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08화 (308/325)

제308화 HC 핵융합 건설 (1)

상온핵융합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한 헌팅턴의 협상단이 공항에 도착했다.

대략 열 명가량 되는 협상단은 마치 첩보 요원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

그 선두에서 무리를 이끄는 두 사람은 알렉스 고든 부사장과 마이크 그레이엄 연구책임자로 무려 10여 년째 해당 직책을 지키면서 장수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핵융합 개발 성공으로 능력을 인정받아서다. 구체적으로는 요셉 교수와 강우를 발탁한 공로이기도 했다.

고든은 그동안 더욱 풍채가 좋아져 이제는 전형적인 2인분 역할을 했고 그레이엄은 더욱 말라서 한결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군.”

고든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한국은 그의 고향과 전혀 상관없는 동네다. 그런데도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곳에 그를 날게 만든 강우가 있기 때문이다.

7년 전 서울에서 협상한 2차 프로젝트가 순항하면서 그는 회사에서 완벽한 입지를 구축했다. 아울러 그때 무리해서 투자했던 헌팅턴 주식이 대박을 터트려 그는 억만장자를 훨씬 능가하는 갑부가 됐다. 그레이엄도 마찬가지.

“한국은 약속의 땅이죠.”

그레이엄 또한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도 그들은 강우와 협상하러 왔다. 당연히 떼돈을 벌 수 있으리란 생각에 두 사람은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날개를 펴는 회사 일에 자신들이 편승하면 또 한바탕 대박을 칠 수 있으니까.

누구보다 한국행을 기다려왔던 두 사람이었다.

질서정연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들 앞에 여러 명의 기자가 몰려왔다.

“고든 부사장님! 한국에 오신 목적을 설명해주십시오!”

한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댔다. 옆에서 다른 기자도 질문을 퍼부었다.

“차성중공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소문이 진실입니까?”

“합작회사는 제일 먼저 한국에서 발전소를 건설하는 거죠? 아니면 동아시아? 아니면 EU입니까?”

“강우 박사가 합작회사의 주식 일부를 한국 국민에게 국민주로 내놓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간 나왔던 소문을 헌팅턴에 확인하려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당연히 고든은 말을 아꼈다. 이럴 때는 정보를 내놓지 않을수록 주가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안다.

그는 말없이 손을 저었다.

“그간 한국발 소문이 모두 사실입니까?”

고든이 인파를 뚫고 나가려 했으나 곧바로 막혔다.

보다 못한 그레이엄이 기자들을 향해 대신 대답했다.

“상온핵융합 기술은 위대합니다. 인류의 축복이죠! 저희 헌팅턴은 한국의 차성중공업과 좋은 파트너쉽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딱 질문 하나만 받겠습니다. 질문하시죠.”

하나로 못을 박자 기자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겨우 하나의 질문으로 통일했다.

한 기자가 대표로 나서서 질문했다.

“합작회사는 어디로 진출할 계획입니까?”

잠시 고민에 잠겼던 그레이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북아메리카를 제외한 모든 지역입니다.”

기자들은 곧바로 기사를 날렸고 차성중공업의 주가는 바로 상한가로 날아갔다.

당연히 원고 송부보다 급히 주식 주문을 내는 기자들이 훨씬 많았다.

기자들 사이를 뚫고 주자창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던 고든과 그레이엄은 그들을 마중하러 나온 차를 만났다.

그들을 기다리는 미니버스. 도착한 인원을 고려하면 당연했다.

다만 고든은 미니버스 앞에 버틴 익숙한 모닝을 보고 안면이 울상으로 변했다. 그도 함께 온 직원과 같이 미니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으나 비즈니스 도리상 모닝을 타야만 한다.

“후아, 하늘이 나에게 시련을 내리시는구나!”

모닝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강우와 차도도였다.

강우가 손을 내밀었다.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풍채가 더 좋아지셨군요.”

“오우! 강 박사!”

