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16화 (316/325)

제316화 강우 사단 (2)

차도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게…….”

막상 반박하려니 말이 꼬였다. 그날 분명히 결혼은 안 되고 유학도 안 된다고 버텼었는데.

변명하기도 여의치 않아 차도도는 강우의 옆구리를 꼬집을 수밖에 없었다.

“으악!”

아프다고 배배 꼬는 강우를 손차희와 윤수아도 공격했다.

“우와! 진짜인가보다!”

“대박!”

“설마 그날이 두 사람의 역사적인 날?”

윤수아와 손차희는 궁금한 것도 정말 많다.

차도도가 미간을 팍 구기며 강우를 야단치듯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니? 이 쌤은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란다.”

“그럼 그렇지.”

“난 쌤한테 실망할 뻔했음.”

마지막 말은 최대우의 입에서 나왔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도도는 강우의 손을 꼭 붙잡았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나이 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사귀기 시작하고도 반년 후에야 내가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처음으로 키스했다니까.”

뒤늦게 강우는 차도도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쌤, 강우가 잘 해줘요? 혹시 쌤한테 막 기어오르고 그러지 않아요?”

다시 윤수아가 물었다.

“강우가?”

차도도가 강우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일순간 그녀도 혼란스러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강우는 그녀를 선생님으로 대접하며 예의를 차렸다. 가끔 너무 친해서 그 경계가 무너질 때도 있었으나 그 때문에 불쾌했던 기억은 없다.

물론 그녀도 예전의 선생님이라고 강우를 무시하거나 까 내린 기억은 없다. 강우는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제자이기도 하지만 교수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보면 지금도 예전의 선생님처럼 대접받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한데……. 가끔 엉뚱하게 훅 치고 들어오는 강우를 떠올리면 과연 자신이 선생님이긴 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강우가 좋으니까…….

“강우가 나한테 참 잘해줘.”

차도도는 순순히 대답했다.

“오! 강우 순정파였어!”

손차희와 윤수아가 두 사람을 놀렸다.

화기애애한 시간이 흐르고 강우는 마침내 용건을 꺼냈다.

“자! 모두 내 말 들어봐.”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자 강우는 국방장관과 CIA 국장을 만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조금 전에 의견을 교환했던 요셉, 윈터, 해리스의 대화를 꺼냈다.

순식간에 모두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들도 대화 중에 어렴풋하게 느끼긴 했다. 자신들이 집중하는 이 연구가 군사 무기로 전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막연한 두려움이 지금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 문제에는 내가 가장 긴밀하게 엮여있고 다음은 대우야.”

“내가?”

놀란 최대우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앞으로 연구하려는 분야를 조금 비틀면 군사적인 응용이 가능해지거든. 정부에서도 그 사실을 알아.”

“헉!”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최대우는 펄쩍 뛰었다. 냉정함을 되찾고자 최대우는 맥주를 벌컥 들이마셨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손차희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아직 모르겠어.”

“예상외로 시간이 많지 않을 느낌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모두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강우에게 시선을 보았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어.”

“그야 당연하지.”

“난 고등학교 때부터 강우를 믿었거든!”

최대우와 윤수아가 곧바로 호응했다.

하은찬과 유혜림도 다르지 않았다.

이 문제에서 한발 물러선 위치에 있는 권유성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손차희는 즉답 대신 차도도와 신새벽에게 물었다.

“쌤들도 알고 있었어요?”

“응, 얼마 전에 들었어.”

“쌤들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차도도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강우와 그녀는 한 가족이니까. 그래서 대답 대신 강우의 손을 잡았다.

신새벽은 미소를 지으면서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난 강우의 의견을 따를 거야. 강우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해. 설사 잘못된 판단을 내리더라도 이유가 있겠지.”

이들의 강우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손차희도 비슷한 생각이다. 강우는 놀라운 천재이니까.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내리라 여겼다.

“고마워. 믿어줘서.”

