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화 핵융합의 새로운 길 (3)
잠시 침묵이 흘러간 후 클리퍼드 국방장관이 입을 열었다.
“현재 국가를 지탱하는 최고 전략무기가 바로 수소폭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수소폭탄은 전쟁에서 쓰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전쟁 억지력만 지니죠. 왜 그럴까요?”
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이들의 의도가 짐작되지 않는다.
“전쟁이 나서 교전이 벌어지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죠. 재래식 무기든 현대식 무기든 엄청난 소모전이 벌어집니다. 그보다 적군 한복판에 수소폭탄 한 방 딱 터트리는 게 훨씬 깔끔하지 않습니까?”
“…….”
“솔직히 장기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거나 죽느니 한 방에 처리해서 전쟁을 빨리 끝내면 사상자도 훨씬 적습니다. 그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요?”
강우의 머리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억이 일어났다. 세계 대전 당시 화학자 하버는 같은 논리로 화학무기를 개발했다. 결과는 독일의 패망을 늦춤으로써 더 큰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지 못해 강우가 대답했다.
“수소폭탄을 비롯한 원자력 무기는 그 후유증이 있습니다. 바로 방사능 낙진이죠. 폭탄이 떨어진 곳은 수십 년, 수백 년 죽음의 땅이 됩니다. 점령한 땅이 오염되면 전쟁할 이유가 사라지죠. 게다가 방사능에 중독된 사람들은…….”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수소폭탄은 있어도 쓸 수 없는 무기죠.”
클리퍼드가 옆에 둔 물잔으로 목을 축이면서 대화를 전환했다.
“얼마 전 요셉 교수에게 자문받던 우리 측 연구원이 중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들어보시겠습니까? 그 연구원은 천재가 확실합니다. 하하. 진짜 천재인 강 박사만큼은 아닐지라도요.”
불길함이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했다.
“강 박사님은…… 핵융합을 인류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연구하신다면서요? 이미 일부 실현되었고요. 발전소에서 핵융합을 정교하게 컨트롤해서 정확히 목표한 양만큼만 에너지를 뽑아내도록 할 수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상온핵융합이라 고온 고압이 필요 없고요.”
“그렇습니다.”
“이걸 수소폭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드디어 우려하던 문제가 터졌다.
미처 생각지 못하던 문제로 번져가자 강우는 할 말을 잃었다.
“강 박사님의 기술을 사용하면 수소폭탄에서 기폭제인 원자 핵분열이 필요 없게 됩니다. 즉 방사능 낙진이 없는 그야말로 강력한 폭탄이 되는 거죠. 물론 초기에 발생하는 중성자 문제가 있기야 하지만 그 범위도 협소하고 지속하지도 않습니다. 방사능이 없는 수소폭탄! 전쟁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탄생하는 거죠.”
옆에 있던 CIA 국장이 설명을 곁들였다.
“게다가 박사님의 기술은 극소형 원자로에도 적용 가능하다면서요? 120밀리 전차에서 수소폭탄을 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전차 한 방에 아파트촌 수십 동이 날아갈 가공할 무기! 만일 이를 총알에 응용하면? 수소폭탄이 들어간 총알 말이죠. 이 총으로 쏘면 건물 하나는 우습게 날아가겠죠?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강우는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상상력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과학은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다. 일찍이 유명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하버의 질소고정 기술은 공기에서 빵을 만들어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했으나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폭탄을 제조하는 기술로 전용됐다. 그리고 그는 노벨상 시상대에서 다른 과학자들의 수상 거부라는 질타를 받았다. 하버의 인생 마지막은 자살이었다. 그의 가족 모두가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었다.
강우가 개발한 상온핵융합 기술은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했으나 여기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인류에게 사상 초유의 위력을 갖춘 살상 무기를 제공한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지금까지 강우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으로 핵융합을 연구해왔다. 핵융합을 더 안전하게, 더 소규모로 제어하는 기술이 궁극적으로는 수소폭탄을 전쟁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작은 탄환 하나로 적진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는 가공할 무기를 만든다.
강우는 그 참상을 떠올리자 몸이 떨렸다.
“흠, 아직 거기까진 상상해보지 않으셨군요?”
“그렇습니다.”
강우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너무 고민하지 마시지요. 역사를 보면 위대한 군사기술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인류의 문명을 전환한 과학 문명 대부분이 원래는 군사 무기 개발에서 탄생했으니까요. 핵융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는 수소폭탄이었잖습니까. 지금은 그 기술이 과학에서 꽃피우고 다시 군사 무기로 돌아오는 단계일 뿐입니다.”
방사능의 위험이 없기에 핵융합은 이런 문제를 불러왔다. 우주에 존재하는 궁극의 에너지는 수소가 철이 될 때까지 융합하는 과정과 우라늄이 철까지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다. 하나는 핵융합 에너지이고 하나는 핵분열 에너지다. 하나는 수소폭탄이고 하나는 원자폭탄이다.
“인류가 제어하는 수소폭탄은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이 있다고 합시다. 이를 날려버릴 유일한 방법은 바로 수소폭탄입니다. 먼 훗날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지구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 수소폭탄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외계인이 있다면요. 박사님은 인류를 구한 영웅이 될지도 모르죠.”
헛웃음이 나왔다.
최근에 강우는 인생의 다음 목표를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로 잡았다. 만일 그 목표를 달성하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그가 생각했던 장밋빛 미래가 참혹한 지옥으로 바뀌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이 아니라 세상을 파국으로 이끄는 광기가 아닐까.
“젠장!”
강우는 허탈한 욕설을 내뱉었다.
