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85화 (285/325)

제285화 전환 (2)

노래가 끝난 차도도의 안색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와인 마실래? 둘이서 축하연 할까?”

술이 약한 그녀이기에 이 제안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음을 안다. 그래서 강우는 손을 저었다.

“아뇨, 오늘은 참을래요. 드시고 싶으세요?”

“아니.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강우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서 앉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니 세상이 편안했다. 그의 상상은 가까운 미래, 그녀와 함께 받을 노벨상으로 옮겨갔다.

“적어도 10년 이내에 쌤은 노벨상을 타게 될 거예요.”

“부부 노벨상?”

“노벨상을 함께 받은 부부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너무 먼 미래란 생각에, 또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차도도였기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부부 노벨상 수상자! 적어도 한 사람은 알죠? 모를 수가 없는 인물.”

“알아. 마리 퀴리.”

마리 퀴리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아닐까. 마리 퀴리는 1903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여자가 다닐 수 있는 대학을 찾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28살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후 남편과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 부부는 우라늄뿐만 아니라 토륨에서도 방사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것이 원자 자체의 성질임을 알아냈다. 그녀는 강한 방사능을 방출하는 역청우라늄석을 분해하여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다. 그녀는 이 원소를 조국의 이름을 따서 폴로늄이라 명명했다.

그녀가 발견한 또 하나의 방사능 원소는 라듐이다. 라듐은 우라늄보다 훨씬 강력한 방사능을 방출하는 물질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공로로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는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8년 후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로써 그녀는 최초의 2회 수상자이자 서로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무이한 사람이 됐다.

“두 번째 부부 공동 수상자도 퀴리 가문에서 나왔죠.”

마리 퀴리의 장녀인 이렌 졸리오 퀴리가 인공 방사선 연구로 프레데릭 졸리오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는…… 아세요?”

이제부터는 상식을 벗어나서 조사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차도도가 고개를 저었다.

“탄수화물 대사과정을 연구했던 칼 코리와 거티 코리. 194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어요.”

“그게 전부니?”

“아뇨, 아직 두 커플이 남았죠. 2014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드바르 모세르와 마이브리트 모세르. 뇌세포를 연구하는 노르웨이 과학자죠.”

“대단한 사람들이네. 그럼 마지막 다섯 번째는 누구니?”

“우리 두 사람.”

차도도가 웃으며 그의 옆구리를 쳤다.

강우는 준비한 꾸러미를 가져와서 풀었다.

예쁘장한 운동화 두 쌍이 나왔다. 오늘 이럴 줄 알고 오면서 선물로 운동화를 준비했다. 둘이서 커플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면 멋있을 것 같다.

“아! 예쁘네.”

“사이즈도 딱 맞을 거예요.”

차도도에게 운동화를 신겼다. 역시 정확히 크기가 맞다.

“고마워.”

“뭘요. 원래는 커플 속옷을 세트로 준비할까 했었는데…….”

강우의 묘한 눈빛을 발견한 차도도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가 됐다.

“이 녀석이!”

“헉!”

강우는 자신에게 소파 쿠션이 날아오자 다급하게 몸을 피했다.

“나가!”

“예?”

“어린 자식이 이상한 것만 배웠어! 얼른 안 나가?”

“으악!”

쿠션이 뭉텅이로 날아오자 강우는 후다닥 현관으로 도망쳤다.

“그, 그게 아니라……. 으악!”

날아오는 쿠션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강우는 문을 열고 도망쳤다.

간신히 밖으로 피한 강우는 실소를 머금으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녀가 갑자기 그를 왜 쫓아냈는지 안다. 다시 들어가도 쫓겨나진 않겠지만 괜히 사고 칠 것 같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앞으로 평생이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이제는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질 일은 없다.

강우는 엘리베이터를 호출했다.

* * *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신새벽의 톡이 날아왔다.

- 신새벽 쌤 : ㅋㅋㅋ.

