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화 노벨상 수상자의 하루 (2)
강우의 회견은 어마어마한 여파를 불러왔다.
처음에 사람들은 뉴스의 진위를 의심했다.
- 노벨상 탄다고 부자가 되나?
- 모닝이래잖아! 모닝! 나도 모닝은 산다!
- 일 인당 320만 원? 우리 집은 천만 원 넘었다!
- 강우를 국회로 보내자! 국회로!
- 차도도는 금수저였어? 강우는 흙수저고? 인생역전이야?
- 차성중공업 주식 사라!
- 상한가 잔량만 수천 만주가 쌓여 도저히 살 수가 없음!
- 도도도도온! 돈벼락이 쳤다!
단연 오늘의 화제는 1인당 320만 원이었다. 돈을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난데없는 돈벼락에 화들짝 놀랐다. 물론 그 돈이 지금 당장 주머니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합작회사가 세워지고 상장된 후에야 회수 가능한 금액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복한 꿈에 젖었다.
정작 강우는 무척 바빠졌다.
헌팅턴과 차성중공업 사이의 합작회사 설립이 가시화되면서 그는 헌팅턴에 연락을 취했다. 헌팅턴은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강우의 고국인 데다 차성중공업은 그의 처가였다. 차성중공업에서도 로열 패밀리인 강우를 존중했다.
며칠 후, 한국대 정문으로 모닝이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에 강우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의 옆에는 차도도가 타고 있었다.
“화학과 가는 거야?”
“네. 신새벽 박사님을 도와드려야죠.”
“신 박사가 설마 일을 벌이려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쉽지 않을걸요.”
강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강우 사단의 핵심 3인방인 세 사람은 모두 한국대 교수초빙에 응모했다.
차도도가 가장 먼저 교수로 채용되었다. 물리교육과에 마침 빈자리가 있었고 그녀를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력 덕분에 조금의 잡음도 없이 자리를 잡았다.
강우의 경우는 문제가 있었다. 일단 그의 세부 전공이 아직 은퇴하려면 강산이 변해야 하는 마도환과 겹쳤다. 게다가 마도환이 반대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빼앗길 수 없다는 한국대의 여론에 힘입어 임용이 거의 확실했다. 남은 것은 행정적인 절차뿐이다. 당연히 그의 군대 문제도 여론이 그의 손을 들었다. 강우가 입영 대신 전문연구요원으로 한국대에 근무하는 것으로 결정이 날 분위기다.
마지막 남은 사람은 바로 신새벽.
신새벽은 MIT에서 화학과의 브라이언 윈터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벨상을 탄 강우와 차도도에게 가려져서 대중의 이목을 끌지 않았을 뿐 그녀 또한 학계에서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신새벽은 세계를 선도하는 젊은 과학자 10인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 상은 40세 미만의 뛰어난 신진 과학자에게 주어진다.
그런 신새벽도 강우가 귀국하면서 함께 귀국했다. 국내에서는 불모지에 가까운 양자화학의 신성이었기에 여러 대학에서 그녀를 주목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한국대 화학과에 원서를 넣었고 지금 노창열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돌아왔어!”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화학과 건물을 응시했다.
이곳은 8년 전, 신새벽이 석사 졸업하던 그때 왔었다. 노창열의 도장을 받으려고 화학과 교수회의실에 무례하게 뛰어들었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쓴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래도 과학자 10인에 뽑혔는걸?”
“대단한 업적이긴 하지만…… 교수 사회란 곳이 워낙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잖아요?”
“그렇긴 해.”
비교적 순탄했던 차도도도 임용 면접에서 적잖은 곤욕을 치른 기억이 떠올랐다. 노벨상 수상자인 그녀에 비하면 신새벽 앞에는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10인에 선정된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그렇긴 하죠. 더 대단한 건 그 10인에 대우도 들어갔다는 거죠.”
젊은 과학자 10인에 한국인은 둘이었다. 신새벽과 최대우. 최대우의 수상은 정말 놀라웠다. 아직 박사학위도 받지 않은 20대 과학자는 그가 유일했으니까. 물론 노벨상을 받은 강우와 차도도는 이 10인 후보에 해당하지 않았다.
최대우는 현재 MIT 원자핵공학과의 미치 해리스 밑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석박사과정에 진학할 때 요셉과 해리스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해리스를 선택했다.
강우가 보기에 최대우의 비약적인 성장은 당연했다. 최대우는 무려 S가 두 개인 능력자니까.
“들어가 볼까요?”
“바로 면접장으로 갈 수는 없잖아?”
“그전에 만나볼 사람이 한 사람 있어요. 우리 도도 씨가 해주어야 할 일입니다.”
강우가 차도도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차도도가 미소와 함께 손을 잡았다.
* * *
화학과 교수회의실에는 화학과 교수 전부가 모여 있었다.
회의실 앞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오늘 교수 임용 면접의 대상은 신새벽. 미국의 명문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업적도 상당했다. 유력 학술지 여러 곳에 십여 편의 논문을 실었다. 만일 차도도가 없었다면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 과학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신 박사님의 강의와 견해를 잘 들었습니다.”
신새벽이 발표를 마치자 화학과 학과장 배성환이 입을 열었다.
