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
세상은 하나의 게임으로 엄청난 열풍이 일고 있다.
통칭 미궁세계.
내용도 미궁을 공략하는 가상현실게임이다.
사실 내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기술반영 수준이다.
1세대 VR게임은 입체시야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쳤다.
2세대 VR게임은 무선장치를 이용해서 활동성이 좀 더 자유롭게 변했다.
그래봤자 현실에서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는 이상, 이때까지의 VR게임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허나 3세대 VR게임은 달랐다.
뇌신경의 미세한 전자흐름을 읽고 움직임이 즉각 반영된다.
구태여 실제 몸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서 한층 더 진보된 것이 4세대 VR게임.
솔로 게임만 지원될 수밖에 없었던 3세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복수의 게이머들이 하나의 서버 아래에서 ‘멀티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원수는 고작 100명 이하라고는 해도 그것만으로도 인기는 상당했다.
그런 4세대 VR게임의 선두를 달리고 있던 ‘미궁도시’가 출시 10주년을 맞이하여 무려 5세대 VR게임 ‘미궁세계’로 되돌아왔다!
100명이 아닌 1만 명!
서버 수용한도가 무려 100배나 상승했으며, 이전 4세대에는 꾸준히 지적되던 게이머 간의 상호활동에 의한 뇌파인식 문제나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대거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건 놓칠 수 없지.”
미궁도시의 마니아라면 무조건 도전하는 게 당연하다. 굳이 미궁세계가 5세대 게임이 아니더라도 기존 미궁도시 게이머에게 지급되는 특전이 있기 때문이다.
미궁도시 캐릭터 플레이의 최고 점수에 비례하여 미궁세계에서 제작하는 캐릭터 제작에 추가 CP(Character Point)가 지급된다!
초기 CP가 높으면 그만큼 강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고, 그 이점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수준이다.
“흐흐,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남는 건 시간뿐인 전문 게이머 이호연이다!”
결코 백수가 아니다. 그렇게 중얼거려도 듣는 사람 하나 없는 원룸이지만.
적막한 공기에 짓눌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저 홀로 분위기에 취해 치켜 올린 손을 내리고 얌전히 VR기기를 조작했다.
5세대 VR게임은 전용기기를 별도로 구매해야 하지만, 미궁도시의 상위 랭킹 0.1%에게는 무상으로 기기가 지급된다. 랭킹으로 따지자면 그래도 30,000위까지다.
그렇다.
미궁도시의 유저 수는 3억.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인기를 끈 게임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요한 건 그런 게임에서 내가 3만 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게임 방송으로 번 돈도 적지 않았지만, 굳이 내 돈 주고 사지 않아도 기기를 준다는 데 싫을 리가 없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위게이머에게 지급되는 기기는 뭔가 특별한 기능도 있다는 모양이지만,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기기 좋아봤자 뭐하나. 의미가 없는데.’
기껏해야 동기화 비율이 조금 높아지는 수준에 그칠 거다. 내가 아닌 다른 게이머들이라면 기뻐하겠지. 상위 게이머들은 이 동기화 비율을 올리려고 별 짓을 다하니까.
그도 그럴 것이 동기화 비율이란 현실의 뇌가 게임 속 캐릭터로 행동하고자 할 때, 이 행동이 얼마나 정교하게 전달되는지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게이머의 동기화 비율은 20% 남짓이고 상위 게이머는 50%를 넘으며, 3만 위 안쪽의 게이머들은 대체로 75% 이상의 동기화 비율을 지녔다.
‘동기화 비율 따위는 전부 부질없지.’
다만 나는 다른 게이머들과는 다른 별종, 이레귤러(Irregular)에 속하는 특수타입 게이머라서 동기화 비율은 조금도, 정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뇌가 얼마나 정교하게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지, 행동 누수가 미세한 타임 딜레이 없이 행동할 수 있는지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직접 전투에 나서며 활동하는 모험가 대표직업인 전사(Warrior)도, 궁수(Archer)도, 도적(Thief)도, 마법사(Wizard)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이머 이호연. 사용자 코드 식별 완료.]
[미궁세계에 접속합니다.]
[미궁도시에서 사용하던 캐릭터 ‘로드리어스 엘드리고’의 랭킹과 업적점수를 인계받았습니다.]
