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귀국 (1)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수많은 환영인파가 모여 있었다.
평소와 달리 북적이는 인파에 순수 여행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는 바람에 입국장 앞은 더욱 붐볐다.
지나가던 사람이 피켓을 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엄청난 사람이 오나 보죠?”
“네,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어요.”
“흠, 연예인인가 봐요?”
그 사람이 피켓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강우? 차도도? 누구예요? 연예인인가요?”
“아뇨. 과학자요.”
요란한 피켓을 두루 살펴보던 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입국장 앞에는 급조해서 만든 피켓에서 시작하여 현수막에 이르기까지 여러 환영 문구가 난무했다.
흡사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고 돌아오는 선수를 맞이하는 분위기 같았다.
- 대한민국의 자랑!
- 한국 최초 과학 노벨상 만세!
- 대한민국의 자부심!
- 인류를 구원한 천재!
- 고려 과학고 만세!
온갖 수사가 빼곡하게 적힌 피켓이 큰 파도를 이루듯 휘날렸다.
입구에는 한 무리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전광판을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중에 중앙 사이언스 기자 김승범도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편집장으로 승진한 그는 취재하러 다닐 짬밥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직접 발로 뛰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강우와 차도도였으니까.
그는 오래전 강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올림피아드에 출전하고 귀국하던 날, 바로 이곳에서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단지 어린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 천재라고 소문난 학생이긴 했으나 그 소문의 절반은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은 과장해서 조금은 절실하게 그는 강우를 띄웠었다.
그 이유는 과학계에도 일반인의 이목을 끌만한 스타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과학의 발전이 빨라지니까. 과학이 발전해야 이 나라가 부흥하니까. 그래서 의도적으로 강우를 소개했다.
7년 전, 강우가 출국하던 날에도 기사를 다뤘다.
그가 직접 기사를 썼으나 실제로 실현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때 강우는 두 가지 목표를 말했었고 그는 호기심을 끌기 위해 그 두 가지 목표를 공개했다.
“그런데 그걸 해내다니!”
기적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낭보가 들려오면서 모두가 열광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과학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다!
김승범은 강우의 미래를 예상한 자신의 안목을 칭찬했다. 그리고 당분간 예전처럼 발로 뛰는 기자가 되어 강우를 쫓아다니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옆에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보였다.
“학생? 여기에는 왜 나왔어요?”
김승범은 취재차 마이크 녹음기를 들이대며 여드름이 많이 난 학생에게 물었다.
“노벨상 탄 과학자 보러 왔어요.”
“어느 학교죠?”
“고려 과학고요!”
“아!”
김승범은 지금 주변에 진을 친 십여 명이 고려 과학고 학생임을 확인했다.
그림이 된다. 고려 과학고라면 강우의 모교이고 차도도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교다.
“강우 박사님이 고려 과학고 출신이죠?”
“네! 우리 학교의 전설적인 천재죠!”
여드름이 잔뜩 난 남학생이 흥분해서 대답했다.
“옛날에도 고려 과학고 3대 천재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나요?”
“당연히 있어요!”
“누구죠?”
“강우! 차도도! 최대우!”
그 세 사람은 김승범 기자가 잘 아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차도도는 고려 과학고 졸업생이 아닌데?
“차도도 박사님이 거기 왜 들어가요?”
“우리 학교에서 4년 반 근무하셨데요. 전국에서 오직 고려 과학고에서만 학생을 가르쳤데요. 그리고 천재를 길러냈죠. 강우 박사님부터. 그래서 차도도 박사님도 레전드예요.”
어떻게든 유명인을 한 사람이라도 더 학교 출신으로 넣으려는 노력이 가상해서 김승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군요. 고려 과학고에는 정말 천재가 많네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여드름 남학생이 피식 웃었다.
“기자님, 그거 아세요?”
“뭔데요?”
“고려 과학고에서 진정한 천재는 한 사람입니다. 오직 강우 박사님뿐입니다.”
선언하듯 외치는 남학생의 표정은 숙연했다.
김승범은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봤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거 누가 한 말이죠?”
“저희 선배님인데…… 하은찬 선배님요.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 1개, 금메달 2개를 딴 분이시거든요? 지금은 MIT에서 박사과정 밟으시고요. 그분이 학창 시절에 그렇게 말했데요. 이 세상에 진짜 천재는 오직 강우 선배님뿐이라고요. 저도 그렇게 믿어요!”
김승범은 감격에 사로잡혔다.
그 기사를 아직도 학생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울컥하는 감정을 가까스로 삼키고 그는 학생들을 응원했다.
“학생들도 자랑스러운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갈 거죠?”
“당연하죠!”
그 말만으로도 이 나라의 과학이 한 단계 올라서리라고 김승범은 생각했다.
“와아아!”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김승범은 급히 앞으로 뛰어갔다.
통제하는 공항 직원과 청경들이 급히 장벽을 만들고 그 사이로 막 입국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환영인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몇 사람 뒤에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강우와 차도도였다.
이제는 고등학생 티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과학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청년, 강우와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며 나이를 잊은 듯한 여인, 차도도가 나란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강우의 품에는 두세 살가량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안겨 있었다.
“강우! 강우!”
“차도도! 차도도!”
