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과학의 길 (1)
학창시절을 떠올리던 최대우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 보고 싶다.”
그의 시선이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향했다.
대학원생이 된 후 최대우는 본의 아니게 별을 자주 보지 못했다. 연구에 집중하느라 별을 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강우는 오래전 기숙사에서 최대우의 저런 표정을 본 기억이 났다. 공부하느라 찌들었을 때 아주 가끔 최대우는 저렇게 맥이 빠진 상태에 이르곤 했다. 그때 천문대에 올라가 한바탕 별을 보고 돌아오면 다시 활기가 넘쳤었는데.
이럴 때 그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그래서 강우가 제안했다.
“별 보러 갈까?”
“어디로?”
“야외로 나가도 되고 아니면 고려 과학고에 오랜만에 별 보러 가볼까?”
최대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가자!”
갑자기 활기가 도는 최대우의 안색에 강우도 벌떡 일어났다.
“우리 다녀올게요.”
“어디 가는데?”
“고려 과학고.”
“거기 들어갈 수는 있어?”
“일단 가보고요.”
강우는 최대우와 어깨를 얼싸안고 현관을 나섰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신새벽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소박맞은 기분인데…….”
아침부터 심포지엄 때문에 정신없다가 이제야 간신히 둘만 있게 되었는데 남자란 녀석이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하늘의 별에게 질투할 수도 없으니.
차도도가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달랬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결혼해야지.”
“그거 말고. 오늘 밤부터.”
신새벽은 국내로 들어와서 간신히 살 집을 구한 상황인데 최대우는 미국에서 심포지엄 때문에 잠시 들어왔기에 호텔이 아니면 잘 곳도 없다.
“우리 집에서 재워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둘이 같이 있고 싶은가 보네.”
차도도의 놀림에 신새벽이 안면을 물들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내가 데리고 있다가…… 대우가 앞으로 1년이면 졸업할 테니까 그때까진 롱디로 지내야겠지.”
“끝나면 국내로 들어오겠다던?”
“아직 몰라. 잘 구슬려야지.”
역시 신새벽도 진심이었다.
차도도는 신새벽과 최대우가 나란히 선 결혼식을 떠올리며 어쩌면 두 사람이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맺어지면 놀랍게도 그녀와 신새벽은 모두 스승과 제자 커플이다. 그것도 같은 시기에 학교생활을 했던.
최대우는 시골 출신이라 순박하고 지금까지 특별히 모나거나 여자와 사귄 경험도 없으니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긴 고등학교 시절 주기율표도 모른다며 연신 최대우를 구박하던 신새벽을 떠올리면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말이었지만.
* * *
오랜만에 찾은 고려 과학고는 변함없었다.
고철장수가 노리던 학교 정문은 그대로였고 입구 부근에는 지금도 가우스 카페가 인테리어만 조금 바꾼 채 영업하고 있었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저녁이라 정적이 내려앉은 학교와 달리 도서관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역시 고려 과학고 학생들은 열심이었다.
“저기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이 나.”
최대우가 세미나실이 있는 B동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우도 그때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장소다.
“그때가 재밌었지.”
추억 보정일까. 과거의 기억은 항상 따뜻하고 그립다. 지금이라도 저 창문을 열고 고곽천재 녀석들이 손을 흔들 것 같다.
최대우의 환호성이 터졌다.
“으아! 천문대에 불이 켜져 있어!”
하늘이 맑아 별들이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간대다. 오늘 밤에는 관측이 있나 보다.
“운이 좋은데.”
그들은 고려 과학고 학생이 아니기에 예전처럼 아무도 없는 천문대에 몰래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하아! 지금은 누가 천문대를 관리할까?”
“모르지.”
천문대에서 열심히 하늘을 관측하고 있을 후배를 떠올리니 가슴이 뛰었다.
최대우는 그보다 마음이 더 급한 모양이다. 후다닥 뛰듯이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자기 집처럼 B동으로 들어가 천문대로 향했다.
