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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4화 (4/224)

00004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4)

[소매치기 소년의 몸과 마음을 공포로 지배하였다!]

[소매치기 소년은 상납금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

[부하를 다루어 타인을 억압하는 당신의 활약에 확장 능력치 ‘카리스마’가 개방되었다!]

이딴 카리스마 필요 없어.

주니까 받을 거지만 엄청 꺼림칙하잖아.

“역시 보스께서는 대단하시군요. 별 것 없는 풋내기에게서 돈 냄새를 맡고 힘겹게 모은 전 재산을 단번에 강탈하다니. 덕분에 초기자금이 200골드를 넘었습니다.”

이건 칭찬이야, 욕이야?

눈 마주치면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릴까봐 얼굴표정 볼 마음도 안 든다.

일단 돈부터 먹여서 충성도를 올려두자.

“절반은 네 몫이다.”

“감사합니다.”

사양이라도 한 번 해라. 당연히 내 몫이니까 줄 거라고 생각했지, 같은 느낌으로 대답하지 말고.

심지어 이놈의 입장에서는 멋대로 착각한 잔인한 명령과 행동, 자비심 넘치는 5대5 소득분배가 ‘당연히 내 보스는 이래야지’에 가까워서 일상처럼 느껴졌나 보다.

얼마나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충성도가 1도 안 오른다.

‘잡담이라도 하면서 호감을 사야 하나?’

아니다. 뒷골목의 보스가 말이 많으면 좀 싸고 저렴해 보인다. 그딴 짓을 했다간 극 초반에 나오는 동네북이나 엑스트라 대장처럼 여겨질 거다.

나를 무슨 전국구 폭력조직의 보스 따위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카이사르 앞에서는 그딴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입 다물고 묵묵히 걷자, 여자가 목적지까지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여, 여기가 길드 건물이에요.”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당황할 만도 하다.

미궁도시에서 모험가 길드는 번화가의 중심에 번듯이 놓인 고층건물이었다.

예산이 없어서 건물을 못 짓는 것도 아니고 풍족한 평야지대에 자리한 알폰소 왕국의 미궁도시 브람에서 모험가 길드 건물을 저따위로 지을 리가 없다.

‘귀족들이 길드를 찍어 누르는 곳이라면 모를까.’

게임을 시작하면서 본 안내 문구에서는 미궁도시 브람이 모험가 길드와 귀족간의 암투가 이뤄진다고 했다.

두 세력이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리지 않고 치열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그런 귀찮은 일을 벌이는 거다.

당연히 저건 모험가 길드가 아니다.

“차, 찾으시는 게 범죄길드가 아니었나요...?”

그럼 그렇지.

이년이 멋대로 김칫국을 사발로 드링킹했다.

이럴 때 쓰는 말은 김칫국이 아닌가?

뭐 그럼 동치미라도 쳐마셨겠지.

이런 백치 같은 새끼.

‘그래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부당한 빡침 같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시에서는 오늘 막 ‘성문’을 개방해서 오래간만에 미궁에 도전할 신입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그 정보를 뒷골목 소매치기도 알고 있을 정도면 일반인들도 알 만큼은 안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대로변에서 길 가다 마주친 사람이 길드로 안내하라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모험가가 아니라 범죄자처럼 보였으면 범죄길드로 안내를 해주는 거냐.

“카이사르.”

“과연. 보스께서는 철두철미하시군요. 목적을 완수하고 쓰임을 다한 여자를 제거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다.”

아무리 이 새끼가 무서워도 일반인 여자한테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르게 할 수는 없다.

소매치기는 지은 죄가 있으니 공권력이라도 움직이지 않겠지만, 민간인에게 손을 대면 공권력이 추적한다.

대로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봤는데 대뜸 여자를 죽이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5살짜리 꼬마 애라도 알 거다.

이 점을 침착하게 설명해주자 카이사르도 납득했다.

그는 여자를 향해 사납게 윽박질렀다.

“여자.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 네...”

그냥 길 가다가 마주쳤을 뿐인데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한담. 그런 억울함이 여자 눈물에 맺혀 흘러내렸다.

진짜 불쌍하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여자 중에 두 번째로 불쌍해 보인다. 첫 번째는 게임 하다가 만난 다크게이머인데, 당장은 볼 일이 없다. 이 넓은 세계에서 만나기도 힘들겠지만.

벌컥!

길드에 들어가자 어둑한 팝(Pub)의 내부에 흐릿한 잔등이 시야를 밝혔다.

낡은 탁자에는 외소하거나 음침한, 혹은 살벌한 기색을 지닌 남자들이 주사위 노름을 하거나 맥주잔을 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새끼들은 어떤 놈이 펍에 들어왔나 흘낏 쳐다보다가 카이사르의 존나 살벌한 눈매와 마주치고 기가 죽어서 고개를 테이블에 내렸다.

“어서오게. 주문은 뭘로 하겠나?”

주점의 점원이 그리 물었다.

