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마도환의 몰락 (1)
“강 교수, 축하합니다.”
마도환이 환하게 웃으며 강우의 손을 잡았다.
대중에 노출된 장소에서는 마도환은 그야말로 신사다.
당연히 강우도 이 자리에서 마도환을 외면할 이유는 없다.
“교수님들께서 심포지엄을 많이 도와주시네요.”
“하하, 그렇죠? 서로 도와야죠.”
마도환이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물리학과 교수들은 행사를 열심히 도왔다. 특히 아래 대학원생을 동원하여 갖자기 궂은일을 도맡아주었다. 이제 막 교수로 부임한 강우는 대학원생이 없기에 손님을 안내하거나 행사장을 준비하는 잡다한 일에서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도우미 가운데 마도환의 대학원생은 없었다. 세부 전공에서 가장 연관성 깊은 교수가 마도환임에도.
마도환이 강우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시간 좀 내줘요. 학장 선거 유세하게. 물리학과에서 단대 학장이 나오면 학과에 좋은 일 아닌가요?”
역시 그를 반긴 이유가 있었다. 하지 말라고 안 할 녀석이 아니기에 강우는 허락했다.
“대신에 짧게 하시죠.”
“알았어. 원래 유세는 짧고 임팩트 있게 하는 거니까.”
이처럼 한 장소에 단과대학 교수가 많이 모일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니 학장 선거 유세에 최적이기도 하다.
강우는 다른 교수에게 유세하러 가는 마도환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오늘이 제 무덤이 될 텐데, 지금 유세할수록 상황이 더 악화할 텐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마도환이 자연과학대학장이 되면 얼마나 그를 괴롭힐지 빤히 보였다.
물끄러미 녀석을 보고 있자니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 박사, 또 뵙습니다!”
화학과 학과장인 배성환이었다.
현재 학장 자리를 놓고 마도환과 대적 중인 교수다. 지금 판세로는 마도환이 약간 우위로 알려져 있었다.
“배 학과장님, 신새벽 박사님 임용에 힘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노창열 교수는 교수 윤리위에 회부 되었습니다. 조만간 파면이 결정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사해보니 현재 데리고 있는 대학원생과 문제가 많아서…… 검찰에도 고발할 겁니다. 합의하면 실형까지는 안 나온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학교에는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겁니다.”
노창열이 결국 끝장났다. 당연한 사필귀정이고 앞으로 신새벽의 발을 잡을 일은 없다.
“학과장님 덕분입니다.”
“문제 있는 교수임을 알려준 강 박사님과 신 교수 덕분이죠. 덕분에 우리 학과에도 자정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노창열 파면과 신새벽 임용으로 훈훈한 대화를 주고받던 배성환이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강 박사님은 물리학과라 당연히 마도환 교수를 단대 학장으로 미시겠지만…… 비록 선거에서 박사님의 지지를 기대하진 않습니다만 앞으로 많은 도움 주세요.”
“에이, 배 교수님, 저는 교수님께서 학장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뭐라고요?”
“제가 밀어드리겠습니다.”
뜻밖의 응원에 배성환이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강우는 한국대에서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었기에 그가 지지한다고 손을 들어주니 천군만마가 생긴 기분이다.
사실 갑자기 강우가 물리학과에 임용되는 바람에 백중세이던 판세가 마도환에게로 확 기울었다. 물리학과에 노벨상 수상자가 등장하면서 마도환은 시선 집중 효과를 누리고 있으니까.
그 문제를 계속 신경 쓰던 차였기에 배성환은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
“두고 보십시오. 오늘이 가기 전에 배 교수님에게 모든 표가 몰릴 겁니다.”
“하하,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배성환은 강우가 덕담한다고 여기고 감사를 표했다. 아쉽게도 공개적인 지지가 어렵겠지만 강우의 응원에서 뿌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강우와 인사를 나눈 후 배성환은 행사장으로 들어오는 교수들과 악수하며 유세를 전개했다.
강우는 열심히 유세를 벌이는 배성환과 마도환을 살피면서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역시 물리학과 행사장에서는 마도환이 훨씬 많은 교수로부터 환대를 받고 있었다. 저 기쁨이 지옥으로 바뀔 때가 다가온다.
* * *
넓은 강당을 메운 인파의 환영 속에서 핵융합 심포지엄 개회가 선언됐다.
강당의 좌석이 천 개를 훌쩍 넘는데도 복도와 출구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단상 부근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진을 쳤다.
그들 모두가 노벨상을 받은 프리드 요셉, 강우, 차도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는 단상 한쪽에서 청중을 바라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다. 이만한 인파라면 흥행몰이에 성공한 셈이다.
물리학과 학과장이 앞으로 나와 사회를 봤고 요셉 교수를 비롯하여 강우와 차도도가 나란히 서서 청중을 향해 인사했다. 박수 소리가 떠나갈 듯 울렸다.
요셉 교수의 축사가 이어졌다. 요셉 교수는 차도도, 강우와 함께 핵융합을 연구한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뜻깊고 즐거웠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두 사람에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연구에 매진해달라고 주문했다.
세계적인 석학이 강우와 차도도를 앞세우자 청중들은 두 사람의 학계 위상을 새삼 실감했다.
개회식이 모두 끝나고 강우의 강연이 시작됐다.
단상에 홀로 남은 강우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바로 아래에 있던 마도환이 후다닥 올라왔다.
“강 박사! 잠시만!”
