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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68화 (268/325)

제268화 MIT 지원 (5)

오후 시간이 되자 합격 발표를 앞두고 마음이 붕 떠 있던 강우는 새로 들여온 실험기자재를 살폈다.

마침 차도도 또한 수업이 없어 함께 기자재 매뉴얼을 놓고 차근차근 시험 운용을 했다.

이 실험실에 설치된 장비는 소형 풍동, 주사전자현미경, 초고속 촬영장치. 이 세 실험 장비는 예전에 한국대에서 사용해봤던 경험이 있어 그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강우는 어떻게 사용법을 알아?”

윤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험 장비를 들여올 때 납품업체의 시험 운용을 참관했던 차도도 외에는 몰라야 정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도적으로 실험을 수행하던 강우가 멈칫했다. 갑자기 대답할 답변이 궁색해졌다. 생각해낸 대답이라고는…….

“그건 네가 기계치라서 그래.”

“어…… 그런가? 근데 차희도 나랑 비슷한데?”

“차희는 매뉴얼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렇지.”

“넌 읽었어?”

“며칠 전에.”

최근 강우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았던 윤수아는 바로 말문이 막혔다. 오래전 강우를 처음 보았을 때 어젯밤 공부했던 내용이라고 우기던 변명이 생각나서 추궁하려다 포기했다.

어쨌든 강우의 손놀림은 훌륭했고 그들은 어렵지 않게 기자재를 테스트했다.

“근데 이걸 어디에 써먹지?”

비싼 장비를 갖춰 놓아도 사용이 쉽지 않다.

딱히 교과과정에 명시된 실험이 아니어서 이 장비를 활용할 새로운 실험 매뉴얼을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가의 장비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뿐이다. 사실 학교의 많은 장비가 이미 그런 신세로 전락했다.

“수아는 관심 있어?”

차도도의 물음에 윤수아가 우물쭈물했다.

강우가 보니 매뉴얼을 작성하고 싶은 눈치다.

이 장비를 도입한 사람이 차도도이기에 매뉴얼 작성은 그녀가 할 일이다. 당연히 강우도 도울 생각이었다.

차도도가 이 학교를 떠나면 이 장비를 관리할 선생님이 사라진다. 그 전에 확실한 운용방안을 만들어놓아야 그도 마음이 놓인다.

“수아가 하겠다네요. 수아에게 사용 매뉴얼 및 실험 교재를 작성하게 해보세요.”

“할 수 있겠어?”

윤수아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실험지식은 고곽천재 내에서도 가장 초보였다. 손차희는 실험 수업을 주도했었고 강우와 최대우는 올림피아드에서 실험 대회를 이끌었을 만큼 능력자다.

“강우가 도와준다면요.”

당연히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강우 또한 그녀를 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강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차도도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이 장비 매뉴얼은 너희가 만들어 보렴. 당분간 학교에서 할 일도 없잖아?”

“헌팅턴 프로젝트 해야 하는데요?”

손차희가 볼멘소리로 반박했으나 차도도의 눈총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지난 연말연시에 해외 저널에 실을 논문을 작성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논문이 모두 출간된 지금은 잠시 휴식 상태다.

“자, 그럼 수아가 주도해서…… 수아야 거기 소형 풍동 있잖아? 그거 공기 압축하며 예열해야 하니까 스위치를 켜봐. 자동차 모형도 찾아놓고.”

“스위치가 어디 붙었는데요?”

기계치 윤수아는 스위치를 찾기까지 한참 걸렸다.

강우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답이 없네…….”

* * *

저녁 늦게까지 실험실은 환하게 불이 밝았다.

남들이 보면 열심히 공부 또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착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 컴퓨터 앞에 모여 MIT 신입생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곽천재만이 아니었다. 합격 여부에 앞으로의 미래가 걸린 신새벽마저 가담했다.

가장 여유로운 사람은 강우와 차도도였다.

압도적인 논문 실적을 제시한 강우는 떨어질 일이 없었고 차도도는 붙든 떨어지든 신경 쓰지 않았다.