범죄길드답게 정체를 숨기고 뭐 그런 건가보다.

나는 무뚝뚝하게 용건을 밝혔다.

“길드에 가입하러 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 녀석이 이 주점을 개박살낼 거다.”

점원은 척 보기에도 보통내기가 아닌 카이사르를 힐끗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뒷골목에 한동안 피바람이 불겠군. 일단 길드 가입비는 5골드라네. 도시에 막 들어온 당신들에게 가입비는 없을 테니 어디서 돈이라도 구해서...”

딱. 딱. 딱.

카이사르는 두 눈을 부라리며 주머니에서 골드를 하나씩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정확히 열 개의 골드가 나란히 놓이자 점원은 죽을상을 지었다.

“...왔군. 신분을 증명할 목패일세. 이름을 말하면 새겨두고 가벼운 신원증명을 하는 걸세.”

“그딴 게 5골드나 한다고? 지금 보스와 내게 바가지를 씌우는 건가?”

“바가지가 아닐세. 길드의 이름값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비용이지. 댁 정도의 눈을 지닌 사람한테 뒷골목에서 악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가?”

카이사르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보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냐니. 너야말로 뭘 바라는 건데.

내가 이 건방진 놈의 목을 치고 길드를 접수해라, 라고 명령하기라도 바라는 건가.

“외지에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존중해라.”

“알겠습니다.”

카이사르는 한 번 내린 명령에는 불복하지 않는다.

그 점 하나는 마음에 든다.

다른 대부분의 요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문제이지만.

“허, 기이한 일이군. 저런 살벌한 녀석이 별 거 없어 보이는 인간의 말을 따르다니.”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저런 흉악한 남자의 약점을 잡고도 살아있다는 점에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옷은 왜 저 따위로 입고 있는 거지? 바깥의 신입들이랑 비슷한 척 흉내라도 내는 건가?”

그거다. 나중에 그거 관련으로 할 말 없으면 네가 말한 이유를 변명으로 삼아주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자 카이사르가 대뜸 마지막 말을 한 녀석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갔다.

잠깐 그 녀석이랑 눈을 마주친 걸로 엄한 생각을 했나보다. 뭔가 말릴 새도 없이 녀석의 죽빵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빠악!

후두둑!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지 마라. 보스를 향한 무례한 언동은 네놈의 목을 쳐야 마땅하지만, 길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지금은 이빨을 부러뜨리는 정도로 그치겠다.”

사내는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으며 피를 흘렸다.

눈물이 핑 도는데도 무기를 꺼낼 생각도 안한다.

개기면 죽는다는 사실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보스. 이 정도로 만족하십니까?”

“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끄덕거리면 저 새끼를 정말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끄덕거리려던 걸 ‘있어 보이는 척’ 생각을 반복하며 뜸을 들였다가 끄덕거렸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수긍하자 죽빵 맞은 남자는 죽다 살아났다는 듯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

분위기가 싸하다.

대뜸 들이닥친 신입이 술 먹고 저들끼리 얘기하던 놈 입에서 옥수수를 털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뭔가 용무가 남아있으십니까?”

“모처럼 온 길드다. 일을 하고 보상을 받아야겠지.”

점원은 떨떠름한 얼굴로 바(Bar)의 기다란 원목 테이블 한 곳을 두드렸다.

철컥.

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원단이 밀려나며 몇 개인가의 너덜너덜한 천이 나타났다.

[범죄길드의 의뢰 리스트가 해금되었습니다.]

내심 호기심이 일었다. 미궁도시에서도 범죄길드가 있기는 했지만, 그 때는 당연히 모험가길드에 들었다. 이런 뒷골목의 세세한 사정 따위는 잘 모른다.

흥미진진하게 의뢰리스트를 살펴보기 시작한 나는, 빠르게 흥이 식었다.

내용은 범죄길드 치고는 조금 시시했다.

[들쥐 사냥(반복)] [난이도 : 신입]

[개요 : 부랑자들이 모여 사는 쓰레기 구역에 들쥐들이 대거 늘어났다. 시의 관리인들이 들쥐소탕을 핑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들쥐를 사냥하라.]

[클리어 조건 : 들쥐 꼬리 100개]

[보상 : 30쿠퍼, 길드 공헌도 1]

[정기수금] [난이도 : 신입]

[개요 : 쓰레기 구역의 고물상 빌(Bill)이 주기적으로 지불해야 할 상납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빌미로 놈에게서 ‘이자’를 두둑하게 받아내어라.]

[클리어 조건 : 원금 1실버 및 이자 2실버 이상 수금]

[보상 : 2실버를 초과한 이자, 길드 공헌도 1~10]

[순찰(반복)] [난이도 : 신입]

[개요 : 범죄길드는 뒷골목의 지배자. 뜨내기들이 멋모르고 중범죄를 저질러 자경대가 들이닥치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도 어엿한 길드의 일이다.]

[클리어 조건 : 순찰경로에 잠복 중인 길드원에게 3회 이상 순찰도장을 받을 것.]

