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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3화 (3/224)

00003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3)

[미궁세계와의 동기화 체크]

[동기화 진행 중... 진행 중... 진행 중... 진행 완료]

[미궁도시 브람에 진입합니다.]

파앗!

눈부신 빛이 가시자 압도적인 정보량이 엄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소리, 손끝을 스치는 미세한 바람, 온몸에 가해지는 통상적인 중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실제 현실과 다름없는 감각이다.

이세계!

미궁세계의 가상현실 구현도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경지에 접어들었다.

띠링!

[게이머 빌헬름 마이어가 하수인을 소유 중입니다.]

[자동적으로 인과관계가 설정됩니다.]

[극단적인 능력치 격차에 의한 관계보정 제공]

[극단적인 스킬 격차에 의한 관계보정 제공]

[극단적인 특성 격차에 의한 관계보정 제공]

[상당한 칭호 격차에 의한 관계보정 제공]

[극단적인 장비 격차에 의한 관계보정 제공]

[모든 관계보정을 적용한 결과, 빌헬름 마이어가 카이사르를 하수인으로 두는 관계가 특정되었습니다.]

[당신은 알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보스입니다. 카이사르에게는 당장의 실력은 미약해도 엄청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라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당신에게서 거물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가 기대하는 거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시, 충성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보스(Boss)라는 말은 흔히 두 곳에 쓰인다.

보스 몬스터를 지칭할 때.

아니면 암흑가의 범죄조직 수장을 가리킬 때.

“보스. 이곳이 미궁도시 브람입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중저음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돌아보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후드 아래로 살벌한 눈매를 보였다.

그 아래로 비치는 건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검은 사신]이라 불리는 가죽갑옷과 허리춤에 찬 [강철의 의지]라 불리는 고유병기 장검이었다.

틀림없다.

눈만 마주쳐도 사람 하나는 기분 나쁘니까 썰고 싶다고 할 것 같은 이 남자가 바로 내 충직한 하수인, 카이사르다.

“이제부터 이 도시에서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길드에 간다.”

게이머는 기본적으로 모험가가 되어 미궁을 공략한다.

나도 일단은 모험가 길드에 들를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속을 알 수 없는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  섰다. 그리고는 지나가던 여자의 팔을 붙잡았다.

“여자.”

“히이익! 놔, 놔주세요!”

“길드의 위치를 불러라.”

당당하게 앞장선다 싶더라니 길 모르는 거였냐…….

뭐, 나와 카이사르의 배경관계를 짐작하자면 미궁도시 브람에 진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 터.

길드의 위치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 알려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여자. 나는 입만 산 인간을 혐오한다.”

“이, 이쪽으로! 아, 아, 안내 해드, 해드릴게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여자가 앞장서서 안내한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벌써 수군거리고 있다.

평판 같은 게 있으면 실시간으로 나빠지고 있겠지.

“이런 이른 시간에 대로변에서 아녀자를 괴롭히다니.. 쯧.”

“아서라. 저 장비 안보여? 한 눈에 보기에도 장난 아니야. 오늘 성문을 개방하면서 대거 유입된다는 초짜 모험가들하고는 격이 달라.”

“괜히 얼쩡거리다가 눈 마주치지 말라고. 아까 재수 없게 후드 아래로 눈이 마주쳤는데 무슨 맹수하고 맞닥뜨린 줄 알았지 뭐야? 뒷골목에서 만나면 진짜 살해당할 수도 있어.”

행인들은 엄청나게 수근거렸다.

[카이사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단지 걷기만 했는데도 악명이 늘다니.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장래가 유망하구나, 카이사르.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응?

그런데 영문도 모르게 내 악명은 왜 오르냐.

“봤어? 저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 보스라고 불렸어.”

“뭔진 모르겠지만 저것도 나쁜 새끼인 게 틀림없어.”

“퉷. 더러운 무뢰배 녀석들.”

나는 애써 주변을 무시한 채 카이사르의 뒤를 쫓았다.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에 접어들자 주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평범한 옷차림의 시민들이 사라지고 눈매가 사납거나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름길인가. 자주 애용하고 싶지는 않군.’

카이사르가 없이 여기에 진입하면 분명 소매치기라도 당할 것이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대뜸 옆 골목에서 튀어나온 소년이 내 다리에 부딪혔다.

미궁도시에서 단련한 컨트롤을 발휘... 할 것도 없이 기본능력치인 나는 무력하게 바닥에 엎어졌다.

‘으아아아아!’

내심 비명을 질렀다. 보스로서의 위엄 따위를 기대하는 카이사르가 바닥에 엎어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뚜벅. 뚜벅.

발걸음마저 위압적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물었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다.”