차도도는 요셉 교수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아마도 요셉이 이번에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얘네는 대체 몇 시에 발표해? 자정 딱 넘어가면 발표해야 하는 것 아냐?”

“그 시간이면 벌써 떴겠지.”

잡담이 오가는 가운데 밤 10시가 됐다.

열심히 홈페이지에 접속하던 윤수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 떴다!”

써머타임 기간이라 현지시각 아침 9시에 합격 여부가 올라왔다.

윤수아부터 차례로 합격을 확인했다.

윤수아는 MIT 전산학과에 붙었고 강우, 최대우, 손차희는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가장 걱정이었던 신새벽도 MIT 화학과 박사과정을 승인받았다. 물리화학 분야의 대가인 브라이언 윈터 밑에서 사사하게 됐다.

그리고 관심의 초점이었던 차도도는…….

요셉 교수가 강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차도도는 MIT 물리학과에 요셉 교수 밑으로 가게 됐다. 석박사 통합과정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합격했다.

“와아!”

환호성을 질렀고 그들은 서로를 축하했다.

가장 많은 축하와 감사를 받은 사람은 강우였다. 강우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MIT 합격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전이 성공했어!”

누구보다 마음을 졸였던 신새벽의 환호성이 가장 컸다. 본인이 입학을 확신하지 못했고 막판 논문 작성이 늦어져 출간된 실적이 아닌 윈터 교수에게 작성한 논문을 직접 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작전은 성공했다. 윈터 교수가 그녀의 논문을 높이 평가했음이 분명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던 그녀는 정신없이 강우를 품에 안았다. 누구보다도 진학 욕심이 컸던 그녀는 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도 한국대 석사에 MIT 박사의 꿈을 이루게 됐다. 그야말로 인생역전이라 할 만했다.

“으아, 으아! 쌤! 참으세요!”

“강우야! 요 귀여운 것!”

간신히 진정시킨 후 품에서 벗어난 강우는 재빨리 차도도 옆으로 도망쳤다.

차도도의 눈총에도 강우는 헤벌쭉 웃어 보였다.

“신새벽! 자꾸 애를 놀라게 할래?”

“얘들도 다 컸거든! 강우도 이젠 성인이고.”

원하던 답변이 아니어서 차도도는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축하할 일이다.

“너희는 어떡할 거야? 결정했어?”

강우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합격 대학이 여러 곳이다.

“우리는 쌤들 따라갈 거예요! 거기 가면…… 기숙사에 들어가려나? 차 쌤, 신 쌤과 함께 기숙사에 같이 살다니! 상상이 안 돼요!”

손차희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윤수아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냥 부근에 큰 집 하나 빌려서 우리 전부 같이 살까요?”

“우와! 그거 좋겠다!”

최대우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차도도가 미간을 확 모으고는 강우를 지적했다.

“저 녀석 때문에 안 돼!”

난데없이 지적당한 강우는 손을 내저었다.

“제가 왜요?”

“하여튼 안 돼.”

뭔가 있음을 간파한 신새벽이 강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강우야, 문제 있었어? 지난번 생일날부터 어째 이상하다?”

“예?”

“차 쌤 표정 보니 확실히 뭔가 있었는데? 이 동네 누나에게 털어놔 봐. 이 누나가 해결해줄게.”

“신새벽!”

차도도의 눈총에 신새벽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강우의 기억에는 다음 날 아침에 잠자다가 난데없이 차도도라는 벼락을 맞긴 했는데…….

분위기가 안정되자 신새벽이 제안했다.

“자! 오늘 같은 날, 모두 축하해야지! 차 쌤 집에서 한잔하자!”

“왜 우리 집이야?”

“그럼 애들 데리고 이 밤에 맥줏집 갈래? 학교 앞에? 보기 좀 그렇지?”

차도도가 생각해도 술집보다는 그녀의 집이 훨씬 낫다. 시간도 늦었고.

차도도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 신새벽이 모두에게 말했다.

