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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71화 (271/325)

제271화 졸업생 일상 (3)

졸업한 후에도 최대우는 천문대의 천체망원경을 노렸다.

별 보기를 좋아하는 그는 서울에 있을 때도 시간이 나면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는 여유를 만끽하기를 원했다.

중간고사 일정이 발표되고 학생들이 점차 바빠질 무렵 시험과 전혀 관계없는 졸업생인 최대우는 천문대로 직행했다. 이런 시기일수록 천문대가 한가하기에 하늘이 맑은 오늘 같은 날을 놓칠 최대우가 아니었다.

물리 실험실에서 연구에 열중하던 강우도 최대우를 따라가야 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오늘은 뭐 볼 건데?”

“봄에는 은하를 봐야지!”

이미 계획을 세운 최대우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망원경으로 보아도 대부분의 은하는 어둡고 작아 서울 하늘에서는 관측이 어렵다. 물론 최대우에게 어렵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B동 옥상에 도착했을 때 놀랍게도 천문대에 은은한 불이 밝혀져 있었다.

“이 시각에 관측을?”

관측 자체는 놀랍지 않다. 다만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천문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간 큰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엄청 열심인 학생이 있나 봐.”

강우는 현재 2학년, 3학년 천체관측반 학생을 떠올려보았으나 마땅한 학생을 점찍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신입생이 분명하다.

역시 망원경이 설치된 원형 돔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강우는 망원경 앞에서 고민하는 두 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이 낯서니 신입생이 확실하다.

그들을 발견한 신입생이 오히려 먼저 말을 걸었다.

“어? 누구야? 신입생? 별 보러 왔어?”

천체관측반 최강고수이자 전설의 천재 최대우를 모르는 녀석도 있나? 최대우보다 더 흥분한 강우가 반대로 물으려 할 때였다.

“응, 넌 누구야?”

최대우가 얌전하게 물었다.

최대우를 쓱 훑어본 녀석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나도 신입생이야. 내가 지난번에 선배들 얼굴을 쭉 봤었는데 너처럼 생긴 애는 없었는데…… 역시 신입이었네. 반가워. 난 지금 관측하려고.”

“아하, 그래. 나도 반가워. 이름이?”

최대우도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강우가 볼 때 최대우는 열심히 관측하는 이 후배를 예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난 한선일, 얘는 이진형. 우리는 3반이야. 차도도 선생님 반. 너흰?”

차도도는 올해도 3반을 맡았다. 차도도 반 학생이라니 더 반가웠다.

최대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난 최대우. 근데 뭐 보고 있어?”

강우는 한선일과 이진형의 재능을 확인했다. 역시 천문에 소질 있는 녀석임을 입증하듯 지구과학이 A였다. 다만 다른 과목은 대부분 B나 C여서 재주가 없어 보였다.

강우는 인사를 생략했는데 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졸지에 완전 투명인간으로 취급받았다.

한선일이 으스대며 말했다.

“딥스카이라고 알아? 하늘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성운 성단 은하! 특히 봄철에는 은하가 많아서 볼거리가 널려있어. 보고 싶은 거 있어? 내가 보여줄게.”

강우와 최대우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 아직 초보라 뭘 봐야 할지 모르지? 그럼 내가 보여줄게.”

녀석이 신이 나서 망원경을 조작했다.

강우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최대우를 살폈다. 최대우는 여전히 정체를 숨기고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프레세페성단이라고 들어봤어? 봄철에 가장 잘 보이는 녀석인데…… 저기 있거든!”

한선일이 하늘 한쪽을 가리켰다.

강우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그의 눈에는 흐릿한 별이 하나둘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 보이지? 뭔가 있지?”

“어…… 있는 것 같아.”

최대우가 열심히 호응해줬다.

기세가 오른 녀석이 천체망원경을 움직이고 순식간에 목표물을 향했다.

망원경을 들여다본 녀석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와! 멋있다! 봐봐! 별이 정말 많아!”

강우도 최대우를 따라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수십 개의 별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거무칙칙한 서울의 밤하늘에 이런 보물이 숨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 보물을 손쉽게 찾아낸 이 녀석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다.

