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11화 (311/325)

제311화 핵융합의 새로운 길 (2)

그날 저녁 집에서 강우가 새롭게 설정한 목표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를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에 몰두하고 있을 때 당황한 차도도가 서재로 급히 올라왔다.

“강우야 손님 오셨어!”

“누군데요?”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정원장!”

말이 안 되는 인물 두 사람이다.

정치와 전혀 관계없는 그이기에 그들이 방문할 일도 없다. 물론 누가 퍼트리는지 모르나 그를 국회의원에 출마시키자거나 여당으로 끌어들여 이미지 상승을 노리자는 쓸데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긴 한다.

먼 훗날, 은퇴한 다음에야 가능한 시나리오가 왜 지금 나오는지. 지금의 그는 연구에 몰두해야 하기에 한눈팔 생각이 전혀 없다.

“왜 왔데요?”

“나도 모르겠어.”

안면을 찌푸리는 그에게 오히려 차도도가 미안해했다.

대충 정리하고 강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낯이 익은 한 사람과 처음 보는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민정수석은 청와대를 예방하면서 한 차례 만났기에 그나마 어색함이 덜하다.

“오셨어요?”

강우가 인사하자 국정원장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국정원장입니다. 갑자기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뉴스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기에 강우도 누구인지 안다.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차도도가 차를 내왔다.

잡담을 나누다가 자리가 마련되자 민정수석이 먼저 안건을 꺼냈다.

“혹시 미국에서 연락받으셨습니까?”

낮에 고든이 전화했던 내용인가보다.

“국방장관과 CIA 국장이 온다는 소식 말입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듣기는 했는데…… 무슨 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약간은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두 사람은 금방 내색을 지웠다.

정작 놀란 사람은 차도도였다. 그녀는 안면을 찡그리며 강우에게 눈치를 줬다.

“혹시 짚이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반대로 강우가 물었다. 집까지 찾아왔으니 이들도 아는 바가 있다고 봐야 한다.

놀랍게도 민정수석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모릅니다. 워낙 갑자기 들어온 정보라서요. 파악하기로는 미국도 사전에 계획된 움직임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보통은 이런 식으로 일정을 잡지 않거든요. 내부에서 커다란 변경이 있었을 겁니다. 큰 전략적인 전환이라 해야 하나.”

국방장관이니 군사적인 문제다.

현재 강우는 해양에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에너지 산업이 국가 경제의 기본이기에 발전소는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시설이다. 발전소 몇 기가 망가지면 국가 전체에 혼란이 발생하니까.

다만 그런 문제 때문이라면 국방장관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너무 뜬금없다.

“그 이상의 문제겠지요.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요.”

핵융합 발전소가 미래에는 커다란 경제적 무기가 될 수 있으나 아직은 아니다. 그렇기에 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국 측에서 의견을 내놓으면 그때 적절히 대응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전 과학자라…… 국내외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시겠지요. 다만 그날 미국 측 인사를 만나면 그쪽에서 비밀 보장을 요구하더라도 우리 쪽에 약간은 귀띔해주셔야 합니다.”

대충 과학자 이전에 한국인 아니냐는 주문이다.

“어려울 것 없지요.”

강우도 흔쾌히 수락했다. 어쨌든 그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가까우니까.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나쁜 사이도 아니고.

방문한 목적을 마무리한 두 사람의 안색이 훨씬 밝아졌다.

“아, 그리고…… 내일 한국대에서 교수 임용을 발표할 겁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군 문제가 해결되었나 보네요.”

“사실 해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면제가 타당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어서요. 단지 한 사람을 위해 제도를 바꾸는 문제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요. 현재 있는 전문연구요원제도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보다 강 박사님이 국가의 명예를 더 빛내지 않았습니까? 원래 전문연구요원제도를 통한 과학기술인력 육성은 시험을 쳐서 선발합니다만 강 박사님 경우엔 그 시험이 면제되었습니다.”

솔직히 강우는 전혀 시험이 겁나지 않았다. 그의 천재성이라면 어떤 시험이든 며칠만 준비하면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노벨상을 타신 석학에게 시험을 보라고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국정원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강우는 단지 미소로 응답했다.

어쨌든 그동안 속을 썩여왔던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 임용이 해결됐다. 이제 마도환과 동등해졌고 앞으로 마도환의 눈치를 볼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도환을 손 볼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강우 사단의 인물들이 착착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한국대 물리학과, 차도도는 물리교육과, 신새벽은 화학과. 앞으로 고곽천재 친구도 학위 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오면, 또는 해외에서 자리를 잡으면 더욱 확고한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밤늦게 실례 많았습니다.”

민정수석과 국정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을 나서던 국정원장이 급히 말을 추가했다.

“그리고 당분간 두 분에게 경호원이 붙을 겁니다. 두 분께선 이제 국가적으로 중요한 분들이니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럴 필요까지야…….”

“아닙니다. 귀찮게 하진 않을 겁니다.”

난데없이 경호원이라니. 어차피 강우는 상관없었다.

두 사람을 내보내고 강우는 차도도에게서 축하를 받았다.

“강우야, 드디어 실업자에서 벗어났네.”

“에이, 제가 언제 실업자였다고! 그래도 헌팅턴 사외 이사라고요!”

“이제는 차성중공업 사외 이사이기도 하지.”

