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59화 (259/325)

제259화 수능 준비 (2)

권유성은 수시로 MIT 소식을 전했다.

가장 친한 윤수아에게 소식을 알리면 윤수아가 다른 친구들에게 이를 전했다.

고곽천재는 권유성의 대학 생활을 부러워하면서 MIT를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덕분에 그들은 SAT와 토플에서 괄목할 성장을 얻어냈다.

강우는 매일 같은 일상을 되풀이했다.

세미나실에서 고곽천재 친구들과 하은찬, 유혜림의 R&E를 지도하고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연구가 막혀 돌파구를 고민하던 손차희가 질문을 끝낸 후 강우에게 물었다.

“강우야? 너 말이야, 나랑 사설 모의고사 대결에선 모두 만점이잖아? 근데 학교 모의고사는 점수가 왜 그 모양이야?”

“응? 난 사설이랑 잘 맞나 보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으나 손차희는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강우가 학교 모의고사를 대충 치는 이유는 다른 학생들이 느낄 부담 때문이다. 어차피 그에게 모의고사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묘한 표정으로 강우를 살피던 손차희가 다시 말을 툭 던졌다.

“수능은 어떻게 칠 건데?”

“최선을 다해야지. 수능이니까.”

물론 이 대답 역시 건성이다. 강우는 아직 수능 전략을 미처 짜지 않았다. 유학을 가려는 그에게 수능 성적은 불필요하기에 사실 수능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근데, 강우야? 수능에서 전국 수석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에이, 내가 무슨 수석을…….”

“그거 하면 인터뷰하고 뉴스에도 막 나와.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해야 하고.”

물론 강우도 그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문득 고민이 된다. 지금 그의 실력이라면 수능에서 전국 수석이 어렵지 않다. 그렇게 되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걸까? 국내 대학에 지원하지 않으니 실제 피해는 아니어도 괜히 그렇게 튀어도 상관없는 걸까?

고민이 깊어진다. 티비 예능프로에 나와 한차례 유명세를 치렀는데 그 학생이 수능에서도 전국 수석을 했다면 더 명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예전 티비 출연은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했는데 지금은 신중해졌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그런 명성이 불필요했다. 오히려 걸리적거리기만 하고.

“그런데 말이야. 네가 전국 수석 하면 담임 선생님도 인터뷰하거든. 제자 잘 길렀다고. 그 명예가 엄청 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손차희가 꺼냈다.

그가 전국 수석을 하면 차도도도 유명해지나? 물론 그는 차도도가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명예가 따라온다면 생각이 다르다.

차도도에게 명예를 주고 싶다.

“에이, 내가 뭘. 김칫국은 마시지 말아야지. 난 모의고사 학교 평균인데.”

“그런가?”

손차희도 입을 다물었다.

수능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갈피를 잡기 어렵다. 차도도를 위해 수석을 노려봐야겠다는 생각과 그냥 평범하게 끝내자는 생각이 충돌했다.

강우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을에 접어들자 나무가 울긋불긋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 풍경도 벌써 세 번째다.

* * *

수업이 끝난 공강 시간에 빈 강의실에서 강우가 풀리지 않는 수식을 고민하고 있자니 갑자기 고현성이 들이닥쳤다.

최근에는 모의고사 내기로 판판이 깨져서 다른 일로는 오지 않던 녀석이 문을 벌컥 열고 등장했다. 녀석은 참고서를 한 아름 품에 안고 있었다.

“어이, 브라더!”

“응? 그거 웬 책이야?”

평소 하지 않는 짓을 하니 어딘가 수상쩍다.

“나 좀 도와줘.”

“뭔데?”

“내 질문 좀 받아줘.”

고현성은 일학년 때부터 그를 경쟁자라 여겼기에 그에게 질문하는 일이 없었다. 녀석의 실력도 꽤 좋아서 내신에서는 거의 막히는 문제가 없었고. 그런 녀석이 갑자기 질문하겠다고 책을 폈다.

