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80화 (280/325)

제280화 프로젝트 협상 (1)

한국대 자연과학대학 건물 주차장에 강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나타났다.

건물을 나와 급히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고든을 마도환이 붙잡았다.

“부사장님, 이대로 가시면 어떡합니까?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헌팅턴에게도 좋은 일 아닙니까?”

고든은 마도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팔을 잡은 마도환의 힘이 더 강해지자 고든이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마 교수! 내가 굳이 말해야 알겠나?”

“네? 프로젝트를 연장해 주시는 겁니까?”

“이보게, 양심 좀 챙기게. 당신과 프로젝트를 계속하면 우리가 큰 손해를 입을 게 분명해졌네. 돈을 많이 타 갔으면 성과를 내야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그거야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앞으로 한국대의 도움은 전혀 필요 없네. 그러니까…….”

마도환이 당황해서 표정을 수습하지 못했다.

“연장은 없어. 올해 말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구 불성실로 소송을 걸 테니까 준비하고 있게나.”

망연자실한 마도환이 잡았던 팔을 놓았다.

강우는 마도환을 힐끔 살핀 후 고든과 그레이엄을 안내했다.

“타시지요.”

그들의 앞에는 차도도의 소형차, 모닝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었다.

“으아아!”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는 마도환을 내버려 두고 강우는 운전석에 앉았다. 조수석에는 차도도가 뒷자리에는 고든과 그레이엄이 자리 잡았다. 그나마 그레이엄은 체구가 정상이라 문제없으나 고든은 체구가 크고 살집이 있어서 모닝이 불쌍할 정도였다.

간신히 몸을 구겨 넣어 차에 오른 고든이 불평을 터트렸다.

“미스터 강, 차 좀 큰 거로 장만하면 안 되겠나?”

“리무진을 원하십니까?”

“그, 그런 게 아니라…….”

“이 차는 저희 차 선생님께서 애지중지하시는 모닝입니다. 연구비에 차 구입비나 운용비는 없었거든요. 정 불편하시면 내려서 택시 타고 오시지요.”

“끙!”

고든과 달리 그레이엄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강우는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이곳에서 고려 과학고까지 멀지 않으니 고든도 잠시만 시달리면 된다.

‘이렇게 길을 들여야지.’

강우는 운전하면서 고려 과학고에서 벌일 프로젝트 담판을 머릿속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 * *

교장실을 방문한 후 강우 일행은 예정된 A동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실에는 신새벽을 비롯하여 고곽천재 친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강우는 그들을 한 사람씩 소개했다.

“이분은 신새벽 화학 선생님입니다. 최근에 한국대에서 양자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으셨고요.”

고든과 그레이엄에게 신새벽은 처음 들은 인물이었다.

“이쪽은 그동안 저와 함께 연구를 수행한 친구들입니다. 논문에서 한 번씩 이름을 보셨을 겁니다.”

예전에 헌팅턴 본사를 방문했을 때 급히 움직이느라 손차희와 윤수아는 동행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최대우를 비롯한 친구들을 고든과 그레이엄은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손차희가 대표로 인사했다.

그렇게 모두 여덟 명이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손차희가 그동안 수행한 연구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국대에서 발표한 방식과 마찬가지였으나 내용은 확연히 달랐다. 겉 포장만 요란했던 한국대와 달리 강우네 발표는 실속이 가득했다.

그레이엄이 중간중간에 질문을 던졌고 손차희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강우는 그들의 질의응답을 조용히 구경했다.

그레이엄이 지금 손차희의 능력을 확인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강우와 함께 논문을 쓴 학생들이 실제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올렸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깐깐하긴 하군. 하긴 향후 회사의 운명이 걸렸으니…….’

전반적인 프로젝트 상황을 브리핑한 후 손차희는 자신이 연구했던 논문을 스크린에 띄우고 세부 연구 내용을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그레이엄이 질문을 던지면서 탄성을 터트렸다.

손차희가 끝나자 이번에는 윤수아가 나섰다. 윤수아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여 수소 플라스마의 거동을 해석한 연구를 소개했고 이 연구가 실제 실험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상세하게 예를 들었다.

그녀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MIT의 요셉 교수에게도 감사의 말을 빠트리지 않아 그레이엄을 흐뭇하게 했다.

그 사이 신새벽이 과자와 음료수를 발로 뛰어 마련했다.

최대우는 열심히 과자를 먹다가 발표하러 뛰어나갔다.

최대우는 항성 내부의 핵융합 과정을 소형 핵융합 원자로에 반영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비록 버벅대는 영어였으나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콜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경청하던 강우도 깜짝 놀랐다. 지금 최대우의 발표는 일전에 저널에 실은 논문에서 한 발짝 더 발전한 내용이었다.

울릉도와 서울을 오가면서도 예상외로 많은 진전을 이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최대우의 재능이 꽃피는 느낌이다.

“이 연구 아이디어는 누가 생각했습니까?”

그레이엄이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제가 생각해냈습니다.”

“강우 군이 알려준 건 아니고요?”

“강우는…… 수식 계산에 도움을 주긴 했습니다만 이전 논문처럼 많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강우보다는 오히려 차도도 선생님에게 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반적인 핵융합 과정을 설계할 때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셨거든요.”

최대우가 공을 차도도에게 돌렸다.

강우도 깜짝 놀랐다. 졸업 후 최대우와 차도도가 끊임없이 연락하면서 연구를 수행했나 보다. 그가 2차 프로젝트에 고심하는 사이 연구 동료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최대우까지 발표를 마치자 고든과 그레이엄이 손뼉을 치며 경의를 표했다.

“대단하군요. 우리는 강우 군이 혼자서 거의 해치우는 줄 알았습니다.”

