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96화 (296/325)

제296화 마지막 수업 (1)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강우와 차도도가 출국하기 바로 전날이다.

개학 첫날을 맞아 강우와 차도도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할 일이 너무 많다.

첫날 첫 시간은 수업이 아닌 담임 선생님의 훈화 시간이었다.

방학 동안 보지 못했던 3반 학생들을 물리강의실에 모아놓고 차도도는 마지막 수업에 들어갔다.

“쌤 오셨다!”

차도도가 들어서자 왁자지껄 떠들던 학생들이 잠잠해졌다. 차도도와 함께 들어간 강우는 강의실 한쪽에서 대기했다.

느닷없는 강우의 출현에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파이데이 때 그를 보았으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게다가 차도도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표정도 평소와 다르지 않아 이들은 여전히 차도도의 유학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차도도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강의실로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어? 너는 왜 왔어?”

강우는 갑자기 들어온 하은찬에게 놀라서 물었다. 지금이 수업시간이니까 하은찬이 이렇게 돌아다닐 수 없을 텐데.

“마지막으로 형이랑 차도도 쌤을 봐야죠.”

기특한 녀석이다.

그런데 하은찬을 따라 들어온 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눈이 익었다.

그 사람이 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승범입니다. 중앙 사이언스 기자죠.”

기억이 났다. 오래전에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고 공항에 입국했을 때 그를 취재하려던 사람이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기자님이 갑자기 왜?”

“뉴스가 있으면 움직여야죠.”

“이게 뉴스거리가 되나요?”

“일간지 뉴스는 어려워도 과학 잡지 뉴스는 됩니다.”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오늘은 이런 일로 말다툼할 여유가 없으니. 그와 차도도가 정든 학교를 떠나는 날이기에 그 감정에 충실해지고 싶었다.

학생들이 오랜만에 만난 담임 선생님을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차도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결국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쌤?”

놀란 학생들이 차도도를 불렀다. 그제야 그들은 불청객처럼 따라 들어온 강우와 다른 두 사람을 주시하며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차도도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깜박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네? 쌤?”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웅성대던 학생들이 숙연해졌다.

“전 오늘이 여기 고려 과학고에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에요. 내일 이 나라를 떠나 앞으로 미국 MIT 대학교에서 석박사과정을 밟기로 했답니다. 여러분과 학년말까지 계속 함께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변경하게 되어서 면목 없어요. 오늘부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차도도의 휴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 일부 학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삼켰다.

강우는 학생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차도도는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미모로 이름을 날렸고 프로젝트와 R&E로도 일 순위였다. 수업도 잘해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렇기에 반 학생들에게 차도도는 자랑 그 자체였다. 그런 선생님이 갑자기 사라진다. 어쩌면 학생들은 버림받았다는 기분이 들지도 몰랐다.

“쌤…….”

그렇다고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MIT 대학원생 과정은 연구자로서 그녀에게 축복일 테니까. 그녀의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화를 내기엔 앞으로 남은 그녀의 미래가 훨씬 더 찬란하기에. 그래서 학생들은 축하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모호한 심리상태에 빠졌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지난 6개월이 전 너무나 즐거웠어요. 여러분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섰답니다. 앞으로 만날 수 없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니까……. 우리는 훗날 다시 만날 만날 거예요. 제가 다시 국내로 돌아왔을 때 여러분들은 사회에 나가 있겠죠. 그때 우리 다시 만나요. 전 어디에 있든지 항상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차도도의 음성은 떨리고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항상 학생들에게 진심이었기에 그 슬픔을 강우도 이해했다.

한 학생이 물었다.

“쌤! 우리도 MIT에 가면 쌤을 만날 수 있어요?”

“물론이에요.”

이들이 바다를 건너오려면 최소한 3년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별일 없다면 차도도는 MIT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도 오늘부터 MIT를 목표로 할래요.”

많은 학생이 결의를 다졌다.

차도도는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미국에 있더라도 여러분과 항상 통화할 수 있어요. 힘든 일 있으면 연락을 주고받는 그런 선생님으로 남고 싶어요. 여러분은 저의 마지막 제자라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모두 사랑합니다.”

차도도의 음성이 점차 잠겨 들었다.

학생들의 울음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마치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앞에 둔 사람들 같았다.

이어서 학생 이름을 한 사람씩 호명하면서 차도도는 그 학생과 눈을 맞췄다.

비록 짧은 반년의 시간일 뿐인데도 차도도가 이 학생들에게 남긴 영향은 대단히 컸다.

“인생은 만남에서 시작해서 이별로 끝난다고 하죠. 오늘 헤어져도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고 저는 믿어요. 우리가 과학기술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고요. 여러분의 앞날에 축복을 기원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끝낸 차도도가 강우를 소개했다.

“여러분의 선배 한 사람을 소개할게요. 이번에 저와 함께 유학을 떠나게 된 강우라는 학생입니다.”