강우의 탄성에 한선일이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망원경을 조작했다.

“멋있지? 지금부터 내가 볼만한 천체를 막 찾아줄 테니까 기대해!”

“맞아, 선일이는 도사야!”

친구인 이진형이 맞장구를 쳤다.

그그긍-

한선일이 다시 망원경을 조작했다. 이진형도 옆에 붙어서 열심히 도왔다.

강우와 최대우는 즐거운 마음으로 옆에서 대기했다. 강우는 항상 최대우가 망원경으로 목표한 대상을 찾아 보여주었기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으나 최대우는 스스로 찾지 않고 남이 찾아주는 천체를 보는 일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최대우의 눈빛에 후배를 향한 감동이 가득했다.

어찌 된 일일까.

다른 대상을 보여준다고 장담한 지 10여 분이 지났음에도 두 녀석이 바쁘게 작업만 할 뿐 천체를 겨눴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강우가 물었다.

“아직 멀었어?”

“조금 기다려봐.”

다시 5분쯤 지난 후.

“아직도?”

“은하가 쉬운 게 아니야. 이것들이 어두워서 어디 박혀 있는지…….”

슬슬 인내심이 다해가는 강우와 달리 최대우는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한선일이 천체의 위치를 확인하고, 망원경을 움직이고,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내가 천체 관측 도사거든! 나니까 이 정도라도 하는 거야. 다른 신입생은 망원경을 만지지도 못해. 겁이 나서.”

그 말은 옳다. 강우도 최대우가 아니면 천체망원경 근처에 가기를 두려워했으니까.

한참 망원경을 조작하던 한선일이 분통을 터트렸다.

“으아!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안 보여. 왜 이러지?”

한선일과 이진형이 머리를 맞대고 토의하더니 강우에게 사과했다.

“뭔가 잘 안 되나 봐. 오늘은 더 보여주기 힘들겠어. 내가 잘 배워서 다음에…….”

“괜찮아.”

최대우가 드디어 나섰다.

듬직한 미소를 지으면서 최대우가 망원경으로 다가가자 한선일이 급하게 말렸다.

“어? 그거 함부로 만지면 안 돼. 나도 김선호 선생님께 간신히 허락받았어. 그리고 넌 아직 초보라 망원경으로 찾지도 못해.”

“응, 나도 알아. 그런데 한번 해보면 안 될까?”

최대우가 조심스럽게 요청했고 한선일이 마지못해 수락했다.

“쌤한테 혼나니까 조심해서 만져. 원래 초보자는 망원경 건드리면 안 되거든.”

그그긍-

천체망원경이 휙휙 돌았다.

그때마다 망원경 시야에는 작은 은하가 잡혔다.

하나, 둘…….

관측한 은하 숫자가 열 개를 넘어갔을 때 한선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 천체 관측의 신이다! 어떻게 망원경을 겨누면 알아서 척 보이지?”

신입생 둘은 최대우가 고중전에서 천체관측반을 우승시킨 전설적인 선배란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이야! 이곳에서는 한꺼번에 은하가 네 개씩이나 보이네!”

천체망원경을 고정한 후 두 사람에게 넘기자 한선일이 좌절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중간고사 전날 강우는 기숙사를 방문했다.

이미 출입이 통제된 시간이었으나 강우를 막을 수 없었다. 여전히 강우가 가진 과거의 학생증이 지금도 제대로 작동했다. 잠겼던 문이 출입증을 대는 순간 철컥 열렸으니까.

기숙사 가장 아래층 식당에는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학생들이 야식을 빙자하여 치킨 등을 시켜서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들은 잡담으로 시험 스트레스를 풀고 일부는 모르는 문제를 들고 와서 친구에게 물었다.

예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어? 형!”

하은찬이 그를 보고 반갑게 맞았다.

강우는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댔다. 뜻을 짐작한 하은찬이 씨익 웃으며 눈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주위를 쭉 둘러보던 강우는 신입생들이 모인 테이블로 이동했다.

유달리 왁자지껄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수학 문제를 펼쳐 놓고 서로 맞는다며 우겼다.

“이건 이렇게 푸는 거야!”