“제 동료들은 모두 독자적인 연구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연구 결과 보고는 끝난 거죠?”

“아뇨, 아직 남았습니다. 비록 프로젝트 연구비를 투입하지 않았어도 향후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연구 결과가 더 있습니다.”

이번에는 신새벽이 나섰다.

신새벽은 자신의 논문에 더해 최근에 하은찬, 유혜림과 함께 연구했던 논문을 발표했다.

고든과 그레이엄은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새벽이 발표한 결과만으로도 한국대 마도환이 연구비를 받아 가서 수행한 결과보다 훨씬 우수했기 때문이다.

상기된 표정으로 고든이 소감을 말했다.

“처음 요셉 교수와 프로젝트를 체결할 때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한국대 프로젝트가 실패할 때를 대비한 막연한 보험용이었죠.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한국대 프로젝트는 진전이 없었고 이 프로젝트가 훌륭하게 수행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연구하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회의 1막이 끝났다.

* * *

잠시의 휴식 후 속개된 회의에서는 차도도가 사회를 맡았다.

“프로젝트는 아직 1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두 분을 급히 한국으로 초청한 이유는 2차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셨다시피 1차 프로젝트의 목표를 저희는 이미 완수했습니다. 앞으로 1년을 허송세월한다면 그 이상의 낭비가 없겠죠.”

고든과 그레이엄이 신음을 터트렸다.

이미 강우에게서 주요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받았었기에 지금부터 모든 협상의 무게추가 고려 과학고로 기울었음을 깨달았다.

차도도는 밝고 또렷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핵융합 기술 상용화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오늘 어떤 결과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앞날이 바뀝니다. 헌팅턴의 앞날도 바뀌겠죠. 나아가 인류의 미래도 바뀝니다. 대국적인 목표를 향해 협력하면서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합니다. 훗날 오늘의 이 협상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도록 말입니다.”

차도도는 의도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언급했다.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 말라는 요구이자 경고였다.

강우는 미리 작성한 자료를 돌렸다.

고든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 자료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그가 수없이 참석했던 어떤 회의보다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요약하자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상온핵융합 원자로를 보급하여 미국에서만 전체 전력의 1/3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그 첫 단계로 지금부터 5년 이내에 소형원자로를 완공하고요. 첫 실험실용 원자로는 3년 이내에 구축할 겁니다.”

실로 예상치 못한 엄청난 계획이었다.

이 계획대로라면 10년 후에는 전기료를 현재의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 이로 인해 산업 경쟁력에서 어마어마한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핵융합은 무한한 청정에너지여서 이산화탄소로 대변되는 지구 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 핵분열 에너지에 따라붙는 방사능의 위험성과도 거리가 멀다.

“미국에 보급한 후 10년이 지나면 다른 나라에서도 전력 생산의 주력으로 등장할 겁니다. 헌팅턴이 이 거대한 시장을 선점하는 셈이죠. 다른 업체에서는 절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 전력시장을 차지할 수 있어요. 원자력 잠수함, 항공모함에 국한될 기술이 아닌 거죠.”

차도도의 설명을 듣는 순간 고든과 그레이엄은 가슴이 뛰었다. 헌팅턴의 세계적인 비상이라니! 지금 강우가 개발 중인 기술은 전 세계 산업을 뒤바꿀 게임 체인저였다.

상기된 표정으로 고든이 물었다.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당연하죠. 지금부터 2년 전, 처음 저희랑 협상을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때 여러분들은 우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연구를 고등학생이 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죠.”

“끙.”

당시를 떠올린 고든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들은 처음에 불과 10만 달러의 연구비를 주장했었으니까. 당시 무시했던 그 갑질이 지금 그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게 현실화되리라고는…….”

“믿음을 가지시죠. 저희는…… 강우 사단입니다.”

강우는 모두의 앞에서 ‘강우 사단’을 언급했다.

아무도 그 명칭을 부정하지 않았다. 강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품었으니까. 현실도 그 자신감을 뒷받침해줬다.

강우 사단이라는 말에 차도도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고든이 그레이엄에게 조언을 구했다. 기술적인 문제의 판단은 연구책임자인 그레이엄이 더 확실하다.

“이번 실험결과로는…… 가능성이 지극히 큽니다. 당시 참여한 모든 실험 관계자가 장담했을 정도니까요.”

“현실화되면 우리의 매출이 어떻게 될까?”

“상상 불가죠. 발전소 하나 짓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그게 전부 매출이니까요……. 당장 미국과 EU 시장만 놓고 봐도…….”

두 사람은 계산을 포기했다. 어차피 향후 매출은 중요하지 않다. 이 기술의 상용화 여부가 문제일 뿐. 그들은 그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강우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갑과 을이 완벽하게 뒤집혔다.

만일 강우가 2차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다른 업체와 손을 잡는다면 그 파장을 감당할 수 없다. 헌팅턴으로서는 어떻게든 최우선으로 잡아야 할 사람이다.

“2차 프로젝트 비용을 얼마로 생각합니까?”

고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협상의 주축은 차도도에서 강우로 넘어갔다.

강우가 웃으며 되물었다.

“헌팅턴이 감당하기 어려우실 텐데요?”

5년 후부터 발생할 어마어마한 매출을 고려하면 헌팅턴도 지금 당장 감당하긴 무리다. 그렇다고 순수 연구비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그 기술을 넘기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허허허!”

허탈한 표정으로 고든이 두 손을 들었다.

양쪽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리니 협상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든이 침을 삼키며 진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강우 사단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길 원합니다. 그렇더라도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요구라면 어쩔 방법이 없겠지요. 말씀해보시지요. 웬만하면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마침내 강우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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