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61화 (261/325)

제261화 전국 수석 (1)

요즘 강우가 챙겨보는 스포츠 경기가 있다.

바로 시즌 막바지에 이른 프로야구 경기다.

작년에 이어 DD 파이터즈는 올해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작년에는 3위였는데 올해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한 단계 더 발전했다.

DD 파이터즈의 원동력은 마무리 투수인 권광인의 분전이라는 분석이 대다수였다.

전반기 내리막 기미를 보였던 권광인은 올스타전을 마치고 시작된 후반기부터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전성기 시절을 되찾았다는, 오히려 전성기보다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핵심에는 강우가 새롭게 알려준 변형 커터가 존재했다. 커터와 슬라이더가 엮이자 직구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수능이 다가오던 어느 날 DD 파이터즈는 마침내 한국시리즈를 거머쥐고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 강우야! 네 덕분에 우리가 우승했어!

바로 그날 밤에 공정혁의 전화가 왔다.

“에이, 형이 잘해서죠.”

- 네가 아니면 난 벌써 치킨집 차리고 있었을 거다.

“아! 출출한 게 치킨 고프네요.”

- 내가 바로 쏴줄게.

순식간에 치킨 쿠폰이 도착했다. 흥분한 공정혁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그렇게 좋을까.

“다른 분들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그가 언급한 다른 분은 그가 손을 봐준 선수들이다. 모두 다섯 사람이니 이제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도움을 주고 그 성과마저 좋다면 가슴이 뿌듯해진다. 물론 돈을 받고 연구해준 프로젝트이긴 하다. 어쨌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효과를 보았다니 다행이다.

구단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개인 선수의 생명이 길어졌다는 점에서 강우는 보람을 느꼈다. 공정혁 같은 선수는 그가 아니었다면 다시 선수로 뛸 수 없었고 권광인은 노쇠 현상이 빨라 은퇴를 고민했을 것이다.

- 너 지금 고3이지? 수능 끝나면 얼굴 한번 보자.

“그래요. 시즌 마무리 잘하세요.”

프로야구 프로젝트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에는 한국에 없을 테니까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없다.

전화를 끊고 나니 차도도에게서 톡이 날아왔다.

- 차도도 쌤 : 강우야? 야구 끝났어?

- 강우 : DD 파이터즈가 우승했어요.

- 차도도 쌤 : 난 몰랐어.

차도도는 프로야구에 그리 관심이 없다. 프로젝트 때문에 잠시 관심을 두기도 했으나 꾸준하게 경기를 챙기진 않는다.

특히 3학년 담임이 된 그녀는 올해 무척 바쁜 일 년을 보냈다. 핵융합 프로젝트에 더해서 맡은 학생의 학생부를 일일이 챙겨야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시 입학 지도까지. 수능을 치고 나면 정시 입학 지도에도 매달려야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강행군을 일 년간 하고 있다.

그 고생을 강우도 알기에 그녀에게 핵융합 연구를 독촉하지 못했다.

- 차도도 쌤 : 권광인 선수 말이야.

- 강우 : 네. 올해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 차도도 쌤 : 그 선수가 네가 수능 보느냐고 묻더라.

그에게 수능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데 일반인이 보는 고3은 모두 똑같다.

- 차도도 쌤 : 권광인 선수가 고맙다고 선물을 보내왔어.

- 강우 : 뭔데요?

- 차도도 쌤 : 찹쌀떡 쿠폰. 반 학생들 것 15개.

요즘은 찹쌀떡을 쿠폰으로 배달하는 시대다. 그래서야 잘 찍을 신령스러운 기운이 제대로 배달될지.

강우는 권광인 선수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했다.

- 강우 : 수능 전날 나눠주시면 되겠네요.

- 차도도 쌤 : 이걸 쿠폰으로 줄지 아니면 직접 사서 줄지 고민이야.

- 강우 : 손 가는 대로 하세요.

- 차도도 쌤 : 알았어. 잘자렴(이모티콘).

침대에 누워 수능을 생각했다. 지난 3년이 눈앞을 스쳐 간다.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한편으로는 뿌듯함이 이중으로 흘러갔다.

