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화 HC 핵융합 건설 (2)
“핵융합 기술은 이제 막 꽃을 피우는 단계입니다. 신이 인류에게 선사한 불이죠. 이 불을 인류는 아직 완벽하게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핵융합에서 해결할 많은 과제가 놓여있습니다.”
과학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자리에 동석한 헌팅턴 연구책임자 그레이엄도 수긍했다. 차성중공업의 연구책임자도 마찬가지였다.
강우의 발언이 이어졌다.
“저는 그동안 핵융합 기술을 미국 MIT 대학을 중심으로 개발해왔습니다. 이곳에서 개발된 과학기술이 헌팅턴 사에서 꽃을 피웠지요. 문제는 그동안 MIT에서 활약하던 연구원들이 점차 흩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저를 비롯해서요. 몇 년 후가 되면 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지금처럼 효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워집니다.”
당장 헌팅턴이 이 문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강우와 차도도가 MIT에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두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체계적인 연구 관리가 힘들어졌다. 지금은 MIT와 한국대로 분리될 뿐이나 나중에는 더 여러 곳으로 쪼개질 수도 있었다.
“이 문제를 고민해봤습니다. 세계에는 핵융합에 관심 있는 학생이 많습니다. 이 분야를 연구하려는 과학자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든이 물었다. 헌팅턴도 매우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는 한국대에 핵융합연구소를 설립하고자 합니다.”
“아!”
실무자들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으나 고든과 그레이엄은 강우의 의도를 알아챘다.
강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원하는 업체에서 기부금을 모아 핵융합연구소를 설립한다.
이 연구소 이름으로 세계 유명 전문가를 초빙하여 핵융합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앞으로 모든 프로젝트는 이 연구소를 통해 추진한다.
한국대 내에 핵융합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강우의 의지가 표현됐다. 실제로 대학교에는 이런 형태의 기업 연구소가 상당히 많기에 방식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이것은 핵융합을 전공한 학생이나 과학자의 일자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차도도에게 문의한 박사후과정 학생에게 그 문을 열어줄 방법이기도 했다.
앞으로 강우나 차도도 아래에서 학위 과정을 밟을 대학원생들이 더 풍족한 여건하에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헌팅턴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최대우, 손차희, 윤수아 등도 이 연구소에 모셔오게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원하면요. 또 세계 어느 대학의 교수라도 연구 프로젝트를 이 연구소와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연구소 초대 소장을 요셉 교수님으로 모실 예정입니다. 요셉 교수님은 미국에서 사무를 계속 보시고요.”
강우의 설명에 담긴 속뜻을 모두 알아들었다.
그의 뜻대로 된다면 앞으로 핵융합과 관련된 모든 기술은 핵융합연구소를 통해서 개발하고 제공될 것이다.
고든도 그레이엄도, 차성중공업 관계자도 찬성했다. 기업 측에서는 관리가 쉬워지니 당연하다.
이어서 강우는 핵폭탄을 선사했다.
“그래서 연구소 설립에 기부금이 필요합니다. 기부금을 내는 업체에 연구소 이름을 붙일 특전을 드립니다. 예를 들면 ‘한국대 헌팅턴 핵융합연구소’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헌팅턴에게 기부하란 말과 다르지 않았다. 곧바로 차성중공업 쪽에서 반박이 나왔다.
“차성중공업에서 기부금을 내겠습니다.”
“아닙니다. 헌팅턴이 전액 부담하지요.”
헌팅턴과 차성중공업이 서로 기부금을 내겠다며 신경전을 벌였다.
그 내면을 조금이라도 뜯어보면 지금 이 현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연구소 설립에 드는 돈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이 기부금은 세금에서 충분히 보전할 수 있다.
연구소의 수익이 기부한 사람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더라도 설립자이기에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향후 핵융합 기술이 이 연구소에 집약된다면 그 무형의 이익은 막대하다. 헌팅턴도 차성중공업도 이런 기회를 놓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연구소를 설립하는 사람이 강우이기에 확신할 수 있다.