[보상 : 10쿠퍼, 길드 공헌도 3]

일단 보상이 싸다.

게다가 들어가는 시간은 대책 없이 길다.

그나마 내키는 건 정기수금일까.

‘성과급이라는 건 나름대로 매력적이지.’

무리하게 윗 등급의 의뢰를 달라고 해도 범죄길드 입장에서도 일단은 신뢰가 필요할 터.

여기까지 와서 의뢰 하나 받지 않고 가면 카이사르가 납득하지 못할 테니까 생색내기 용으로라도 하나는 받아야 한다.

“정기수금. 고물상 빌의 위치는?”

“안내인을 붙여주지. 한스.”

“맨 입으로는 싫은데. 뭐라도 주지.”

점원은 장부를 꺼내 외상내역을 보여주었다.

1실버 12쿠퍼.

용케도 이 따위로 외상을 받아주었네.

“지난번 싸움으로 생긴 빚. 잊었다고 하지는 않겠지?”

“젠장... 그 밥버러지 녀석. 비곗덩어리 주제에 몸으로 테이블을 때려 부수는 재주나 있다니.”

“참지 못하고 도발에 넘어간 네 실수지. 선빵을 때렸으니 배상금은 무조건 5 대 5 야.”

대충 어떻게 돌아간 상황인지는 알 것 같다. 얌전히 길드의 규칙에 수긍하고 외상을 짊어졌다는 시점에서 이 남자는 믿을 수 있는 안내인이 되리라.

길드를 나선 뒤 한스는 우리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실례지만 두 분은 어떤 관계이신지...”

나는 카이사르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야, 카이사르. 우리가 어떤 관계냐.

카이사르는 한스에게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닥치고 앞장서.”

“예…….”

카이사르는 협박의 자질이 뛰어났다.

처음엔 마냥 무서웠는데 이젠 이런 것도 적응이 되어간다.

어떤 의미로는 그 사실이 제일 무섭지만.

“보스다운 의뢰를 고르셨군요. 고물상 빌이라는 녀석이 지닌 모든 재산을 팔아넘겨서 이득을 취하려 하시다니.”

역시 이 새끼한테 적응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이자 뜯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고물상 그 자체를 팔아넘길 기세로 보인다.

이럴 땐 침묵과 그럴싸한 반응이 금이다. 한쪽 입매를 비스듬하게 치켜 올리자 카이사르는 또 멋대로 싸가지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만족해하였다.

“다 왔습니다..”

고물상은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모아 분류, 그럴싸하게 재가공해서 판매하는 가게로 보였다.

나름 기술과 마법이 발달한 배경인지라 분리 분해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 적지 않게 있다.

“아이고, 이건 또 누구신가. 분위기를 보니 고물 팔러 온 걸로는 영 안 보이는데. 길드에서 오셨수?”

고물상 주인 빌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기름때 묻은 손을 슥 내밀었다.

“에이 시발, 손 안 치워! 이 양반 올 때마다 더러운 손으로 일부로 이러네!”

한스는 움찔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뒷걸음질 쳤지만 나는 상대의 수작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카이사르. 악수를 받아줘라.”

카이사르도 내 뜻을 깨달았는지 쿨하게 손을 마주잡았다.

빌은 헤헤 거리며 마구 손을 비벼댔지만 카이사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가 손을 잡은 이유는 빌의 손을 으스러뜨리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우드득!

“으아아아악!”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교를 다지는 건 멋진 사교행위라고 생각한다. 보스의 뜻을 존중하여 여기서는 현지인의 방침을 따라주지.”

“아아아아악!”

“내 손에 기름떼에 이어서 피까지 묻힐 정도로 반갑나보군. 네 격한 반가움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나도 조금 더 진심으로 이 우애를 기뻐해주겠다.”

우드득 콰드득 콰칵 꽈각 꽈직!

빠각!

피가 맺히다 못해 뼈가 잘근잘근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시킨 건 나이기는 한데.

시발 이게 어디가 악수냐. 손잡고 사람 죽이는 방법이지.

털썩.

고물상 빌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과 움직이지 않는 등을 보아하니...

[카이사르가 고물상 빌을 죽였습니다.]

죽였네. 미친.

악수로 사람이 죽었어.

애초에 그걸 악수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카이사르의 악명이 3 상승합니다.]

[빌헬름 마이어의 악명이 5 상승합니다.]

덤으로 한스는 악수로 사람 죽인 새끼랑 악수로 사람 죽이라고 명령한 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다.

야, 아니야!

오해다. 이 새끼가 악수로 사람도 죽이는 미친 포텐셜을 지닌 놈인지는 나도 몰랐다고!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야!

“한스.”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

‘기특한 녀석이군요.’라는 카이사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채, 내심 절망했다. 내 미궁세계 게임 플레이는 도대체 어떻게 꼬여가는 걸까, 라고.

============================ 작품 후기 ============================

선추쿠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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