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황 사장 (1)
최대우는 MIT 원자핵공학과의 미치 해리스 교수 밑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해리스 교수 아래에서 수학하면서 MIT 3대 핵융합 전문가라던 요셉, 윈터, 해리스에 이어 후대의 3대 전문가인 강우, 신새벽, 최대우가 탄생했다.
강우 사단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요셉의 연구 분야와는 차별화된 윈터와 해리스의 연구가 유입되면서 한층 활기를 불러왔으니까.
결과적으로 최대우는 지금 강우 사단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과거보다 한층 강화된 위상으로.
지금 그 최대우는 박사 4년 차이고 1년 후면 학위를 받게 된다. 고곽천재 가운데는 강우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대우가 왜?”
“원자핵공학과는 애초부터 과학기술의 응용에 훨씬 강점을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듀테륨과 트리튬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하고요. 특히 이 분야는 항성 내부를 연구하는 대우의 전공이기도 하죠.”
수소폭탄에서는 반응을 더 쉽게 일으키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이용하기에 최대우와 연관성이 대단히 깊다.
“대우 졸업 논문이…….”
“졸업 논문보다는 앞으로 시작할 연구가 문제예요. 대우가 연구를 계속하면 조만간 국방장관과 CIA 국장이 반드시 찾아가겠죠.”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라고 강우는 확신했다.
“그럼 MIT의 요셉, 원터, 해리스 세 교수를 모아도 개발할 수 있잖아?”
“그건 어렵죠. 요셉 교수가 저를 대체할 수 없듯이 해리스 교수도 대우를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대략 상황이 정리됐다.
그나마 다행이면서 불행이라면 군사 무기화의 모든 열쇠를 최종적으로 강우가 쥐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한두 사람 빠져도 상관없지만, 강우가 빠지면 연구 자체가 좌초한다.
그렇기에 강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압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강우가 거절하더라도 남은 사람으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덤빌지도 모른다. 그때는 최대우가 핵심 인물이 된다.
“그렇다고 무기를 만드는 일에 협력할 수는 없잖아?”
차도도의 의지도 확고했다.
강우도 이 부분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핵융합을 연구해왔지 세상을 망하게 하려고 연구하지는 않았다.
“대우에게도 앞으로의 연구를 중단하라고 권유해야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전화로 하기엔 너무 중요한 이야기다. 만일 그 전화를 미국이든 한국이든 도청하면 그 또한 골치 아프고.
“대우는 졸업 후 어떻게 한대요?”
최대우가 나중에 미국에 남을지 국내로 들어올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강우도 최대우와 장래를 깊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차도도와 신새벽이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자신의 연구 목표가 중대한 갈림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핵융합을 연구하더라도 군사 무기로 전용 불가능한 분야에 치중해야 한다.
“일단 모두 모여서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눠봐야겠어요.”
미국 측에서는 외부로 누설하지 말라고 했으나 어차피 핵융합을 연구하는 동료이자 관련자들이기에 상관없다. 때로는 이런 일을 처리할 때 오히려 공개적인 토론이 더 나은 법이다.
“모두를 한국에 불러들이려면…….”
강우가 고민하는 사이 차도도가 의견을 냈다.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해. 대표 연사로 노벨상 수상자인 너 이름 넣고. 마침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니 그 기념으로 하면 딱 되겠네.”
지금 한국 전체가 헌팅턴과 차성중공업이 합작한 핵융합 발전소 건설 계획에 술렁이는 상태다. 그렇다 보니 심포지엄 후원을 받기도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게다가 노벨상 수상자인 강우와 차도도가 오프닝 강연 연사로 나선다면 흥행도 보장된다. 이를 빌미로 최대우를 비롯하여 고곽천재와 하은찬, 유혜림까지 모두를 일시적으로 한국에 모을 수 있다.
“나머지는 닥쳐서 고민해. 혼자서만 고민하지 말고. 그러다 몸 버린다?”
신새벽이 충고했다.
강우는 그 말을 따랐다. 인류는 지금까지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다.
핵융합 무기 또한 시간의 문제일 뿐 그가 개발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개발된다.
“그러죠. 모두 모아서 의견을 들어보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도 같이 논의해 봐야겠어요. 그때까지는 고민하지 않기로 해요.”
“그래, 그래야 강우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잔 더할까? 도도는 내버려 두고.”
신새벽이 잔을 들었다.
강우는 신새벽과 잔을 부딪쳤다.
* * *
강우는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된 직후 국제 핵융합 심포지엄 개최를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행사에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노벨상 수상자인 강우와 차도도의 강연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핵융합 연구자들은 당연히 기대했고 일반인들도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을 원했다.
덕분에 강우는 일반인을 위한 강연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물론 강연은 강우의 장기이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HC 핵융합 건설의 행보를 주시했다. 이 회사가 기업공개를 진행하면 강우가 국민에게 약속한 1인당 32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손에 쥐기 때문이다.
HC 핵융합 건설의 설립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고 동해안 핵융합 발전소 건설 또한 별다른 이견 없이 착공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기존 원자력 발전소를 위험 없는 핵융합 발전소로 바꾼다는 것만으로도 찬성했다.
국제 심포지엄 행사가 다가오면서 외국 여러 곳에서 연구자들이 몰려왔다.
다만 강우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핵융합 심포지엄을 개최하기 바로 전날 강우는 서울 근교의 한적한 카페에 발을 디뎠다.
불과 서너 대가 주차된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우는 카페 간판을 확인했다.
뉴클리어 퓨전 카페.
“카페 이름이 참…….”