[Rank 97. 로드리어스 엘드리고 : 19억 7500만 3983점]
[첫 캐릭터 제작 시 197,500CP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인생을 바친 게임답게 엄청난 보상이 들어왔다.
“와. 1만점마다 1CP라니 장난 아니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현재 랭킹 1위인 양반의 점수는 100억도 넘었다.
시작부터 CP를 백만 단위로 가지고 가는 거다.
“뭐... 그럴 만도 하겠지만.”
참고로 말하자면 이 게임은 과금게임이다.
CP는 돈 주고 살 수 있다.
다만 갈수록 구매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
당연히 대량의 CP를 구매하는 건 억 소리 나는 부자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고로 랭커들 중 일부는 돈을 처바르듯이 바른 갑부 게이머들이다.
미궁세계 제작사 입장에서는 정신 나간 헤비현질러들을 꽉 잡고자 통 크게 업적점수 비례 CP를 제공했으리라.
“뭐, 나야 CP 준다니까 좋지만.”
세상에는 미친 컨트롤만으로 랭커가 된 게이머도 있고, 타고난 동기화 비율이 높아서 랭커가 된 게이머도 있듯이 현질로 랭커가 된 게이머도 있는 법이다.
나야 괴상한 플레이로 랭커가 된 게이머에 해당하지만.
아무튼 CP는 아무리 많이 있어도 부족한 녀석인지라 언제나 환영이었다. 높은 능력치나 귀한 스킬, 특성 따위를 익히려면 요구 CP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탓이다.
[현재 제작된 캐릭터가 없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제작합니다.]
[일반 캐릭터 시트지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뻔한 걸 묻는다.
[Yes / No ◁]
당연히 일반 캐릭터 시트지는 쓰지 않는다. 저걸로 만드는 캐릭터는 무과금 캐릭터라서 인계CP랑 초기 제공되는 CP값만으로 캐릭터를 제작해야 한다.
인계 CP가 많다고 해도 게임 내에서 CP를 늘리는 것보다는 싼 값에 CP를 구매할 수 있을 때 구매하는 편이 좋다.
[구매하실 시트지를 선택해주십시오.]
시트지는 종류도 다양하다.
[강화된 일반시트지(300CP)]
[정체불명의 일반시트지(250CP, 일반등급 랜덤스킬 1개)]
[노란색 일반시트지(250CP, 초기자금 +1골드)]
CP값을 깡으로 올려주기도 하고, 스킬을 하나 지닌 채 시작하기도 하고, 초기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허나 이런 일반시트지 시리즈는 어디까지나 소과금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한 저가상품에 불과하다.
갑부 게이머나 미궁도시로 돈 좀 벌어본 게이머라면 당연히 억 소리 나게 비싼 시트지에 눈을 돌린다.
[강화된 최고급 럭셔리시트지(1500CP)]
[노장의 혼이 깃든 최고급 럭셔리시트지(700CP, 마법등급 전투스킬 1개, 마법등급 전투특성 1개, 전투관련 숙련도 상승속도 3배, 노장의 희귀등급 무구세트)]
[금빛으로 반짝이는 최고급 럭셔리시트지(700CP, 초기자금 +10만 골드, 개인저택 1채, 개인소유 토지 500평)]
격이 다르다.
성능이 뭐 이 따위로 다르냐고 투덜댈 만도 한데, 가격을 보면 납득이 된다.
강화된 일반시트지의 가격은 30만원인데 강화된 최고급 럭셔리시트지의 가격은 30억이라는 정신 나간 금액이다. 그것도 단 1%의 할인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 캐릭터 시트지 한 장의 가격이 30억이다.
그런데 이걸 돈 주고 사는 미친놈들이 있다.
바로 나 같은 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번 돈이 얼만데 이걸 아껴?”
미궁도시에서 번 돈만 무려 500억에 달한다.
지금 시대에는 VR게임 랭커가 최고 인기스타이다.
비주류 게이머인 나조차도 이런 거금을 벌었다.
‘주류 성향의 게이머는 억이 아니라 조 단위도 벌었겠지.’
그놈들은 걸어 다니는 국가예산이라고 불려야 한다.
같은 게이머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허나 주류 게이머가 되는 비결은 실력 말고도 있다.
“시발. 못생기면 주류가 될 수 없다니…….”
