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화 황 사장 (2)
“너 뭐야?”
황 사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순간 카페 내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강우를 치려고 뻗은 무시무시한 주먹을 주변 눈치 때문에 간신히 내리면서 황 사장이 부리부리한 눈을 더욱 크게 떴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황 사장, 앉지? 다른 사람들 눈도 있는데.”
“으으, 이 녀석이…….”
황 사장이 간신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적개심이 펄펄 끓어 넘쳤다.
“이야기를 계속하지. 다시 말하자면 대청봉 꼭대기에서 강우란 사람과 다른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였지. 말이 잘 안 통했던가 봐. 두 사람의 어투가 점점 험악해지더니…… 급기야 체격 좋은 한 사람이 강우를 밀치더라고. 어떻게 되었겠어? 그 높은 산봉우리에서 떨어졌으니.”
“으으, 당신 정체가 뭐야?”
“나? 이야기했잖아? 강우라고. 그때 떨어진 강우란 사람이 누구인지 신문에 나서 알게 됐어. 손강우라더군. 한설대학교 교수이자 핵물리학자. 이제 내가 의뢰할 사람을 알려줄게. 그 손강우를 죽인 두 사람을 찾고 싶거든. 가능한가?”
“미, 미친놈! 네놈이 어떻게…….”
“난 우연히 현장을 목격했을 뿐이야. 그동안 가슴에 품고만 있었는데 이제 그 진실을 알고 싶더라고. 그 두 사람이 죗값을 치렀는지 확인도 하고 싶고.”
황 사장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감정이 격해졌다.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10년이 지난 후에 목격자가 나타나다니!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강우의 의뢰가 끝났다.
당연히 강우는 황 사장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네 녀석과 마도환이 저질렀다는 걸 난 알아. 증거? 차고 넘치지. 무려 내가 십 년간이나 모았는데.”
황 사장은 그제야 오래전 마도환이 강우의 뒷조사를 의뢰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차도도의 배경이 너무 뜻밖이어서 강우를 안중에 두지 않았었다.
“자수해서 광명 찾아라. 좋은 말이지? 어때? 생각 있나?”
“흐흐, 강우! 까불지 마! 그 모든 증거와 증인은…… 오직 너뿐이야. 그걸 누가 믿을까? 마도환은 권력의 끄나풀을 잡고 있다고.”
“자신 있으면 시험해보든가. 마도환이 더 센지, 아니면 내가 더 센지. 요즘 티비를 봤으면 어린애도 알 텐데.”
황 사장은 가슴이 턱 막혔다.
이 위기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유일한 탈출구라면 눈앞의 이 젊은 녀석을 죽이면 된다. 사람 죽이는 일이야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다. 그의 실력이라면 이런 순둥이 녀석쯤은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신분이…….
“경찰에 신고했나?”
“신고? 아직 안 했지.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순간 황 사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카페 안에서는 이목이 쏠려 죽일 수 없어도 카페만 벗어나면…….
“좋아. 자수하지.”
황 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강우는 녀석의 속셈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사람을 밥 먹듯 죽이는 놈이니 녀석의 머릿속에서 지금 어떤 작전이 돌아가고 있을지 뻔했다.
게다가 10년 전의 일로 죄를 덮어씌워 봐야 한계가 있다. 사실 그가 목격했다는 말은 거짓 아닌가. 당시의 의료보험 기록을 뒤져도 그가 설악산에 없었다는 게 밝혀진다. 오늘 그가 밝힌 목격담은 실제 그가 손강우 시절에 경험한 그대로지만 이를 사람들에게 믿게 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강우는 녀석을 도발하도록 만들었다.
강우도 따라 일어났다.
그를 힐끔 살핀 황 사장이 천천히 카페 문으로 걸어 나갔다.
근교의 카페라 주차장은 한산했다.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느 차요?”
황 사장이 그에게 물었다.
“왜?”
“자수하려면 경찰서로 같이 가야 하지 않나?”
“저 차.”
강우는 주차된 차를 가리켰고 황 사장이 바짝 그에게 붙었다.
국정원장이 그를 보호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미국 CIA에서도 같은 의사를 내비쳤었다. 과연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지금 황 사장은 명백하게 그를 해칠 의사를 숨기고 있다. 그를 따라다닌다던 경호원들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지?
강우가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네놈은 함부로 끼어들지 말았어야 했어. 왜 남의 일에 오지랖이 넓은 거냐?”
뒤에서 힐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면을 찡그리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황 사장이 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동시에 황 사장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마치 그를 껴안듯이 한쪽 팔을 뻗으면서 나이프를 쥔 손을 몸에 바짝 붙이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그를 찔러왔다.
푸슉-
나이프가 그의 배에 닿으려는 순간 황 사장이 휘청거렸다.
쨍그랑-
손에서 나이프가 떨어졌다.
주차장 이쪽저쪽에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다리에 총을 맞은 황 사장은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토해냈다.
“위험했습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강우에게 달려왔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상대의 공격을 눈치챘기에 적어도 한 번의 칼질은 피할 자신이 있었다. 설사 다치더라도 치명상을 피할 정도는 된다. 그보다는 그의 위험을 적시에 알아챈 경호원들의 눈썰미와 날렵함이 놀라웠다.
한쪽에서 요원들이 황 사장을 열심히 제압하는 사이 지휘관이 자신을 소개했다.
“국정원 이한수 팀장입니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구입니까?”
“살인자죠.”
