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화 과학의 길 (5)
동해안에 각종 건설 기자재가 가득 쌓였다.
상온핵융합 발전소를 세울 인공섬 건설이다.
정상이라면 육지에 발전소를 건설해야 하지만 핵융합 발전소는 과거에 논란이 되었던 핵분열 원자력 발전소를 의식하여 아예 처음부터 바다에 발전소를 세웠다.
발전소가 건설되는 인공섬은 넓은 바다를 떠다니는 부유형 플랜트로 첨단 과학기술의 집약체다.
이 인공섬은 파도가 치더라도 전혀 흔들림 없는 완벽한 안정성을 유지하며 설사 태풍이나 해일이 발생하더라도 조금의 타격도 없다. 섬이 쪼개지더라도 가라앉지 않기에 세간의 인식과 달리 안정성 면에서 육지에 건설된 발전소에 비해 압도적인 장점을 발휘했다.
차성중공업은 발전소뿐만 아니라 인공섬 건설에서도 첨단 기술력을 자랑했기에 이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기업이었다.
“건설 장비는 저쪽에, 부유장비는 이쪽에.”
오동섭은 협력업체가 실어 온 각종 기자재를 분류하면서 땀을 흘렸다.
그는 차성중공업 입사 2년 차다.
대학 졸업 후 중공업 쪽이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중공업 선두 주자인 차성중공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와 차도도의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강우의 노벨상보다 그의 은사였던 차도도가 무려 차성그룹의 딸이란 사실에 더 놀랐다. 그렇기에 차성중공업에 다니는 그는 차성이란 이름과 더욱 친해졌다.
“역시 선생님은 대단했어.”
차도도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그는 그 선생님이 자신과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일개 사원인 그는 감히 만날 수 없는 그런 위치로 날아가 버렸다. 이 회사에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꿈을 접은 지 오래다.
일개 사원인 만큼 묵묵히 열심히 일할 뿐이다.
학창 시절에 그는 그리 똑똑하지 않았고 두각을 보이지도 못했다. 아니 과학고에서는 오히려 평균 이하였다. 어떤 학생은 그처럼 둔한 녀석이 어떻게 과학고에 입학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도 장점은 있었다. 바로 끈기다. 고등학교 때도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꿋꿋하게 본인의 행보를 했었으니까.
오동섭이 막 들어온 건자재 점검을 완료하고 휴식을 취할 때였다.
“아저씨!”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게 다가오는 해맑은 중학생 녀석이 보였다. 아직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자그마한 녀석이다. 중학교 2학년이랬지.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중2답게…… 이 녀석도 다르지 않았다.
“아저씨, 인공섬 면적이 얼마예요? 이거 제가 그려본 건데 맞아요?”
학생이 건넨 스케치북에는 인공섬의 간략한 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동안 뉴스에 실린 내용을 짜깁기한 수준이다.
“답해줄 수 없어. 이건 극비사항이거든.”
“그래도 꼭 알려주세요. 제가 인공섬에 작용하는 중력과 부력을 고려해서 그 안정성을 계산하고 있거든요. 지금 파도에 의한 공진현상을 고려하는데 중량이…….”
중학생치고는 꽤 깊이 있는 질문에 오동섭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이 공사장에서 일을 시작한 직후 이 중학생이 매일 나타나 그의 신경을 거슬렀다. 녀석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싶어도 대외비가 많아 대답이 조심스럽다.
“안 돼. 이건 네가 풀 수 없는 문제야.”
오동섭은 한 방에 거절하고 귀찮게 하지 말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실망한 녀석이 울 듯한 표정으로 물러서지 않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히 기분이 언짢아진 오동섭이 녀석을 달래려 할 때였다. 녀석의 뒤로 익숙한 두 사람이 보였다.
“어?”
몇 년 만일까.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두 사람이 등장했다. 이곳에 나타날 일이 절대 없는 두 사람이었다.
다가오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동섭아!”
강우였다.
오동섭은 얼른 차도도에게 꾸벅 인사했다.
“선생님! 저 오동섭입니다!”