CIA 국장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현재 강 박사님이 연구하는 기술을 종합했을 때 우리는 이 무기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강 박사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임과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우리 편이어야 하는, 절대로 적이 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미국 국방부의 계획에 동참하라는 뜻이다.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바로 강대국의 법칙이니까.
“아직 결정된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천천히 결정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강 박사님에게 호의적입니다. 모든 요구를 수용할 용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강 박사님의 신변 안전을 저희가 책임지고자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전 무기를 연구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압니다. 하지만 그 결심이 언제까지 변하지 않을지 누가 압니까? 예를 들어 적국에서 박사님 가족을 위협하고 그 기술을 빼내려 한다면요? 우리도 그 위험을 묵과하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거든요?”
강우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두 사람을 노려봤다.
국방장관과 CIA 국장이 비즈니스 미소로 그를 달랬다. 그들 또한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도 요청해 두겠습니다. 강 박사님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고요. 다만 오늘 회의 내용이 외부로 새어 나가면 절대 안 됩니다. 외부로 알려질수록 본인이 위험해진다는 것쯤은 아시겠죠? 한국 정부에도 비밀로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쪽도 같습니다. 당신이 협의할 사람은 우리 둘뿐입니다.”
회의가 끝났다.
강우는 멍한 상태로 대사관을 나왔다.
들어갈 때의 찬란했던 이 세상이 지금은 회색빛으로 변했다.
강우는 처음으로 과학기술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어쩌면 그도 비극의 주인공 하버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날 보고 유난히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 * *
늦은 밤, 차도도의 아파트에 세 사람이 모였다.
강우와 차도도와 신새벽.
집으로 돌아온 차도도는 완전히 가라앉은 강우의 눈치를 봤고 기분 좋게 떠들며 방문한 신새벽도 곧바로 차도도의 눈짓에 제압됐다.
“우리 교수님 오늘 왜 이래?”
“…….”
“누가 감히 심기를 건드렸어? 내가 한주먹에 날려줄게! 누구야?”
신새벽이 방방 뛰었다.
차도도가 음료와 와인에 간편한 안주를 날라와서 소파에 같이 앉았다.
“신 쌤? 누가 건드렸는지 궁금해요?”
“마도환이야? 노창열인가?”
“아뇨.”
“그럼 누군데?”
“클리퍼드 미국 국방부 장관, CIA 국장.”
“그래 그깟 녀석들…… 어? 누구라고?”
주먹을 휘두르던 신새벽의 동작이 얼음처럼 굳었다.
차도도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일개 과학자가 정부, 그것도 미국 정부와 맞설 일이 어디 있을까. 강우의 분위기는 그 일이 간단치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강우야, 무슨 일인지 말해봐. 혼자 고민하지 말고.”
차도도가 조심스럽게 그를 달랬다.
그녀는 와인을 채워 그의 앞에 놓았다. 신새벽에게도 한잔. 다만 자신 앞에는 음료수를 놓았다. 이런 심각한 날 술에 취해 빠질 수는 없기에.
강우는 대사관에서 있었던 회의를 털어놓았다.
국방장관과 CIA 국장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으나 이들은 그와 함께 핵융합 연구를 해온 동료다. 그가 거부하면 그다음 차례는 이 두 사람이기에 알리지 않을 수 없다.
말을 마쳤을 때 차도도와 신새벽 또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들도 상온핵융합 기술이 그런 식으로 전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럼 네 인생의 다음 목표인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가 실현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차도도는 얼마 전 호텔에서 들었던 목표를 떠올렸다.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어마어마한 살상 무기가 탄생하는 거죠.”
차도도의 손에서 깎고 있던 과일이 툭 떨어졌다.
그녀는 강우의 아픔을 이해했다.
강우의 꿈이 사라졌다. 꿈을 좇는 자가 빛난다고 강조하던 그가 꿈을 잃어버렸다. 사실상 강우를 연구로 내몰던 가장 강력한 요인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다음 목표를 포기해야죠. 핵융합 연구도 이쯤에서 일단 멈춰야죠.”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은 군사 무기로 전용할 단계까지 이 기술을 공개하지 않았다.
차도도는 지금까지 그녀가 이해한 핵융합을 차근차근 머릿속에서 되짚었다.
상온핵융합 기술은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대부분 헌팅턴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 단계의 세부적인 기술은 아직 그들이 쥐고 있었다.
그녀가 연구한 기술만으로는 앞으로 더 연구를 계속한다고 해도 혼자서는 살상 무기로 전환하기 쉽지 않다. 그녀의 연구 방향은 조금 다른 쪽이었으니까. 그런데 신새벽은 양자화학에 기반을 둔 핵융합 안정화를 추구했기에 핵융합의 소형화에 특화되어 있다.
신새벽의 연구는 포탄이나 총알에 수소 핵융합 재료를 실을 수 있는 핵심이다. 다만 그녀 혼자만으로는 절대로 군사 무기화할 수 없다.
“지금 보니 강우 네가 반드시 있어야 해.”
그녀의 연구와 신새벽의 연구를 종합해서 현실화하는 사람이 강우였다.
물론 과거에도 강우의 역할은 비슷했다. 이제는 그녀와 신새벽이 박사를 졸업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검토해보니 틀린 생각이었다. 여전히 두 사람은 강우와 강하게 엮여있었고 강우가 없으면 절반의 효과도 내기 어려운 그런 연구를 하고 있었다.
새삼 강우가 그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실감했다.
신새벽이 의문점을 드러냈다.
“그럼 우리 세 사람만 군사 무기 쪽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
거기까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강우의 안색이 한층 어두워졌다.
“또 있어?”
강우는 착잡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별 상관없지만…… 아직도 중요한 인물이 한 사람 더 있어요.”
“누군데?”
“최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