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57화 (257/325)

제257화 콘퍼런스 (4)

오후 논문 발표 세션 내내 강우는 완전히 날아다녔다.

우기준의 권유 덕에 부담을 던 데다 오전에 그의 행동을 보고 배웠다. 어차피 두들겨 맞아봐야 우기준과 같이 맞을 테니 강우는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췄다.

남들은 버릇없다고 욕해도 정곡을 찌르는 정확한 질문은 연구원을 한층 성장하게 한다는 지론을 믿는다. 오늘 콘퍼런스 발표자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당연히 강우의 질문은 쓸데없는 트집이 아니다. 연구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다. 그에 반해 우기준의 질문은 다소 지엽적인 자투리가 많았다.

“……그래서 저 수식으로 이 논문 주제를 탐구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른 수식을 하나 더 첨가해서…….”

강우의 지적에 안면이 노랗게 뜬 연구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원 본인도 이 문제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아마 시간에 쫓겨 미완성 논문을 발표하러 나왔다고 추측했다.

질문과 대답 시간 동안 쩔쩔매던 발표자가 퇴장하면서 강우에게 꾸벅 인사했다.

“미흡한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우는 그에게 미소를 보내는 우기준에게 적절한 응답으로 감사했다.

발표자 대부분은 강우에게 한소리씩 들으면서 고개를 숙이다가 끝날 때는 고마움을 표했다.

급기야 강우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대가인가 봐.”

“고등학생이라는데?”

“말이 되는 소릴!”

“그냥 동안이라 어려 보이는 거야. 조기 졸업으로 박사 땄겠지.”

“천재야! 천재!”

여기저기에서 수군대는 잡음이 들려왔다.

본의 아니게 오늘 이 자리가 그를 돋보이게 한다.

결과적으로 오후 발표장은 강우의, 강우에 의한, 강우를 위한 독무대가 되어버렸다.

콘퍼런스가 끝나자마자 오창현이 강우를 찾아왔다.

오전에 강우가 수식에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던 논문을 발표한 사람이다. 어젯밤에 최대우가 블로그에서 토론했던 논문이기도 하고.

“제가 지적하신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요.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강우는 주저하지 않고 태블릿을 꺼내 해당 수식을 나열했다.

수식마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면서 수식 풀이를 끝내자 오창현의 안색이 환해졌다.

“이거 보내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강우는 화면을 캡쳐해서 상대방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연구의 길은 끝이 없기에 오창현은 이 내용을 다시 연구하면서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힐 것이다. 그가 용기가 있다면 강우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변경한 수식을 다루는 방법을 질문하게 되겠지. 강우가 볼 때 오창현은 혼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능력이 부족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추가로 모두 알려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기에 이 정도에서 마무리했다. 그 이후는 오창현의 의지에 남아 있다.

오창현의 수식을 풀어주고 나자 곧바로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질문했다. 이 사람 역시 발표 때 강우가 짚어준 내용을 재차 물었다. 강우가 세세한 설명을 곁들이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안함을 드러내며 물러났다.

발표장이 폐막 되고 대부분 청중이 떠났음에도 강우 앞에는 여전히 서너 사람이 줄을 서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학교수도, 연구원도 아닌 강우를 고려하면 이는 실로 놀라운 장면이었다.

손차희가 윤수아에게 속삭였다.

“이거 많이 보던 장면 아니야?”

“시험 전날 식당에서.”

강우는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심껏 알려줬다. 질문자들은 고민했던 숙원을 풀거나 조언을 얻어갔다. 어떤 사람은 오늘 발표 논문이 아닌 자신의 평소 연구 테마에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오셨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날, 세미나실에서 잠시 마주쳤던 그 연구원들이었다.

“또 뵙네요. 반갑습니다.”

강우도 인사했고 그들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예상외였습니다. 핵융합에 이렇게 조예가 깊을 줄은 몰랐어요.”

다른 사람의 연구에 지적을 꺼리는 풍토를 오늘 강우가 과감하게 깨버렸다. 게다가 그런 지적이 서로 불쾌하지 않은, 더 좋은 연구를 위한 배움의 장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상생의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었다.

“뭘요, 저도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오늘 토론은 무척 도움이 됩니다.”

“다음에도 와주셨으면 합니다.”

강우를 비롯한 고곽천재 모두가 연구원들과 악수했다.

이제는 떠날 시간. 콘퍼런스 회장을 벗어나려는데 우기준이 다가왔다.

“강우 군? 혹시 바쁘십니까?”

“그렇진 않은데요?”

“그럼 저녁 식사를 같이할까요?”

우기준이 강우와 차도도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강우는 저쪽에서 접근하는 마도환을 발견했다. 함께 서울로 올라가자는 제안이 눈에 뻔히 보인다. 차도도와 나란히 앉아 가려는 마도환의 술책이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오히려 영광이죠.”

차도도가 재빨리 수락했다.

덕분에 강우네는 우기준이 마련해둔 봉고차를 타고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핵융합센터 주차장을 떠나는 그들을 마도환이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역전의 다소 고풍스러운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누구보다도 반긴 사람은 단연 최대우였다. 온종일 머리를 써서 당분이 부족하다나.

“난 짜장면 곱빼기! 두 그릇!”

방송에서 짜장면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던 최대우가 떠올라 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오늘 몇 초 컷?”

“오늘은 신사답게 먹어야지.”

“난 짬뽕!”

윤수아가 다음으로 골랐고 손차희도 윤수아와 같았다.