“신 박사님의 업적은 나무랄 곳이 없습니다만…… 아시다시피 교수 임용은 기존 교수님 전원이 찬성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방금 분위기를 보셨다시피 신 박사님 임용은 찬성과 반대가 갈리고 있습니다.”
신새벽은 그녀를 바라보는 교수진을 쭉 둘러봤다.
대부분 그녀에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반대라 예상되는, 적의를 보이는 사람은 불과 셋 정도다. 만장일치여야 임용 가능하다고 볼 때 세 사람은 절대 적지 않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 저 세 사람은 바로 그녀와 대립했던 노창열과 그 동료이니까.
석사 논문 승인 때 시비를 걸던 노창열이 교수 임용에서도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화학과 교수 임용에서 떨어지면 화학교육과로 방향을 틀면 된다. 다만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계속하려면 아무래도 환경이 화학과가 유리하다.
차도도도 물리학과로 가고 싶었으나 강우가 물리학과를 지망하기에 물리교육과로 방향을 틀었었다.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실적이 문제인가요? 성품이 문제입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나이 때문인가요? 혹시 여자라는 성별이 문제 됩니까?”
다소 기분이 상한 신새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도 고분고분 물러설 수 없기에 이런 반응이 자연스레 나왔다.
이 자리까지 도달하기 위해 그녀는 무려 7년간 연구에 매진했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실적을 쌓았다. 그렇기에 단지 노창열의 반대 때문이라면 너무 억울했다.
“아,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신 박사님 임용은 저희 교수진에서 더 토의해야 할 문제라…….”
이대로 넘어가면 교수회의에서 노창열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내분을 싫어하는 교수 사회의 특성상 이런 흐름은 그녀에게 극히 불리하다.
반전이 필요했다.
“반대하는 분이 바로 노창열 교수님입니까?”
정곡을 찔린 배성환 학과장이 버벅거릴 때였다.
“후후, 그렇습니다. 신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노창열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신새벽을 노려보았다.
신새벽도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교수들의 찬성을 끌어내야 하는 신새벽이 상대 교수와 날을 세우는 일은 득보다 실이 많다. 그녀도 이 사실을 안다. 하지만 노창열이 전면에 나서는 순간 그녀도 물러날 수 없었다.
“신 박사님을 반대하는 이유는 여성이어서, 나이가 젊어서도 아닙니다.”
사실 신새벽의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교수 임용에 딱 좋을 시기다.
“그럼 무엇이 문제죠?”
“바로 박사님 인성이 문젭니다! 인성이!”
공개 석상에서 차마 나올 수 없는 비난이 쏟아졌다.
신새벽은 그게 바로 당신 문제라고 되받아치려다가 말을 아꼈다.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고 흥분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직접적인 비난을 처음 들었기에 다른 교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흠, 제 인성이요?”
가까스로 들끓는 분노를 억누른 신새벽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노창열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좌중을 둘러보며 설명했다.
“아마 여기 계신 많은 분께서 8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도 우리는 이곳에서 교수회의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저기 신 박사가…… 당시는 화학교육과의 석사과정 학생이었는데 건방지게 교수회의실에 난입했습니다!”
그제야 교수들은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무례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 외에도 다른 무례도 대단히 많습니다만 일일이 나열하진 않겠습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더라도 반성을 하고 고치면 되니까요.”
“그래서요?”
“제가 비록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런 일로 앞길을 막을 만큼 잔인하진 않습니다. 신새벽 박사님이 반성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 화학과에 녹아들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신 박사님께서 반성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신다면 전혀 문제가 없겠죠.”
동시에 노창열 입가에 뜬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마치 눈앞에 잡아먹을 쥐를 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신새벽은 금방 노창열의 의도를 깨달았다.
아마 그 얼마 동안 노창열은 그녀를 시험할 것이다. 확실하게 그녀의 목을 틀어쥐었다며 갑질을 일삼겠지. 교수 임용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다거나 아니면 충성을 요구한다거나. 노창열이라면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하아아.’
신새벽은 내심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면 노창열이 아니겠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8년 전의 일은 양날의 검이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교수들 상당수가 이곳에 있고 그들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신새벽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노창열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확실한 자신감 덕분이다.
“노창열 교수님? 그동안 어떻게 알아보실 예정이신가요?”
“그건 지나 보면 압니다. 신 박사께선 조용히 집에서 제 전화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또 예전의 수작이다.
신새벽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호텔로 나오라는 전화겠죠?”
“무, 무슨!”
노창열이 아니란 듯 펄쩍 뛰었고 다른 교수들도 눈이 동그래졌다.
신새벽은 거침이 없었다.
“예전에도 이런 식이었죠! 제 석사 논문 때 심사 도장을 찍어준다며 따로 불러내려던 분이 바로 당신 아니었습니까?”
“감히 사람을 모함합니까?”
노창열이 다급하게 그녀 말을 잘랐다. 그는 교수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보셨죠? 저 사람 인성이 저 모양입니다. 저런 사람이 교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서 밀리면 끝이 없다.
신새벽은 오늘 전투에 사활을 걸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좋습니다! 이 자리에서 노창열의 비리를 고발하겠습니다! 이건 제 임용의 문제가 아니라 비리 교수의 문제입니다!”
신새벽이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도장 찍어줄 것 같아? 네가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면 호텔 방으로 도장 갖고 오라는 수도 있어.
바로 노창열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