“네?”
강우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마도환이 마이크를 빼앗았다.
“딱 3분만 내게 시간을 주지?”
이어서 강우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마도환이 마이크를 들고 청중을 향했다.
웅성대는 청중을 향해 마도환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 심포지엄에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 마도환입니다. 이번에 자연과학대학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여기 강우 박사와는 제가 아주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마도환이 갑자기 강우와의 인연을 들먹였다. 고등학생이었던 강우를 수시로 찾아가서 연구를 지도했다고 했다. 또 고려 과학고에서 과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강연도 했었다고.
마도환이 고려 과학고에 실제로 왔었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 오랜 인연이긴 하지. 손강우 시절까지 따지면 무려 20년인데. 악연이어서 문제지.’
강우는 쓴웃음을 삼켰다.
마도환은 과거를 포장하는 기술이 대단했다. 강우를 축하하면서 은근히 자신을 높였다.
“그렇게 인연이 많은 제가 자연과학대학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학장이 되면 강우 박사처럼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님가 더 편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조성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학생들도 더 훌륭한 교수님들 밑에서 배우고 공부할 수 있도록…….”
3분이라더니 거의 10분을 넘겼다.
청중들의 얼굴에서 짜증이 많아지자 마도환은 마무리 인사를 했다.
“저 마도환을 찍으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그제야 마이크가 넘어오고 마도환이 단상에서 내려갔다.
강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맨 앞줄에 앉아 환한 웃음을 머금은 마도환을 노려봤다.
‘저 웃음이 곧 사라지리라.’
강우는 주의를 환기한 후 청중을 쭉 둘러보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강우입니다. 과학 방면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라고 하더군요. 사실 우리나라의 위상으로 보면 예전에 배출했어야 했는데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벨상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기초과학 여건이 갖춰져야 가능하죠. 그래서 제가 잘 나서 이 상을 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앞의 선배들이 토대를 닦아주셨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수상 소감이었다.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선배들에게 공로를 돌리는. 청중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연회장의 평화는 딱 여기까지였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었을 겁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청중들이 이런저런 이름을 불렀다.
“프리드 요셉!”
“브라이언 윈터!”
“차도도!”
누군가가 차도도를 외치자 강우는 미소를 머금었다.
“마도환!”
젠장! 마도환 이름도 나왔다. 방금 마도환이 고등학생이었던 강우를 지도했다는 주장 때문이다.
마도환의 입이 더 찢어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벌어졌다. 역시 속이 시커멨다.
강우는 숙연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분은 바로 손강우 박사입니다!”
이곳에서 손강우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이다.
손강우란 말이 나왔을 때 마도환의 표정이 확 변했으나 금방 본래의 태연한 얼굴로 돌아갔다.
“저랑 이름이 같죠? 그 때문인지 저는 그분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가 중3 때였나 봅니다. 저는 손강우 박사님과 이메일로 과학을 토론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당연히 제가 일방적으로 묻고 손강우 박사님이 답변하셨죠. 손강우 박사임이 어떤 분이냐고요? 한국대 물리학과에서 학위를 받고 한설대학교에 교편을 잡으셨던 분입니다.”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 가운데 몇몇 사람이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분과의 교류를 통해 과학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고려 과학고에 합격했죠.”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강우가 지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 진위를 아무도 모른다. 그는 예전에 차도도에게도 요셉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 일화는 강우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핵융합에서 특출했던 이유를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었다.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로 손강우와의 인연을 전하던 강우는 드디어 죽음이 발생한 그 날의 사건을 꺼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저는 손강우 박사님과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항상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던 유명한 박사님을 직접 만난다는 기쁨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어요. 제 핵융합 연구의 기본이 모두 손강우 박사님에게서 나왔으니 그분이 얼마나 깊이 핵융합을 연구했는지 짐작 가실 겁니다.”
청중은 처음으로 알게 된 강우의 흥미진진한 성장기에 귀를 기울였다. 기자들은 흥미로운 기삿거리였기에 열심히 받아적었다.
“대략 10년 전, 눈이 쌓인 2월 중순의 어느 날, 당시 중학교를 막 졸업한 저는 손강우 박사님과 설악산에서 만납니다. 왜 설악산이었냐고요? 손강우 박사님이 계신 한설대학교가 그 부근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둘이서 만난 김에 설악산을 등반했습니다.”
마도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그날은 날씨가 흐렸었어요. 우리는 대청봉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눈 덮인 겨울 산에 올라보셨나요? 지평선 너머까지 눈 덮인 산이 겹겹이 울타리를 친 모습에 가슴이 웅장해지더군요. 안타깝게도 그때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우는 잠시 강연을 끊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마도환을 파멸시키기 위해 무려 10년간을 절치부심하며 기다려왔다.
마도환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우는 피식 웃음을 날렸다.
녀석은 이제 끝이다!
“대청봉 정상에서 저는 주변 구경을 하느라 돌아다녔고 손강우 박사님은 동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계셨죠. 그러다가 손강우 박사님께 돌아가는데……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새로운 두 사람이 나타났어요. 당시 그곳에는 험한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없었죠. 저는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고 그 자리에 멈춥니다.”
마도환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손강우 박사님과 말다툼을 하더니 밀쳤습니다. 그리고 손강우 박사님은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나중에 신문에서는 실족사로 표현하더군요.”
청중들이 웅성댔다. 강우가 설명하는 장면은 바로 살인사건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