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23화 (323/325)

제323화 과학의 길 (3)

고려 과학고 정문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 노벨상 수상자 강우, 차도도 박사님의 모교 방문을 환영합니다.

행인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큼지막하게 걸어놓아서 강우는 괜히 안면이 화끈거렸다.

“신경 많이 썼네.”

차도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정작 어제는 왜 발견하지 못했는지 의문이었다. 밤늦게 급히 학교로 들어가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한 모양이다.

두 사람의 옆에는 신새벽과 최대우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 역시 오랜만에 오는 학교에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는 예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들어가죠.”

학교를 둘러보며 감상에 잠겨 있자니 A동에서 몇 사람이 우르르 나왔다.

그 속에 그가 아는 인물이 두 사람이나 있었다. 바로 백두섭 교장과 김윤택 선생님이다.

강우는 두 사람을 향해 바로 허리를 숙였다.

“교장 선생님! 강우가 왔습니다!”

백두섭이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띠며 강우와 손을 잡았다.

“허허, 난 이제 교장이 아니야. 정년 퇴임했지. 지금 교장 선생님은 옆에…….”

백두섭 옆에 거의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선생님이 있었다. 조금 더 깐깐한 인상이다.

강우는 현직 교장 선생님에게 인사했다.

옆에 함께 있는 김윤택은 현재 2학년 학년 주임이라 했다. 그동안 다른 학교로 갔다가 올해 다시 돌아왔다나.

예전에는 그렇게 싫었던 선생님인데 지금은 반가운 선생님이다. 따지고 보면 김윤택이 그에게 특별히 해코지하지는 않았으니. 있다 해도 마도환 때문이어서 시간이 흐른 지금 김윤택과 거리를 둘 이유는 없었다.

차도도와 신새벽도 예전의 교장 선생님과 김윤택에게 인사했다.

“두 선생님이 정말 성공하셔서 다시 찾아주셨군요.”

백두섭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와서 보면 차도도와 신새벽이 학교를 그만두고 연구자의 길로 나간 선택이 개인과 국가를 위해서 정말 바람직했다.

김윤택이 차도도에게 넌지시 말했다.

“차 선생님, 아, 이젠 교수님이라 불러야 하나요? 앞으로 서로 협력해서 잘 지냅시다. 우리 학교 학생들 R&E로 많이 받아주세요. 우리 사정 잘 아시잖아요?”

역시 김윤택은 조금이라도 대학교수와 안면을 넓혀 R&E로 엮을 생각뿐이다. 그것이 김윤택 본인에게 도움이 되듯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기에 차도도도 거절하지 않았다.

“오늘 두 분을 보려고 학생들이 엄청 모였습니다. 아마 전교생이 다 모였을 겁니다.”

김윤택의 안내로 강우 일행은 강당으로 이동했다.

예전 고려 과학고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서 강우는 그리움에 잠겼다.

한참 강당을 쳐다보는 최대우도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이 젖었다.

강당에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강우 일행이 단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학생들이 열화같은 환호성을 울렸다.

김윤택이 일행을 소개했다.

강우와 차도도는 소개 자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학생들은 신새벽과 최대우도 환영했다.

김윤택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고려 과학고에는 전설적인 3대 천재가 있죠? 누굽니까?”

“강우! 차도도! 최대우!”

학생들이 신이 나서 합창했다.

김윤택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 3대 천재는 그동안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바뀌기 힘들 것 같네요. 우리 학교 졸업자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또 나오기 전에는 말입니다. 오늘 선배님들 보니 어때요?”

“멋있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푸근해요!”

“예쁘세요!”

강우는 학생들의 반응에 내심 웃었다. 역시 학생들이 보는 눈은 바뀌지 않는다.

“이분들이 이 학교에 계실 때 저도 이 학교에 있었습니다. 그때도 학년 주임을 맡고 있었어요. 자, 생각해보세요. 역대 최고 레전드인 세 사람에 여기 신새벽 교수님까지 함께 존재하는 학교라니! 엄청나지 않습니까? 학교 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죠?”