고든이 강우의 두 손을 잡고 십년지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는 모닝의 뒷문을 열어 주었다.

차 내부를 훑어본 고든은 심히 걱정했다. 저 좁은 공간에 육중한 몸이 들어갈 것인가.

그는 옆에 같이 탈 그레이엄을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과거의 그때보다 그나마 그레이엄의 몸이 더 말랐으니 가능할 듯 보이기도 했다.

강우를 향해 원망의 눈치를 날리던 고든이 결국 한숨을 거두고 차에 올랐다. 모닝이 쿡 주저앉았다.

그 옆에 그레이엄이 끼어 타고 차도도마저 조수석에 오르자 강우는 편하게 운전석에 탔다.

종이쪽처럼 접힌 채 고든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강 박사! 이제 가난한 고등학생도 아니고 억만장자 아닙니까? 헌팅턴 사외 이사에 처가마저 거대 그룹이라면서 이게 뭡니까? 차 좀 바꾸시죠?”

“아직 쓸만한데요?”

“그래도 좀 심하지 않습니까?”

“차를 주문했는데 아직 출고가 멀었어요. 이 차도 잘 나가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건 당신에게나 해당한다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고든은 입을 닫았다.

강우가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식사는 호텔에서…… 떡볶이는 어떻습니까?”

호텔이란 말에 안면을 펴다가 떡볶이란 말에 고든과 그레이엄의 표정이 확 찌그러졌다.

‘그래도 강 박사가 재신이니까…… 참자, 참아! 끙! 호텔에는 언제 도착하려나? 몸이 찌그러지기 전에 얼른 도착해야 하는데…….’

모닝이 부드럽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 * *

차성호텔.

을지로에 자리한 유명호텔로 차성그룹의 호텔 및 리조트 사업부에 속해 있었다. 투박한 이미지의 차성중공업과 달리 차성호텔은 차성쇼핑과 함께 세련된 이미지를 풍겨 차성그룹의 브랜드 이미지를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 이 차성그룹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곳에서 차성중공업과 헌팅턴사의 합작회사 설립 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루비홀이란 이름이 붙은 다목적 회의실에 대략 이십 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 좋은 호텔 회의실을 놓아두고 지난번엔 그 비좁은 고등학교에서…….”

“그때는 제가 차성그룹 사위가 아니었습니다.”

고든의 불평에 강우가 변명했다.

곧바로 고든의 시선이 차도도에게 향했다.

“그때는 저도 고려 과학고 선생님 신분이었거든요.”

차도도의 대답에 고든이 신음을 터트리며 고개만 저었다. 여태껏 모닝을 고수하는 차도도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회의실 한쪽은 헌팅턴 사람들이, 반대편은 차성중공업 사람들이 진을 쳤다.

그 중립지대 맨 뒷자리에서 강우와 차도도가 상황을 지켜봤다.

양쪽 실무진들은 강우와 차도도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헌팅턴에서는 핵융합 개발과 관련하여 모든 권한을 쥔 강우의 의견이 절대적이었고 차성중공업은 그룹 실세로 부상한 차도도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 회담 결과는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강우가 머릿속에 든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양측 실무자가 받아적는 형식적인 자리였다.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와 차성중공업의 합작회사의 명칭은 양사의 이름을 따서 HC 핵융합 건설이라고 붙였습니다. 이름이 건설이라고 해서 건설사는 아닙니다. 에너지 플랜트 제공 회사죠. 이 회사의 초기 지분분포는 헌팅턴 25%, 차성중공업 25%, 강우 박사님과 차도도 박사님, 두 사람의 개인 주식 10%에 국민주 40%입니다. 설립 1년 후에 뉴욕 거래소에 주식 공개로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며…….”

차성중공업에서 전반적인 로드맵을 발표했다. 강우의 지시를 받은 차성중공업 실무자는 거침이 없었다. 그 누구도 감히 딴지를 걸기 힘들다는 현실을 알고 있어서다.