“잘 있었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차도도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저 차성중공업에 입사해서 지금 인공섬 건설을 담당하고 있어요! 조만간 HC 핵융합 건설로 정식 발령 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강우와 차도도에게 오동섭이 정신없이 인사하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중학생이 두 사람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마치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본 듯 중학생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얼굴에서 환희가 떠올랐다.
“어? 노벨상이다!”
* * *
고등학교 친구 오동섭을 만난 즐거움도 잠시 정작 강우의 관심을 끄는 일이 따로 발생했다.
스케치북을 들고 오동섭의 옆에서 얼쩡거리는 녀석이다.
강우의 시선이 녀석에게 머물자 오동섭이 어쩔 수 없이 설명했다.
“중2 학생이야. 그 왜 무서운 것이 없다는 중2 있잖아? 이 녀석도 똑같아.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서 인공섬이 구축되는 현장을 보겠다고 난리야. 별별 것을 다 묻는데…… 과학을 엄청 좋아한대. 그런데 알다시피 여기 동해안이 서울처럼 교육 여건이 좋진 않잖아? 학원에서 묻기도 쉽지 않나 봐.”
강우는 금세 중2라는 이 녀석의 호기심을 꿰뚫어 봤다. 과학자의 근본은 호기심이다.
“이름이 뭐니?”
“정차민요.”
순간 강우의 눈에 중2 학생의 재능이 보였다.
- 정차민, 수학 S, 물리 S, 화학 B, 생물 C, 지구과학 A.
“헉!”
강우의 신음에 차도도가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왜 그래?”
“아녀요.”
강우는 재차 재능을 확인한 후 정차민을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몇 학년?”
“중학교 2학년요.”
“과학 좋아하나 보네?”
“당연하죠. 제가 아저씨랑 아줌마 기사만 잔뜩 모아서 스크랩해두었거든요? 아저씨 노벨상 맞죠? 우리나라의 유일한 천재! 그 사람 맞죠?”
“응, 맞아. 궁금한 게 많은가 보더라?”
“아! 아저씨 나, 이거 좀 가르쳐 줘요! 저 아저씨는 절대 못 알려준 데요. 제가 보기엔 몰라서 대답 안 해주는 것 같긴 한데…….”
졸지에 비난을 받은 오동섭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는 정차민의 호기심을 풀어줬다.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과 나누는 대화는 무엇보다 즐겁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학생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또 물어봐도 돼요?”
“그래, 얼마든지.”
정차민이 스케치북에 그동안 궁금했던 문제를 적었다. 물론 그 문제 수준은 평범했다. 학교 교과서에서 다루는 과학 문제에서 조금 어려운 수준. 서울이라면 학원에서 쉽게 물을 수 있고 과학고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풀 그런 문제였다.
강우는 세세히 문제의 해답을 알려줬다.
“그럼 이렇게 풀면 안 되는 거예요?”
질문이 예사롭지 않다.
“그건 말이지…….”
강우가 보기에 이 학생은 아직 과학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배운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고 기초 지식에 구멍이 쑹쑹 뚫려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고등학교에 들어가 교과서를 차분하게 끝까지 공부하면 메워진다.
그가 설명해주자 정차민이 탄성을 터트렸다.
“우와! 마법처럼 풀린다!”
한때 강우도 수학과 과학이 마법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막혔던 문제가 어느 순간 풀리는 마법은 그 희열이 남다르다.
“감사합니다!”
정차민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환하게 웃음 짓는 아이를 보니 강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국내에 들어와서 두 번째 만나는 천재 소년이다. 정확하게는 과학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이다.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주니?”
“학교에선 질문 못 해요.”
“그럼 학원에선?”
“엉뚱한 거 질문하지 말라던대요.”
정차민이 불만을 표시했다.
천재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에 집착한다.
고려 과학고 천문대에서 만났던 리틀 최대우, 김소우와 달리 이 정차민이란 학생은 강우를 닮았다. 본능적으로 강우는 그렇게 느꼈다.
‘이 학생을 키워보고 싶다.’