보스가 엎어졌는데 뭘 폼 재면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거냐.

이 빌어먹을 녀석은.

그런 분한 마음을 삭히며 눈앞에 떠오른 알림을 확인했다.

[돌발 이벤트! 골목길의 소매치기 소년을 잡아라!]

[10분 이내에 소매치기를 잡지 못할 시, 당신의 소중한 초기자금은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매치기를 잡을 시, 당신은 귀중한 초기자금과 함께 소매치기의 재산이나 정보, 심지어는 목숨마저도 착취할 권리와 기회가 주어집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잡아.”

카이사르는 고개 숙여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더니 사람 하나 쳐 죽일 기세로 달려 나갔다.

어휴.

내 부하지만 존나 무섭다.

툭툭.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자니 슬금슬금 도망가려던 민간인 여자가 보였다. 불쌍하기도 하고 그냥 못 본 체 할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여자.”

길드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만 피곤해진다.

“으으...”

그런데 어째 이년의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 떨리는 눈은 연신 카이사르가 떠난 골목길을 곁눈질하고, 발은 슬금슬금 길 밖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차하면 날 무시하고 도망칠 기세였기에 민간인 여자에게도 얕보이는 기본스펙에 절망하며 카이사르를 팔았다.

“내 부하는 보기보다 유능하지. 달조차 자취를 감춘 밤에 네 침실에 무장한 괴한이 침입하기를 원하는가.”

“히이익! 자, 잘못했어요!”

고개 숙인 여자의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방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자. 나는 입만 산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거 좀 멋져보였다고. 카이사르가 이 말을 할 때에는 와, 이거 진성 범죄자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부류 특유의 거친 야생미가 느껴졌다.

다만 여자가 날 보는 시선은 두려움이 아니라 이런 비열한 쓰레기 자식에 가까웠다.

시선차이에서 왠지 모를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저, 이거라도…….”

여자는 품에서 1코퍼를 꺼냈다.

“...됐다.”

김이 새서 받을 마음도 들지 않는다.

1코퍼면 먹다 만 사과 반쪽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모험가가 될 나한테는 아무 쓸모도 없다.

[하수인 카이사르가 소매치기를 붙잡았습니다.]

오오. 역시 내 부하는 유능하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알아서 소매치기를 붙잡았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왕도적인 전개가 된다.

‘소매치기의 돈을 강탈할 수도 있고, 자비롭게 원금만 받은 뒤에 소매치기의 호감을 사서 퀘스트를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퀘스트 대신에 깔끔하게 정보만 얻을 수도 있지.’

퀘스트래봤자 내용은 뻔히 짐작이 간다. 가난한 노모나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만 했다는 흔해빠진 사정이 있을 거다.

아이한테서 돈을 삥뜯는 폭력배라도 있을 거고, 그런 놈을 해결해달라는 게 퀘스트 내용이겠지.

그게 귀찮거나 못하겠다 싶으면 정보나 받고 훌쩍 떠나버리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카이사르가 있기 때문에 퀘스트를 받고 경험치와 보상, 뒷골목 인연을 습득하고자 생각했다.

“보스. 돌아왔습니다.”

“흐끅. 흐으윽.”

카이사르의 로브 위로 못 보던 선혈이 묻어있다.

그의 왼손에는 오른손을 붙잡힌 소매치기가 보인다.

덤으로 그 소매치기는 왼손이 없다.

“감히 보스의 재산에 손을 대고 육체를 상하게 한 죄로, 이 괘씸한 풋내기의 왼손을 잘랐습니다.”

울먹이는 눈동자만 봐도 알겠다.

호감도 파탄이다.

어르고 달래도 퀘스트를 줄 리가 없다.

‘시발. 폭력배는 돈만 갈취하지, 난 저 애 손 토막을 날린 놈의 보스잖아.’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사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차!

이 무지막지한 놈에게 보스다운 면모를 보이지 못하면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걸 깜빡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일처리가 미흡하군.”

카이사르는 싸가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목격자는 없습니다. 경비대는 결코 이 일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혹여나 이 풋내기가 재잘거릴 것이 우려되신다면...”

야이 미친놈아. 그딴 살벌한 표정 지으면서 검 위에 손을 얹지 마라.

“그딴 짓을 해서 내게 무슨 이득이 되지? 풋내기의 죽음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다.”

“이득 말입니까?”

카이사르가 잠시 턱에 손을 얹고 무표정한 얼굴로 고민하였다. 팔다리를 하나씩 더 자르라는 말인지 고민하는 것 같아서 진심으로 무서웠다.

“과연.”

대뜸 카이사르가 씨익 웃었다.

미친.

