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4화 노벨상 수상자의 하루 (1)
청와대 입구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청와대에는 항상 상주하는 기자가 있는 법이지만 오늘은 외부에서도 유달리 많이 모였다. 바로 최근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강우, 차도도 부부가 대통령을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유독 그들의 관심을 끈 것은 강우와 차도도의 가족이었다. 두 사람의 배경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강우는 시골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고 했고 차도도는 서울의 중산층 가정이라는 정도로 알려졌다.
사실상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기에 기자들의 관심은 무척 높았다.
청와대 앞 광장에 기자들이 진을 치기도 잠시, 멀리서 소형차 모닝 한 대와 국산 최고급 세단이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온다!”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앞에서 달려오는 모닝은 겉은 멀쩡하지만 대충 봐도 10년은 되어 보이는 구형 모델이다. 이제는 생산하지도 않은 절판된 구식 자동차. 당연히 기자들은 모닝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아마도 청와대 청소부나 말단 직원 차가 분명하다고 여겼다.
반면 국산 최고급 세단은 노벨상을 받은 두 부부와 격이 맞았다. 그렇게 판단한 기자들이 순식간에 세단을 둘러쌌다.
뒤따라오던 고급 세단이 모닝 뒤쪽에 멈추자 정문을 지키던 경호원이 급히 모닝에 다가갔다.
“차 빼세요! 차! 지금 기자들 몰린 거 안 보입니까?”
무슨 일인지 모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뒤쪽의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두 중년 부부와 삼십 대 후반의 청년이다.
강우와 차도도를 기다렸던 기자들은 곧바로 실망했다.
“에이, 아니네.”
용케 어떤 기자가 정체를 알아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 차성그룹 총수? 차준범?”
“뭐? 차성그룹?”
“차성그룹이 갑자기 청와대에 왜?”
그룹 총수와 대통령의 만남은 구설에 오르기 쉬워서 완전한 공식적인 만남이 아니라면 비밀리에 진행된다. 그런데 차성그룹 총수가 보란 듯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차준범 회장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다급하게 기자가 물었다.
차준범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초청받았으니 왔지요.”
“네?”
기자들은 세 사람의 면면을 확인했다. 차성그룹 회장인 차준범과 그의 아내, 그리고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차성중공업 본부장 차도식. 차도식은 차준범의 장남이다.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답을 구했다. 무슨 정보를 알고 있냐는 다급한 눈빛이다. 당연히 기자들은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때 바로 앞에서 정문 경호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차 빼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중요한 귀빈이 오십니다!”
동시에 모닝의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어디로 뺄까요?”
기자들의 시선이 모닝 운전사에게 쏠렸다.
“어? 강 박사다!”
그제야 모닝 주인이 강우임을 알아챈 기자들이 이번에는 모닝 주위를 우르르 둘러쌌다.
모닝에서 네 사람이 내렸다.
강우와 차도도, 두 사람의 어린 딸인 강소희, 마지막으로 강우의 어머니였다.
“이게 어떻게 된…….”
모닝에서 강우가 내릴 줄 몰랐던 기자들은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벨상 수상자와 소형차 모닝은 격이 맞지 않았다.
정작 그들을 더 당황하게 만든 사건은 다음에 벌어졌다.
차준범이 차도도에게 다가가서 한숨을 쉬며 나무랐다.
“그러길래 내가 차 좀 바꾸라고 하지 않았니?”
“예전에 타던 거예요. 새 차 주문했는데 출고가 지연되어서요. 어서 가요, 아빠.”
“아빠?”
기자들이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 터졌는지 아무도 대응하지 못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차준범과 강우 어머니가 앞서고 그 뒤를 강우와 차도도가 따라가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기자 한 명이 강우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차준범 회장과 어떤 관계입니까?”
“제 아내 차도도 박사가 차성그룹 딸입니다. 둘째죠.”
“예?”
