. 그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자가 마도환이기도 하고.
“오늘 그 논문은 며칠 전부터 뭔가 이상해서 고민하던 논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발표 때 질문할 생각이었는데…… 역시 발표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 해답을 뜻밖에도 강우 군이 알려주었군요.”
“오후 발표에서도 활발하게 질문하실 건가요?”
우기준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당연하죠. 강우 군은?”
“우 박사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저도 거들어 보겠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강우와 우기준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어서 최대우와도 인사를 나눈 우기준이 마지막으로 차도도에게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우기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혹시…… 가수세요?”
“네?”
“아침에 검색했더니 노래 방송 영상이 떴거든요.”
“아! 가수는 아니고요.”
차도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기준이 연신 흐뭇한 미소를 터트렸다.
“과학계에 이런 미녀는 없어야 정상인데…… 이거 반칙 아닙니까?”
차도도의 외모를 칭찬하던 우기준이 강우와 최대우의 표정이 험악해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입을 닫았다.
“그럼 오후 세션을 기대합니다. 강우 군? 오후에도 멋진 활약 보여주세요.”
“우 박사님도요.”
우기준이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시간 발표장으로 향하면서 강우는 최대우에게 물었다.
“대우야, 우기준이란 사람 말이야, 뭔가 감이 오지 않아?”
“감은 먹는 건데?”
“으이구, 물리 블로그에서 토로할 때 몽상가의 주장과 우기준 저 사람의 질문이 일부 겹치지 않냐고.”
최대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련한 곰탱이 같은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