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64화 (264/325)

제264화 MIT 지원 (1)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한참 후에 강우가 입을 열었다.

“빨리 논문을 완성해서 윈터 교수에게 직접 보내보죠.”

“저널에는 안 넣고?”

“당연히 넣어야죠.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윈터 교수에게 난 이런 연구를 수행했고 이쪽으로 관심이 많다. 내 수준은 이렇다……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알리자는 거죠.”

뜻밖이었던지 신새벽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경우가 다르나 강우가 요셉에게 썼던 방법이기도 하다.

강우는 이 방법이라면 먹힌다고 확신했다. 신새벽이 준비하는 논문이 윈터 교수의 입맛에 딱 맞을 테니까. 실제로 신새벽에게 그런 논문을 쓸 능력이 있기도 하고.

“강우가 그렇다면 그렇게 할게. 올해 내로 보내?”

신새벽이 자신이 작성 중인 연구 노트를 펼쳐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말연시라고 들뜨지 말고 열심히 해야죠.”

“하으…….”

“자! 오늘 제가 막히는 부분을 처리해드릴 테니까…….”

시간이 있으면 신새벽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게 내버려 두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강우는 오랜만에 화이트보드 앞에서 신새벽이 막힌 부분을 설명했다.

“전자와 뮤온 입자의 거동 차이는 핵융합 조건에서는 크게 달라지죠. 이전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뮤온 입자는…….”

이미 강우는 독자적으로 이 주제를 파고들었었기에 능숙하게 관련 수식을 적어나갔다. 그는 문제를 제기한 후 수식을 풀이해 나갔으며 참고논문에서 입증된 결과를 가져와서 비교 분석했다.

신새벽은 막혔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강우의 설명이 거듭되는 동안 신새벽은 마치 꿈을 꾸는 표정으로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어느새 강우는 그녀에게 미래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려 과학고에서 강우를 만난 일은 일생의 기회가 분명했다.

* * *

연말연시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작년에 열심히 구경했던 과학축제도 올해는 참여하지 않았다. 고3이라 축제를 주도할 일도 없었고 정작 축제가 열리는 그 시각에 강우는 연구에 몰두했다.

차도도와 신새벽이 연구하는 논문을 시간 내에 마무리하려면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덕분에 성인이 되는 연초에 함께 모여 자축하자는 고곽천재의 제안마저 거절하고 강우는 원룸에 틀어박혔다.

계획대로 논문을 처리하면서 그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이제는 논문 실적이 아닌 핵융합의 상용화 연구다. 이 연구는 여름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헌팅턴사와 추가 프로젝트를 체결할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내용으로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세워줄 이 연구는 앞으로 그의 인생을 관통할 핵심이자 지지할 최후의 보루가 된다. 헌팅턴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 개발에서 영원한 동반자가 될 예정이다.

과거 첫 프로젝트처럼 그에게 불리한 계약이 아니라 그가 주도하는 계약으로 완전히 갑과 을이 뒤바뀌게 된다. 이 목표를 실현하려니 그는 눈코 뜰 새가 없었다.

- 차도도 쌤 : 강우야? 어떻게 지내?

- 신새벽 쌤 : 강우야? 밥은 먹었어?

- 손차희 : 어제 친구들이랑 술 마셨어. 모두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더라.

- 윤수아 : 강우야아! 어떡해? 슈퍼컴이 반란을 일으켜! 콱 부숴버릴까?

- 최대우 : 흐아암. 눈이 쌓여 문이 안 열려. 집콕 중.

모두 잘 지내나 보다. 눈에 갇힌 최대우 빼고.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밖보다 따뜻한 집안에서 연구하는 것이 더 낫다.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졸업식 날이 됐다.

강우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다.

학교 강당에서 강우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인사했다.

“어이 브라더! 너 요즘 뭐 하냐?”

고현성이 환한 얼굴로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강우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대답했다.

“인생무상!”

“하긴 나라도 수능을 뒤에서 수석 하면 살기 싫을 거야.”

히죽히죽 놀리는 녀석이 오늘따라 무척 귀엽다.

고현성은 수도권의 빅 5에 속하는 의대에 입학했다. 손차희가 수능을 잘 본만큼 녀석도 수능을 잘 봤고 그에 합당한 결실을 수확했다.

그는 입학 결정이 난 후에 손차희에게 다시 고백했다가 또 차였다. 손차희는 그에게 의사 부인이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다. 물론 손차희에게 차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무너질 고현성은 아니었다.

“입학 축하해. 근데…… 밥은 안 사냐? 너 혼자 대학 들어갔잖아?”

고곽천재는 아직 누구도 입학 결정이 나지 않았다. 미국은 8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야지. 차희만 데려와. 내가 뭐든 산다.”

“차희는 내 손 밖이라…….”

올해 고려 과학고는 괜찮은 대입 실적을 거뒀다. 예년 대비 유독 늘어난, 유학 준비 중인 학생을 빼고 국내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학생 수로도 예년 대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한국대 입학생 수도 크게 늘었다.

“강우야, 넌 결정했냐?”

“아직.”

“고생하네. 근데 차희랑 같이 유학 가면…… 너 차희랑 사귀면 절대 안 돼. 알지?”

손차희에게 진심인 녀석이라 강우는 알겠다고 대답해주었다. 어차피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부도수표가 될지도 모른다.

고현성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니 역시 손차희가 보였다. 부모님과 언니, 동생으로 보이는 친지가 옆에 가득했다.

강우는 손차희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그녀의 부모님에게 인사했다.

“강우 학생? 얘기 많이 들었어.”

손차희 어머니가 그를 환대했다.

“강우가 진짜 천재라던데?”

