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24화 (324/325)

제324화 과학의 길 (4)

강우의 손에서 새로운 수식이 만들어졌다. 문제를 약간 변형한 수식이었고 이를 이용해서 강우는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단번에 풀어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이렇게 풀립니다. 아마 문제집에서 푼 방식과는 조금 다를 거예요. 하지만 수학적으로는 이 방식이 더 명확해요.”

학생들이 얼이 빠졌다.

“이런 미친…….”

“저게 뭐야?”

“저런 풀이가 가능해?”

“내가 30분 동안 풀었던 문제를 30초 만에 풀었어!”

여기저기에서 절규가 들렸다. 흡사 뭉크의 명화를 보는 것 같았다.

“자, 또 질문 있어요?”

이번에는 다른 학생이 물리 문제를 들고 왔다.

강우는 최대우에게 해설을 양보했다.

최근에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에 출제된 고난도 문제. 당연히 지금 이 강당에는 이 문제를 이해하는 학생이 없었다.

하지만 물리 문제풀이 센터를 통해 수없이 많은 문제를 다뤘던 최대우는 문제를 보는 순간 피식 웃었다.

“이 문제는 말이죠, 물리의 기본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측정하는 문제입니다. 계산 방법은 조금 복잡하고 수식량도 많고요. 하지만 절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물체에 가해지는 알짜힘을 고려해보면…….”

최대우가 물체를 단순화해서 그린 다음 작용하는 힘과 가속도를 표시했다. 이어서 복잡한 수식을 나열했다. 벡터로 표시된 수식을 각 방향으로 힘과 가속도를 분해하고 스칼라로 변환해서 풀었다.

“자, 쉽게 풀리죠? 하지만 조금 복잡하다고 느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운동에너지에서 퍼텐셜에너지를 뺀 라그랑지언으로 푸는 게 더 낫죠. 해밀턴 원리라고 들어보셨나요? 자연은 낭비를 싫어한다, 최적화를 좋아한다. 이런 말인데…… 즉 이 라그랑지언에 최소작용원리를 적용하면…….”

한결 간편하게 몇 줄의 풀이로 최대우가 답을 구해냈다.

학생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 보셨죠? 역시 최대우 박사님도 단번에 풀었습니다. 다른 학생?”

이번에는 스마트하게 생긴 남학생이 나섰다.

“오! 전교 1등!”

학생들의 수군대는 소리로 보아 전교권에 있는 학생이다.

스마트한 학생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물었다.

“요즘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학생 이름이?”

“백준영입니다.”

“아, 백준영 학생!”

강우는 학생의 머리 위를 살폈다.

- 백준영, 수학 A, 물리 A, 화학 B, 생물 B, 지구과학 B.

아쉽게도 S가 없다. 대략 고등학교 시절 손차희와 비슷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다. 물론 앞으로 평범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다면 강우의 옆에서 크게 성장한 손차희에 닿기 어렵다.

S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강우는 스크린에 뜬 문제를 살폈다.

이번에는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의 출제 문제라고 했다. 강우는 손쉽게 문제를 풀어줬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연발하는 녀석은 꽤 똑똑했다. 그러니 고려 과학고의 전교권에서 놀 수 있다.

그다음에도 몇 명의 학생들이 질문했고 강우와 최대우는 어려움 없이 문제를 풀어줬다. 놀랍게도 두 사람이 푸는 방식은 보통의 문제풀이와 조금 달랐다. 간명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웠고 특히 우수한 학생들이 좌절했던 문제풀이의 벽을 시원하게 깨트렸다.

강우와 최대우는 수학과 과학의 신이었다!

“과외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다!”

“아아! 저게 바로 노벨상 수상자의 레벨이란 말인가!”

“천재란 저런 사람이었어!”

“난 바보였구나! 너도 바보였지?”

각양각색의 반응이 쏟아졌다.

강우는 문제풀이 시범을 멈추고 다시 강연으로 돌아갔다.

“어때요?”

강우와 최대우에게 압도된 학생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 오늘 문제를 풀어드린 이유는 제가 문제를 잘 푼다고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니에요. 여러분에게 한 차원 높은 경지가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여러분을 좌절하게 할 목적이 아니라 그 길로 안내하고 싶었죠.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갈 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면 더 자신 있게 전진하지 않을까요?”

여기 학생들은 아직 어리기에 그 앞길을 밝혀줄 등불과 목표물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강우의 말에서 용기를 얻고 지금까지 품었던 자만을 모두 버렸다. 얼마나 공부를 더 하면, 더 열심히 하면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호승심과 함께 레전드를 향한 존경이 학생들의 가슴을 가득 메웠다. 저 선배들이 노벨상을 탔으니 그 길을 따라 전진하면 그들도 노벨상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 여러분들은 그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 열정으로 과학을 불살라 봅시다. 과학의 언어는 수학이기에 자연스럽게 수학도 불살라지겠죠.”

“와아!”

학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꿈이 빛나는 게 아니라 꿈을 좇는 자가 빛난다는 말도 있어요. 여러분은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에 여러분은 빛나고 있어요! 그 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열정적으로 정진합시다!”

강우의 강연에서 호소력이 폭발했다.

학생들은 모교의 레전드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학생들은 이 나라, 아니 이 세계를 이끌어갈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모이면 더 나은 세상을 펼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강우는 강단을 내려왔다. 오늘 이 방문이 한국의 미래를 밝히리라고 그는 믿었다.

- 고려 과학고에서 진정한 천재는 한 사람입니다. 오직 강우뿐입니다.