고든이 강우에게 하소연했다.

“그래도 주관사인 헌팅턴에게 25%는 너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헌팅턴 관할을 미국에서 북미 전체로 확대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름 보세요. 무려 H가 앞에 들어갔습니다. CH로 바꿀까요?”

강우의 지적에 고든의 불평이 쑥 들어갔다.

처음 이 문제가 나왔을 때 강우는 헌팅턴과 차성중공업의 지분이 동일함을 강조했다. 강우와 차도도의 지분은 경영을 좌우하려는 의도가 아닌 순수한 투자 성격이라고. 그렇기에 헌팅턴이 경영 권한에서 차성중공업에 밀릴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변명인데도 헌팅턴에게는 통했다. 강우와 차도도가 차성그룹의 혈육이어도 이 문제에서 차성중공업의 손을 무조건 들어주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들은 그만큼 강우를 믿었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조율을 계속했다. 큰 원칙에서 합의했기에 비교적 진행이 빨랐다.

강우는 흐뭇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지켜봤다.

“괜찮아 보이죠?”

“그렇네.”

차도도도 수긍했다. 사실 그녀도 경영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차성중공업을 헌팅턴 협력사로 선정한 이유도 발전소 플랜트 건설에 필요한, 뛰어난 기술력 때문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부차적인 고려 대상이었다.

그보다 정작 그녀의 관심사는…….

“강우야, 오늘 또 이메일이 왔는데…….”

노벨상을 받은 이후 차도도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연구자의 구애에 시달렸다. 그녀와 공동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제안이다. 그녀를 대학이나 연구소에 교수로 채용하고 싶다는 문의부터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권유까지.

상당히 유명한 과학자들의 요청이 들어왔기에 마냥 거절만 할 수도 없어 그녀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내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싶다는, 또 박사후과정을 보내고 싶다는 요청이 너무 많아.”

이제 막 교수가 되었기에 벌써 박사과정 대학원생을 받을 수 없다. 그것도 국내 학생도 아니고 외국 유학생을. 요청한 학생들 가운데는 이미 상당한 실적을 낸 인재도 있었다.

문제는 차도도도 이런 학생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라도 단독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없고 대학원생이나 동료 연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거절하려니 손이 나가지 않았다.

비슷한 문제에 강우도 시달리고 있었다.

“저도 몇 건 받았어요. 게다가 차희가 학위를 받고 나면 국내로 데려와서 박사후과정을 밟게 하고 싶거든요.”

현재의 체재하에서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오늘 처리해야죠. 이 기회에.”

인재 확보는 중요하다. 이제는 더 흩어져있던 강우 사단 단원을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강우가 안심하라는 듯 빙그레 웃었다.

헌팅턴과 차성중공업의 합작회사 HC 핵융합 건설의 전반적인 계획이 마무리됐다. 헌팅턴 부사장과 차성중공업 사장이 협약서에 서명했다.

한국 정부에서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서두르고 있어서 양 기업은 투자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집행하기로 했다.

동시에 HC 핵융합 건설의 사업 순서도 발표했다.

첫 사업은 한국의 상온핵융합 발전소 건설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동해안에 인공섬 5개를 만들고 그곳에 발전소 5기를 건설한다. 이 발전소가 완공되면 곧바로 서해안에도 같은 방식으로 5기의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부지확보가 필요 없기에 속전속결이 가능한 사업이다.

대형 쓰나미가 밀려와도 안전한 인공섬에 발전소가 건설된다.

“한국에서 발전소가 건설되는 사이 일본에서도 작업을 착수할 예정입니다. 주변국 중에 일본에서 가장 먼저 의뢰해왔거든요. 또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여 아마 일본이 끝나기 전에 중국 쪽에서도 사업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실무자가 회의 종료를 선언하려 할 때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덧붙여 새로운 기획을 제안하려 합니다.”

강우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누구도 강우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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