주류 게이머는 다들 잘생기거나 예쁘다.
아니면 말이라도 잘한다.
혹은 컨트롤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나야만 한다.
그조차도 안 되면 자기 노하우를 풀어서 반짝 스타라도 되고자 발버둥 쳐야 한다.
근데 난 잘생기지도 않았고, 카메라 공포증도 있고, 말도 잘 못하고, 컨트롤도 밋밋하다.
그러는 주제에 내 밑천을 답도 없이 모조리 까발리기는 싫어서 반짝스타가 될 기회도 걷어찼다.
‘전부 배부른 소리지, 뭐.’
20억짜리 집을 사서 황금인생을 영유하며 느긋하게 게임이나 하는 처지에 주류 랭커가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내 위쪽의 랭커는 기껏해야 96명, 나보다 돈 많이 버는 게이머들로 고려해도 고작 1만 명가량밖에 없다.
반면에 내 밑으로는 억 단위의 사람들이 손가락만 빨면서 선망어린 시선을 보낸다. 이쯤 되면 남들 앞에서 푸념하다가 돌 맞고 죽어도 할 말 없다.
그렇게 돈은 많이 버는데 왜 혼자서 게임이나 하냐고?
연애는 게임에서도 할 수 있다.
그것도 훨씬 더 예쁘고 성격 좋고 대단한 여자들이랑.
현실의 여자가 성에 찰리가 없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미궁도시에서 누리는 온갖 쾌락에 비하면 현실의 연애는 너무 시시하다.
쾌락에 무딘 현대인들은 이제 VR게임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괜히 정부에서 인큐베이터로 아이를 배양해서 정부시설에서 공동육아를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22세기. 자연적인 출산율은 1%에도 못 미치는 위대한 기술발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뭐하다가 이딴 생각을 하고 있었지?’
아무튼 내게 필요한 시트지는 정해져있다.
[강화된 최고급 럭셔리시트지(1500CP)를 선택합니다.]
[구매가격 30억을 지불하시겠습니까?]
[Yes ◁ / No ]
계좌는 게이머의 사용자 식별 코드와 연동되어 있다.
뜸 들일 필요는 없다.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장 지불을 완료했다.
[강화된 최고급 럭셔리시트지(1500CP)를 사용합니다.]
[미궁도시 특전으로 인계CP 197,500CP가 추가됩니다.]
[캐릭터를 제작해주십시오.]
일단은 CP를 투자하지 않은 상태의 시트지이다.
[캐릭터 시트지]
<신상정보(투자CP 0)>
[이름 : 없음][직업 : 없음][레벨 : 1(0%)]
[성별 : 남성][연령 : 20세][신장 : 170cm][체중 : 60kg]
[소속 : 없음][신분 : 평민]
<건강상태(투자CP 0)>
[HP : 100/100][MP : 100/100][SP : 100/100]
<기본 능력치(투자CP 0)>
[근력 10][체질 10][민첩 10][통찰 10]
[지능 10][내성 10][매력 10]
<보유스킬(투자CP 0)>
<보유특성(투자CP 0)>
<보유칭호(투자CP 0)>
<장비(투자CP 0)>
[무기] 없음
[방어구] 낡은 리넨 옷 세트
[허리] 낡은 리넨 주머니
<보유자산(투자CP 0)>
-초기자금 1골드(주머니)
※남은 CP : 199,000CP
보다시피 시트지의 모든 칸은 캐릭터 포인트, CP를 투자해서 성능을 강화할 수 있다.
처음부터 직업을 지닌 채로 시작할 수도 있고, 평민이 아닌 신분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성별을 바꾸거나 연령, 신장, 체중을 조종할 수도 있다.
건강상태에 투자하거나 능력치를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스킬이나 특성, 칭호를 구매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장비를 갖추고 시작하는 선택지도 열려있다.
돈이 갖고 싶으면 골드에 CP를 투자해도 된다.
소지 골드 량도 늘어난다.
과감하게 부동산이나 땅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이중에 무언가를 늘리는 게 아니다.
내 컨트롤은 기껏해야 이류 게이머 수준에 불과하다.
이딴 걸 올려봤자 랭커 급으로 강해질 수 없다.
“확장 슬롯 구매. 하수인 오픈.”
나는 나를 강화시키지 않는다.
내 부하를 만들고, 부하를 강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