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20화 (320/325)

제320화 마도환의 몰락 (3)

하버의 극명한 사례에서 보듯이 위대한 과학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아인슈타인마저도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계획을 자문했다는 이유만으로 말년에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오늘 강우가 밝힌 핵융합의 미래가 현실이 된다면 강우의 인생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제가 과학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과학자들은 마녀사냥에 휩쓸리게 된다. 그 어떤 천재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 10년 후의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

걱정스러운 질문이 쏟아졌다.

“글쎄요. 그 누가 미래를 알까요? 예를 들어 핵무기를 생각해보죠. 핵무기가 사용되면 인류가 멸망하리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세계 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핵무기를 인류 스스로 자제하고 있어요.”

하지만 혁신된 핵융합 무기는 어떻게 될까? 더 소형화되고 간편화된 핵융합 무기는 기존의 핵무기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 위력과 파급효과는 더 막대해서 미래의 전쟁에서는 작은 나라 하나쯤은 지도상에서 아예 지워버리는 작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용하기 나름이지요. 하지만 어쩌면 어린애의 손에 쥐어진 권총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매일 그 공포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겠죠.”

이곳에 모인 청중들은 대부분 석학이거나 지식인이었기에 그 심각성을 실감했다. 아울러 지금 강우가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어쩌면 강우가 개발한 상온핵융합 기술은 노벨이나 하버, 뮐러의 발명품보다 훨씬 극명한 과학의 양면성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청중들의 자유로운 반응을 지켜보던 강우가 다시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는 과감히 제안합니다!”

드디어 강우의 해법이 나왔다.

“저는 오늘부로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 연구를 중단합니다. 또 상온핵융합의 소형화 기술 개발도 중단합니다. 기존에 건설 중인 핵융합 발전소의 보완 연구는 계속하겠지만 군사 무기로 전용 가능한 어떤 기술도 개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폭탄이 떨어졌다.

발 빠른 한 기자가 질문했다.

“강우 박사님이 개발하지 않더라도 다른 과학자가 개발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강 박사님처럼 10년 이내에는 어렵더라도 20년 또는 30년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이란 한 사람만 개발하거나 연구하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어쩌면 지구상에 다른 천재 과학자가 지금 개발 중일 수도 있고요.”

“그럼 의미 없는 일 아닙니까?”

“아닙니다.”

강우는 청중을 돌아보면서 단호하게 주장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상온핵융합 기술을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저와 같은 뜻입니다. 그분들 모두 상온핵융합의 군사 무기화를 반대하며 관련 연구를 일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강우에게서 청중석 맨 앞에 앉아있는 차도도와 요셉에게 쏠렸다. 그 누구보다 강우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두 사람이다.

요셉이 특유의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한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강 박사를 지지합니다!”

강우는 동료들의 열렬한 지원 속에 결의를 밝혔다.

“설사 앞으로 개발될 기술이라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그 시기를 늦출 수 있으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 세계 핵융합 연구자와 기술자에게 제안합니다. 지금부터 군사 무기화가 가능한 핵융합 기술의 개발 및 연구를 중단하자고요. 모두가 동참하면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비슷한 경우로 생명복제 분야를 들 수 있습니다. 지금도 줄기세포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치료용이 아닌 번식용 생명복제 연구는 윤리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인간 복제를 금지하며 연구 목적으로만 세포와 조직의 복제를 허용합니다. 핵융합에서도 비슷한 해결책이 가능합니다.”

강우는 이곳에 모인 과학자들에게 호소했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가에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지만 현실적으로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만큼 핵융합 무기는 국가 입장에서 매력적이니까요. 대신에 저는 각국의 과학자들에게 부탁드립니다. 핵융합 기술의 군사 무기화를 반대하며 어떤 개발도 금지하자고요. 이 방법만이 파국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 모두가 동의할까요?”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저 혼자라도 이행할 것이니까요. 저와 같은 의견인 여러 과학자께서 동참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길었던 강우의 강연이 끝났다.

애초 기대했던 노벨상 수상자의 깊이 있는 핵융합 연구 강연은 아니었다. 대신에 핵융합 개발의 양면성과 위험을 경고했다. 그리고 핵융합의 군사 무기화 반대를 외치며 과학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뜻밖이었기에 아무도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짝- 짝- 짝-

한참 후에야 요셉이 가장 먼저 손뼉을 쳤다. 그 박수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됐다. 모두가 강우의 제안을 환영했다.

단상을 내려가는 강우 주변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강우는 성심껏 대답했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하여 여론을 움직이고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내야 하니까.

강우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알리며 전 세계 핵융합 연구자의 동참을 호소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고 나자 그제야 지인들이 몰려들었다.

“고생했어.”

차도도가 제일 먼저 강우를 품에 안았다.

그녀도 오늘 강연에서 강우가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녀는 기꺼이 강우와 뜻을 함께할 생각이었다.

최대우를 비롯한 강우 사단 전체도 마찬가지였다. 요셉, 윈터, 해리스도 강우의 의견을 지지했다.

오늘 모인 이들만 군사 무기화 연구를 중단해도 그 여파는 상당하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핵융합의 군사적 활용을 주장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강우의 강연이 끝난 후 이어서 요셉과 다른 유명 과학자의 강연이 이어졌다. 하지만 강우가 던진 핵융합의 양면성 문제는 계속 뜨겁게 불타올랐다.

