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22화 (322/325)

제322화 과학의 길 (2)

- 김소우, 수학 A, 물리 S, 화학 C, 생물 C, 지구과학 S.

놀라웠다. 무려 S가 둘이다!

오랜만에 보는 재능 표시에서 S가 둘인 천재를 발견했다.

그의 기억에 S가 둘이었던 녀석은 최대우와 랜디 멀더, 리유창이 전부였다. 리유창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가끔 연락하는 랜디 멀더는 수학과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었다. 그쪽 분위기를 정확히는 모르나 강우는 랜디가 유명한 수학자가 되리라고 확신했다.

어쨌든 놀랍게도 S가 둘인 녀석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일평생 강우가 만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는 두 번째 천재였다.

‘이 녀석을 잡아야 한다.’

욕심이 난다.

강우는 재차 녀석의 재능을 확인했다. 동시에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대우 판박이네.’

대우처럼 물리와 지구과학이 S였다. 게다가 수학도 잘한다. 화학이나 생물에 재능이 떨어지는 것까지.

“이름이 소우?”

“네. 제가 태어나는 날 가랑비가 왔었데요.”

이름의 뜻까지는 그가 알 바 아니고 강우는 최대우와 이름마저 비슷하다는 인연에 주목했다.

‘이거 완전 리틀 최대우잖아?’

희한하게도 머리는 리틀 최대우인데 육체는 리틀이 아니다. 펑퍼짐한 최대우와 달리 이 녀석은 반대로 비쩍 말랐다.

이것도 인연인가.

녀석의 실패한 사진을 구경하면서 강우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망원경에서 안 찍히는 이유가 뭘까?”

“너무 이동이 빨라요.”

눈으로 보기에도 하늘을 주욱 지나가는데 망원경에서는 얼마나 빠를까. 일단 겨누기도 쉽지 않다. 특히 큰 망원경일수록. 강우는 오늘 관측에 주 망원경을 동원하지 않고 이동용 소형망원경을 꺼낸 이유를 알아챘다.

“망원경으로 추적하면 어때?”

“그게…….”

천체망원경은 천구의 회전, 즉 지구 자전에 맞춰서 별을 추적한다. 일전에 윤수아가 혜성이나 소행성 추적 프로그램까지 완성한 바 있다.

“인공위성 추적은 어렵다는 거지?”

“그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망원경 추적 프로그램이 여기엔 없어요.”

드물게 있더라도 아마 사용이 어렵겠지.

강우는 슬그머니 물었다.

“프로그램 만들어볼 생각 있어?”

“그, 그게 돼요?”

“난 고등학생 때 소행성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김선호 선생님께 물어봐.”

“아, 알아요! 지금도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든요. 사이언스 페스타에서 대박쳤다고…….”

“그러니까 너도 가능할 거야. 인공위성이나 소행성이나 따지고 보면 별 차이도 없어. 어차피 케플러 법칙에 따라 공전하는 거니까.”

역시 똑똑한 녀석이라 금방 이해했다.

“그럼 주 망원경에 그 프로그램을 심으면…… 주 망원경이 인공위성을 추적하는 동안 ISS를 찍을 수 있겠네요?”

“그렇지. ISS가 화면 가득한 크기로 찍힐 거다. 태양전지판을 펼친 모습이 확실히 구분될 만큼.”

김소우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앞으로 맞이할 결과를 상상하며 환희에 잠겨 있다.

“내년에 그 연구로 페스타에 나가면…….”

혼자서 이래저래 중얼거리던 녀석이 주먹을 꾹 쥐고 강우를 쳐다봤다.

“저, 해볼래요!”

그럴 줄 알았다.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고려 과학고 학생이라 할만하다.

일단 미끼를 물었으니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R&E는 어느 선생님이랑 하니?”

“김선호 선생님요.”

이것도 딱 적합하다. 강우는 R&E를 핑계로 이 녀석을 한국대로 수시로 불러들일 계획을 세웠다.

“그럼 내년부터 나랑 R&E를 진행하자. 인공위성 추적 프로그램 작성으로. 첫 목표는 ISS를 추적해서 사진 찍기. 둘째는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니는 군사위성을 추적하기. 어때? 재미있지 않아?”