그 순간 발 빠른 기자들은 차성그룹의 가계도를 검색했다. 물론 차도도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다만 차성그룹 딸이 지금까지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었고 차성그룹에서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었기에 사실상 잊힌 이름이었다.
누구도 차성그룹의 차도도와 노벨상을 탄 차도도가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는 강우네 가족을 바라보며 기자들이 망연자실했다.
“대체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하는 거야?”
그들이 미리 써 놓았던 초고가 완전히 망가졌다. 노벨상 부부와 차성그룹이 친인척지간이었다니.
발 빠른 기자들은 그 순간 급히 속보를 날렸다.
- 차도도 박사, 차성그룹 차녀로 밝혀지다!
더 발 빠른 기자도 있었다. 그들은 기사보다 주식 주문을 냈다.
“차성중공업 무조건 상한가다!”
* * *
대통령 예방을 마치고 청와대 밖으로 나왔을 때 다시 기자들이 몰렸다.
“오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한국에서도 핵융합 발전을 시작합니까?”
기자들이 몰려들어 마이크를 들이댔다.
강우는 소희를 안은 차도도를 보호하면서 손을 저었다.
“공식적인 내용은 청와대에서 브리핑할 겁니다.”
“그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은 끈질겼다.
어차피 숨길 일도 아니어서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기자들을 진정시켰다.
“그럼 간략하게 요점만 설명하겠습니다.”
그제야 기자들이 진정하고 일사불란하게 취재를 시작했다.
강우는 그들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통령께서 오찬을 함께하며 과학 한국의 위상을 높인 저희를 치하했습니다.”
“그런 일반적인 내용 말고요!”
“상온핵융합 발전소 건설이 논의되었습니다.”
강우의 선언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상온핵융합 발전을 시작하면 에너지 사용 패턴이 바뀌면서 산업 전반에 지각변동이 발생한다. 국내 경제뿐 아니라 국제 경제에도 큰 변화가 따라온다. 수출 산업 경쟁력이 폭증하기 때문이다. 그 현실을 이미 미국에서 입증하고 있다.
“현재 상온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할 능력이 있는 곳은 미국 헌팅턴사가 유일합니다.”
“그럼 헌팅턴사에서 국내 발전소를 건설합니까?”
“아뇨. 제가 헌팅턴사 사외 이사이고 발전소 건설의 전권을 쥐고 있습니다. 제가 허락해야 헌팅턴에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뒤늦게 사람들은 강우의 힘을 인식했다.
지금까지는 그를 인류의 에너지난을 해결한 천재 과학자라고만 생각했다. 노벨상이란 명예를 차지한 과학자가 강우의 전부라고 여겼다. 그런데 군수 기업에서 글로벌 에너지 개발 기업으로 탈바꿈한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를 쥐락펴락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시가총액 백억 달러였던 헌팅턴이 최근 5년간 무려 1000배 이상 주가가 상승하여 지금은 10조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전 세계 발전소 관련 기업의 시가총액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그런 기업의 목을 틀어쥔 사람이 강우라니?
이것은 차도도가 차성그룹의 차녀라던 충격을 훨씬 능가했다.
“그, 그러면 국내 사업은 어떻게 됩니까?”
“아직 명확한 계획이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대략적으로는 헌팅턴과 차성중공업이 합작회사를 설립할 겁니다.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는 기업 말이죠. 헌팅턴의 핵융합 기술과 차성중공업의 발전소 설비 기술이 합쳐진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실상 국내 기업이 핵융합 발전소를 주도한다는 설명에 기자들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헌팅턴의 원천기술을 한국인인 강우와 차도도가 제공했으니 사실상 이 합작기업은 한국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우는 기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추가로 언급했다.
“합작기업은 제가 5%, 차도도 박사가 5%, 차성중공업 25%, 헌팅턴이 25%의 지분을 보유합니다.”
“그럼 남은 40%는 어떻게 됩니까?”