웃는 얼굴이 하도 끔찍해서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이 풋내기의 주거지를 알아내서 모든 재산을 강탈하겠습니다. 이 정도는 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보스께서 만족하실 리가 없겠지요. 미리 눈치 채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

나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저딴 말을 싸지르는 놈한테 ‘아니, 나 걔한테 퀘스트 받을 거였는데.’ 같은 말은 죽어도 못한다.

갑자기 희번뜩 눈을 치켜뜨며 ‘뭐? 니놈 돈을 턴 풋내기한테 퀘스트를 받겠다고? 이런 존심도 없는 쓰레기를 보스로 모신 내가 병신이었지’라면서 칼질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1 상승합니다.]

여자가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나보고 뭐 어쩌라고.

저 미친 살인귀한테는 말 거는 것도 무섭단 말야.

‘시발. 이게 15살이 맞기나 해?’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는 짐작이 된다.

중급검술에 고통 대 내성 5단계 스킬을 익히고 전투의 천재, 강철의 심장, 견고한 신체, 질긴 회복력 특성을 익혔으며 무자비한 살인자 칭호를 달고 있다.

NPC가 저딴 걸 익히려면 둔기에 맞고도 멀쩡한 몸으로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맞고 다니며, 피와 살로 얼룩진 칼부림을 매일같이 벌여대며 살아야 했을 거다.

‘진짜 미친 개새끼가 따로 없네.’

저딴 녀석이 나를 보스라 부르며 모시고 있으니,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면 순순히 떠나는 게 아니라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사지를 토막 내고 떠날지도 몰랐다.

그런 상상만 해도 무서워져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지 않으면 도저히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카이사르가 소매치기의 비상금 200골드를 습득했습니다.]

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뭔 돈이 저리 많아?

실제로도 카이사르가 든 묵직한 돈주머니가 짤랑거렸다.

“풋내기. 보스가 궁금해 하는 게 안 보이는가? 돈의 출처를 말해라.”

“오, 오늘따라 돈 많은 호구가 많이 보여서요… 그, 아시잖아요? 문이 개방되고 미궁도시에 신입들이 대거 유입되었다는 거…….”

게이머들의 등장을 납득시키기 위한 미궁세계 내의 설정인가보다.

그 말인 즉, NPC와 게이머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초기자금 1골드를 털어가며 순식간에 200골드어치를 털었다는 말이 된다.

이쯤 되면 이 녀석이 불쌍하다는 생각 보단 기가 막힌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뭐, 일단은 NPC니까.’

불쌍한 마음이 사라졌으니 대충 구슬려서 퀘스트나 받자.

“앞으로도 돈을 계속 훔칠 건가.”

“아, 아니요! 안 그럴 거예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빨리 병든 노모나 굶주린 동생 따위를 말하면서 동정심을 사고, 네놈이 소매치기를 하도록 강요하는 폭력배에 대해서 말하란 말이다.

시선을 마주치고 그런 의도를 읽었는지, 카이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유능한 녀석이니 믿고 맡기겠다며 나도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카이사르가 소매치기 소년의 양 어깨를 붙들고 살벌하게 윽박질렀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풋내기? 보스께서는 네게 상납금을 요구하신다. 앞으로도 소매치기를 하면서 수익의 90%를 보스에게 바치란 말이다.”

“그, 그런... 소매치기는 안 할게요. 정말로요. 나쁜 일을 하면 벌 받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흐끅. 제발 용서해주세요. 두 번 다시 돈을 훔치지 않을 거예요.”

“진심인가?”

소매치기 소년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 이건 조금 의외다.

나름 불우한 과거가 있을 법한 카이사르가 소년을 동정해서 이 바닥에 손을 털도록 유도한 건가.

‘어떻게 할까요?’

‘봐줘.’

눈짓으로 대충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소년의 어깨를 두들기더니 대뜸 꽉 붙들었다.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며 중저음의 잔혹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남의 주머니를 터는 것밖에 없는 풋내기가 소매치기를 그만두면 네놈을 살려둘 이유가 뭐지?”

“헉!?”

“보스의 돈을 털고 고작 손목 하나로 죗값을 치렀다고 여기는 건가. 대단한 자신감이군. 네놈의 손목 한 짝이 그렇게 값진 것이었나? 그럼 다른 손목도 잘라버려야겠군!”

“히이이이익!?”

“돈을 털지 못하는 소매치기는 필요 없다. 보스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상납금을 바치는 것으로 목숨이나마 부지하라는 보스의 자비를 거절하겠다면...”

스르릉. 스산한 검음이 울리자 소매치기 소년은 눈물을 흩뿌리며 고개 숙여 애원했다.

“흐아앙! 할게요! 열심히 훔칠 테니까 제발 용서해주세요!”

“…….”

난 대체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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