“네가 풀어. 질문은 무슨.”

“우리가 어떤 사이냐?”

“밥 사주는 사이.”

“으! 그거 말고. 무려 3년간 같은 반 아니냐? 그럼 친구 부탁 정도는 들어줘야지.”

밀치기엔 야속해서 진지하게 물었다.

“뭔데? 책 장사하니?”

“내가 모르는 게 많아서.”

평소에는 모르는 문제를 혼자서 끙끙거리며 풀었는데 수능이 임박하니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몽땅 가져와서 한방에 묻는 거라나?

“스스로 푸는 게 나을걸?”

“그건 비효율적이야. 적어도 지금은.”

“넌 해설지 보면 알잖아?”

“난 네 설명을 듣고 싶어.”

강우가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출제자의 시각에서 출제 경향과 함정, 나아가 출제 목적을 분석하다 보니 머리에 확실하게 각인되어 유사한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이거 꼭 해야 해?”

“내가 의사가 되면 차희가 편해지잖아? 차희 돕는 셈 치고 얼른 설명해봐.”

손차희까지 들먹이니 거절하기도 어렵다. 손차희에게 진심인 이 녀석을 도와야지.

“이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강우는 고현성이 질문한 문제의 핵심을 설명했다. 금방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 고현성이 다음 문제를 펼쳤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책상 위는 참고서가 쌓였고 주변 학생들이 구경하러 몰렸다. 강우가 수능 문제를 설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에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턱- 턱- 턱-

마치 자동화된 제조 공정을 보듯이 자연스럽게 강우의 손에서 참고서가 넘어가서 옆에 쌓였다.

문제를 보여주자마자 완벽하게 해부해서 설명하는 강우의 능력에 학생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현성이 누군가? 고려 과학고에서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녀석 아닌가. 그런 녀석이 모르는 문제를 강우는 단번에 풀고 있었다.

“우와!”

주변에서 탄성이 터졌다.

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현성이 던진 문제를 바로 해설하고 책을 옆에 쌓았다.

“그런 접근 방법이! 우와! 이걸 어떻게 알아내? 귀신이다!”

고현성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연발했다.

어느새 높이 쌓인 참고서를 보면 지금 두 사람이 얼마나 열중하고 있는지 확연히 보였다.

이윽고 질문이 끝난 후 고현성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역시! 강우 덕분에 시간을 많이 벌었어! 네가 차희를 편하게 해준 거야!”

이 녀석은 꼭 손차희가 들으면 혼날 소리만 한다.

순식간에 이만큼 문제를 푼 고현성도 정말 대단하다.

고현성이 참고서를 다시 들고 사라지자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쭈뼛거리며 강우의 옆에 앉았다.

“가, 강우야, 나도 설명해주면 안 될까?”

평소라면 턱도 없는 부탁인데 수능이 임박했으니 봐줬다.

“뭔데?”

강우는 성심껏 풀이를 설명해줬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도 만족한다.

“인간 맞냐?”

“문제 푸는 기계야, 기계!”

옆에서 구경하는 학생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콧물이 줄줄 흐른다. 몸살일까?

지금 강우는 모두 다섯 개나 되는 연구 주제에 매달리고 있다. 손차희, 윤수아, 최대우, 하은찬, 유혜림. 이 학생들과 각각 연구를 수행 중이다.

모두 핵융합 분야여도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조금씩 다르다.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연구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그 연구를 실제로 주도하고 다른 학생들이 오히려 보조 역할을 하니까.

어쨌든 어제는 기세를 탄 김에 무리했다. 게다가 환절기인 날씨 탓도 컸다.

오늘 물리 수업시간에 강우는 뒤에 앉아 엎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강우야? 자면 안 되지.”

EBS 문제를 설명하던 차도도가 강우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강우가 엎드려 있자 미간을 찌푸리던 차도도가 강우를 흔들었다.