“그건…… 국민주로 모든 국민께 나눠드릴 생각입니다. 주당 단돈 100원에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이 합작회사의 시가총액을 대략 400조 원으로 예상합니다. 즉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160조 원을 드리게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인플레 때문에 매도에 약간의 제약을 걸긴 하겠습니다만.”
160조면 국민 1인당 320만 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이다. 이 나라 국민은 이 금액의 주식을 단돈 몇백 원에 살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엄청난 계획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당연히 가능하죠. 상온핵융합의 무한한 가능성이 만들어 낸 마법이죠. 우리나라 국민은 에너지의 혜택에 더해서 금전적인 이득도 얻게 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이 한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이 나라 이 세계 모두의 축복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강우는 손을 흔들며 모닝에 올라탔다. 올 때처럼 차도도와 딸 소희, 그의 어머니가 모닝에 함께 탔다.
강우는 천천히 청와대를 벗어났다. 그의 뒤로 차준범이 탄 고급 세단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과학의 발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 발전은 과학자 개인에게도, 인류 모두에게도 무한한 편리와 이익을 안겨준다.
* * *
청와대를 떠난 강우는 곧장 차도도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제는 그와 차도도의 보금자리다.
거실에 모여 오랜만의 가족 모임을 했다.
강우의 어머니와 차도도 부모님이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미국에서 단출하게 올렸던 결혼식 이후 처음이다.
지금도 그의 어머니는 대그룹 사돈을 부담스러워한다. 강우는 이제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은 없다. 사실 지금은 그도 차성그룹 못지않은 거대한 부를 축적했으니까. 불과 7년 만에 벌어진 천지개벽이었다.
“차성중공업이 상한가를 쳤어. 차성그룹 대부분 계열사도 비슷한 흐름이고.”
오늘 차도도가 차성그룹 딸이라고 알려지면서 주식시장이 난리가 났다. 차성그룹 주식을 사려고 난장판이 벌어졌다. 상온핵융합의 경제적인 가치를 추측한 주주들이 베팅했다. 앞으로 새로 건설될 국내 발전소에 전 세계의 발전소까지 더하면 그 매출과 이익이 상상을 초월한다.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차준범에게 강우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앞으로 더 오를 겁니다. 헌팅턴은 핵융합 때문에 무려 1000배가 올랐습니다. 적어도 며칠은 더 상한가를 칠 겁니다.”
“당연하지. 앞으로 회사 매출과 순이익이 얼마나 성장할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니까. 당장 나조차도 그런데 일반 투자자는 어떻겠나.”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한 차준범이 말을 덧붙였다.
“난리가 났어. 역시 돈을 공짜로 준다니까 모두가 좋아해. 그런데 자네, 그 큰돈을 막 뿌려도 괜찮겠나?”
160조가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얼마나 되는 돈인지 감이 없다. 액수가 너무 커지니 만 원권, 오만 원권으로는 상상이 어렵다.
“돈이 부족하면 다음에 또 벌죠. 합작회사가 EU에서 발전소 사업을 시작하면 주가가 또 두 배 더 폭등할 겁니다. 하하! 돈 벌기 쉽네요!”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아니라 과학이 돈을 버는 세상을 강우가 실현했다.
온 국민이 부자가 되는 그날까지.
이 나라에서 손꼽는 부자가 된 강우는 이제 돈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에 산다.
“역시 대단하네. 내가 사위 하나는 잘 뒀어!”
차준범이 연신 그를 칭찬했고 차도도의 어머니 역시 그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냈다.
7년 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탐탁지 않게 여기던 반응과는 완전 딴판이다. 사랑하는 차도도의 부모이기에 그는 모든 앙금을 묻어버리기로 했다. 사실 그와 차도도가 유학을 떠난 후부터는 알게 모르게 염려해주던 사람들이니까.
어쨌든 오늘부터 강우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됐다. 또 존경받는 사람이 됐다.
옆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재롱을 떠는 소희를 안고 강우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