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15화 (315/325)

제315화 강우 사단 (1)

맨해튼 계획은 세계 2차 대전 중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인슈타인의 권유로 시작한 원자폭탄 제조계획이다. 당시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정보를 입수한 미국이 더 빨리 개발하고자 수만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를 극비리에 동원하여 국가 차원의 총력적인 개발을 시작했고 그 결과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을 제조했다. 역사에서 보듯 일본에 투하한 핵무기는 2차 대전을 종식했다.

“맨해튼 계획과 유사한 미국 정부의 총력적인 무기 개발이 이뤄지겠어.”

“그럴 소지가 다분합니다.”

강우도 요셉의 의견에 동의했다.

원자폭탄 개발은 전쟁의 종식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인류는 더 큰 공포에 직면하게 됐다. 지금까지 몰랐던 방사능의 폐해를 알게 됐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원자폭탄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었다. 자칫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는 과학의 산물이다.

당시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그 누구도 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우리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정부에서 명분이야 붙이면 그뿐이니까.”

“나쁜 놈들이지.”

MIT 3인방이 이구동성으로 정부를 비난했다. 하지만 맨해튼 계획 때도 거부했던 과학자가 많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만큼 권력을 가진 정부는 집요하다.

“개발비 투입도 어렵지 않을걸? 핵융합 무기를 개발하면 기존 국방비를 대거 절감할 수 있으니까. 정부는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추진할 걸세.”

“제가 엄청난 돈을 벌겠네요.”

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돈이라면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소유하고 있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가 아니기에 그에게 더 이상의 돈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강 박사의 고충을 이해하네.”

요셉이 분위기를 진지하게 되돌렸다. 그는 차분하게 견해를 늘어놓았다.

“맨해튼 계획으로 원자력 기술의 문이 열렸네. 원자력은 원자폭탄이라는 악마를 탄생시켰지만,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 또한 열었어. 원자력 발전소가 없었다면 인류의 에너지난은 더욱 심화되었을 거네. 내 말은 무기 개발이라고 해서 꼭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란 거지. 그리고…….”

요셉이 좌중의 반응을 살펴본 후 계속 말을 이었다.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강 박사밖에 없어.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말이지.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분명히 어떤 천재가 나타나 그 기술을 개발할 거네. 즉 강 박사가 연구하고 하지 않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언젠가는 인류가 개발할 기술이란 말이군.”

“단지 조금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일 뿐.”

강우는 세 석학의 의견을 들었다.

그들의 말이 옳다.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결국 개발할 것이다. 그리고 공포의 무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강우가 그 기술을 개발하고 하지 않고는 어찌 보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강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도도하게 흐르는 인류 역사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굳이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가 아닌데도 필요 이상으로 강우가 고민하는 것일지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을 생각해보자고.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아직도 원시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여전히 과학과 거리가 먼 그런 문명 단계에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보네. 뉴턴이 천재임은 확실하지만, 뉴턴이 아니었어도 그리 머지않은 시간 내에 누군가가 비슷한 업적을 성취했을 거야. 물론 이런 견해로 뉴턴을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세 스승의 견해를 들으니 강우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의 안색이 밝아지자 요셉이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우리를 대표해서 강 박사가 고생하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그만큼 강 박사의 영향력이 증대했고 전 세계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증거라 본다면 그 또한 좋은 일 아니겠나? 유명해지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니까.”

“하하! 그렇지.”

무거웠던 테이블에 웃음꽃이 피었다.

강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요셉이 그의 손을 잡았다.

“강 박사! 우리는 자네를 믿어. 자네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자네를 지지할 거네. 그러니까 편하게 양심가는 대로 결정을 내리게나. 내가 달리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나도 강 박사를 지지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누구보다 과학에 열정 있는 강 박사 아닌가!”

요셉, 윈터, 해리스가 고마웠다.

강우는 울먹여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눌렀다. 이런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면 그건 바보짓이니까.

“자! 맛있게 먹자고! 먹는 즐거움을 잊지 말게.”

요셉이 포크를 들었다.

강우는 그동안 마음을 채웠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었다.

* * *

밤이 깊은 시각, 세 스승을 차성호텔의 객실에 밀어 넣고 강우가 향한 곳은 맥줏집이었다.

심포지엄 참가차 한국에 들어온 고곽천재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함께 모이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

미국의 같은 학교에서 수학한다고 하여 항상 만날 수 있지 않았다. 그만큼 바빴다. 학부 졸업에 대학원 진학에 거기다 학위 논문까지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는 과학자이기에 그들이 함께 모일 여유는 정말 일 년에 한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렇게 바쁜 친구들을 심포지엄을 빌미로 불러들였다. 과학기술의 군사 무기화 문제 때문이다. 물론 아직 친구들은 전혀 모른다.

맥줏집 앞에서 차도도와 신새벽을 만난 강우는 주점 내부로 들어갔다.

절반가량 채워진 가게는 술꾼들로 시끄러웠고 가장 안쪽의 넓은 테이블에 익숙한 녀석들이 모여 있었다.

“강우 왔다!”

“쌤도 오셨어!”

그를 발견한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강우는 그 면면을 확인했다.

고곽천재 멤버인 손차희, 윤수아, 최대우와 권유성, 하은찬, 유혜림까지. 이들은 지금 MIT에서 석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학부와 대학원을 달리하는 경향이 있는 미국에서 놀랍게도 이들은 같은 학교에서 대학원 진학을 고수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강우 때문이었다. 강우가 요셉 아래에서 석박사과정을 밟게 되자 친구들도 MIT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MIT에 훌륭한 교수진이 포진한 것도 한 이유였다.