고민하던 차도도는 짜장면으로, 강우는 자신 있게 요리인 깐풍기를 시켰다. 가끔 부장의 짜장면에 반발하는 신입도 있어야 제맛이다.

결국 우기준의 짬뽕에 탕수육까지 겸해서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군만두 서비스 없어요?”

눈을 험악하게 부라리는 최대우의 요구에 주인이 마지못해 군만두를 한 접시 곁들였다.

“진상이라 욕한다?”

윤수아가 최대우를 나무랐다.

“그래도 네가 제일 많이 먹을 거잖아?”

이 둘은 먹을 것을 두고 항상 다툰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짜장면을 먹고 있자니 오래전의 들었던 농담이 생각났다.

“쌤?”

“응?”

“보기 싫은 사람과 데이트할 때는 짜장면이나 햄버거를 먹는대요.”

“왜?”

“먹는 모습이 흉하거든요.”

“그게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니?”

차도도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눈짓으로 강우를 나무랐다.

정작 반응을 보인 사람은 우기준이었다.

“어? 그런 거였나요?”

차도도가 미소를 지었고 강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식사하면서 콘퍼런스 소감이 나왔다.

최대우를 비롯한 고곽천재는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했고 강우는 발표장의 연구 열기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우기준은 오후에 벌어진 강우의 신들린 듯한 조언에 연신 감탄사를 날렸다.

기회를 보던 강우가 결국 폭탄을 날렸다.

“혹시…… 몽상가이신가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사레 걸린 듯 기침을 일삼던 우기준이 정색하고 되물었다.

“혹시 시리우스?”

강우가 최대우를 가리켰다.

“아! 대우 학생이!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오창현 선생님 논문 보고 알았죠.”

같은 논문이 떴고 질문 내용이 비슷했으니 사실 모르면 바보다.

“그럼 강우 군이…….”

“god(신)!”

“아! 신이었군요. 전 그때 진짜 물리학의 신이 강림한 줄 알았는데……. 이거 전공자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우기준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혹시 여신이…… 차 선생님?”

오해하기 딱 좋은 구도다.

차도도가 고개를 저으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여신은 애나죠. 보스턴에 사는 고등학생 있어요.”

“아! 여신도 고등학생…….”

지금까지 블로그에 나왔던 내용을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되새기던 우기준이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처음 그 블로그를 발견했던 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박사 논문으로 고생할 때였거든요. 우연히 고국 물리학 블로그를 뒤지다가 흥미로운 게시판을 발견했죠. 그래서 재미 삼아 질문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게 금방 답이 붙는 거예요.”

블로그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1학년 때였으니 거의 2년 전 이야기다.

당시 우기준은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중고등학생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물리학 전공자로서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과 이들을 시험하고 싶은 생각에 그도 질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려운 질문을 올렸는데 답이 날아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죠. 물리학 전공자도 쉽지 않은 질문이었는데…….”

그렇게 점점 더 어려운 질문을 올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여신이 개입하면서 물리학 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최신 논문을 올리고 토론하는 일도 벌어지고.

우기준이 최대우를 연신 칭찬했다.

“운영자 시리우스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중간에 MIT 사진이 올라와서 MIT에서 공부하는 학생인 줄 알았는데…… 고등학생이라고는. 허허.”

생각해보니 고등학생이라고 직설적으로 밝힌 기억은 없다. 가끔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문에 답변이 늦어진다고 공지하긴 했는데 대학생도 시험을 치니까.

어쩌면 대부분 문제에서 막힘 없이 정답을 제공하는 압도적인 능력 때문에 아예 고등학생이 아닐 거라는 선입관이 작용했을 수도 있었다.

“정말 대단한 학생이네요. 제가 물리학 박사인데 오히려 밀리고 있으니…… 아! 강우 군이 낸 논문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군요.”

강우도 그동안 궁금했던 몽상가의 정체가 밝혀져서 즐거웠다.

“이런 학생들이 있으니 국가의 미래가 화창합니다.”

핵융합센터에서 팀장을 맡은 우기준은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 과학자다. 훗날 강우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을 때도 이 분야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앞으로 평생 함께 얼굴을 마주쳐야 할 사람이다. 이런 활기찬 사람이 연구 동료가 되는 미래가 기대된다.

한참 강우와 최대우를 칭찬하던 우기준이 차도도에게 눈길을 돌렸다.

“차 선생님도 피곤하시겠습니다. 이런 천재들을 가르치시려니.”

“안 가르쳐도 알아서 잘하거든요.”

그때 강우가 끼어들었다.

“저희 쌤은 요셉 교수랑 싸운다고 바쁘세요. 요셉 교수의 질문에 방패가 되어주시죠.”

같은 분야이기에 우기준도 당연히 MIT의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그런 사람과 대등하게 이야기한다는 말에 차도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기준이 소감을 밝혔다.

“저도 고등학교 때 학교 선생님을 꿈꿨던 적이 있었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좋았거든요.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를 꿈꾸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결국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자리 잡았지만요. 그래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특히 이런 천재를 가르친다면…….”

우기준은 차도도를 일개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닌 뛰어난 과학자로 대우했다. 현재 고곽천재를 이끌어가는 차도도의 역할을 보면 잘못된 평가는 아니다.

강우는 우기준의 눈빛에서 차도도를 향한 경외와 관심을 감지했다.

강우의 관점에서 우기준은 훌륭한 과학자다. 그가 그들의 좋은 연구 동료가 될지 아닐지는 앞으로 그의 태도에 달려 있다.

같은 분야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고 그를 지지해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이 세상은 뜻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하지만 천재의 손아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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