“네!”

“그때 여기 차도도 선생님이 물리를 가르치셨고 신새벽 선생님이 화학을 가르치셨어요. 강우 박사님과 최대우 박사님은 학생이었고요. 이분들은 저녁 자습시간에 세미나실에 모여서 연구와 토론을 하셨어요.”

“우와!”

“그런 과정에서 노벨상 꿈을 키우셨다고 해요.”

학생들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그럼 지금부터 강우 박사님을 모시고 강연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윤택이 마이크를 강우에게 넘겼다.

강우는 학생들을 향해 재차 인사했다.

과거에 이 학교에 다니면서 지금처럼 학생들 앞에서 강연했던 때가 몇 차례 있었다. 그 시절이 생각나서 강우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단상에서 쭉 둘러보니 학생들의 눈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를 바라보는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왔습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

학생들이 강당을 떠나갈 듯 환호했다.

“중 3을 마치고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이 학교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예비입학기간이었죠. 그날 강당 앞을 지나다가 김윤택 선생님께 딱 걸렸습니다. 그리고 끌려가서 간이의자를 열심히 날랐습니다. 바로 고난의 시작이었죠.”

학생들이 웃음보를 터트렸다.

강우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가 바뀌었어도 거의 달라진 건 없었다.

“여기 최대우 박사님과는 1학년 때 같은 조였습니다. 제가 시골 출신이고 최 박사님은 울릉도 출신이라 학교에 적응이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 둘과 조를 만들어 주셨죠. 그 담임 선생님이…….”

강우는 뒤에 앉은 차도도를 가리켰다.

“바로 지금은 제 아내이자 노벨상 수상자에 동료 연구자이신 차도도 박사님이세요.”

“오오!”

담임 선생님이 아내가 되었다는 말에 학생들은 두 사람의 세기적인 로맨스를 부러워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저는 문제 학생이었어요. 제가 물리는 조금 했지만 화학은 지지리도 못해서 신새벽 선생님에게 매일 혼났어요. 신 선생님이 숙제를 왕창 내주셨는데 저는 복사해서 제출했다가 혼이 났죠.”

“푸하하!”

강우는 재미있게 과거 학창 시절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우스운 일화 중간에 강우는 올림피아드 출전을 위해 교내경시를 쳤던 일과 사이언스 페스타 출품을 위해 천문대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곁들였다. 지금 학생들도 경험하는 일상이었기에 대부분 공감했다.

학생들은 강우의 삶이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적당히 학원에 다니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간 그런 선배라고 짐작했는데 강우의 고등학교 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오늘 이 자리에 서면서 여러분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정말 고민했습니다. 흔한, 책에서도 볼 수 있는 핵융합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제 고등학교 일상으로 재밌게 끌어갈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왜 왔을까,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제가 어떻게 채워드려야 할까…….”

평범한 강연자는 절대 하지 않을 고민을 거듭했던 강우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여러분은 레전드를 보러 왔습니다. 고려 과학고의 전설적인 선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레전드가 될 수 있는지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렇죠?”

“네!”

학생들이 합창으로 호응했다.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강우는 그들의 앞길을 밝히고 응원하는 레전드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로 작정했다. 어떤 학생은 좌절하고 어떤 학생은 오히려 오늘 미래의 자신을 찾을 것이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고등학생 때의 저는 어떠했을까? 이미 봤던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지요.”

강당의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떴다. 지금부터 8년 전, 강우가 출연했던 연말 특집 예능프로였다. 그 방송에서의 마지막 장면!

MC에게 장기자랑을 주문받은 강우는 커다란 보드 앞에 섰다. 그때의 강우는 지금보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조금은 앳되어 보였다.