“자, 내가 오늘 차를 가져왔으니까…… 나는 우리 강우 교수님을 모시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택시 타고 간다. 불만 없지?”

모두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신새벽에게 매달렸다.

“쌤! 저희는요?”

“그래, 차희랑 수아는…… 어쩔 수 없네. 너희는 뒷좌석에 타.”

“쌤 저는?”

“넌 덩치를 생각해. 네가 타면 차가 주저앉아 기어가거든! 그리고 넌 이 밤에 차 쌤만 홀로 보낼 거니?”

최대우는 반박을 못 하고 차도도 옆에 찌그러졌다.

* * *

차도도의 아파트가 아지트가 됐다.

그들은 오면서 맥주를 잔뜩 사 들고 왔다. 안주는…… 차도도의 냉장고를 털었다. 거기에 신새벽이 기분이라며 족발을 배달시켰기에 먹을 것이 풍족했다.

캔맥주를 따고 한 모금 들이켜고 있으려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연신 휴대폰을 확인하던 최대우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

“얘 갑자기 왜 이래?”

신새벽이 영문을 몰라 강우를 쿡 찔렀다.

“저도 몰라요.”

간신히 안정을 되찾은 최대우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애나가! 애나가 MIT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손차희는 애나를 본 적이 있기에 환영했다.

“애나가 누구야?”

“여신요.”

강우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

“여신? 물리학과에 예쁜 애가 입학했다 이거지? 대체 누구야?”

신새벽의 목소리에 괜히 찔끔한 강우가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진짜 여신은 아니고요. 블로그에서 여신이라는 닉네임 쓰는 여학생이 있어요.”

“흐음, goddess? 그럼 그렇지.”

급격히 안심하는 신새벽에게 최대우가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람이에요.”

“헉! 여신 맞잖아! 어쩐지 둘이 애나 애나 노래를 부른다했다!”

갑자기 신새벽이 박장대소하며 강우와 최대우를 놀렸다.

“그리고 랜디도 MIT에 합격했대. 랜디는 수학과라는데?”

“랜디가?”

손차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어서 랜디가 얼마나 똑똑하고 잘생겼는지 윤수아와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두 여학생이 랜디 이야기로 꽃을 피우자 강우는 혀를 찼다. 어째 애나에게 반한 최대우나 랜디에게 반한 여학생들이나 마찬가지로 보여서다.

랜디의 사진을 본 신새벽이 흐뭇한 웃음을 터트렸다.

“잘 생기긴 잘 생겼네. 그래도 우리 교수님보다는 쪼금 못한데?”

“어휴.”

콧방귀를 뀌는 차도도에게 신새벽이 발끈했다.

“차도도! 내 말이 틀렸어? 넌 누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해? 오늘 또 진실게임 할래?”

차도도가 손을 저으며 일어섰다.

“술 마시고 있어. 난 옷부터 갈아입고.”

차도도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신새벽의 손가락이 옆구리로 들어왔다.

“강우야? 털어놓지? 차 쌤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있을 리가요.”

“하긴 차 쌤이야 도도 그 자체잖아? 찬 바람이 쌩쌩 불고 틈을 내어주지 않지.”

막상 대답하고 보니 조금 슬프다. 차도도와 그 사이에는 10년이란 장벽 외에도 스승과 제자라는 더 큰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

말없이 강우는 맥주를 들이켰다.

분위기는 다시 MIT 입학으로 넘어갔다.

고등학생이라면 대학 생활에 꿈과 환상이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이성 친구를 매달 바꿔 사귀겠다거나. 강의를 째고 놀러 다녀보겠다거나. 동아리 활동에 전념해보겠다거나.

정작 고곽천재의 대화는 금방 연구로 넘어갔다. 대학에 가서도 지금 수행 중인 핵융합 관련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또 어떤 주제가 재미있어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연구와 공부에 관련된 대화가 줄을 이었다.

손차희는 MIT의 유명 교수 리스트를 조사해서 꼭 들어야 할 수업 리스트를 작성해 두기도 했다. 모두 다 수강하려면 졸업하기는 그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과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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