- 강우 : 뭐예요?

- 신새벽 쌤 : 너 사고 쳤다며?

- 강우 : 네? 뭔 사고?

- 신새벽 쌤 : 차 쌤한테 야한 소리 했다며?

- 강우 : 허억! ㅋㅋㅋ.

도대체 이 두 선생님은 어디까지 비밀을 공유하는지 새삼 의문이다. 방금 일어난 사건을 벌써 알고 있다니.

- 강우 : 에이, 그냥 농담이었는데.

- 신새벽 쌤 : 농담이라니? 넌 진심 같던데.

- 강우 : 그럴 리가요.

- 신새벽 쌤 : 아직 어리다 어려.

- 강우 : ㅠ.ㅠ

- 신새벽 쌤 : 강우야, 이렇게 너를 떠나 보내네. 울음(이모티콘).

신새벽에게 미안한 기분에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그녀도 조금은 들 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차도도가 서명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 기대가 무참히 깨진 날이었는데 그는 조금도 그녀를 헤아려주지 못했다.

다시 휴대폰을 켜고 톡을 넣었다.

- 강우 : 쌤? 미안해요.

- 신새벽 쌤 : 뭐가?

- 강우 : 그냥 이것저것.

- 신새벽 쌤 : 괜찮아. 나중에 도도가 옆에 있다고 나를 막 괄시하면 안 돼.

- 강우 : 알았어요. 굴려드릴게요.

- 신새벽 쌤 : 야! 이 자식아!

- 강우 : 잘 주무세요.

톡으로라도 그녀를 위로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원룸에 도착할 때 즈음 차도도에게서 전화가 왔다.

- 강우야 도착했니?

“쌤? 거의 다 왔어요.”

- 거리를 헤매는 건 아니지?

“에이, 제가 집 나간 청소년인가요?”

- 넌 하는 짓 보면 똑같아.

“어쨌든…… 앞으로는 쿠션 던지지 마세요. 그거 맞으면 얼마나 아픈데.”

- 너도 장난 좀 그만 쳐.

역시 장난으로 알아듣긴 했나 보다.

-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너랑 나랑 사이에 호칭이 문제더라.

“그래요?”

강우는 별생각이 없었다. 사실 그런 문제에 얽매일 여유도 없었고.

- 이젠 우리 호칭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불러주기를 원해?

“글쎄요?”

대답이 없다.

괜히 찔려서 강우는 되물었다.

“쌤은?”

- 쌤이란 말이 익숙하긴 한데 바꾸고 싶어. 난 도도 씨나 아니면 누나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도도 씨? 어쩐지 입에 익지 않았다.

- 난 강우 씨라 불러줄까?

그것도 엄청 이상하다.

“편하신 대로 하세요. 다만 아직 남들 앞에서는 예전처럼 불러요.

- 알았어. 그럼 잘 들어가.

전화를 끊었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떠올랐다.

그와 차도도가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차도도도 학교를 휴직하고 떠날 거니까 별 상관이 없을지라도 학교가 뒤집힐 스캔들이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이 알면 기절하실지도.

강우는 차도도가 곤란에 빠지길 원치 않았다.

고곽천재에게도 언젠가는 알릴 일이지만 당분간은 밝히고 싶지 않다.

함께 유학을 떠나는 문제는 고곽천재가 동행하기에 의심받을 우려는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는 비밀로 유지할 생각이다.

* * *

미래를 결정하자 고곽천재는 지금까지보다 더 진지하게 핵융합 연구를 대했다.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 이 연구에 몸을 담는 일이 기정사실화되었다.

학교 물리 실험실에서 강우는 동료들과 공부를 함께하며 그들이 기초를 쌓게 도와주었다.

원룸에서 나오면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도착해서 연구에 몰두하는 일상은 마치 예전의 대학원생으로 돌아간 기분을 주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때 뜻밖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형?”

- 강우야, 나 잠시 볼 수 있을까?

