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81화 (281/325)

제281화 프로젝트 협상 (2)

“특허처럼 매출에 몇 %를 주시겠습니까?”

곧바로 고든이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거대한 장치산업에서 단 한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보상을 지급한 전례가 없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그가 핵융합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하려는 사명감 때문이다.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절한 보상 없이 기술을 모두 넘길 수 없다.

지금 실패 위험성을 감수하고 연구 개발에 뛰어드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헌팅턴이 고마워도 기술을 퍼줄 수는 없다.

“그럼 스톡옵션으로 주시죠?”

신생 스타트업에서 또는 기존 업체가 유명 CEO를 모셔 올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경영성과에 비례해서 그 대가를 치른다.

이번에는 고든이 찬성했다. 어쨌든 스톡옵션은 지금 바로 회사에서 돈이 나가지 않으니까. 실패했을 때 큰 부담도 지지 않는다. 반면 성공했을 때의 부담은 미래의 잘 나가는 회사가 져야 한다.

“구체적인 조건이?”

“먼저 현재 헌팅턴 주식 가격을 기준으로 해보죠. 어떻습니까? 앞으로의 주가 상승은 저의 성과라 보고요.”

헌팅턴은 군수업체라 전쟁 여부에 따라 주가가 춤을 춘다. 현재 중동에서, 동유럽에서 간헐적인 전쟁 위험이 고조되고 있으나 평소 대비 특별하게 전쟁 위험이 크진 않다. 그래서 헌팅턴의 주가도 비교적 잠잠한 편이다.

“앞으로 5년 후에 현재의 주가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주시죠. 수량은…….”

고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주가는 보편적으로 우상향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조금 주가가 올라갈 것이다. 이 경우 강우가 얻을 이익은…….

금방 계산을 마친 고든이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그걸로 될까요? 수량이 많긴 한데…… 그 정도는 회사가 충분히 감당 가능한 금액입니다. 엄밀하게는 주주들이 감당하는 거죠.”

“물론 연구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로 헌팅턴에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그건 당연하죠.”

“그와 별도로 저희가 상온핵융합 기술을 개발하려면 미국에 거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으로 오기를 오히려 저희가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담해주셔야 합니다.”

갑자기 미국 거주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체적으로 강우는 일 인당 일 년에 20만 달러를 요구했다. 미국 대학교 학비와 거주비를 최소치로 잡은 금액이다. 유학비로 보면 누가 봐도 합당한, 헌팅턴 측에서는 너무 적어서 고마운 그런 금액이다.

“구체적으로 몇 명이죠?”

“흠, 여기 있는 분들 하고요, 둘이 더 있습니다.”

강우는 하은찬과 유혜림을 끼워 넣었다. 하은찬과 유혜림은 졸지에 고곽천재와 함께 미국 유학 자금을 받게 됐다. 난데없이 옆에 있다가 학자금을 마련하게 된 신새벽 또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작 난감해진 인물은 차도도였다. 그녀는 유학 갈 여건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모두…… 여덟 분이시군요. 그런데 다들 미국으로 유학이 정해진 상황입니까?”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큰 투자를 감행하는 만큼 다른 조건이 완벽하기를 바랍니다. 연구팀이 미국과 한국에 나뉘어 있다면 효율이 떨어지겠지요. 솔직히 전문 연구인력이 아니라 대학생이란 점부터 마이너스 요소 아닙니까?”

헌팅턴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정상적인 연구원이라면 헌팅턴 소속의 개발 직원이거나 적어도 대학 소속의 교수, 연구소 직원, 또는 대학원생이어야 한다.

대학생들은 향후 미래가 불안정하다. 졸업 후 어디로 튈지 모르고 중간에 휴학이나 학교를 그만둘 수 있다.

“지금 논의되는 기간만 최소 5년 이상입니다. 대학은 불과 4년이죠. 그래서 약간은 제약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헌팅턴으로선 당연한 권리라 보이기에 강우는 동의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강우 사단을 헌팅턴 내 조직처럼 관리할 생각입니다. 소속원들은 사원과 같고요. 동의하십니까?”