한동안 양측의 다툼을 관망하던 강우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양사에서 제 뜻을 이해하시니 무척 기쁩니다. 그럼 공평하게 설립 자금을 부담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연구소 이름은…… 앞선 합작회사처럼 한국대 HC 핵융합연구소면 되겠지요?”
“끙!”
고든은 강우의 계략을 눈치챘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눈뜨고 코 베는 격으로 설립 자금을 빼앗겼으나 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것으로 강우는 향후 강우 사단의 본거지가 될 핵융합연구소 설립을 관철했다.
“어때요?”
강우의 시선이 차도도에게 돌아갔다.
차도도가 미소를 머금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회의를 마칩니다!”
강우의 선언에 헌팅턴과 차성중공업 담당자들이 악수했다.
전 세계 에너지를 제패할 HC 핵융합 건설이 기지개를 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 *
차성중공업에서 주최한 연회를 마치고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고든과 그레이엄이 묵는 차성호텔 객실로 향했다.
“이런 좋은 호텔이 있으면서 지난번에는 그게 뭔가?”
고든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강우는 같은 말로 받아쳤다.
“그때 저는 차성호텔이란 데가 있는지도 몰랐다니까요.”
자연스럽게 고든의 시선이 다시 차도도를 향했다.
차도도가 생긋 웃으며 물었다.
“호텔이 마음에 안 드시나 본데…… 지금이라도 방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겨드릴까요? 고려 과학고 앞에 그럭저럭 작은 모텔이 몇 개 있습니다만.”
“헉! 차, 참아주시오!”
당황한 고든이 땀을 닦으며 손을 저어 거부했다.
부사장 고든에게 배정된 호텔 객실은 상당히 좋았다. 사무까지 볼 수 있도록 탁자와 소파가 겸비된 넓은 스위트룸이다.
깔끔한 방에 만족한 고든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오우! 좋아!”
“여기가 차성호텔입니다.”
차도도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레이엄이 탁자에 서류가방을 풀고 강우에게 권했다.
“바로 시작할까요?”
“그렇게 합시다.”
강우도 재킷을 벗어 차도도에게 건넨 후 탁자 앞에 앉았다.
그레이엄의 손에서 서류 뭉치가 넘어왔다.
헌팅턴 연구소에서 기술자들이 난관에 부딪힌 문제를 모아 놓은 질문서다.
강우는 유학 가기 직전 2차 프로젝트를 체결하던 때 이런 질문을 처음으로 해결해주었었다.
그때 큰 도움을 받았던 그레이엄이 강우가 미국에 있는 동안 해마다 한두 차례 기술적 장벽에 부딪힌 난제를 모아 강우에게 조언을 구했다.
당연히 강우는 천재적인 능력으로 순식간에 해결해줬다.
이것은 수학 문제를 풀 때 풀이 과정 중에서 어떤 한 부분이 딱 막혀 더는 진행할 수 없는 그런 경우와 유사했다.
강우는 간단한 힌트를 던져주었고 해당 연구자는 그 힌트를 이용해서 난관을 돌파했다.
강우의 조언이 연구소에 큰 도움이 되자 그레이엄은 이를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했다. 물론 강우는 적절한 기술자문료를 받았다.
강우가 한국으로 돌아온 올해도 그레이엄은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비쳤고 강우 또한 수락했다.
“역시 대단합니다.”
그레이엄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강우는 해결한 질문서를 한쪽으로 넘기고 다음 질문의 해결책을 고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서는 점차 옆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해결한 질문서가 해결하지 않은 것보다 더 많아졌다.
열심히 일하는 강우에게 차도도도 경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이런 장면을 무수히 봤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왔다. 어떻게 처음 보는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해결책을 찾아주는지.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고, 커서도 누구에게 머리든 능력이든 뒤처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 모두가 강우에게만은 예외였다.