* * *

심포지엄 현장에서 붙잡힌 마도환은 그날로 구속되었다.

손강우 살인, 연구비 횡령, 사기, 협박 등 여러 혐의가 씌워졌고 조사를 받았다.

정계에 기댄 연줄을 이용해서 그의 아버지 마국성이 열심히 구명운동을 펼쳤으나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상대인 강우가 너무 강했다.

손강우 박사가 살아 있었다면 인류의 에너지난 구원이 더 빨라질 수 있었다는 강우의 평가에 마도환을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마도환의 국책 연구 과제 심사 전횡마저 밝혀지면서 과학기술자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마도환은 끝모르게 추락했다.

서울 구치소 면회실에 강우가 나타났다.

그는 플라스틱 투명판을 사이에 두고 마도환과 마주 앉았다. 죄수복의 마도환은 평소와 완전히 달라진 수척한 얼굴이었다.

“마도환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마도환은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눈빛에는 원망의 기운이 가득했다.

“이젠 제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왜 당신을 싫어했는지 아실 겁니다.”

강우는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몇 차례 숨을 삼키며 간신히 분노를 억누른 마도환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 때문이었냐? 내가 손강우를 죽여서?”

“그렇습니다. 전 그 이전부터 손강우 박사님과 이메일로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당신이 손강우 박사님에게 무슨 짓을 했었는지 아주 상세하게 알고 있었죠. 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당신을 무너트릴 방법을 고민했고 차근차근 그 기반을 닦았습니다.”

강우는 자신이 손강우라고 밝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해봐야 상대는 믿지 않을 것이고 굳이 본인의 정체를 드러낼 이유도 없었기에 손강우의 지인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 봤어.”

“얕잡아 본 게 아니라 인과응보를 무시한 거죠. 사람은 뿌린 만큼 거두는 법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손강우 박사를 살해하고 그 연구 자료를 탈취하더라도 당신이 손강우 박사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너는 몰라. 손강우가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지.”

“그 반대가 아닐까요?”

마도환이 허허롭게 웃었다.

“그래 가끔 천재들은 그렇게 말하곤 하지. 손강우는 천재였어. 나는 그 녀석을 고등학교 때부터 봤었으니까. 그 녀석은 보통 학생들이 며칠이 걸려 공부할 분량을 불과 몇 시간 만에 해치우곤 했었지.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교수님 강의를 그 녀석 혼자서 바로 이해하더군.”

마도환의 입으로 듣는 손강우의 행적은 무척 신선했다. 그가 마도환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도환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였다.

“너도 천재니까, 무려 노벨상을 탄 천재니까 손강우와 같은 부류지. 아니 어쩌면 손강우보다 더 날아다니는 녀석이지. 그런 천재들은 나 같은 둔재의 아픔을 몰라.”

“과기부 장관이었던 아버지를 둔 당신에게 무슨 아픔이 있습니까?”

“그래서 더 아프다고!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어. 초등학교 때부터 무조건 반에서 일 등, 전교에서 일 등을 강요받았지. 일 등 하지 못하면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시달렸고.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나를 노려보는 아버지의 실망한 눈빛이 나를 더 좌절하게 했으니까.”

강우는 짐작조차 못 하던 사실이었다.

회한 어린 마도환의 한탄이 이어졌다.

“너는 알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난 손강우를 이길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무척 노력했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을 깨달았어. 그 좌절감을 네가 알까……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손강우를 이용해서 아버지의 기대를 해결해보자는 뜻을 품게 됐지.”

그리고 마도환은 손강우와 같은 대학, 같은 대학원을 다녔다. 손강우의 리포트를 베꼈고 손강우와 같이 공부했으며 손강우에게서 논문 연구의 도움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손강우는 그를 도와주었다. 그는 학계에 힘 있는 아버지가 있었기에 손강우에 앞서 각종 혜택을 거머쥘 수 있었다.

깊이 공부할수록,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할수록 의존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은 손강우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증오심은 깊어졌고 손강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도록 방해 공작에 몰두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면서도 손강우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면 자신은 껍데기만 남기에 놓아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손강우가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순간이 되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살해를 결심했다.

손강우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그가 일인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일인자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손강우보다 더한 괴물, 강우가 등장했다.

“너 같은 천재는 나 같은 둔재의 아픔을 모르겠지.”

마도환이 허허롭게 웃었다.

강우도 말문이 막혔다.

마도환의 문제는 공부를, 과학을 개인의 지위 향상과 영달의 수단으로 삼았기에 발생한 일이다.

지금까지 강우는 과학을 과학 그 자체로 봤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이 흥미로웠기에 과학을 탐구했고 그 비밀을 알아가는 재미에 집중했다.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이, 물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 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성취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과학자이면서도 그런 재미를 알지 못하는 마도환이 불쌍했다. 어차피 녀석은 지금 과학자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교도소에서 오래 살더라도 출소 후에는 다른 삶을 찾기 바랍니다.”

“그래야겠지.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다 다리가 찢어졌는데 어떡하겠나? 자네는 천재니까…… 앞으로 더 정진해주게. 나보다 자네가 이 나라에 훨씬 도움이 되겠지.”

말을 마친 마도환은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에게서 인간의 욕망, 탐욕, 후회, 해탈……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비쳤다. 아마 형을 살다 보면 저 감정이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그 마지막에 어떤 감정이 남을지 아직은 모른다.

강우는 손강우와 마도환의 인연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이후 마도환을 다시 볼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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