“출퇴근을 체크하거나 달리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건 당연합니다.”

고든이 백지를 꺼내더니 급히 적었다.

“계약서에 이런 조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 강우 사단 소속 연구원은 향후 5년간 미국 동부를 벗어난 지역에서 거주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에는…….

헌팅턴에서는 1차 프로젝트 때도 별도의 조건을 내걸었었다. 그때는 강우와 차도도에게 한정했는데 이번에는 모두에게 걸렸다.

정상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면 전혀 문제가 없을 조항이긴 하나…….

“꼭 미국 동부여야 합니까? 서부는 안 되고요?”

“본사가 동부에 있으니까요. 그쪽도 대부분 MIT로 진학하면 동부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 어쩌다 보니 신새벽까지 MIT로 진학하게 되었으니.

세부적인 추가 조건이 논의되고 양쪽은 이견 없이 마무리했다.

“최종 서명은 내일 오전에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명확하게 결정해주시지요. 아시다시피 큰돈이 투입되는 계약이어서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특히 5년간 미국에 머무른다는 조항은 쉽게 볼 조건이 아닙니다. 아시죠?”

고든이 신신당부했다.

“당연하죠. 그럼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식사나 하실까요?”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강우가 고든과 그레이엄을 데리고 간 곳은 작은 분식점이었다.

고곽천재가 자주 애용하던 그 즉석떡볶이점이다.

좁은 공간에 무려 여덟 명이나 모였으니 식당 안이 꽉 찬 느낌이다.

“오우! 여기는 어딥니까?”

세계 곳곳을 다녔던 고든과 그레이엄도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여기는 고려 과학고 학생들이 애용하는 명물 식당이죠. 한국 전통 레스토랑이라 할까요? 아니면 서민 레스토랑이라 할까요? 한국에 오셨으니 한국적인 맛을 보셔야지요.”

금방 이해한 고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호텔에서 빵과 스테이크를 먹으니 가끔 이런 토속적인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떡볶이는 손차희와 윤수아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차도도와 신새벽은 웃음을 참느라 고생이었다.

즉석 떡볶이를 주문했다.

내용물을 본 고든이 신기한 듯 살피면서 질문했다.

“이게 뭡니까?”

“쌀로 만든 떡이란 건데요.”

“오우! 라이스 케이크!”

조금 이상한 듯한데 대충 뜻이 통하니 강우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이건 또 뭡니까?”

고든이 한쪽 옆에 놓인 오징어 튀김을 가리켰다.

“프라이드 스퀴드.”

강우의 대답에 조심해서 간장에 튀김을 찍어 먹던 고든이 엄지를 척 올렸다.

“베리 굿!”

그들의 반응을 구경하던 손차희가 가게 아줌마를 불렀다.

“언니! 여기 맵게 해주세요!”

강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매운 것이 부담스러운 그와 달리 손차희는 매운 것을 무척 잘 먹는다. 고든은 어떨지 모르겠다.

갑자기 떡볶이가 더 빨개졌다.

떡볶이가 끓기 시작하자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오우! 배리 굿!”

고든이 연신 침을 삼켰다.

젓가락을 못 쓰는 두 사람에게는 포크를 주고 나머지는 젓가락을 들고 떡볶이를 공략했다.

한입 베어 물던 고든의 표정이 확 찌그러졌다.

“핫! 핫!”

무척 매운 듯 물부터 찾았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먹던 고든과 그레이엄이 몇 번 먹고 나서부터는 속도가 붙었다.

고든이 연신 엄지를 들어 올렸다.

“굿! 굿! 이상하게 맛있어요!”

“저도 그래요.”

강우도 동의했다. 손차희와 윤수아가 떡볶이를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지러지는 차도도와 신새벽에게 눈치를 줬다.

고든과 그레이엄은 오늘 인생의 매운맛을 경험했다. 앞으로는 한국에 와서 떡볶이를 먹을 일이 있으려나.