결혼한 지금도 남편인 강우는 그녀가 넘볼 수 없는 넘사벽 천재였다. 그녀가 강우에게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다 했으니까.”
강우가 그녀의 심정을 헤아렸다.
당연히 차도도는 빨리 끝내라고 독촉하는 눈빛을 보낸 적이 없다. 단지 그녀는 존경의 눈빛을 보냈을 뿐이다.
“그게 아닌데…….”
강우와 그레이엄이 업무에 열중하자 심심해진 고든이 그녀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지낼 곳은 정하셨습니까?”
“예전에 살던 아파트가 있어서 계속 살면 되고…… 직장은 한국대로 정해졌습니다. 저는 임용이 끝났는데 강우 씨는 아직 미정이고요.”
“오! 노벨 수상자도 교수 임용이 쉽지 않은가 보죠?”
“그게…… 군대 문제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도 입대하나요?”
당연히 고든은 한국의 군대 문화를 전혀 모른다.
그녀가 한국의 병역제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자니 고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다.
“제가 한국 정부라면 강 박사를 딱 군대에 가둬놓고 군만두를 먹이면서 연구만 시키겠습니다. 아마 강 박사 혼자서 대한민국 군대를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최근 핵융합 발전의 기세와 효과를 보면 결코 과장된 평가는 아니다.
어이없는 제안에 차도도도 웃음을 금치 못했다.
“일이 쉽게 끝났는데……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십니까?”
“아뇨, 온 김에 사업 파트너인 차성중공업을 견학할 예정입니다. 그 역량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봐두는 게 앞으로 좋겠죠.”
“저희가 가이드해드릴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겁한 고든이 재빨리 두 손으로 말렸다.
차도도는 이 반응이 모닝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내일부터는 만날 일이 없겠어요. 편히 관광하다가 돌아가세요. 한국에도 볼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하하, 그러겠습니다.”
차도도는 강우의 부인인데다 핵융합 기술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고 거기에다 차성그룹까지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고든은 차도도를 깍듯하게 대했다.
그는 강우가 차도도를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고생하던 때를 떠올렸다. 지나고 보니 역시 차도도라면 강우가 그렇게 정성을 들일 만했다.
밤이 늦어 날이 바뀔 때쯤 질문서 답변이 끝났다.
“후아, 나날이 질문이 많아지는군요.”
“그게 연구소 직원들이 강 박사를 높이 평가해서입니다.”
“그게 아니라 연구하기 귀찮아진 거죠. 열심히 고민하면 해결할 문제를 질문서에 슬쩍 넣은 경우도 꽤 됩니다.”
강우의 예리한 지적에 그레이엄은 연신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시계를 보고 차도도의 얼굴을 확인한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러시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자문료는 바로 통장으로 쏴드리겠습니다.”
강우는 고든과 그레이엄의 환대를 받으며 객실을 나왔다.
다시 둘만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호텔 복도를 걷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해진다.
“쌤? 우리도 오늘 호텔에서 묵을까요?”
“호텔은 왜? 좋은 집 놔두고.”
“에이, 호캉스라고 있잖아요? 지금 밤도 늦었고.”
차도도는 생각에 잠겼다.
강우와 이런 최고급 호텔에서 묵었던 적이 있었나?
남들은 그녀와 강우가 대단한 부자라서 무척 화려한 생활을 하리라고 예상한다. 현재 강우의 자산은 거대 그룹 회장 수준에 필적하고 신분 또한 무려 차성그룹의 사위와 딸 아닌가. 일반 사람들의 시각은 당연했다.
‘그런데 한 번도 이런 고급 객실에서 지낸 적이 없어.’
애초에 호텔에서 숙박할 일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식도 미국에서 정말 단출하게 해결했다. 하필 그때가 연구에 바쁠 때라 신혼여행도 떠나지 못했다.
연구에 미친 과학자의 전형이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미쳤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결혼이 무효라고 할 수준이다.
최고급 호텔 소유주의 딸인데 정작 이 호텔에서 숙박해본 적이 없다니!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