“강우야?”

“으음.”

“아파?”

간신히 고개를 드는 강우의 수척한 얼굴을 본 차도도가 이마에 손을 댔다.

강우 이마가 불덩이였다.

“열이 심하게 나는데?”

“몸살인가 봐요. 조금 자면 괜찮겠죠.”

“그래, 공부하느라 무리했나 보네.”

3학년에게 공부는 일상이다. 다른 학생들은 강우가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의심 없이 넘어갔다.

물론 강우와 차도도가 의미하는 공부는 달랐다.

그렇게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차도도가 다시 강우에게 왔다.

“강우야? 병원 가지 않을래?”

정신을 잃은 강우는 대답이 없다. 차도도는 지난 3년간 강우가 특별히 아팠던 적이 없음을 기억했다. 건강하다가 갑자기 아프니 더 걱정됐다.

“병원 가자. 데려다줄게.”

차도도가 강우를 일으키고 옆에서 최대우가 부축했다.

* * *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은 후 강우는 차도도의 지시로 아파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당연히 기숙사에 비하면 이곳 환경이 백배는 더 낫다. 평소 그가 이 집에 올 때마다 잠을 잤던 거실 옆방 침대에 몸을 눕혔다.

“강우야아!”

퇴근 시간에 맞춰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신새벽이 난입했다. 그 뒤에는 차도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쌤? 웬일이세요?”

“웬일은. 우리 교수님 아프시다는 데…… 당연히 내가 와봐야지.”

신새벽의 얼굴에 염려가 가득했다. 두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행복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젠 대충 나았어요.”

“아냐, 아직 멀었어. 안정을 취해야지.”

“괜찮은데…….”

“내가 전복죽 사 왔거든? 배고프지?”

신새벽이 차도도가 들고 있던 음식 꾸러미를 넘겨받았다. 순식간에 침대 머리맡에 간편한 밥상이 차려졌다.

오랜만에 먹는 죽은 맛있었다. 세심하게 밥을 챙기는 두 사람이 고마웠다.

“강우야, 고3이라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까 요즘 몸이 허해진 거야. 그러니 많이 먹어.”

“강우가 고3이랑 무슨 상관이야?”

신새벽의 말에 차도도가 딴지를 걸었다.

툭탁거리는 분위기는 두 사람의 나이를 의심하게 한다. 학교 선생님인지 학생인지 구분도 되지 않고.

싸움을 말리려고 강우는 화제를 돌렸다.

“쌤? GRE 시험은 치셨어요?”

“낼 모래 칠 거야.”

차도도는 시험을 치러갈 생각이 없었다. 유학 갈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의기양양한 신새벽을 보니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 걸었던 게 뭐였지?”

“이기는 사람에게 제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어요.”

강우의 대답에 차도도의 눈빛이 차분해졌다. 새삼 시험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차도도가 빈 그릇을 치우고 강우는 베개와 쿠션을 이용해 편안하게 침대에 기댔다.

“자! 신새벽? 늦었는데 그만 돌아가지?”

차도도에게 인상을 확 찡그리던 신새벽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새벽이 사라지자 한층 부드러워진 차도도가 그를 위로했다.

“강우야, 오늘은 푹 쉬어. 난 서재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부르고.”

“저도 연구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요?”

“오늘은 참아. 쉴 때는 쉬어야지. 계속 연구에 매달리면 몸이 축나거든.”

차도도의 표정에서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였다.

오늘 연구를 포기해야 하나. 공부하겠다는데 공부를 못하게 말리는 선생님도 참 이상하다. 원래는 공부하기 싫다는 학생을 선생님이 하라고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강우는 이 학교는 뭔가 거꾸로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그렇게 만든 주역이 자신임을 깨닫지는 못했다.

차도도를 보내고 강우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명상에 잠겼다.

차도도의 관심과 염려가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세상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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