이만하면 대접을 충분히 잘한 게 아닐까.

* * *

식사 후 헌팅턴 두 사람을 호텔로 데려다주는 일은 강우가 맡았다.

내일 오전을 기약한 후 강우는 차도도의 모닝을 받아 두 사람을 태우고 분식점을 떠났다.

손차희를 비롯한 윤수아와 최대우도 돌아가고 거리엔 차도도와 신새벽만 남았다.

“커피?”

신새벽이 먼저 커피를 권했다.

매운 떡볶이를 먹었으니 차가운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차도도는 신새벽을 가우스 카페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았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할 거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신새벽이었다.

차도도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헌팅턴과의 협상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스톡옵션보다 명확한 현금이 낫다고 봤으나 핵융합 개발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온 헌팅턴의 요구 조건이 문제였다.

“유학 갈 거야?”

“아니, 못 가지.”

“그럼 자칫 계약이 엎어질지도 모르는데?”

차도도는 헌팅턴에서 요구한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명확하게 여덟 명 모두가 미국에 거주하기를 요구했다. 게다가 강우, 차도도, 신새벽은 핵심 인물로 명시되어 있다.

이 연구 개발에서 강우가 핵심일지라도 차도도는 자신 또한 꽤 많은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게다가 대외적으로는 강우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역할을 과대 포장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헌팅턴에서는 그녀가 빠지면 연구 개발에 큰 차질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녀는 이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강우의 일생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계약이 그녀의 불참으로 무너진다면…… 절대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유학 갈 처지가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늪에 빠졌다.

“어쩔 수 없지.”

“생각보다 이기적이네? 강우를 생각하는 마음도 별로였고?”

“그런 이유는 아니야.”

“이유를 어떻게 붙이더라도 결국은 마찬가지야. 강우를 위해 5년도 내어주지 못한다는 거. 물론 5년이 크긴 한데…… 그로 인해 얻는 이익도 절대 작지 않아.”

신새벽이 불만스러운 어조로 줄줄 늘어놓았다.

그 모든 말이 차도도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신새벽의 불만은 중요하지 않다. 크게 실망할 강우의 마음이 문제다.

자신으로 인해 계약이 깨진다면 강우도 강우지만 신새벽을 비롯하여 다른 제자들의 원성도 부담이다. 일 년에 20만 달러는 학비를 고민하지 않고 유학할 수 있는 큰 금액이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이익을 박탈할 권한은 없다.

“고든에게 내가 빠지고도 가능한지 다시 물어봐야지.”

“안 된다고 했을 텐데?”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고 결정을 내릴 생각이다.

가슴이 답답해진 차도도는 아이스 커피를 쭉 들이켰다. 그나마 살 것 같다.

신새벽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만일 네가 안 간다면…… 내가 강우랑 함께 갈 거야.”

같은 MIT니까 새로운 선언은 아닌데 유독 ‘함께’라는 단어에 힘을 주는 신새벽이 의심스러웠다.

“너도 알다시피 나도 강우랑 사이가 나쁘지 않아. 유학 가면 강우와 사귈 거야. 시간은 기니까 그 동네 분위기상 동거도 어렵지 않겠지. 여차하면 결혼도…….”

“신새벽!”

“왜?”

“강우는 아직 어려. 그리고 너랑은 스승과 제자…… 게다가 나이 차도 10년이고.”

“그건 강우가 고민할 부분이야. 네가 아니고.”

갑자기 차도도는 가슴이 콱 막혔다.

그녀는 강우에게 결혼하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어쩌면 강우에게는 스승과 제자, 10년이라는 나이 차가 전혀 장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솔직히 강우에게는 차도도냐 신새벽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위안을 얻고 싶은, 도움이 되는, 안주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지금 이 상황이 신새벽의 도발임은 알겠다. 그런데도 찔린 곳이 너무 아팠다.

그간 신새벽의 행동을 보면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그녀가 함께 유학 가지 않는다면 신새벽은 정말 강우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신새벽이란 변수마저 차도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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