그리고 강우가 보드에 수식을 쓰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신들린 표정의 강우를 포착했다. 보드에 적히는 수식은 흔히 보는 고등학교 수학이나 물리 수식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핵융합 플라스마의 모델링과 안정화 수식을 거침없이 풀어나가고 있었다.

“어떤 분은 저 장면 촬영을 위해 제가 저 수식을 밤새도록 외웠다고 말씀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수식은 당시 제가 고민하던 연구 주제였고 아직 풀리지 않던 문제였어요. 마침 방송 중에 그 수식의 일부 해법이 눈에 보였었죠.”

강우의 설명에 학생들은 경악했다. 설사 저 문제풀이를 외우고 있었어도 방송에서 저렇게 거침없이 풀기는 어렵다.

순간 영상에서 강우가 수식 전개를 멈췄고 차도도가 마카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차도도가 수식을 신들린 듯 풀었다.

화면 속의 차도도는 아름다웠다. 지금 저 장면을 보는 학생들은 그녀의 미모가 평소 방송에서 접하던 유명 연예인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혜의 여신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수학의 여신이라 해야 할까. 미모와 지성 양쪽을 완벽하게 휘어잡은 환상의 여인이었다.

학생들은 뒤에 앉은 차도도와 화면 속의 그녀를 번갈아 비교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면에서 다시 강우가 마카를 이어받았다. 보드에 수식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이게 바로 제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입니다.”

“아!”

낙심한 학생들의 한숨이 쏟아졌다.

레전드는 그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지금 이곳에는 그 시절의 강우를 흉내 낼 수 있는 학생이 전혀 없었다.

“여러분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을 자주 치죠. 그때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야밤에는 출출해서 식당에서 야식을 먹기도 해요. 그렇죠?”

“그거 비밀인데…….”

“하하, 물론 여기 선생님들은 아무도 모르세요. 그런데 그때 시험 전날, 저는 친구들의 질문을 받아 즉석에서 풀어줬어요. 그리고 저기 최대우 박사님은…….”

강우는 차도도 옆에 앉아 있는 최대우를 가리켰다.

“인터넷에서 물리 문제풀이 센터를 운영하셨어요. 시험 기간에도 전국 중고등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셨죠. 그렇게 많은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다 보니 물리의 천재가 됐죠. 올림피아드 최우수상을 타게 됐고요.”

학생들은 강우와 최대우를 다시 봤다. 그들은 이 두 레전드가 본인의 공부에만 몰두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호흡했으며 그 속에서 실력을 키워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레전드는 어떻게 수학과 물리 문제를 푸는지. 여러분의 목표가 어떤 수준이어야 하는지. 이미 고등학교 수학과 물리를 손 놓은 지 오래이지만, 녹이 슬었으면 기름치면 되고 섞어도 준치라는 말도 있으니까 오늘 한번 제대로 보여드리기로 하죠.”

학생들은 놀랐다. 무려 노벨상 수상자가 그들과 수학과 물리를 겨뤄보겠다고 했다.

최대우도 단상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마이크를 뺏어 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 누구라도 좋습니다. 어떤 문제라도 좋습니다. 질문해보세요. 수학이나 과학이면 모두 환영합니다!”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휴대폰을 꺼냈다. 평소 자신들이 막혔던 문제, 궁금했던 문제를 찾기 시작했다.

용기 있는 한 학생이 휴대폰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이 문제 풀어주실 수 있으세요?”

프로젝터와 연결하자 휴대폰 화면이 강당 스크린에 떴다.

고난도 수학 문제. 수능 모의고사에서 모두를 울렸던 문제다.

문제를 쓱 훑어본 강우가 마카를 들었다.

“이 문제는 말이죠. 이 지문을 눈여겨보셔야 해요. 이 부분에서 미분 가능성을 묻고 있다는 핵심이 바로 보이죠? 이 문제를 한 차원 높은, 출제자의 시각으로 내려다보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