옥상에 올라서자 익숙한 기운이 절로 몸에 뱄다.
천문대에는 두 사람이 열심히 관측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학생인 듯했다.
두 사람은 천문대 돔 내부의 주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 이동용 천체망원경을 꺼내어 조립하고 있었다.
예전에 혜성을 관측한다고 야외로 떠났을 때 가져갔던 그 망원경이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망원경은 그 상태 그대로였다.
“어?”
두 사람 중에 선생님이 눈에 익숙했다.
강우의 외마디에 선생님도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다가 몸이 굳었다.
“김선호 선생님?”
생각지도 않던 인물을 만났다. 예전에 그들이 배웠던 바로 그 지구과학 선생님이었다.
“강우? 대우?”
역시 김선호도 그들을 알아봤다.
“아직도 이 학교에 계세요?”
“나? 중앙 과학고 전근 갔다가 다시 돌아왔지. 너희는 어떻게 왔어?”
학교 선생님들은 대략 5년 주기로 학교를 이동한다.
“저는 한국대에 교편을 잡았고요. 대우는 아직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죠.”
반갑게 인사하고 있자니 망원경을 조립하던 남학생이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녀석이 강우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강우 선배님?”
“어? 나 알아?”
“공항에서 봤었잖아요!”
공항에서 봤던 사람이 한둘이었어야지. 녀석의 얼굴을 보니 여드름이 가득하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입국하던 날 그에게 단체 사진을 찍자고 조르던.
“아, 기억나. 반가워.”
대충 인사하고 다시 김선호에게 물었다.
“근데 뭐 하세요? 주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요?”
“인공위성 관측하려고.”
관측대상이 예전보다 넓어졌다.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이다.
최대우도 흥미를 보였다.
“인공위성요?”
“ISS.”
“아!”
ISS는 국제우주정거장이다. 길이와 폭이 대략 100미터이고 무게가 470톤이나 나가는 초대형 인공위성이다. 대략 지상에서 400km 정도 상공에 떠서 지구를 하루에 15.5바퀴 돈다. 공전 속도는 초당 7.6km나 된다.
인공위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태양 빛을 반사해서 빛난다. 그러므로 저녁이나 새벽에 지상에서는 해가 사라졌으나 하늘 높은 곳에는 아직 햇빛이 비치는 그런 시각에만 볼 수 있다.
ISS는 대단히 큰 인공위성인데다 무려 2500제곱미터에 이르는 태양전지판을 펼치고 있어서 이 태양전지판에 햇빛이 반사되면 매우 밝게 빛난다.
운이 좋은 날은 거의 금성 정도의 밝기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강우는 간간이 별이 빛나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다. 그가 이럴진대 최대우는 더하겠지. 역시 최대우는 그 기쁨에 빠져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요즘엔 별을 안 보나 보지?”
“바빠서요. 핑계일 뿐이지만.”
최대우가 한숨을 토로했다. 이어서 학생에게 물었다.
“인공위성 관측 자주 해?”
“아뇨, 처음이에요.”
“흠, 그렇구나. 하늘을 보다가 움직이는 별 같은 게 보이면…… 그 정체는 보통 세 가지야. 인공위성, 유성, 비행기.”
“유에프오도…….”
“아, 그것도 있네. 근데 그건 빼고.”
예전의 버릇이 나온 최대우가 열심히 설명했다.
때때로 이 세 물체는 밤하늘에서 비슷하게 보여 혼란을 일으킨다. 깜박이며 일직선으로 지나가면 비행기이고 하늘의 긴 거리를 남과 북으로 비스듬히 일정한 속도로 쭉 이동하면 인공위성이다. 유성은 아주 드물게 떨어지는데 밝기가 변하면서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흐른다.
열심히 설명을 듣던 남학생이 물었다.
“근데…… 선배님은 누구세요?”