* * *

열띤 논쟁을 벌였던 핵융합 심포지엄이 끝났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 심포지엄은 강우가 던진 문제로 언론의 더 큰 관심을 끌어냈다.

어떤 방송에서는 급조해서 핵융합의 이익과 위험성을 다뤘다.

여론은 대체로 강우에게 호의를 보였다.

- 전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 108인이 강우 박사의 제안에 동참했습니다. 핵융합의 군사 무기화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 원자폭탄의 위험성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핵융합 무기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하며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핵융합 연구를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 핵융합 기술을 현재 개발한 발전용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여러 의견이 나왔다.

방송에서는 강우가 예로 들었던 노벨, 하버, 뮐러의 삶을 다시 조명했고 조기에 위험을 경고한 강우에게 찬사를 보냈다.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계속되자 몇몇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상 또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초강대국을 제외하고는 핵융합 무기 개발을 넘볼 수 없게 됐다. 초강대국의 동참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심포지엄이 끝난 날 저녁에 강우의 집에는 네 사람이 모였다.

행사를 끝낸 후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온 그들은 강우와 차도도, 신새벽, 최대우였다. 이들은 MIT의 핵융합 3인방인 요셉, 윈터, 해리스를 대체하는 미래의 주역이다.

“다행히 요셉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셨어. 상온핵융합의 소형화 연구를 중단하시겠다고.”

“윈터 교수님도 같은 의견이야. 내년부터 핵융합 물질의 안정화 연구를 시작하려고 계획 중이셨는데 무기한 연기한대.”

“해리스 교수님도 강우의 제안을 극찬했어요. 돌아가는 대로 미국의 다른 교수님들에게 동참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겠다고 했고요.”

세 사람이 지도 교수의 반응을 전달했다.

다행히 주변 친구와 교수들이 믿고 따라주어 강우의 제안에 힘이 실리게 됐다. 이런 기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의 양면성을 다시 깨닫고 그 심각성을 가슴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강우의 선언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당분간은 누구도 이 합의를 깨트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차도도가 강우에게 태블릿을 넘기며 말했다.

“중앙 사이언스 김승범 기자가 잘 요약해서 올렸어. 여론몰이에 상당히 도움이 되겠네.”

김승범은 항상 강우를 따라다니며 취재해 준 고마운 기자다. 강우는 기사를 읽으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 강우 박사가 핵융합의 군사 무기화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 독가스, DDT의 예를 들며 핵융합 기술 또한 파멸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렸다. 과학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가진다. 사실 과학은 도구에 불과하기에 그 자체로서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활용하는 사람에 의해 그 얼굴을 달리할 뿐이다.

- 강우 박사의 제안으로 앞으로 모든 핵융합의 소형화 및 군사 무기화 개발이 중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핵융합 기술은 발전용을 제외하고는 개발연구가 어려워졌다.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한 신기술이 악마의 기술로 변신하지 않기를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한다.

- ‘이 땅에는 오직 한 명의 천재, 강우만이 존재한다.’라는 그 강우 박사는 앞으로 무슨 연구에 도전할까. 그는 그동안 상온핵융합기술의 완벽한 제어를 꿈꾸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이번 조치로 그 길이 막혔다. 우리는 강우 박사가 다시 힘을 얻어 새로운 과학 연구에 도전하기를 기대한다. 그 연구는 과연 무엇일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한 사람의 과학인으로서 관심 있게 응원한다. 향후 10년 후 그는 새로운 분야에서 지금처럼 우뚝 서 있을 것이다.

강우는 김승범 기자의 무한한 관심과 애정에 감격했다. 이런 언론인이 있기에 이 땅의 학생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진다. 그 관심은 더 많은 과학자를 길러내고 이 나라의 과학기술 토대를 튼튼하게 구축하여 미래를 밝힌다.

- 아쉽다. 강우 박사의 활약을 보고 싶었는데.

- 나는 강우 박사가 우주 개발에 뛰어들면 좋겠어. 화성 정복 가자!

- 고려 과학고 만세!

- 똑똑하지, 미녀 아내 있지, 예쁜 딸 있지, 돈 많지, 강우에게 없는 게 뭐냐? 젠장, 나보다 얼굴도 잘생겼어!

- 핵융합 무기 개발해서 세계정복 가자!

- 블록버스터 찍냐?

대중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간혹 농담도 있고 잡담도 있었으나 강우를 향한 애정은 한결같았다. 어떤 사람은 강우의 호평과 인기가 국민주로 나누어줄 돈 때문이라고 비하한다.

하지만 강우는 대부분 사람은 선하며 전쟁을 싫어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슨 연구를 할 거야?”

차도도가 대표로 물었다.

아직은 강우도 고민해보지 못했다.

“강우야, 네가 방향을 잃으면 우리 모두도 떠돌이가 되거든. 앞으로 우리도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니까. 얼른 방향을 잡아주기를 바라.”

차도도의 부탁에 강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신새벽과 최대우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심포지엄도 끝났고 뭐가 남았지?”

“내일은 고려 과학고에서 강연 있어요.”

드디어 모교 방문이다.

하루도 쉴 틈 없는 강행군이다. 강우의 대답에 신새벽이 반색했다.

“고려 과학고? 나도 가보고 싶어!”

이번에 가면 몇 년 만일까.

“내일 같이 가자!”

그렇게 고려 과학고 강연에 모두가 참석하자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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