학생의 밝은 성격과 사물에 드러내는 호기심도 마음에 들었다. 강우의 마음을 눈치챘을까.
역시 정차민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저씨! 다음에 또 물어봐도 돼요?”
“그럼. 언제든 물어봐.”
“어…… 근데 여기 또 언제 오세요?”
“이메일 있지? 이메일로 물어.”
“아! 그 방법이 있었어!”
강우는 정차민과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목적을 달성한 정차민이 신이 나서 뛰어갔다.
싱글벙글 미소를 짓는 강우에게 차도도가 물었다.
“애들 가르치는 거 좋아하네? 넌 중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딱이야.”
“쌤도 마찬가지죠.”
“저 학생…… 조금 특별해 보이던데?”
“그렇죠?”
물론 강우는 차도도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쳐서일까. 차도도의 눈썰미도 대단하다.
“그럼 수고해라. 자주 찾아올게.”
강우는 오동섭과 악수하고 헤어졌다.
그는 차도도와 함께 해변을 걸었다.
“지난번에 밤에 천문대를 갔을 때 김소우란 학생을 만났거든요. 그 학생도 특별했어요. 근데 오늘 정차민이란 학생도 잠재력이 대단해 보여요. 이 두 학생을 옆에 두고 싶어요.”
“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정말 뛰어난 학생인가 봐.”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힐 천재가 될 것 같아요.”
“흐음,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니까.”
차도도의 평가에 강우는 천재 베셀을 알아봤던 오일러와 가우스를 떠올렸다. 어쩌면 자신도 그런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의 영향으로 갈지 않은 보석이 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다면 그 또한 보람된 일 아닌가.
“어떻게 하려고?”
“김소우 학생과는 R&E를 엮을 거예요. 과학고 학생이니까. 정차민은…… 아직 어리니까 일단 과학영재고에 입학하도록 유도해봐야죠. 똑똑한 학생이니까 과학고에서 인재를 알아볼 눈이 있다면 합격하겠죠.”
차도도는 미소를 지었다. 과학도를 사랑하는 강우의 마음을 익히 짐작한다.
파도가 들어와 젖은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차도도는 그간 미루어왔던 질문을 던졌다.
“강우 씨, 인생의 첫 목표는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하는 일이었잖아?”
“그랬죠.”
“부부 노벨상과 함께 훌륭하게 달성했고. 두 번째 목표는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였는데…… 사실상 좌초됐고…….”
“그렇죠.”
강우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차도도가 볼 때 그날 이후로 강우는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연구의 방향성이 없으니 길을 잃은 과학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강우의 길을 밝혀줄 능력이 없었다.
“계속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잖아?”
강우의 안면이 살짝 굳어졌다.
비록 그에게 미안해도 꺼내야 할 문제였다. 작심한 차도도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야?”
“동참하시게요?”
“당연히 해야지. 우리 서방님이잖아?”
차도도가 귀엽다. 강우는 예전에 서방님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혼이 난 기억을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그런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강우는 푸른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먼 수평선과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그의 가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수면에서 반사된 햇빛이 눈이 시리도록 반짝였다.
과학은 끝이 없고 과학을 탐구하는 연구도 끝이 없다. 그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의 열정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죠.”
강우는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거?”
“핵융합! 말 그대로 21세기의 연금술을 해보려고요. 원자를 융합해서 다른 원소를 만들어야죠. 리튬이 부족하면 리튬을 만들고 크립톤이 부족하면 크립톤을 만들고, 제논이 부족하면 제논을 만들고…….”
“그게 가능해?”
“핵융합을 완벽하게 제어하면요.”
강우는 핵융합의 완벽한 제어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군사 무기로 전용되지 않는, 다른 방면으로 연구할 생각이다.
과학의 꿈은 끝이 없다. 그 꿈을 실현하는 미래는 놀랍도록 밝다.
강우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을 가슴에 품었다.
- 이 세상에서 진정한 천재는 한 사람, 오직 강우뿐입니다.
(끝.)
*** 지금까지 애독해 주신 독자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