* * *

수능 전날 고곽천재는 세미나실에 모여있었다.

내일이 수능임에도 그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핵융합 연구에 몰두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이다.

오늘은 최대우가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항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과정은 실험실에서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고압이 문제인데요. 이 때문에 핵융합 발전은 난관에 직면해 있죠. 이 해법을 찾기 위해 항성 내부의 핵융합 과정을 세밀히 뜯어 봤습니다.”

지난 일 년간 최대우는 묵묵히 연구를 수행해왔다.

발표를 들으면서 강우는 최대우의 재능을 다시 확인했다.

- 최대우, 수학 A, 물리 S, 화학 C, 생물 C, 지구과학 S.

S가 두 개인 천재. 물리와 지구과학의 공통 분야가 바로 천문학이고 지금 최대우가 연구하고 있다.

재능과 소질, 흥미, 열정이 모두 맞아 떨어졌기에 최대우의 성과는 놀라웠다.

다른 학생에 비해 오히려 최대우에겐 관심을 덜 기울였음에도 가장 먼저 성과를 끌어냈다.

그 결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핵융합의 대표적 과정인 양성자-양성자 반응은 20세기 중반의 과학자 한스 베테가 주장했었죠. 이 반응에서는 두 개의 양성자가 합쳐지고 양전자가 방출되면서 듀테륨 핵을 형성하는 과정이 일어나고요…….”

최대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은 핵융합을 연구하는 모두에게 기본을 다시 일깨웠다.

“태양은 항성 중에 비교적 작은 별이고 태양 내부에서는 두 양성자가 결합할 만큼 충분한 조건이 조성되지 않죠. 과학자들은 이 의문을 해결하고자…….”

최대우는 별의 내부 조건과 인공적으로 만든 토카막 내부 조건을 비교하고 이를 상온에서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모두가 감동한 표정으로 최대우에게 집중했다.

“사실상 이 논문은 여기까지입니다. 향후 연구는…….”

물론 추가 연구를 최대우는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의 최대우 역할은 여기까지다.

강우가 마무리 조언을 했다.

“얼른 마무리해서 차도도 쌤에게 보내. 그럼 차도도 쌤이 요셉 교수에게 토스할 거야.”

최대우가 쓴 이 논문은 1저자가 최대우다. 논문 저자 순서는 최대우, 차도도, 요셉이다. 드디어 최대우도 본인이 주도한 논문을 내게 됐다. 최대우의 외국 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논문이다. 물론 원서 제출 이전에 논문이 출간된다는 가정하에서다.

요즘에는 논문심사 중에도 인터넷으로 현황을 알려주거나 출간 전에 인터넷판을 미리 배포하는 때도 있어 예전 대비 빨리 저널에 실을 수 있게 됐다.

고곽천재 각자가 모두 다른 논문을 쓰고 있기에 한꺼번에 몰리면 일정이 늦어진다. 그렇기에 하나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낫다.

“크크! 난 벌써 다했어!”

최대우가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내일이 수능인데 수능이 아닌 R&E에 몰두하는 고곽천재는 정말 이상한 녀석들이다.

부러워하며 손뼉을 치고 있자니 세미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선배님! 수능 잘 보세요!”

하은찬과 유혜림이 들어왔다. 녀석들의 손에는 포장된 찹쌀떡이 가득했다. 대충 강우에게만 줄 수 없어서 4인분을 한꺼번에 가져온 느낌이긴 하다.

“고마워.”

고곽천재가 찹쌀떡을 받자 유혜림이 강우에게 재차 말했다.

“강우 선배님? 수능에서도 만점, 전국 수석 하실 거죠?”

강우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 못 하고 있자니 하은찬이 손을 저었다.

“이 형, 모의고사 엄청 못 치거든? 수석 할 일은 없어.”

“어? 못해?”

유혜림의 눈동자에 지진이 났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표정이다.

“전국 수석은 저 누나에게 기대해야지.”

하은찬이 손차희를 가리켰다. 역시 자주 이곳에 들락거렸다고 내부 사정에 밝다.

그래도 믿는다며 파이팅을 외치고 유혜림과 하은찬이 떠나자 윤수아가 물었다.