황당한 카페 이름이었다. 최근에 강우의 등장으로 핵융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카페 이름으로 쓰니 그 딱딱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하긴 고려 과학고 앞에 가우스 카페가 있고 중앙 과학고 앞에 오일러 카페도 있으니 뉴클리어 퓨전 카페 정도야…….
강우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들끓는 분노를 잠재웠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강우로 빙의한 후 단 하루도 잊지 않았던 그 일을 지금 시작하려 한다.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처럼 최근에 문을 열었나 보다. 점심시간인데도 카페에 빈 좌석이 많다. 전체 좌석이 100석은 족히 나올 법한 대형 카페다. 반면에 손님은 열 명 남짓. 이래서야 장사가 되나?
그 한적함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상대도 같은 이유로 이곳을 접선 장소로 택했겠지.
“어디에 있나…….”
주위를 둘러보던 강우는 카페 구석 자리에 동떨어져 홀로 앉은 한 남자를 발견했다. 파란색 셔츠를 입은 평범한 30대 후반, 40대 초쯤의 남성, 짧게 친 스포츠머리에 건장한 체격은 흡사 운동선수를 보는 듯했다.
판매대에서 아메리카노를 받은 후 강우는 구석 테이블로 걸어갔다.
“황 사장님?”
“아! 오셨습니까?”
파란 셔츠의 황 사장이 벌떡 일어나서 그를 환대했다.
강우는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를 탐색하는 황 사장의 시선이 느껴졌다.
“김상원 교수님에게서 소개받았습니다.”
“네, 압니다. 그러잖아도 잘해드리라고 당부하시더군요.”
강우는 김상원을 통해 심부름센터 황 사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사람을 찾는 단순한 의뢰라고 언질을 줬었다.
김상원은 마도환 교수 밑에 있을 때 황 사장과 연락했었기에 황 사장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강우입니다.”
“압니다. 요즘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이시니까요.”
황 사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유명인일수록 몰래 처리해야 할 구린 일이 많다. 반면 그럴수록 더 은밀해야 하기에 극도의 비밀이 요구된다. 당연히 의뢰비도 비싸진다. 황 사장이 딱 좋아하는 케이스다.
“무슨 일을 해드릴까요? 다만 저는 조금 비쌉니다.”
“압니다. 얼마든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강우의 눈이 상대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건장한 남자다. 부드러운 인상은 아니어도 그렇다고 상대방을 위협할 험악한 얼굴도 아니다. 다부진 각진 얼굴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운 측면도 있다.
‘이 녀석이 확실해.’
상대를 보는 순간 강우는 오래전 손강우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마도환과 함께 그를 밀쳐 벼랑으로 떨어트리던 바로 그 남자. 바로 손강우의 원수가 황 사장이다.
몸 깊은 곳에서 피가 끓어올랐다. 간신히 흥분을 억누르면서 강우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황 사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찾으시는 분이 꽤 신경 쓰이는 분인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특징을 말씀해 보시죠. 힌트가 될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강우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대략 지금부터 10년쯤 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막 중학교를 졸업한 때였고요.”
“아직 어릴 때였군요.”
“그날은 눈발이 날리던 한겨울이었고 저는 설악산에 올라갔습니다. 대청봉 꼭대기 말입니다.”
“흠, 겨울철에 산행요? 위험했겠네요.”
“그래도 겨울 산을 타는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가보셨죠?”
“그렇죠. 저도 겨울 산 좋아합니다.”
황 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강우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풀었다.
“오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각이었을 겁니다. 날이 나빠서 대청봉 꼭대기에는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급기야 흐리던 날씨가 더 나빠져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요. 하늘은 구름에 뒤덮였고 먹구름에 안개까지…… 날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런 자잘한 이야기는 생략하시고요. 핵심만 말씀해주세요. 필요한 부분은 제가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길어지는 이야기를 황 사장이 재빨리 잘랐다.
“알겠습니다. 그때 제가 대청봉 꼭대기 바위 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올라오더군요. 그 남자가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더 올라왔습니다.”
“그럼 총 4명이었던 거죠? 의뢰할 분이 거기에 있습니까?”
“네, 그 속에 있습니다.”
“특징이? 이름이나 전화번호나…….”
“들어보세요. 하여튼 세 사람이 올라온 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저는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봤죠. 그 세 사람은 서로 아는 인물 같았습니다. 정확하게는…… 한 사람은 한설대학교 교수였고 한 사람은 한국대학교 교수라고 하더군요.”
여전히 황 사장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강우는 과거의 그 날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대충 그 내용이…… 미국에서 연락이 오니 마니, 프로젝트가 어쩌고…… 그러더군요.”
“그것만으로는 아직 전혀 정보가…….”
“확실한 정보가 있어요. 그때 한 사람이 상대의 이름을 부르더군요. 가장 처음 올라온 남자의 이름이 강우였습니다. 저랑 이름이 같아서…… 제가 아직도 기억합니다.”
“가, 강우요?”
황 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듯했다.
“그리고 둘이서 말다툼을 벌이더군요. 연구 과제와 교수 임용이 어떻고…….”
“그래서요?”
강우는 감정을 삭이면서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정상에 눈이 쌓여 있는 데다 날씨가 나빠서 무척 위험했습니다. 조금만 잘못 디뎌도 실족사하거든요. 그렇게 그 둘이 말다툼하다가 강우라는 사람이 한 발 뒤로 물러서더군요. 그 순간…….”
황 사장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지금까지 옆에 있던 남자가 그 강우란 사람을 밀쳤습니다.”
쾅!
갑자기 황 사장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