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10화 (310/325)

제310화 핵융합의 새로운 길 (1)

역시 돈값을 한다.

오성급, 아니 칠성급 호텔이라는 차성호텔,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로열스위트룸은 강우의 입을 쩍 벌어지게 했다.

그 룸의 화려한 조명 아래 마치 동화 속의 공주처럼 서 있는 차도도에게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미모는 그 조명보다 더 화려하게 빛났다.

“예쁘네요.”

“그렇지? 그래도 호텔이라…… 집과는 다르네.”

“아뇨, 쌤이요.”

“응?”

그를 흘겨보는 차도도의 눈가에 눈웃음이 맺혔다.

강우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속삭였다.

“그래도 그날은 너무 하셨어요.”

“언제?”

“어떻게 신 쌤한테 그런 일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지…….”

“너도 다 말했잖아?”

“제가 언제요?”

“아주 예전에, 신 쌤에게 내가 너 앞에서 노래 불렀다는 얘기도 했잖아.”

“그야…….”

차도도가 그에게 몸을 밀착했다.

“나도 궁금한 거 있어.”

“뭔데요?”

“그날…… 와인 마신 후부터 난 기억이 없거든.”

“그랬었죠. 소파에 널브러졌으니까요.”

“그때 아무 일도 없었어?”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그가 그녀를 좋아했어도 그때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였으니까.

어째 차도도의 안색이 미묘했다. 원하던 대답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강우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무리 천재여도 도저히 풀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 있다. 오늘 밤 로열스위트룸에서의 분위기도 복잡한 방정식이었다.

‘또 쫓겨나면 곤란한데…….’

예전에 쫓겨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머리에 남았다.

나란히 서서 차도도와 그는 창밖의 야경을 구경했다. 이곳의 야경은 집에서와 다른 멋을 보여준다.

“강우야, 넌 계획이 있지?”

무슨 말일까.

“그렇겠죠?”

“그래, 항상 있었으니까.”

차도도의 음성이 차분해졌다.

강우의 인생 목표는 두 가지였다.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하는 것, 부부 노벨상을 타는 것. 그 둘은 현실이 됐다. 지금은 국내에 막 들어와서 정신없으나 곧 다시 인생의 목표를 정립해야 한다.

차도도는 지금까지 강우와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앞으로만 달렸었다. 아직 교수 임용이 되지 않은 강우와 달리 차도도는 직장을 얻었기에 먼저 고민하게 된 거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꿈과 목표를 공유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서 강우는 감격했다.

오늘 밤을 주도할 판이 깔렸다.

이런 질문의 대답은 강우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다. 그의 판단이 맞는다면 차도도도 그의 이런 면을 좋아한다. 그의 매력을 과시할 수 있기에 강우는 과감히 대화를 주도했다.

“오늘 출범한 HC 핵융합연구소가 전 세계의 에너지 연구를 주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그거야 당연하고. 과학자로서 목표는 뭐야? 앞으로 무엇을 연구하고 싶어?”

“핵융합요.”

“응?”

“삶의 목표와 무관하게 우리가 추구하는 게 있잖아요?”

-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

MIT에 처음 갔을 때 그들의 마음을 뛰게 했던 그 문구다.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했어도 여전히 그 열정은 살아 있다. 그도, 차도도도.

강우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비록 상온핵융합에 성공했어도 아직 완벽하지 않아요. 핵융합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연구해야죠. 인류가 불을 다루는 수준으로.”

물질을 이루는 입자는 고차원에서 에너지와 등가다. 고차원 에너지 레벨에서 이 입자를 쪼개고 융합하면 완벽하게 핵융합을 제어할 수 있다.

표준모델에서는 모두 17개의 입자를 다룬다. 쿼크 입자인 업, 다운, 참, 스트레인지, 탑, 바텀과 렙톤인 전자, 양전자, 뮤온, 반뮤온, 다우온, 반다우온, 보손인 광자, w입자, z입자, 글루온, 힉스. 이들 입자가 한 차원 더 높은 초끈(superstring)으로 통합된다고 강우는 확신한다.

강우의 꿈은 원대하다. 핵융합을 자유자재로 제어한다면 인류는 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인 모든 물질을 제어하게 된다.

신이 부럽지 않은 꿈의 세상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지금부터 강우의 인생 목표는, 연구 목표는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다.

“엄청나네.”

차도도는 존경의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강우에게서 은은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오래전 고려 과학고에 있을 때도 강우에게서 저런 아우라를 느끼는 날이면 그녀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때는 제자인 그에게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으나 마음은 이미 그에게 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우야, 넌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야.”

“쌤도요.”

“강우야, 오늘도 그때처럼 내가 무드 잡을까?”

이 말이 듣고 싶었다.

두 번째인 것 같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날은. 결혼식을 올렸던 그 날, 그리고 오늘…….

결혼한 사이라지만 오늘은 로열스위트룸에서 숙박하는 특별한 날이 아닌가.

그 대상은 그녀의 선생님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특별한 차도도다.

강우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불과 1초 만에 차도도는 후회했다.

* * *

강우는 지방의 한 사립대학교에 내려왔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테이블에 커피를 시켜두고 창밖을 바라봤다.

오가는 학생들이 대학교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 자유로움에 강우는 몸을 내맡기고 시간을 보냈다.

“왔어?”

김상원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몇 년 만에 얼굴을 보는 걸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두 사람의 겉모습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다.

“잘 지내세요?”

“나야 그럭저럭. 넌 요즘 바쁘겠더라. 노벨상을 탄 후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 않아?”

“오라는 곳은 많아요. 몸이 하나라서 그렇죠.”

서로 간략하게 안부를 물었다.