“우와아!”

졸지에 한국대와 R&E를 하게 된 김소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R&E는 내년부터지만 그렇다고 지금 녀석을 한가하게 놀릴 생각은 없다. 천재라면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

“자,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을 알려줄게. 천문대에 보면 예전에 나랑 친구들이 작성한 소행성 프로그램 보고서가 있을 거야.”

“네, 그거 봤어요.”

“그걸 한줄 한줄 제대로 다시 확인해. 그리고 거기 나오는 수식들 공부하고. 모르는 것 있으면 묻고. 그걸 먼저 해야 인공위성을 연구할 수 있으니까.”

김소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녀석에게 할 일을 알려줬다. 이 녀석이 열심히 따라온다면 고곽천재처럼 제대로 키워볼 작정이다. 훗날 그처럼 핵융합 과학자가 될지 아니면 다른 분야를 전공할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 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키울 생각이다.

“저…… 선배님…… 아니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편한 대로 불러.”

따지고 보면 나이 차도 그리 많지 않다. 그와 차도도의 나이 차와 이 녀석과의 나이 차가 비슷하려나.

“강우 형, 저…… 전화번호 좀…….”

신이 난 녀석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받았다.

“내일 내가 강연할 때 꼭 와서 들어라.”

“당연하죠.”

그렇게 한 녀석을 과학 연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강우는 최대우를 찾았다. 열심히 별을 보면서 잡담을 나누던 최대우와 김선호가 그의 만행을 눈치채고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한 녀석 인생이 이렇게 또 저당 잡히는군.”

“제가 강우만 아니었어도 인생이 달라졌을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넌 산골짜기에서 천문대장 하고 있겠지. 그게 더 좋으냐?”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계속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거든요.”

최대우와 김선호가 작정하고 그를 헐뜯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강우가 아니었다.

“쌤! 혹시 신새벽 선생님 기억하세요?”

“알지. 요즘 뭐 하시지? 미국에서 잘 지내시려나?”

“얼마 전에 한국대 화학과 교수님 되셨어요.”

“우와! 대단하시네. 열심히 하셨나 보다.”

일단 그렇게 운을 떼어놓고 이어서 폭탄을 날렸다.

“그 신새벽 쌤이랑 대우가 사귄대요.”

“사귄다고…… 뭐? 누구랑?”

김선호가 최대우를 쳐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 나이 차가…… 아! 너도 차도도 선생님이랑 마찬가지지.”

피식 웃으며 김선호가 최대우의 어깨를 툭 쳤다.

“대단하네.”

이어서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는지 서로 마음은 잘 맞는지 장거리에 연애가 힘들지 않은지 별별 질문이 들어왔다.

이제 1일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도 최대우가 재주껏 넘겼다.

그렇게 떠들고 놀다가 돌아갈 시간이 됐다. 더 늦으면 차도도랑 신새벽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그래, 내일 강연 구경 가마.”

김선호 선생님과 김소우에게 인사하고 천문대를 떠났다.

올 때와 달리 최대우의 안면이 활짝 펴있었다. 역시 별은 녀석에게 삶의 활력소다.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 문자가 날아왔다.

- 고현성 : 만세!

- 뭐래?

강우가 답장을 보내자 사진이 떴다. 붉은색의 매운 떡볶이 사진이다.

- 고현성 : 봤냐?

- 밥 굶었니?

- 고현성 : 굶긴! 잘 먹고 있지. 내가 떡볶이를 먹으면 누구랑 같이 먹겠냐?

고현성은 항상 고곽천재에게 떡볶이를 사주었었다. 떡볶이를 즐기는 녀석이 아닌데도 손차희와 윤수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떡볶이를 먹고 눈물을 흘렸었지.

- 차희랑 같이 있어?

- 고현성 : 차희랑 첫 데이트!

- 일없다. 동창끼리 밥 한 끼 먹을 수 있지.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몇 년인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니 두 사람이 이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강우가 생각하기는 그랬다.

- 고현성 : 오늘부터 1일이야! 1일!

