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19화 (319/325)

제319화 마도환의 몰락 (2)

마도환이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강우는 슬쩍 상태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핵융합을 선도하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손강우 박사의 연구는 그날로 중단되었고 수많은 연구결과가 묻혔죠. 이 나라는 핵융합 개발에서 도약할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누굽니까?”

“살인자 아닙니까?”

청중들이 웅성댔다. 핵융합 논문발표를 들으러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난데없이 살인사건을 듣고 있었다.

“당시 저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무서워서 그 사건의 진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손강우 박사님께 죄를 지었죠. 그때부터 저는 핵융합 연구에 더 열심히 뛰어들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서 저도 핵융합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손강우 박사님의 유지를 이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강우가 어릴 때부터 핵융합 연구를 열심히 한 이유를 알게 됐다. 강우가 불세출의 천재라지만 역시 홀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손강우라는 위대한 학자의 죽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지금까지 요셉과 차도도만이 알던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보다 살인자 두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 살인자가 누굽니까?”

“같은 학계 사람입니까?”

강우는 담담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오늘까지 저는 그 두 사람에 대한 모든 증거와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덕분에 상당한 증거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때는 제가 경찰에 알리지 못했으나 이제는 그 진실을 밝혀야겠지요.”

강우는 청중을 쭉 둘러봤다. 모두가 궁금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유독 한 사람, 그 사람만이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이제는 잊어버린 과거이자 영원히 묻어버린 사건이 이렇게 파헤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순간 청중들이 웅성댔다.

강우의 시선이 마도환에게 꽂혔다.

순간!

마도환이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본인 스스로 살인범임을 자각하고 있었군요. 그날 손강우 박사를 죽인 사람은 바로 저기 마도환입니다! 그가 손강우 박사를 밀었습니다!”

“내, 내가 밀지 않았어!”

“물론 그렇겠죠. 정확히는 당신 옆에 있던, 그 심부름센터 사장이자 공범인 황 사장이니까요!”

“으아악!”

마도환이 머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황당한 사건 전개에 입을 닫지 못했다. 모두가 마도환을 벌레 보듯 쳐다봤다.

“아,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마도환! 증거는 쌓이고 쌓였어! 목격자도 있고! 10년 전, 당신은 설악산 꼭대기에서 손강우 박사를 살해했다. 그게 영원히 덮일 줄 알았나? 이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때가 왔다!”

강우는 서슬 퍼런 목소리로 상대를 압박했다.

“으아악!”

마도환이 다급하게 강연장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곧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그의 도주는 막혔다.

도망치려는 마도환과 체포하려는 경찰 사이에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마도환이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도환이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강우의 증언에 허점이 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당시 강우는 실족으로 시골의 한 작은 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니까. 그 자리를 마도환 본인이 직접 문병하러 갔었으니까.

당황한 마도환은 그때를 떠올리지 못했다.

물론 나중에 기억해 봐야 큰 의미는 없다. 황 사장이 체포되고 당시의 정황을 담은 녹취록이 무수히 널려 있는 상태에서 마도환이 빠져나갈 틈은 없으니까.

마도환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을 취재하러 왔던 과학부 기자들은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을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로 돌변했다. 어쨌든 그들은 신나게 기자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마도환이 잡혀간 후 강우는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간략한 개요를 답해주었다.

이것으로 마도환의 시대는 끝났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연과학대학장 선거에서 탈락할 것이고 한국대 교수에서 파면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감옥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덕분에 차기 자연과학대학장은 화학과의 배성환 교수가 확실시됐다. 청중과 섞여 있던 배성환 교수가 강우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강연장의 소란을 강우는 두 손을 앞으로 들어 진정시켰다.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여 강연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강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우의 선언에 청중들의 이목이 다시 그를 향했다. 강연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마도환의 몰락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 강우는 한결 밝은 기분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 저는 노벨상 수상자로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무척 영광스러운 자리죠. 그래서 저는 노벨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노벨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노벨상 덕분에 노벨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다. 19세기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였던 그는 폭약의 개량에 몰두해서 나이트로글리세린과 흑색화약을 혼합한 폭약을 발명했다. 액체 폭약의 위험성을 없애려고 연구했던 그는 규조토를 이용한 고형 폭약을 발명하였고 이것이 바로 유명한 다이너마이트이다.

훗날 유전사업으로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된 그는 전 재산을 기금으로 하여 세계의 평화, 문학, 물리학, 화학, 생리학, 경제학에서 노벨상을 수여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그는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했다.