그렇게 왕년의 멤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유명인사가 되니 어때?”

손차희가 강우에게 소감을 물었다.

강우는 가볍게 일축했다.

“유명인사는 내가 아니고 너야. 수능 전국수석이 제일 유명인사지!”

“그게 대체 언제 이야긴데!”

강우는 친구들의 얼굴을 쭉 확인했다. 세월이 흘러 성숙했어도 아직 고등학생 때의 그 인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의 양옆에 포진한 차도도와 신새벽도 마찬가지. 두 여인도 세월의 흐름을 잊었다. 아직 발랄한 대학생이라 해도 누구나 믿을 정도다.

오늘 그들은 고등학생 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유성아, 이젠 내가 선배지? 내가 빨리 졸업했잖아.”

“아니야! 원래 선배는 고등학교로 따지는 거야!”

권유성은 지금도 자신이 선배라고 우겼다.

1년 내로 권유성과 최대우가 박사학위를 받으리라 예상하는 상황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들 가운데 결혼한 사람은 강우와 차도도가 유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구에 치여 아직 결혼을 생각지 못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대학원 생활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윤수아와 권유성은 결국 동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누나 동생으로 사이가 좋더니 대학에서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다. 급기야 대학원에 들어간 후부터는 같이 살림을 차렸다.

“너희는 언제 결혼해?”

“졸업하면 바로 할 거야.”

대답하면서도 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권유성은 1년 내 졸업이 거의 확실한 반면 윤수아는 미정이어서다. 빠르면 2년 더, 늦으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나.

다음 타겟은 하은찬과 유혜림이다. 이 둘은 지금도 썸을 타는 사이다. 확실하게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귀지 않는 것도 아닌 묘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사귀다 깨지다를 반복하는 관계다.

“혜림이 넌 결혼 안 해?”

손차희의 질문에 유혜림이 콧방귀를 뀌었다.

“남자가 있어야죠.”

“옆에 있잖아?”

“얘요? 얘가 남자였어요?”

유혜림이 하은찬을 손가락질하자 하은찬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럼 내가 여자냐?”

“너를 여자라고 우겨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을 거야.”

“흥! 우리 엄마는 내가 멋있다고만 하던데.”

하은찬은 여전히 엄마 타령이다.

매일 저렇게 싸우면서도 때때로 아주 사이가 좋다. 가끔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소문도 있다.

제일 신기한 사람은…….

“차희 넌 남 말할 때가 아니야.”

손차희다. 이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미모를 자랑하기에 강우는 손차희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 제대로 된 남자가 없다.

“난 과학이랑 결혼했어!”

하긴 요즘 손차희가 요셉 아래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하다. 강우와 차도도가 요셉 군단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그 모든 짐이 손차희에게 넘어갔으니까.

윤수아가 놀리듯 물었다.

“이민찬은 어떻게 됐어?”

“걔는 말도 꺼내지 마.”

손차희는 이민찬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이민찬은 미국 서부에 있는 버클리로 유학을 갔다. 예상외로 동부와 서부는 멀었고 그 거리만큼 이민찬과 손차희의 사이도 멀어졌다.

한때 이민찬이 손차희에게 공을 들인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모두 공염불이 됐다. 둘은 채 일 년을 사귀지 못하고 깨졌다.

물론 두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리보다 성격 탓이다. 자존심이 센 두 사람이기에 서로 양보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원만하게 교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할 나이가 되어 가는데?”

윤수아가 계속 물고 늘어졌다.

피식 웃으면서 손차희가 신새벽을 가리켰다.

“난 신 쌤을 본받기로 했어.”

곧바로 신새벽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됐다.

신새벽이 자조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연애가 뭔지도 몰라.”

“연애는 차 쌤한테 물어야지!”

윤수아가 차도도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어서 차도도에게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쌤! 강우가 언제부터 그렇게 좋았어요?”

차도도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 사람의 연애사는 아직 완전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하아! 강우가 좋아한 거 아니었어?”

“차 쌤이 먼저 들이댔나?”

“누가 먼저 프로포즈했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서로 싸우던 고곽천재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대답을 요구했다.

차도도가 대답했다.

“으음, 프로포즈는 강우가 먼저 했어.”

“어? 강우답지 않은데?”

친구들이 보는 강우는 차도도나 신새벽이랑 가깝게 지내긴 했으나 항상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으니까. 연애할 시간이 전혀 없어 보였던 사람이었다. 솔직히 그런 감성이 존재할지 의문시된 목석이기도 했고.

“강우야? 진짜야?”

“응, 내가 먼저 프로포즈했어.”

강우는 웃으며 확인해줬다.

“그게 언제였는데?”

“그때 졸업 직후 속초에 놀러 갔던 때. 차 쌤 생일날.”

“아하! 그때! 둘이 콘도에 있던 날?”

모두가 묘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윤수아의 궁금증이 계속됐다.

“차 쌤은 바로 수락하셨어요?”

“아니. 난 그때 강우에게 그렇게 많이 빠져있지 않았어.”

차도도가 바로 자존심을 세웠다.

강우가 피식 비웃음을 터트렸다.

“거짓말. 프로포즈를 딱히 거절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야!”

“에이, 우리가 결혼한 거 보면 당연한데.”

“허억!”

모두가 대박 사건이라며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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