“네?”
“10년 전 한설대학교 손강우 교수를 대청봉에서 죽인 자입니다. 심부름센터 사장이고요. 이름은 모릅니다. 남들이 황 사장이라고 부르더군요.”
이한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압당한 황 사장을 살폈다.
“어쨌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오늘 일을 24시간 동안만 비밀에 부쳐 주시지요.”
“네? 왜 24시간을…….”
“나쁜 놈이 한 사람 더 있거든요. 같은 놈이니까 일망타진해야죠.”
“아!”
당연히 요원들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내일 또 부탁드립니다.”
강우는 그들에게 미소를 날리고는 차에 올랐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방금 벌어진 상황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예상대로 황 사장은 함정에 빠졌고 그를 죽이려는 살인미수죄가 추가로 붙었다. 무려 노벨상 수상자를 피습하려 한 현행범이어서 그 죄가 가볍지 않다. 여죄를 캐내면 평생 감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황 사장을 처리했으니 다음 목표는 마도환이다.
마도환은 내일 핵융합 심포지엄에서 처리할 것이다. 마도환의 최후가 다가왔다.
* * *
핵융합 심포지엄을 앞두고 유명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중에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강우와 차도도의 은사이자 함께 노벨상을 받았던 MIT의 요셉 교수였다.
심포지엄 전날 공항에 도착한 요셉 앞으로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명실상부 현재 핵융합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핵융합 발전의 미래에 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우 박사를 제자로 키우신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 인연을 맺은 때가 강우 박사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부터 노벨상을 예견하셨습니까?”
“강우 박사와 차도도 박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기자들은 강우와 차도도에 얽힌 일화를 질문했고 요셉은 특유의 미소를 띠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강우의 미국 생활을 상세히 알게 됐다.
기자들은 강우와 차도도가 가족만 초청한 단출한 결혼식을 올린 후 사실상 신혼여행도 마다하고 연구에 매달린 사실을 보도했다. 흔히 알려진 재벌가의 소모적인 결혼식과 극명하게 대비되었기에 사람들의 감동은 더 커졌다.
두 사람의 연구 열정은 감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기자회견을 끝낸 요셉을 간신히 에스코트한 강우는 숙소인 차성호텔로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차성호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곳에는 MIT 3인방인 윈터와 해리스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요셉과 강우가 합류해서 식사를 시작했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우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이들 세 사람은 그의 성장을 이끈 주요 인물이자 강우 사단을 가르친 실질적인 스승이다. MIT에 있을 때부터 연구결과를 주고받으며 교류했었다.
“갑자기 한국까지 초청한 이유가 있지 않나?”
식사하면서 요셉이 대표로 물었다.
심포지엄을 앞두고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있기에 강우는 주저하지 않고 안건을 꺼냈다.
“미국 국방장관과 CIA 국장이 찾아왔었습니다.”
세 사람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들도 대략은 눈치채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그 이야기였군. 전화상으로 이미 말했듯이 일전에 나에게도 묻더라고. 핵융합 기술의 미래와 그 키를 쥔 사람이 누구인지. 그래서 자네라고 말해줬었네.”
요셉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어찌 보면 그가 강우를 그들에게 소개한 장본인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때 난 현재의 기술로는 어렵다고 봤었네. 그래서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어. 자네는 어떻게 대답했나?”
엄밀하게 따지면 요셉의 견해는 옳다. 현재 상온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인류가 핵융합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으나 아직 소규모 핵융합반응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국방부에서 제안한 방식의 무기 개발은 불가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현재 개발된 기술을 기준으로 했을 때다.
강우는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애초에 저는 삶에서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이미 달성했기에 최근 들어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바로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죠.”
“오오,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 드디어 자네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나 보군.”
윈터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라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엿보였다. 강우가 제시한 목표는 학문적으로 무척 매력적인 영역이다.
“저는 이 목표달성을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이면 달성 가능하리라 예상합니다.”
“오! 그렇게나 빨리?”
해리스가 눈을 번쩍 뜨고 경탄했다.
강우는 상온핵융합 기술 개발을 불과 5년 만에 해치웠기에 이 장담 또한 실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모두가 인정했다.
“그 말은 국방부의 요구를 5년에서 10년 후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늦어도 10년이 지나면 가공할 무기가 실전에 배치됩니다. 도시 하나 정도는 우습게 날려버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도심 내의 중요 건물을 손쉽게 타격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멀리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아도 백악관 옆을 지나다가 권총 한 방에 백악관을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는 거죠.”
국방장관과 논의했던 무기 방식을 강우가 설명하자 세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쟁 양상이 완전히 바뀐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했던 요인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 위험성을 비유하면 우리에서 튀어나온 호랑이와 공존하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을 손쉽게 죽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뛰어난 과학자이자 양식 있는 지성인이다. 과학 발전을 위해 다른 문제를 도외시할 그런 비도덕적인 인물이 아니기에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인지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기술 개발이 아직 요원하다며 일축했겠지만, 강우이기에 조만간 다가올 현실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 자네에게 큰 짐을 지우는군.”
요셉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짐은 강우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공동으로 짊어져야 할 문제였다. 핵융합에 발을 담근 이상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정부의 계획이 현실에서 시작되면 강우와 함께 모든 관련 과학자가 이 연구에 매달려야 한다.
테이블에 걱정과 근심이 내려앉았다. 그 무게감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윽고 요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맨해튼 계획이라고 들어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