그가 국내로 들어오자마자 차준범이 그를 차성중공업 사외 이사로 임명했다.

둘이서 자축하고 있자니 전화기가 울렸다. 요셉 교수다.

“아! 교수님?”

- 강 박사. 혹시 정부에서 연락받았나?

요셉 교수가 말하는 정부는 한국 정부가 아닌 미국 정부다.

“국방장관 오신다는 거요?”

- 이야기를 들었나 보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요셉은 미국 정부의 과학자문위원이기도 하니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리란 직감이 왔다.

- 실은 며칠 전에 정부 관료와 미래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예전에 자네가 나에게 말했던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어떤 것요?”

-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 기술.

한국으로 건너오기 직전에 요셉이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 거냐고 묻기에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두루뭉술하게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미 상온핵융합 발전을 시작하면서 일부 현실화되기도 했고, 그가 생각하기엔 이전과 특별히 달라질 연구 주제는 아니었다. 단지 그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요?”

- 그 과제가 정부 요원에게 인상 깊었나 봐. 급히 국방장관이 한국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

“에이, 그럴 리가요.”

강우는 가볍게 일축했다.

솔직히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를 앞으로 추구할 목표로 선언하긴 했지만, 강우 본인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하지 못 한 상태였다. 막연하게 현재까지 개발한 상온핵융합을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것뿐.

핵융합 연구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을 불사를 뿐이다.

-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네.

“예?”

- 그날 이후 국방부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와 윈터 교수, 해리스 교수 모두에게 자문했네. 어디까지 핵융합을 제어할 수 있는지. 미래의 전망은 어떤지.

요셉, 윈터, 해리스는 MIT의 핵융합 3인방이니 놀랍지 않지만, 과연 그 세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문득 강우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 세 사람의 가장 중요한 제자를 꼽으라면 요셉 아래에는 그와 차도도가 있고, 윈터 밑에는 신새벽이 있으며 해리스 밑에는 최대우가 있었다.

그와 차도도, 신새벽, 최대우가 연합하면 MIT 3인방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아니 실제로는 더 엄청난 성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미국 국방부에서 MIT 3인방을 만나 조언을 구했고 이제 그를 방문한다는 뜻은 차도도와 신새벽, 최대우에게도 연락할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짐작가시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 내 생각에는…… 자네가 개발한 핵융합 기술과 군사 무기의 연관성을 찾아낸 것 같아.

“에이, 전 무기와 담을 쌓았는데요?”

- 그렇게 넘겨버릴 일이 아니야. 어쨌든 군사기술은 역사적으로 봐도 양면성을 갖고 있었어. 과학 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이지만 인류를 살상한 악마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조심해서 대처하게.

요셉은 몇 가지 당부를 추가한 후 전화를 끊었다.

강우는 기분이 착잡했다. 무슨 일이 추진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교수 임용을 축하하는 분위기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 * *

불과 이틀 후에 강우는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겉으로는 각종 증명서 발급 때문인데 실제 목적은 달랐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은밀한 회의장으로 안내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익숙한 사람은 고든 부사장뿐이었다.

“강 박사입니까?”

안경을 낀 나이 든 사람이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소개하지요.”

짐작한 대로 클리퍼드 국방부 장관과 CIA 국장이라고 했다.

강우는 정치에 관심이 없기에 상대가 누구든 신경 쓰지 않았다.

“바쁘니까 용건만 간략하게 말씀하시지요.”

다소 건방진 태도였으나 불쾌하게 여기는 자는 없었다.

“흠, 강 박사님, 상온핵융합 발전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연 핵심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알다시피 과학 발전은 한 사람이 아닌 모든 과학자의 노력으로 이뤄집니다. 전 그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강우는 원론적인 의견을 말했다.

“요셉, 윈터, 해리스 교수는 당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앞으로의 개발 또한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럼 그렇다고 해두죠.”

강우는 찌뿌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이……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라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만.”

“대략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핵융합 발전소에서 효율 높은 에너지를 얻어내겠다는 뜻입니다. 대형, 소형 상관없이요. 과거의 원자력 발전과 큰 차이 없습니다. 예전에 핵분열 원자력 발전에도 대형 발전소가 있었고 잠수함 같은 좁은 곳에서는 소형 발전도 있었으니까요. 이를 더 편하게 해보자는 뜻입니다.”

강우의 입에서 핵융합 기술의 찬란한 미래가 펼쳐졌다.

그는 산업 여러 분야에서 적용 가능한 핵융합 기술을 설명했다. 당연히 앞에 있는 이 세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기에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론적인 부분보다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위주로 나열했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지는지에 중점을 뒀다.

일장연설하면서 강우는 국방장관과 CIA 국장의 표정을 관찰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그의 설명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체 왜 그를 부른 걸까.

모든 설명을 마쳤을 때 두 사람이 형식적인 호응으로 응답했다.

차가운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자니 클리퍼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소폭탄이라고 들어봤습니까?”

“압니다.”

“그 원리도 아십니까?”

“핵물리학을 전공했으니 모를 수 없지요.”

대화 주제로 군사 무기가 떴다.

수소폭탄은 수소 핵융합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한 폭탄이다. 이때 핵융합 환경을 얻기 위해 우라늄 원자폭탄을 이용해서 방사능이란 치명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최고 위력의 살상 무기이기도 하다.

불길한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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