환영나온 사람들이 이름을 연호했다.
열성적인 환영에 놀란 듯 강우와 차도도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기자들이 몰려들며 일대가 난장판이 됐다.
“강우 박사님! 귀국 소감 한 말씀만!”
“노벨 물리학상! 언제 아셨습니까?”
“상온핵융합 최고 권위자이신데 전망이 어떻습니까?”
“영구 귀국하신 겁니까?”
“앞으로 어디에서 근무하십니까?”
질문이 무차별로 쏟아졌다.
난감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펴보던 강우가 한 손으로 아이를 안은 채 다른 손을 높이 들어 환영에 답했다.
“와아아!”
함성이 멎자 강우가 말했다.
“공항 로비를 빌려 특별 기자회견을 열겠습니다. 기자분들께서는 바로 로비로 가시면 됩니다.”
대충 기자들을 정리한 강우가 고려 과학고라는 피켓을 든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고려 과학고?”
“예! 선배님! 우리는 고려 과학고 학생들이에요!”
십여 명의 학생들이 합창하며 대답했다.
강우는 웃음을 머금고 학생들에게 인사했다.
“후배님들! 반가워요. 환영해줘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사진 같이 찍어요!”
학생들이 강우를 향해 손짓했다.
순식간에 자리를 잡고 십여 명의 고려 과학고 학생들과 함께 강우와 차도도는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기자들의 플래시도 함께 터졌다.
* * *
급조한 기자회견장에서 강우는 모여든 기자들을 확인했다.
지금 회견장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백여 명을 훌쩍 넘었다. 그 절반은 기자이고 나머지 절반은 정체가 모호했다.
공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 환영인파는 근래에 드문 수준이라 했다.
‘성공했어.’
강우는 뿌듯한 기분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모인 것은 그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이름값을 높여서 향후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이 나라 국민이 그만큼 과학에 관심이 생겼다는 뜻이다.
칠 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강우는 기자들에게 인사했다.
“짧게 질문을 받겠습니다.”
“고려일보 박범석 기자입니다. 노벨상 수상 뒷이야기와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남들에게는 노벨상이 특별한 일일지라도 적어도 강우에게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노벨상 수상을 자신하고 있었으니까.
“저와 여기 차도도 박사님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제 이론을 바탕으로 상온핵융합이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핵융합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상온핵융합에서 뮤온 입자의 활용 원리와 응용’이라는 논문을 저와 차도도 박사님은 요셉 교수님과 함께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었고 이 논문으로 올해 저자 세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요?”
“노벨상은 논문을 낸 후 그 이론이 증명되고 과학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때 수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논문을 낸 후 수십 년이 지나서 받을 경우도 있지요. 대학생 때라고 하면 무척 빠르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20대에 남긴 훌륭한 업적으로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많았습니다.”
“진정한 천재네요!”
기자들이 웅성댔다.
강우는 노벨상을 타기까지의 여정을 짧게 밝혔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 MIT에 유학을 떠났고 그때부터 연구에 파묻혔다.
MIT에 입학한 후 핵융합계의 거장인 물리학과의 프리드 요셉, 화학과의 브라이언 윈터, 원자핵공학과의 미치 해리스. 이 세 사람과 함께 상온핵융합의 상용화 연구를 시작했다.
2학년 때 완성한 논문을 보듯 대부분 아이디어는 강우와 차도도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 시절에 이미 두 사람은 머릿속에서 상온핵융합의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 논문은 핵융합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상온핵융합의 난관을 시원하게 뚫었다.
논문 발표 직후부터 연구비를 대었던 헌팅턴사와 함께 상용화 작업에 들어갔다.
실험실 수준의 핵융합반응 성공을 그는 3학년 때 확인했고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하던 해에 소규모의 상업적인 핵융합 발전소를 시험 가동했다.
그리고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올해 미국에서 무려 10기에 달하는 대규모 핵융합 발전소가 완공되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했다. 향후 5년 이내에 미국에서는 핵융합 발전이 전력 생산을 대부분 담당하게 되고 10년이 지나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핵융합 발전이 자리 잡게 될 거라는 전망이 있었다.
이로써 인류는 에너지난을 벗어나게 됐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핵분열 원자력 발전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인류의 문명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것입니다. 에너지는 앞으로 발전의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사람이 전기료를 걱정하지 않고 사용하는 그 날이 눈앞에 있습니다.”
강우의 외침은 사람들의 가슴을 흥분시켰다. 지금 이 자리의 모두가 다가올 새 시대를 꿈꿨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리도 곧 시작해야죠. 조만간 정부 차원에서 결단이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에너지는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이니까요. 앞으로 핵융합을 활용하지 않는 나라는 산업 경쟁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빠른 일부 기자들은 그 와중에 관련 주식을 사들였다.
다시 앞줄에 있던 기자가 손을 들었다.
“대한일보 손일영 기자입니다. 노벨상, 그것도 부부 노벨상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일설에는 고등학교 사제지간이셨다고…….”
강우는 차도도를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 아내는 제 고등학교 은사이셨습니다. 저를 과학자로 이끌어준 진정한 선생님이셨지요.”
차도도은 안색을 붉혔고 강우는 그들의 연애사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들의 만남은 스승과 제자라는 부분만 빼면 무미건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