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화 귀국 (3)
현재 강우의 신분은 사실상 없다. 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과학자가 전부다. 굳이 덧붙이자면 헌팅턴사의 사외 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와 헌팅턴사는 여러모로 엮여있으니까.
그는 사실상 헌팅턴의 핵융합 기술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2차 프로젝트를 계약한 후부터 헌팅턴의 주가는 꾸준히 올랐고 5년 전부터는 주가 상승 폭이 더욱 커졌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시가총액이 거의 1000배 이상 불어났다.
강우는 스톡옵션의 일부를 행사하여 현금화하고 일부는 주식으로 갖고 있다. 아직 행사하지 않은 옵션도 절반이다.
강우 덕분에 헌팅턴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재편했으니 그의 스톡옵션에 반대하는 주주는 없었다. 오히려 강우가 헌팅턴에서 손을 떼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귀국 후 강우와 차도도의 첫 행보는 한국대였다.
강우는 소속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차도도는 한국대 물리교육과 교수로 부임했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과정까지 마친 그녀의 임용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한국대도 무려 노벨상 수상자를 교수로 초빙하여 체면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도도가 교수로 첫인사를 가던 날, 강우도 함께 한국대에 갔다.
“차도도 교수님! 반갑습니다.”
학과 교수들이 모여 차도도를 축하했다.
차도도는 안정적으로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이 자리를 충분히 만족했다.
강우는 옆에서 그녀와 함께 인사했다.
“학생들이 차 교수님이 온다고 무척 좋아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배우게 되어 영광이라 여기는 학생들이 많았다. 더구나 그 교수가 연예인 뺨치는 미모이니 학생들의 기쁨은 더 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차도도의 교수 임용은 무난했다.
문득 강우는 오래전 마도환의 장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삼켰다.
그때 마도환은 학위를 받은 후 국내에 돌아와도 자리 잡기 힘들 거라고 엄포를 놓았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그 누구도 차도도를 막을 자는 없었다.
물리교육과에는 딱히 차도도를 비토하는 세력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대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임용하려고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었고.
그의 상념을 어떤 교수가 깼다.
“강우 박사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글쎄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한국대 물리학과나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고려 중입니다. 연구에 몰두하려면 카이스트가 조건이 더 낫긴 한데…….”
“무슨 말씀을! 카이스트로 가시면 이산가족이 되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네요.”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잡담을 나눴다.
그러잖아도 오늘 한국대 물리학과를 들르기로 했다. 마도환을 제외한다면 딱히 그를 반대할 교수는 없다. 예전 손강우 시절부터 깊은 관계를 맺었던 한국대이고, 그때 배웠던 교수들이 절반은 남아있어서 물리학과는 그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 한국대에 당당하게 입성하니 가슴이 벅차다.
“한국대로 오십시오.”
“자리가 있어야죠.”
“없는 자리도 만들어 드릴 겁니다. 인재를 절대 다른 학교에 빼앗길 수 없습니다. 다른 학교로 부임하시면 동문회에서 난리가 날 겁니다. 하하!”
덕담이 오갔다.
인사 다니며 연구실을 안내받느라 바쁜 차도도를 남겨 놓고 강우는 물리학과로 이동했다.
마도환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미리 방문을 통보했던 터라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회의실에는 모든 교수가 모여 있었다.
심지어 건물 앞에는 커다란 현수막까지.
- 강우 박사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강우는 현수막을 보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네.”
예전에 대학원 시절에 워낙 고생했던 곳이기에 그때를 떠올릴수록 왠지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갔다.
교수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십여 명의 교수들이 우르르 일어서서 그를 환영했다.
“강 박사! 어서 오시게.”
정년 퇴임이 2년 남은, 물리학과의 원로교수, 나윤우가 그의 손을 잡으며 반겼다.
물론 나윤우는 손강우 시절 수업을 들었던 은사다. 그때를 기억하는 강우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노벨상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강우는 나윤우의 환대를 받으며 다른 교수들과도 악수를 했다.
“하하! 강 박사? 그때는 강우 군이었는데. 그때랑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 아직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겠어.”
김석천 교수가 반갑게 맞았다.
예전에 MIT에서 올림피아드에 참가했을 때 물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단장이 김석천 교수였다. 그때 강우가 얼떨결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기에 구면이다. 물론 손강우 시절에도 알던 교수다.
마도환을 제외하면 손강우가 아닌, 강우가 안면 있는 유일한 교수이기에 누구보다도 반가웠다.
“교수님도 여전하십니다.”
“난 그때 비하면 팍 늙었지. 그때 올림피아드에서 강우 군 아니었으면 우리나라가 1등을 하지 못했을 거야. 급조한 국가대표가 더 실력이 좋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난 그때부터 강우 군이 유명 인사가 될 줄 알았다고.”
김석천이 옛 인연을 늘어놓았다.
한동안 잡담을 나누던 교수들이 회의실에 자리 잡은 후 가장 연장자인 나윤우가 안건을 꺼냈다.
“강 박사,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초빙에 응할 생각인가?”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쭉 둘러봤다. 대부분 그를 향해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숙적인 마도환을 찾았다.
꽤 떨어진 위치에서 마도환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분이 나쁜 듯 안색이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현상이다.