강우는 진심으로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10년의 인연이 절대 적지 않았다. 친구들의 믿음이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내일 심포지엄에는 꼭 참석해줘. 오늘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당연하지. 심포지엄에 참석하려고 여기 온 건데. 거기 안 가면 안 되지.”

말은 거침없이 하면서도 내일 가장 걱정되는 인물이 바로 최대우다. 최대우는 덩치답게 술을 잘 마시고 많이 마신다.

“자! 분위기가 너무 처졌어. 한잔하자!”

강우가 술잔을 들었다.

쨍!

술잔을 부딪치고 그들은 일상 대화를 나눴다. 방금 나온 심각한 주제는 일단 접어뒀다.

목으로 넘어가는 맥주가 시원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불청객이 날아왔다.

* * *

“어이! 브라더! 씨스더! 이게 몇 년 만이냐!”

웬일로 안 보이나 했더니 고현성이다.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서다가 회합 소식을 듣고 사정사정해서 빠져나왔다나.

“티쳐! 잘 지내셨어요?”

고현성이 차도도와 신새벽에게 먼저 인사했다. 고현성은 강우와 3년간 같은 반이었기에 당연히 차도도가 3년간 담임을 맡았었다.

“너도 잘 지냈니?”

“쌤이 강우랑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데요! 그럴 수는 없다고요!”

“뭐가 그럴 수 없어?”

“쌤은 저랑 결혼해야 하는데!”

“이 자식이!”

강우가 고현성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여간에 쌤! 노벨상 축하드려요! 강우 너도 노벨상 축하한다! 난 두 사람이 노벨상 탈 줄 알고 있었어!”

생각해보니 강우가 미국에 있는 동안 고현성이 가끔 응원하는 톡을 보내긴 했다. 물론 대부분 톡은 손차희의 안부를 문의하는 내용이었지만.

강우도 오랜만에 만나는 고현성이 반가웠다.

“잘 지내니?”

“나야 뭐…… 그럭저럭. 인턴은 인간이 아니더라. 가축이더라. 지긋지긋한 축생이지.”

고현성이 인턴 근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학자를 꿈꾸는 대학원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기에 그들은 고현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그래서 여긴 웬일이냐?”

“부인이 왔다길래 꽁지에 불이 붙어 뛰어왔지.”

“부인은 누가 부인이야!”

손차희가 대뜸 핀잔을 줬다. 이 둘 사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고현성이 꿋꿋하게 주장을 펼쳤다.

“그래도 내가 부인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거든! 이젠 나도 돈을 버니까…….”

“그래서 얼마 버는데?”

“어…… 그, 그게 아직 인턴이라 얼마 안 되지만 최저시급은 나와.”

“난 최저시급 10배를 벌 거든!”

손차희가 바로 반박했다.

고현성의 동공에서 지진이 났다.

손차희는 상온핵융합 개발에 관여하면서 헌팅턴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기술료를 받는다. 거기에다 헌팅턴 주식 옵션 일부 또한 받았기에 자산이든 월급이든 절대 밀릴 수가 없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고현성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나도 정식 닥터가 되면 훨씬 더 벌어.”

고현성의 일편단심을 모두가 높이 평가했다. 정작 손차희만은 빼고.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재미있는 듯 차도도와 신새벽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호기롭게 맥주잔을 쭉 들이켠 후 고현성이 벌떡 일어났다.

“차희! 나랑 사귀자! 내가 평생 돈 걱정을 안 하게 해줄게!”

“그거 프로포즈냐?”

강우가 물었고 고현성이 바로 대답했다.

“응 프로포즈,”

“프로포즈는 우리 쌤이 반지랑 꽃이랑 사서 해야 한댔는데.”

“어? 넌 그렇게 했어?”

순간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쏠렸다.

생각해보니 강우는 딱히 차도도에게 프로포즈를 한 적이 없다. 속초에 갔던 날 밤에 무대포로 직진한 게 전부다. 그 후엔 유학 떠난다고 정신이 없었고 미국에서도 그럴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강우가 대답을 못 하자 차도도가 때를 만난 듯 바로 비난했다.