“나? 최대우!”
“아!”
여드름 남학생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많이 들었어요! 천문대의 전설! 중앙 과학고를 단숨에 처발랐던 역대 최고의 천문가!”
난데없는 찬사에 머쓱해진 최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흠, 그 정도는 아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중전 때 최대우가 기록했던 빨리 찾기 신기록이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망원경 조립을 끝내고 여드름 남학생이 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붙였다.
“사진 찍으려고?”
“우주정거장이잖아요.”
“제대로 안 찍힐 텐데. 망원경에서는 빨리 움직여서.”
“그래도 시도해봐야죠.”
“차라리 일주운동 찍듯이 궤적을 찍으면…….”
“그건 저기에.”
남학생이 옥상 한쪽에 세워진 삼각대와 카메라를 가리켰다. 준비가 철저하다.
김선호가 열심히 데이터를 찾아 서울에서 ISS가 보이는 시각을 확인했다.
“예측대로라면 곧 지나갈 거야. 2분 후에.”
강우는 하늘을 쳐다봤다.
고등학생 때 저 하늘을 바라보며 최대우와 함께 꿈을 키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저기 빛나는 별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그는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오늘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별을 보니 감격스럽다.
저 별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나 탈레스, 프톨레마이오스가 봤었고 코페르니쿠스, 케플러나 뉴턴, 핼리도 봤던 별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아인슈타인이나 가모브, 호킹도 저 별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확신한다.
그 연장선에 그와 최대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과학 문명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그들 뒤에는 또 누가 따라올까.
시간이 되었을까.
“저기다!”
최대우가 북쪽 하늘을 가리켰다.
엄청 밝은 별 하나가 하얀빛을 빛내며 하늘을 가로지른다.
“우와!”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저 별처럼 보이는 밝은 점은 자연의 별이 아닌 인간이 만든 기구다. 물체를 하늘에 쏘아 떠다닐 수 있게 한 과학기술이 놀랍다.
강우와 최대우가 지나가는 인공위성에 넋이 나간 사이 김선호와 남학생은 열심히 관측을 수행했다.
삼각대에 올려놓은 카메라로 ISS의 궤적을 찍었고 망원경에 부착한 카메라로 ISS를 잡아 셔터를 눌렀다.
그들의 진지한 열기에서 강우는 새삼 과학자의 열정을 발견했다.
유명한 과학자가 아닌 과학교사나 과학고 학생도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 때 그 나라의 과학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고 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과학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ISS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시간은 금방이었다. 잠시 그 빛에 홀려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찍혔어?”
김선호가 남학생에게 물었다.
일주사진을 촬영한 카메라를 확인한 남학생이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었다.
“흐리지만 나오긴 했어요. 그런데 볼품은 없네요.”
ISS가 밝아도 서울 하늘인 데다 움직임이 빨라서 선명하게 찍기는 쉽지 않다.
이어서 천체망원경에 부착한 카메라를 확인한 남학생이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망원경에서는 모습 확인이 어려워요.”
“쉽지 않네.”
“그게 제대로 찍히기나 할까요?”
“외국에서 찍었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첫 도전부터 배가 부를 수는 없지.”
노력한다고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런 무수한 시도와 실패를 통해 과학은 발전한다.
강우는 이들의 관측 활동에서 새삼 과학의 기본을 떠올렸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 강우에게도 통하는 격언이다.
최대우와 김선호가 서로 어울려 별을 관측하는 사이 강우는 ISS를 떠올렸다.
ISS를 제대로 찍으려면 천체망원경이 별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처럼 ISS를 추적하면 된다. 거기에 고해상도 카메라를 활용하면 태양전지판을 펼친 ISS를, 흐릿하나마 그 형체를 담을 수 있다.
강우는 남학생을 불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저요? 김소우요.”
“어…… 김소우?”
녀석의 머리 위로 찬란한 문자가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