- 응?

고현성과 손차희가 사귄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한국과 미국이라 거리가 멀기에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이 남아 있지만 어쨌든 둘이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다니 축하할 일이다.

- 축하, 축하!

어쨌든 축하해줬다. 손차희의 까탈스러운 성격을 일편단심으로 감내한 고현성이기에 어쩌면 결과가 좋을지 모르겠다. 녀석의 평생소원인 의사 부인 손차희가 실현되려나.

강우는 옆자리에 탄 최대우를 슬쩍 살폈다.

저 녀석도 오늘부터 1일이랬는데. 고현성도 1일이라니.

문득 어젯밤 헤어지던 장면이 생각났다.

손차희와 고현성이 같이 나갔고 최대우와 신새벽이 같이 사라졌는데. 그렇다면 설마?

- 혹시 어젯밤에 둘이?

- 고현성 : 비밀이다.

저 둘도 술이 연결했나? 손차희 성격에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신새벽을 보면 저 둘도 완전히 믿기는 어렵고.

하여튼 좋을 때다.

강우는 차도도를 떠올렸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을 때지.’

* * *

오전에 한국대 물리학과 회의실에서 손님을 맞았다.

지금 그의 맞은편에 앉은 인물은 미국 클리퍼드 국방장관과 CIA 국장이다. 그때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밀리에 보자더니 오늘은 무려 공개적으로 한국대로 찾아왔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악수하는 강우에게 클리퍼드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 박사 덕분에 또 왔습니다.”

아마도 심포지엄에서 강우가 선언했던 사건 때문인 듯했다. 직접 그들 요구에 답을 주지는 않았어도 그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뭐…… 요구를 수용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굳이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그러리라 예상했습니다.”

의외로 클리퍼드의 심기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오픈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략이죠. 어차피 언젠가는 대중도 알게 될 일이고요. 과학이란 항상 양면성을 가지기에 일반 사람들도 대비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덕분에 비밀리에 추진하던 일이 모두 망가져 버렸지요.”

“하하, 죄송합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강우는 금방 분위기를 파악했다.

만일 강우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와 손잡고 핵융합 개발을 추진하려 했다면 이들은 한사코 말렸을 것이다. 그런데 강우는 개발 자체를 거부했다. 심지어 다른 과학자의 참여마저도 쉽지 않도록 판을 바꾸어 놓았다.

미국이 개발할 수 없게 되면서 다른 나라 또한 개발이 어려워졌다. 이는 미국으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현재의 판도가 유지되는 거니까.

사실상 클리퍼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던 클리퍼드가 그에게 물었다.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 목표는 물 건너갔고…… 앞으로는 무슨 연구를 하실 겁니까?”

“아직 정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군사 무기와 관련 없는 분야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그런 분야가 과연 존재할까요?”

클리퍼드의 장담도 거짓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군사 무기는 항상 과학 발전을 선도해왔고 모든 과학 이론은 군사적으로 응용되어왔으니까.

“앞으로 또 중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 삼아 맞장구를 치던 CIA 국장이 화제를 전환했다.

“혹시 미국에 이민 올 생각이 있습니까?”

“갑자기 이민은 왜요?”

“세계적인 인재를 미국은 환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강 박사가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출국 금지하자는 의견이 정부에서 꽤 많았습니다. 국가 안보에서 필수 인력이니까요. 인권 문제 때문에 실행할 수는 없었지만요.”

그만큼 핵융합 기술의 군사적 활용 및 외부 유출을 고민했다는 뜻이다.

“요셉 교수가 적극적으로 만류하셨지요. 과학자는 가두면 머리가 안 돌아가서 효율이 떨어진다나요? 강 박사 같은 천재는 자유롭게 놓아두는 게 돕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모르는 사이 요셉 교수에게 신세를 졌다. 앞으로 꼭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

“우리는 강 박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제까지나.”

“미국과의 인연은 계속될 겁니다. 한국대 HC 핵융합연구소에 헌팅턴의 영향력이 제일 크거든요.”

여기까지가 그가 미국에 보여줄 수 있는 호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강우는 두 사람과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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