“다이너마이트가 전쟁 무기로 사용되면서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란 오명을 얻었죠. 그는 다이너마이트 역시 도구에 불과해서 그 자체에 선악의 기준을 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실제로 그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한 것도 폭약의 안전한 취급을 위해서였으니까요. 실제로 그가 다이너마이트의 무기화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닌지는 불명확합니다만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염원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노벨에 관한 일화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다. 오늘날 노벨이란 이름과 그 염원은 노벨상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이너마이트가 선한 물건인지 악한 물건인지 혼란에 휩싸입니다. 과학이란 이처럼 양면성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화두는 바로 ‘과학의 양면성’입니다.”

묵직한 주제가 나왔다.

차도도를 비롯하여 강우 사단의 인물들, 여기에 더해 요셉, 윈터, 해리스는 강우가 왜 이런 주제를 꺼냈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 강연을 통해 강우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주제를 지금 그들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니까.

강우는 담담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20세기 초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를 생각해봅시다. 하버는 공기로 빵을 만들어 인류를 구했으나 전쟁을 위해 폭탄과 독가스를 개발하면서 ‘독가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죠. 그의 인생 말로는 비참했어요.”

하버의 일생이 잔잔하게 소개됐다.

지금 강우의 강연으로 사람들은 하버의 일생을 다시 돌이켜보게 됐다. 그리고 그의 연구 결과물인 질소 고정법과 독가스가 인류의 문명에 미친 영향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수십만, 수백만 명의 사람을 기아에서 구했으나 그로 인해 수만 명의 사람이 전쟁에서 죽었다. 그 공과는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다.

청중들은 노벨에 이어 하버의 사례에서 과학의 양면성을 재차 인식했다. 어쩌면 노벨의 말처럼 도구 그 자체에는 선악의 기준을 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강의장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볼까요? 양면성을 지니는 과학의 극명한 예가 또 있어요.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한 스위스의 파울 헤르만 뮐러가 그 주인공입니다.”

뮐러는 20세기 중반 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이라는 물질이 살충제로서 효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일명 DDT라는 약품이다. 이 DDT는 전쟁 중에 티푸스,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곤충 매개 전염병을 방지하는 살충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DDT는 전염병 발생률을 크게 억제하여 한때는 기적의 약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열대 및 아열대 지방에서 무차별로 사용되었고 한때 인류의 생존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죠.”

DDT의 위험성은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DDT가 뿌려진 지역의 가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DDT는 애디슨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여 심각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악마로 그 인식이 바뀌었다.

환경운동가이자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소설 침묵의 봄에서 DDT를 심각한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어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렸다.

DDT의 위험성을 경고하던 과학자의 목소리가 사회적 논쟁에 불을 지폈다.

현재 DDT는 발암을 유발하는 위험한 화학 물질로 인식되어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금지 처분을 받았다.

“기적의 살충제에서 악마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DDT 자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말이죠. DDT가 금지되자 다른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열대 풍토병인 말라리아 퇴치는 전적으로 DDT에 의존하고 있었다. DDT가 금지되자 불과 5년 만에 전 세계 곳곳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했고 매해 수백만 명이 죽었다. 지금도 말라리아로 한해에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고 있다. 이 모두가 DDT를 금지한 후폭풍이다.

환경 오염 물질의 유해성과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DDT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보인다. DDT가 발명되기 전까지 말라리아는 전 세계에서 해마다 3억 명이 걸리고 3백만 명이 죽는 위험한 질병이었다. DDT는 그 위험성을 5%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러나 DDT가 금지되면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DDT 금지 합의가 일 년에 수백만 명의 목숨을 추가로 앗아간 셈이다.

“이 사례에서도 우리는 과학 문명의 위험성과 혜택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DDT를 대중화하여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노벨상을 받았던 뮐러는 훗날 악마의 물질을 만들었다고 비난을 받으며 죽었죠. 이상의 사례에서 노벨, 하버, 뮐러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그 판단은 누구도 내릴 수 없습니다.”

강우의 강연이 잠시 끊어졌다.

어떤 과학자가 물었다.

“오늘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꺼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우는 자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개발한 핵융합 기술도 사실은 같은 도구입니다. 과학의 양면성을 갖고 있죠.”

이어서 강우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상온핵융합 기술을 발전용으로 사용한다면 인류는 무한한 혜택을 얻는다.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문명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하지만 이 핵융합 기술을 군사 무기로 전용하면 급이 다른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기존의 핵무기를 대체함은 물론 소형화가 가능해서 현재의 미사일, 포탄의 위력이 수백 배 증가하게 된다. 미래의 전쟁은 그 양상을 완전히 달리할 것이다. 당연히 그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강우의 설명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상온핵융합 기술도 과학의 양면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 도구 또한 지킬과 하이드였다.

“……그게 가능합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강우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제가 노벨상을 탄 이후 많은 분이 저에게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묻더군요. 그때마다 저는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라고 대답했었죠. 저는 그 실현을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으로 보았습니다. 제 연구가 완성되면 놀랍게도 가공할 핵융합 군사 무기도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강연장에 일대 소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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