강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제 세부 전공 분야는 핵물리학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상온핵융합이고요. 제가 알기로는, 이미 한국대 물리학과에는 같은 세부 전공이신 교수님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문제없겠습니까?”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마도환에게 쏠렸다.
시선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마도환이 의견을 말했다.
“우수한 교수를 초빙하는 것은 학교, 학과를 위해서 바람직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강우 박사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다만 걸리는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먼저 강우 박사의 나이가…… 웬만한 대학원생보다 어립니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온 학부생 고참보다도 어립니다. 아무리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를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 사실이 오히려 강 박사의 우수함을 증명하지 않을까요?”
“20대 박사도 드문데…… 20대치고도 너무 어려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불과 7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왔다. 곧바로 한국대 교수로 임용된다면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사건이다.
강우는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솔직히 나이 어린 학생이 같이 있으면 우리들의 권위도 실추되는 것 아닙니까?”
마도환이 직설적으로 싫은 티를 팍팍 냈다.
대부분 교수는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마도환이 학계에서 나름대로 영향력 있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연구비를 따오는 일에 일가견이 있었고 학과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정치권과 연이 닿은 사람이기에 무시하기 힘들었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별 볼 일 없다. 마도환은 한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된 국내파인데다 지금은 논문 발표 건수마저 뚝 떨어져 사실상 연구를 거의 못 하는 자였으니까.
“그래서 마 교수님은 반대하시는 겁니까?”
“반대라기보다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겁니다. 게다가 강우 박사는 아직 군 미필자 아닙니까? 임용 조건에 보시면 군필이라고 당당히 못 박혀 있습니다.”
한국의 남자로서 군대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아 그 부분은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습니다. 오늘 여론 조사했더니…… 물론 인터넷의 우스개로 돌아다니는 겁니다만.”
나윤우가 휴대폰을 꺼내 모두에게 보였다.
“가상으로 강우 박사의 군대 문제 찬반 토론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결과가…….”
- 노벨상 수상 강우 박사의 군 면제에 찬성하면 공감, 안 하면 비공감 눌러봅시다!
- 공감 : 43265, 비공감 : 1
- 비공감 1 뭐냐? 본인이냐?
- 솔직히 노벨상 수상자가 군에 가면 국가 낭비 아니냐?
- 나라면 다른 나라 이민 가버린다. 받아줄 나라 전 세계에 널렸다.
- 군대 때문에 핵융합 개발이 늦어지면 누구 손해냐? 전 인류가 손해다!
-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거다!
- 세계 최고 고급 인력이 군에서 땅 파는 하급 인력이 되는 거지.
- 대한민국 군대 다녀오면 머리가 돌이 된다!!
휴대폰 화면을 본 교수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여론은 압도적으로 군 면제가 우위입니다. 솔직히 강우 박사 한 사람이 이번에 올린 국위 선양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압도적으로 능가합니다. 과학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으니까요. 실제로 강우 박사가 앞으로 국가에 이바지할 일 또한 그 누구보다도 막중하다고 봅니다.”
“강우 박사가 군대에 가면 과학기술인들이 모두 들고일어날 겁니다.”
강우를 옹호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굳이 강우가 개입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처리될 듯 보였다. 그럴수록 마도환의 안색이 썩어들어갔다.
나윤우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어쨌든 우리 학과에서는 절대로 노벨상 수상자를 놓칠 수 없습니다. 지금 카이스트가 호시탐탐 강 박사를 노리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강 박사를 모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학교로 가시면 우리 학과의 위상이 폭락합니다!”
일부 교수가 결사적으로 주장했다.
강우는 놀란 표정으로 농담 삼아 물었다.
“혹시 제 팬이십니까?”
“당연하죠. 전 강우 박사를 몇 년 전부터 응원했습니다!”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합창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학과장께선 교수초빙 공고를 내세요. 분야는 핵물리학. 다른 분이 응모하더라도 실적에서 강우 박사가 단연 압도적이니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모두가 강우의 교수 임용을 기정사실로 생각했다.
사실상 강우를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하는 회의가 끝났다.
강우는 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그를 동료로 맞아준 교수들에게 전하는 당연한 예의다.
“차도도 박사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윤우가 물었다.
“물리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오! 잘되셨네요. 부부가 같이 한국대로 출퇴근! 좋습니다.”
나윤우를 비롯한 교수들이 자기 일처럼 반겼다.
차도도가 한국대에 묶이면 강우도 자연스럽게 한국대로 올 가능성이 커지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가장 마지막에 강우는 마도환과 만났다.
마도환이 그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봤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그간 편히 지내셨지요?”
“…….”
마도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우는 손을 내밀어 마도환과 악수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마 교수, 내가 출국하던 날, 그 협박 잘 받았어. 덕분에 내가 절치부심 더 연구에 집중했거든. 내 노벨상이 당신 덕분일지도 몰라. 이제 곧 당신 앞에 지옥문이 열릴 거야. 기대해도 좋아.”
마도환이 얼어붙었다.
피식 웃으며 강우는 마도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같은 핵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끼리 잘해봅시다. 많이 도와주세요.”
강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손강우의 목숨을 빼앗았으니 마도환도 목숨을 내놓거나 아니면 평생 속죄하면서 살아가야 할 거다.
무게추는 확실하게 그에게 기울었다. 불과 7년 만에 모든 것이 역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