“쟤네 둘 사귀나?”

“맨날 싸우던데?”

“싸우면서 정드는 거지.”

대답하면서 무심코 강우는 손차희를 쳐다봤다. 손차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둘이 떠나고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두 여자가 등장했다. 차도도와 신새벽이다.

“후아! 너희들 여기 있었네!”

차도도는 권광인이 보낸 찹쌀떡 쿠폰을 다시 반 학생들에게 그대로 분배했다. 고곽천재에게도 1인당 하나씩 휴대폰에 배포됐다. 학생들은 게임 쿠폰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두 선생님의 손에는 커다란 초콜릿 상자가 들려있다.

상자를 본 윤수아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쌤? 그거 저희에게 주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우와!”

초콜릿을 받아든 고곽천재가 탄성을 터트렸다. 마치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처럼 크고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수능 잘 치라고 주는 거니까 뒀다가 같이 먹으렴.”

아마 저 많은 초콜릿은 대부분 윤수아에게 돌아가리라고 강우는 생각했다. 어쨌든 축하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전을 당부하던 신새벽이 강우에게도 말했다.

“강우야! 내일 답지에 예술작품 그리면 혼날 줄 알아!”

강우가 수능에 진심이 아님을 신새벽이 눈치챘나보다.

“예?”

“또 막대 세우거나 물고기 그리거나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고!”

“에이,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너 입학 때부터 유명하잖아? 시험 대충 치는 거로.”

눈을 부라리는 신새벽에게 쫓겨 차마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요.”

“크, 이제 전국 수석확정이네?”

“그게 말만 하면 뚝딱 되는 게 아니라고요.”

“너라면 그냥 돼. 내가 이야기 들었는데 너 사설 모의고사는 치면 모조리 만점 받았다며?”

고현성과의 내기가 언제 새어나갔지? 범인은 이 중에 있거나 아니면 고현성이거나.

곤란한 표정으로 신새벽의 눈치를 보고 있자니 차도도도 옆에서 조용히 타일렀다.

“시험은 성의껏 쳐야지.”

두 선생님이 이렇게 부탁하니 어째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그래, 예술가는 애초부터 강우랑 어울리지 않았어. 강우야! 네가 전국 수석 하면 내가 진짜 해달라는 거 다해준다. 라면보다 훨씬 맛있는 것도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알지?”

신새벽이 눈을 찡긋했다.

차도도가 인상을 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넌 맨날 먹는 거로 유혹하니? 강우가 어린애야?”

“강우도 이제 내일 모래면 성인이거든!”

요리실력으로는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차도도는 할 말을 잃었다.

‘선생님들은 나랑 대우와 수아를 혼동하는 건가?’

강우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옆에서 최대우가 끼어들었다.

“쌤? 저는요?”

“넌 또 왜?”

신새벽이 눈을 부라렸다.

“저도 수석하면 안 될까요?”

“넌 뭐 먹고 싶은데?”

“전 쌤이 만들어주시는 건 뭐든 다 맛있는데요?”

우쭐해진 신새벽이 호언장담했다.

“좋아! 기분이다! 최대우 너도 수석해봐! 내가 뭐든 다 만들어준다!”

“쌤? 저도!”

손차희도 끼어들었다.

결국 어마어마한 내기가 이루어졌다.

고곽천재 누구든 수석 하면 차도도와 신새벽은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그때까지 그들은 누구도 사고를 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지 장난이라고 여겼을 뿐.

정신없던 두 선생님이 사라진 후 고현성이 찾아왔다.

강우가 고현성을 향해 물었다.

“넌 또 왜? 수능 놓고 평소에 하던 거, 한 번 더 할까?”

고현성이 찔끔 몸을 움츠렸다. 그간 사설 모의고사로 내기한 결과가 떠올라서다. 다섯 번이나 승부를 가렸는데 고현성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항상 만점이었던 강우는 고사하고 손차희에게도 매번 밀렸다.

“내가 몇 점 접어줄 테니까.”

강우의 호기로운 제안에 고민하던 고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에.

“차희야! 나랑 마지막 승부를 겨루자!”

고현성이 승부수를 띄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