헌팅턴 프로젝트가 망가진 후 김상원은 예상대로 졸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겨울에 졸업하지 못하고 실제 졸업까지 1년이 더 걸렸다. 그마저 강우가 열심히 도움을 준 덕분이다.

졸업 후 김상원은 자리가 없어서 여기저기 시간강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던 마도환은 김상원을 모른 체했고 그 덕분에 어려움이 가중됐다.

다행히 김상원은 그 시절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강우의 도움으로 추가 논문을 계속 썼고 학위를 받은 후 3년이 지났을 때 지방의 작은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어쨌든 목표한 교수가 되어 그는 만족했다.

“한국대에 임용된다는 소문이 있더라?”

“아직 결정은 나지 않았어요.”

“마도환 교수가 반대해?”

“그런 부분도 있고, 군대 문제도 있고.”

물론 그 둘은 지금 상황에서 큰 장애가 아니다. 단지 행정적인 처리가 늦을 뿐이다.

이제는 이곳에 온 이유를 꺼낼 시점이다.

“형, 예전에 저에게 넘기신 증거요.”

“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듯 김상원이 당황했다.

“그 일 이제 시작하려 해요.”

김상원의 안면이 굳었다.

“지금 너의 위치는 마도환 교수보다 압도적으로 높잖아? 사회 영향력도. 굳이 그럴 필요 있어?”

“난 마도환을 용서할 수 없어요.”

김상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가 보기에 강우와 마도환 사이에는 별달리 큰 문제가 없다. 단지 예전에 고등학생이었던 강우를 마도환이 조금 무시했던 정도? 또는 강우의 아내인 차도도를 마도환이 찝쩍댔다는 정도?

그런 이유에 저런 무시무시한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조금 시끄러워질 수도 있어요. 어쩌면 형이 법정에 출석해서 진술해야 할지도 몰라요. 괜찮으시겠어요?”

김상원은 강우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파악했다. 그가 말리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곧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놀라지 마세요. 앞으로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중에 제가 어떻게든 형의 앞날을 봐 드릴 테니까…….”

김상원은 이것이 강우의 진심임을 안다. 예전에 강우는 유학 가서 바쁜 와중에도 그의 연구를 도와준 적이 있으니까. 당연히 강우와 마도환 둘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고민 없이 강우를 찍을 수 있다. 사회적인 영향력에서부터 비교불가이기도 하고.

노벨상 수상자와 친구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주가가 한층 올라가니까.

“알았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잘 되기를 바랄게.”

강우는 김상원의 지지를 얻자 한층 전의가 불탔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아. 온 김에 밥 먹고 가.”

마도환의 목을 거머쥐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렸던가. 이제 그 마지막 순간에 왔다. 무려 십 년에 걸친 작전을 마무리할 시점이다.

강우는 마도환을 떠올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넌 이제 끝났어!’

* * *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를 달성할 연구를 계획하고 있을 때 헌팅턴 사의 부사장인 고든에게서 전화가 왔다.

- 강 박사!

“어? 아직 미국으로 안 돌아갔어요?”

- 일이 좀 생겨서.

합작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달리 일어날 일이 없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여서 사고가 날 일도 없고.

“뭔데요? 제가 필요한 일인가요?”

- 그렇지, 아주 많이.

어째 평범한 일이 아닌지 금방 용건을 말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상대가 말하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한참 후에야…….

- 국방장관이 한국으로 들어올 거네.

강우도 얼핏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다. 미국 국방부를 총괄하는 토머스 클리퍼드 국방부 장관이 아시아 순방 중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몇 년에 한 번씩 우방을 방문하는 행사이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솔직히 미국 대통령이 아닌 이상 국민도 관심이 없고.

“그런데요?”

- 클리퍼드 국방부 장관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바로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야.

강우의 안면이 확 구겨졌다.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차라리 상무부 장관이나 에너지부 장관이라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국방부 장관이라니.

그가 미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만나려면 그곳에 있을 때 요청이 들어왔어야 했다. 즉 그만큼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란 의미다.

헌팅턴이야 원래 방산기업이기에 국방부랑 친하니까 이런 정보를 미리 안다고 낯설지 않다.

“무슨 일인데요?”

- 나도 모르네. 다만 국방부에서 급하게 당신을 찾더라고.

“그때 부사장님도 참석하시나요?”

- 아마 그럴듯해. 나도 한국에서 대기하라니까. 덕분에 차성중공업 분들만 힘들지. 하하.

그래서 고든과 그레이엄이 아직 한국을 떠나지 않고 미적대고 있나 보다.

- 아마도 그 자리에 CIA 국장도 참석할 거야.

국방부 장관에 CIA 국장까지. 과학자인 강우로서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인사다.

그가 핵융합 전문가이니 분명히 핵융합 관련 일인데 그렇다고 그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전문가는 아니니까.

“하아아. 지금 영화 찍는 건 아니죠?”

- 천하의 강 박사도 긴장하나 보군.

“찾아오는 사람들 면면이 그렇잖아요?”

-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게. 그리고……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국도 정부 관계자들은 조심해서 다뤄야 해. 입맛대로 안 해주면 괜히 이리저리 시비를 걸거든. 적절하게 알아서 처신해주게.

“그러죠. 미리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괜한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핵융합 연구자의 업보죠.”

고든의 당부는 잘 알겠다. 기업가인 그로서는 당연한 염려다.

물론 강우는 모난 성격이 아니어서 특별히 삐딱하게 굴 생각은 없다. 저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안건에 따라 태도를 달리할 생각이다.

지금의 그는 미국 정부라도 함부로 대하기 힘든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니까.

이럴수록 침착하게 계획을 세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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