“아! 전설의 고곽천재 강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기에 학생들의 시선이 강우에게 모였다.

강우는 지난 졸업생 중에 가장 특이한 학생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올림피아드 최우수상을 받은 천재라고 했어!”

“수학 과학 내신에서 항상 만점이었대.”

학생들의 환호성이 일었다. 앞날을 개척하는 유명한 선배는 그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학생들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강우는 단상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봤다. 이런 시간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

“3반 학생 여러분, 반가워요. 저도 3반이었거든요. 저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계속 3반이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바로 제 담임 선생님이 차도도 선생님이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마 이 학교 졸업생 가운데 가장 차도도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학생이 바로 저일 거예요. 차도도 선생님 덕분에 현재의 제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저는 차도도 선생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강우는 차도도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학생들이 손뼉으로 감동을 더 했다.

이어서 강우는 자신의 외국 유학 과정을 설명했다. 학생들의 눈빛이 또렷또렷해졌다.

헌팅턴 프로젝트를 통해 차도도와 연구에 매진했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제연구와 R&E에서 큰 실적을 낸 산증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제가 이 학교를 떠나면서 여러분에게 꼭 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앉아 있었기에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유학을 떠나고 또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앞서간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의 행보가 앞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더 훌륭한 미래를 맞이할 거예요. 또 여러분 후배까지도요.”

상기한 표정으로 학생들이 강우를 쳐다봤다.

“누가 저에게 제 꿈이 뭐냐고 물으면 전 항상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하고 싶다. 아마 앞으로 10년 이내에 여러분들은 긍정적인 소식을 접하게 될 겁니다. 저로 인해 인류의 문명이 바뀐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엄청난 포부였다. 학생들은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둘째,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 부문 노벨상을 타겠습니다. 그것도 저 혼자가 아닌 부부 노벨상 말입니다.”

그 지점에서 강우는 잠시 말을 끊고 차도도와 눈을 맞췄다. 놀란 그녀가 후다닥 시선을 돌렸다.

“딱 10년만 기다려보세요. 제 꿈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여러분도 체감하게 될 겁니다. 그 길을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강우는 평소 자신의 신념을 말했다.

“이런 말이 있어요. 꿈을 좇는 사람은 아름답다. 우리는 꿈이 크고 아름답게 빛난다고 생각하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꿈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좇는 사람이 빛나거든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저도, 여러분도 모두 빛이 나고 있어요.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빛이 날 겁니다.”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짧은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 자리를 만들어준 차도도에게 감사했다.

비록 이 자리에 있는 후배는 몇 되지 않아도 그가 오늘 강조한 말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후배에게 그의 뜻을 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할 말을 마친 강우는 강의실을 먼저 떠났다. 오늘 그는 원룸을 정리해야 하고 차도도는 학교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

강우가 나가자 이번에는 하은찬이 앞으로 나왔다.

“3학년 하은찬입니다.”

하은찬은 후배들에게 유명하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1학년 때 은메달, 2학년, 3학년 때 금메달을 딴 최고 천재다. 그런 유명인이 입을 열자 다시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제가 처음 강우 형을 만난 때는 고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인 한국대 겨울학교에서였습니다. 그때 만난 강우 형은 뭐랄까 조금 덜떨어진 괴짜였죠. 그런데 그 형을 따라갔던 날 저녁에 저는 어떤 동네 누나를 만나게 됐습니다. 바로 차도도 선생님과 신새벽 선생님인데요, 전 정말 두 분이 예쁜 동네 누나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소개해 달라고 졸랐는데…… 오늘, 그날 만났던 그 세 사람이 모두 MIT로 유학을 가시네요.”

학생들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 이후로 저의 학교생활에서 두 선생님과 강우 형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은 저를 가리켜 천재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 세 분이 저를 키워주셔서예요.”

하은찬이 차도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서 잡다한 인연을 나열하던 하은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고려 과학고 3대 천재를 아시나요? 역사가 깊은 우리 학교에는 전설적인 천재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을 꼽아서 3대 천재라고 하죠.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 하나, 금메달 둘을 땄던 선배도 있고요. 올림피아드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내신에서도 천재성을 드러낸 선배도 있고요. 물론 그 세 천재는 해마다 바뀝니다. 최근에는 저까지 그 세 사람에 넣더군요. 우스운 일이죠.”

하은찬의 실적이라면 전설적인 천재에 충분히 들어갈 만했다.

“선배님은 천재 맞아요.”

한 학생이 하은찬을 응원했다.

“알아요. 그런데 아무리 여러분들이 저를 천재라고 평가하더라도 실제로 고려 과학고에는 오직 한 명의 천재밖에 없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하은찬은 노벨상 수상자인 유진 위그너가 ‘헝가리에서 천재는 오직 존 폰 노이만 한 사람뿐’이라고 했던 일화를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방금 강우가 떠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려 과학고에서 천재는, 아니 대한민국에서 천재는 오직 강우 선배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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