“에이, 전국 수석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예요.”

손차희를 띄워주며 어색한 분위기를 바꿨다. 그래도 연신 그를 칭찬하는 그녀의 부모님이 무척 자상하다. 좋은 가족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저쪽에서 커피를 빨대로 쭉쭉 빨아 마시는 녀석이 다가왔다. 이민찬이다.

“차희야, 결정했어?”

“아직 발표전.”

“나도.”

이민찬도 미국에 원서를 대거 집어넣었다. 이 녀석은 미국 서부 쪽 대학 위주로 원서를 넣었고 벌써 몇 군데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지금은 고르는 일만 남았다나.

올해 김윤택이 키운 최고의 성과가 바로 이민찬이었다. 이민찬은 입학 때 수석이었고 그 후로도 그럭저럭 잘했으니 이 결과는 당연하다.

강우는 이민찬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 봤던 윤수아의 어머니가 보였다.

“몸은 괜찮으세요?”

“강우? 요즘은 괜찮아.”

최근에도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는데 응급실을 가진 않는다고 했다. 아마 윤수아가 미국으로 유학 가면 어머니도 따라가서 가족이 다시 합칠 것이라나.

오랜만에 만난 윤수아와 잡담을 나누다가 최대우 부모님께 인사했다.

멀리 울릉도에서 서울까지 온 가족들은 한눈에도 최대우 가족이라고 알 수 있었다. 최대우 못지않게 녀석의 아버지도 몸집이 펑퍼짐했다. 부전자전이다.

“서울 언제 올 건데?”

“하아! 조금 더 효도해야지. 미국 가면 못하잖아.”

어휴, 착한 녀석. 최대우를 볼수록 강우는 자신이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졸업식이 시작됐다.

강우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졸업식이었다. 그는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나 공식적으로 거둔 성과는 없다.

졸업식은 손차희의 날이었다.

그녀는 3년 통산 내신 전교 수석이었고 수능도 전국 수석으로 학교의 명예를 떨쳤으니까. 상이란 상을 모두 휩쓸었다. 그녀의 공부 열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손차희는 소감을 말하면서 3년간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곽천재 멤버의 이름이 하나씩 호명되었고 특히 그녀는 강우에게 더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졸업식에서 강우를 떠올릴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졸업식은 금방 끝났다.

이제는 모두 헤어질 시간. 오늘 학교를 떠나면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없으니 학생들은 시원섭섭했다.

강우는 인생의 일 막이 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한 여정의 끝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다.

강우는 친구들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찬란하리라고 확신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교정이 한산해질 때쯤 강우도 걸음을 돌렸다.

“어머니, 그만 가요.”

“그래. 우리 아들 많이 컸어.”

온종일 강우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 어머니다.

어머니와 함께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차도도와 신새벽을 만났다.

학생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던 두 사람이 강우를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왔다.

정작 두 사람은 강우에게 인사하기는커녕 어머니에게 들러붙었다.

“수술한 곳은 어떠세요?”

“강우 키우느라 고생하셨어요. 저 녀석 완전 장난꾸러기라.”

“앞으로 강우는 더 큰 인물이 될 거예요.”

“저 녀석 입학 때 숙제도 제대로 안 했는데 이젠 사람이 됐어요. 사람이.”

차도도와 신새벽이 번갈아 가며 수다를 떨었다. 그 내용이 그를 칭찬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구분이 어렵다.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두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했다.

“두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강우가 잘 자랐어요. 고맙습니다.”

“강우 덕분에 저희도 좋았어요. 강우가 얼마나 듬직한데요.”

“우리 애가요? 듬직은 무슨……. 앞으로 장가나 제대로 갈지 걱정인데…….”

오가는 이야기에 강우는 당황했다. 오늘따라 어머니는 왜 이러시나.

“선생님들, 강우가 딱 선생님 같은 색시를 만나 결혼하면 제가 소원이 없겠어요. 저에게 남은 단 하나의 소원이에요. 그러니까…… 괜찮은 처자 있으면 꼭 강우랑 연결해주세요. 전 딴 건 안 봐요. 선생님 같으면 딱 되요.”

“어머, 그래요? 전 어때요?”

“으아!”

강우는 이상한 말이 오가자 얼른 손을 저으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차도도의 손을 잡으면서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께서 강우 옆에 계셔서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전 항상 노심초사하며 잠을 못 이뤘을 거예요. 강우가 요즘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해서 제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저 어린 녀석이 밖에 나가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부들부들 떠는 강우와 달리 차도도는 차분하게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선생님도 유학 안 가시나요? 강우 말로는 의향이 있으시다고…… 부디 저희 애 좀 챙겨주세요.”

떼어놓으려던 강우가 멈칫했다.

차도도는 조금 얼이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옆에서 신새벽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어머님! 제가 강우와 같이 갈게요. 그러니까 마음 놓으세요.”

차도도가 신새벽에게 눈치를 주었고 신새벽은 몰래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 * *

늦은 밤, 아파트에서 창밖을 구경하던 차도도는 요셉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 차 선생님?

“네, 교수님, 말씀하세요.”

- 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을 지원했더군요.

“아, 그게요…….”

차도도는 조심스럽게 사정을 설명했다.

강우의 권유로 원서를 넣었으나 아직 확고하게 결정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죄송합니다.”

-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요셉 교수는 화난 음성이 아니었다. 신사인 그와 분노는 어울리지 않는다.

- 알다시피 대학원생을 받아들이는 일은 연구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받아들인 학생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죠. 그래서 교수가 꾸리는 대학원생의 수는 그 교수의 연구비와 비례합니다.

요셉 교수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 차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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