“어렵지 않죠. 어디세요?”

- 너희 학교 정문 앞.

“그럼 주위를 둘러보면 가우스 카페라고 있거든요? 거기서 기다리실래요?”

한국대 물리학과 대학원생 김상원이 달려왔다.

이번에 마도환이 헌팅턴 앞에서 발표할 때 자료를 준비했던 학생이기도 하고, 예전에 손강우가 박사과정에 있을 때 석사로 있던 후배이기도 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카페에서 커피를 받은 후 테이블에 앉았다.

상대를 살펴보니 얼굴이 반쪽이다. 마음고생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요즘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마도환 교수님 때문에 말이 아니다.”

얼마 전 연구상황 보고에서 난리 났었으니 당연한 건가. 그 뒷이야기를 듣고자 기다리고 있으려니 김상원이 줄줄이 밝혔다.

“헌팅턴에서 연구 불성실로 소송을 걸겠다고 연락이 왔어. 교수님은 아니라는 해명서를 써야 한다고 난리고…… 연구란 게 원래 목표한 대로 다 되지 않고 실패할 수도 있다고 그런 논조로 해명서를 보내긴 했는데…….”

연구란 항상 성공할 수 없다. 때로는 열 개를 연구해서 그중 하나만 성공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능력 밖의 일을, 마치 성공할 것처럼 속여서 연구비를 타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도환이 손강우의 연구 결과를 빼낼 수 있다고 확신해서 벌인 일이든 아니면 처음부터 사기를 칠 생각이었든 간에 본인에게 그 연구를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니 용서할 문제가 아니다.

“아마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날 헌팅턴의 분위기를 보면요.”

“그렇겠지.”

김상원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예전에 차도도 맞선 사건 때 김상원의 도움을 받았으니 강우도 모른 척할 생각은 없었다.

“형, 지금 박사 몇 년 차죠?”

“5년 차.”

“졸업하셔야겠네요.”

“근데 그게 쉽지 않아. 특히 이번에 프로젝트가 개판 나면서.”

헌팅턴 프로젝트의 여파가 엉뚱한 사람에게 튀었다. 프로젝트가 망가졌으니 학위를 받기 쉽지 않다. 순순히 학위를 내줄 마도환도 아니고.

“논문은요?”

“그게 쓰고 있었는데…….”

헌팅턴 프로젝트 내용은 아니어도 유사 주제로 논문을 연구하고 있었다고 했다. 다만 벽에 막혀서 진전이 없던 차에 헌팅턴과 엮이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이대로는 졸업이 어려워. 논문을 통과시켜줄 분위기도 아니고. 교수님에게 조언을 듣기도 힘든 문제라…….”

김상원이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다. 이미 비슷한 주제로 외국 저널에 수 편의 논문을 실었고 헌팅턴에서 상당한 신뢰를 얻은 강우라면 논문에 도움을 주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강우도 김상원을 나 몰라라 할 만큼 무정하지 않다. 손강우 시절부터 이래저래 엮인 후배니까.

“제가 도와드릴까요?”

“가능하겠니? 너 곧 유학 간다며?”

김상원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가기 전에 틈틈이 도와드리죠. 가서도 이메일이 있고요.”

“너라면 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야.”

강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다.

김상원이 미리 준비한 자료를 꺼내어 열심히 설명했다.

논문을 도와주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이 일이 자칫 마도환을 구해주는 과정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할 뿐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김상원은 박사과정 5년의 허송세월과 함께 자칫 인생이 망가질 위험이 있어 강우는 구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손강우 시절부터 따지면 그 인연이 적지 않은 사람이고 그가 마도환을 건드리면서 발생한 문제이기에 그가 도움을 줘야 한다.

“언제 졸업하실 생각이세요?”

“원래는 올해 말이었는데…… 불가능해졌어.”

“그럼 내년 여름에 졸업하세요.”

“그게 될까?”

“충분히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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