“강우는 프로포즈 한 적이 없어.”

“쌤! 그런 남자랑 결혼하면 안 되죠!”

“강우가 나빴네!”

갑자기 비난이 강우에게 쏟아졌다. 괜히 끼어들어 매를 벌었다는 생각에 강우는 입을 닫았다.

손차희는 여전히 한숨을 쉬었다.

“너 지금까지 나한테 몇 번이나 프로포즈한 줄 알아?”

“네 번.”

정말 많이도 했다.

“칠전팔기하려면 아직 멀었네.”

“어? 여덟 번째는 받아줄 거야?”

“그 말이 아니잖아!”

손차희와 고현성이 툭탁거리며 말다툼을 벌였다. 물론 일방적으로 고현성이 불쌍할 만큼 깨졌다.

아무래도 손차희를 위해 의대를 선택했음에도 고현성은 아직까진 그 보람을 얻긴 힘들 것 같다.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될 무렵 그들은 가게를 나왔다.

내일 심포지엄 참석 때문에 더 늦게까지는 곤란하다.

윤수아와 권유성이 같이 사라지고 하은찬과 유혜림도 끼리끼리 없어졌다. 먼저 떠난 손차희를 고현성이 열심히 쫓아갔다.

대충 친구들을 보내고 강우도 차도도와 떠나려는 데 신새벽과 최대우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뭐하냐?”

“쌤이 약속을 안 지키잖아!”

“무슨 약속?”

“내가 젊은 과학자 10인에 선정되면 쌤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준댔는데!”

일전에 신새벽에게서도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약속 때문에 최대우는 최근 일 년간 정말 열심히 했고 결국 불가능하리라던 10인에 선정됐다.

최대우가 최근에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가 이 때문이었나?

문득 수능 때 생각이 났다. 그때도 최대우는 소원을 들어준다던 두 선생님의 약속을 믿고 수능 전국수석을 위해 열심이었었다.

최대우는 내기에서 거의 이긴 적이 없지만, 항상 진심이었을 만큼 순진했었다.

“왜? 무슨 소원인데? 설마 너 키스해달라고 한 거니?”

최대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헉! 진짜였어.’

난감한 표정을 짓는 강우나 차도도와 달리 최대우는 신새벽에게 진심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소원 들어준다더니 한국까지 도망쳐 버리셨어.”

“넌 쪼잔하게 뭔 소원 때문에 한국까지 쫓아와?”

“어쨌든 약속 안 지킨 건 쌤이죠.”

최대우가 당당하게 주장했다.

“야! 그 내기 쌍방이었잖아? 나도 10인에 들었으니까 소원 말할 자격이 있다고!”

“제 소원 들어주시면 저도 무조건 들어드린다니까요!”

역시 논리적으로는 최대우가 우위에 있었다.

보다 못한 강우가 중재에 나섰다.

“쌤! 그냥 키스 한 번 해주세요.”

순간 차도도의 주먹에 강우는 쓰러질 뻔했다.

“야! 그래도 내 첫 키스를 어떻게 제자랑 해? 한번 스승이면 영원한 스승이야! 한번 제자면 영원한 제자고!”

신새벽도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차도도가 조용히 강우를 나무랐다.

“강우야, 들었지? 명심해라! 영원한 스승이야.”

어째 이럴 때만 저 둘은 죽이 잘 맞는다.

길거리에서 최대우가 고집을 피우자 보다 못한 신새벽이 물러섰다.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알았어. 따라와! 대신에 내 소원도 확실하게 관철할 거야!”

신새벽이 먼저 떠났고 최대우가 부리나케 뒤쫓아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강우가 차도도에게 물었다.

“저 두 사람 정말 키스할까요?”

“그러게……. 오늘 두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 남 걱정하지 말고 우리도 얼른 가자.”

강우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의심스럽게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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