“그렇게 하면 너무 복잡하지. 이런 식의 접근이 유리해.”

“아냐, 이 문제는 교과과정 밖이라 나오지도 않아!”

이런저런 의견이 난무했다.

강우도 머리를 쓱 들이밀었다.

“뭔데?”

“이 자식이 우기잖아.”

“내가 언제? 우긴 건 너지.”

대충 살펴보니 비교적 단순한 인수분해 문제다. 독특한 유형이라 대부분 학생은 암기식으로 풀이과정을 외웠다.

잠시 다투는 모습을 관찰하던 강우가 손을 들이밀었다.

“내가 풀어볼게.”

“어? 너 누구야? 이건 우성이가 푸는 방식이 정답이야. 우성이가 올해 차석으로 입학했잖아?”

“나? 차도도 쌤 반.”

강우는 이름 대신에 차도도를 들먹였다.

당연히 학생들은 강우를 신입생으로 간주했고 누구인지는 안중에 없었다.

여전히 떠들썩한 녀석들 사이에서 강우는 흰 백지에 볼펜으로 문제를 쓰고 쓱쓱 줄을 그었다.

“이 문제는 얼핏 보면 교과과정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수식을 이렇게 변환하면…….”

놀라운 강우의 실력이 발휘됐다.

처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학생들은 문제풀이가 거의 끝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푸, 풀이답지에도 그렇겐 안 풀었던 데…….”

“그건 설명이 어려워서지. 공식처럼 암기시키면 학생들이 오히려 단순명료하다고 좋아하니까.”

강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둘러봤다.

그 순간 다른 학생이 또 다른 문제를 내밀었다.

“이, 이건 어떻게 풀어? 이 문제 풀 줄 알아?”

수학 경시대회에서나 볼 법한 문제였다.

강우는 문제를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런 문제는 시험에는 안 나오는데 궁금하다면 풀어줄게. 이건 이렇게 접근하면 쉽게 풀 수 있어.”

강우의 매끄러운 설명이 이어졌다.

학생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어서 다른 학생들도 풀리지 않던 문제를 가져와서 물었다. 졸지에 강우가 있는 테이블에는 질문하는 학생으로 넘쳐났다.

“우아! 이게 말이 되냐? 이렇게 쉽게 풀려?”

“어제 밤새도록 고민한 문젠데…… 허탈하다.”

“이건 올림피아드 문제인데 그걸 손쉽게 풀다니!”

“어? 너 입학 때 몇 등 했어? 진단 고사!”

강우를 중심으로 별별 감탄과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떤 문제를 들이밀어도 막힘없는 강우의 실력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허억! 넌 못 푸는 문제가 없냐?”

“어느 학원 다녔어? 대박이다!”

학생들의 탄성에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배들을 골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험 전날 질문을 받아주는 선행도 하고. 물론 예전처럼 테이블에 과자가 쌓이진 않았다.

그가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여유롭게 문제를 풀어주고 있을 때였다.

“강우!”

뾰족한 외침이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들어보니 허리에 손을 척 걸친 차도도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 차도도 쌤이다!”

“쌤! 웬일이세요?”

주변 신입생들이 먼저 반응했다.

미모 때문일까. 차도도는 신입생들에게 유달리 인기였다.

강우는 천천히 일어나서 꾸벅 인사했다.

“흐악! 안녕하세요.”

“네가 왜 여기 있어?”

“애들 문제 풀어주느라…….”

“으이그, 장난은!”

차도도가 다가와서 강우의 귀를 잡고 끌어냈다.

“으아! 귀 떨어진다고요!”

“후배들 자꾸 놀릴래?”

“제가 언제 또 놀렸다고!”

“며칠 전 김선호 쌤에게 들었거든! 천문대서 놀았다며? 딴짓하지 말고 얼른 집에 가!”

귀가 아파 부들부들 떨면서 끌려가는 강우를 본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가짜 학생인가?”

“근데 수학 대따 잘하는데?”

학생들이 웅성대며 고민하는 사이 한 학생이 소리쳤다.

“아, 알았다! 그 사람이야! 고곽의 전설적인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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