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6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6)
카이사르의 대책 없는 칼부림이 엄청난 사태를 만들었다.
범죄길드 점원의 살인!
길드에서 보복의뢰라도 건다면 제아무리 CP를 쏟아 부은 카이사르라도 역부족이다.
적은 끝없이 밀어닥치고 그에 맞서다가 결국은 미궁 안으로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건 가능하다.
대신 미궁세계에서의 정상적인 생활은 완전히 파탄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그건 아닌가. 시작부터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고.’
이미 파탄난 상황이 더 파탄난다고 정정해두자.
…….
…….
…….
조금도 마음에 위안이 생기지 않았다!
“우왓, 저질러버렸네..”
“계집, 뒤처리를 해라.”
“뭘 태연스레 명령해대는 거야. 그보다 명령할 거면 존댓말이라도 쓰라고.”
싱글벙글한 리나의 낯을 보니 당장 범죄길드 본부에 살인을 제보할 걱정은 없어 보인다.
“카이사르. 멋대로 일을 저질렀군.”
역시 이번만큼은 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살벌한 얼굴의 카이사르도 평소랑 다르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큰 사고를 쳤다는 자각은 있나보다.
“죄송합니다, 보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겠지?”
“점원 한 명의 목숨으로는 노여움이 사그라지지 않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대로 녀석을 고문해서 가족이 있는 곳을 알아낸 다음 일가족을 참살했어야 했건만.”
“…….”
“카이사르, 일생일대의 불충.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일생일대의 불출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다 틀렸잖아.
대체 날 얼마나 잔혹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건데.
네놈의 상상 속의 보스는 무슨 악마라도 되는 거냐.
“우와앗, 당신 보스 정말 무자비하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사람은 처음 봐.”
“당연한 말을 하지 마라, 계집. 보스는 장차 세상을 파멸시킬 암흑조직을 만들 거물이시다.”
“아하하, 그거 굉장한데.”
그만둬, 이 멍청아!
완전 바보 취급당하고 있잖아.
“그보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보스? 범죄길드의 직원이 죽은 건 엄청난 일이라고. 놈들은 반드시 범인을 찾아서 피의 복수를 하려고 들 걸.”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약 올라서 죽으라고 불이라도 지르는 거야 뭐야.
리나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폴짝!
아, 드디어 천장에서 내려왔다. 행동은 조금 이상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 제법 미녀였다.
금발머리에 하얀 피부, 빨간 눈과 운신에 편한 복장 아래로 두드러지는 자그마한 몸은 상당히 늘씬하게 빠졌다. 슬렌더 타입의 미녀의 표본이란 이런 거다, 라는 느낌이다.
그래봤자 장래가 기대될 뿐인 앳된 꼬맹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현재 나이 16살. 장래가 기대되는 초 귀여운 미녀 어쌔신 리나. 주특기는 요인경호 및 요인암살. 범죄길드에 인맥도 있어. 지금의 보스에게 딱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얼떨떨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소개는 잘 들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니 어쌔신이어서 존나 좋겠다. 됐냐.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건가?”
“물론! 저 답 없는 살인광 남자가 어째서 보스를 따르는 지 조금은 알 것 같아졌거든.”
“하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답답한 녀석들뿐이군.”
나는 뚱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채 리나를 째려봤다.
“뭘 하고 싶은 거냐.”
“그쪽의 살인광이 말했잖아? 보스는 장차 세상을 파멸시킬 암흑조직을 만들 거라고. 그런 대단한 조직의 보스라면 구질구질한 범죄길드 따위보다는 백배 더 흥미롭지.”
리나는 장난스레 한쪽 팔을 크게 들어 허리에 가져다대며 상체를 반쯤 숙였다.
“암살자 리나. 등용 신청이야. 참고로 묻겠는데 보수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원하는 건 스스로 쟁취해라.”
“헤... 역시 대단해. 좋아, 지금부터 난 보스의 부하 2호야.”
띠링!
[암살자 리나가 새로운 부하가 되었습니다.]
[경이로운 등용! 당신은 자신의 능력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능력을 지닌 암살자를 부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놀라운 등용의 결과, 당신의 카리스마가 3 증가합니다.]
[카이사르의 충성도가 1 상승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얼떨떨해졌다.
아니, 아무것도 못 준다니까 왜 멋대로 만족하는 건데.
그보다 이거 조금도 기쁘지가 않다고.
여자 카이사르가 한 명 더 늘어났을 뿐이잖아.
미친 살인마에 암살자가 가세했다고.
대체 이제부터의 내 게임생활은 어떻게 흘러가는 거냐…….
* * *
[Tip> 미궁세계의 NPC는 때때로 자발적으로 부하가 되기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보상을 지급한다면 당신은 동료보다 믿음직한 부하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 * *
리나는 따분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길드의 머저리들은 술과 도박, 음담패설 따위나 주고받는 비생산적인 쓰레기들뿐이다.
이런 놈들을 위해서 절대로 나타날 리가 없는 범죄길드에 시비 거는 놈들에 대비해 대기실에 죽치고 있어야 한다는 건 무척이나 괴롭기까지 한 일이다.
“흥. 그놈의 길드 기여도만 아니었으면 이딴 일은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런 따분한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슬쩍 달라졌다.
아래층의 느슨한 소음이 사라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에 어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일이네. 싸움이라도 난 건가.’
슬쩍 기척을 감지하는 순간, 리나는 깜짝 놀랐다.
너저분한 쓰레기들 사이로 말도 안 되는 살기덩어리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천장구멍으로 슬쩍 엿보자 중견 용병길드나 전쟁터에서나 볼 법한 피에 굶주린 살인광이 보였다.
“외지에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존중해라.”
“알겠습니다.”
기이하게도 살인광은 자신의 뒤에 있는 나른한 눈을 한 남자의 명령을 따랐다.
신체가 단련된 것도 아니고 뭔가 특이한 능력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한없이 범상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보며 범죄길드의 쓰레기들도 수군거렸다.
“그런데 옷은 왜 저 따위로 입고 있는 거지? 바깥의 신입들이랑 비슷한 척 흉내라도 내는 건가?”
남자는 자신을 욕한 사람을 졸린 듯한 눈매로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자 대뜸 살인광이 걸어가서 마지막 말을 내뱉은 쓰레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와. 화끈하기도 해라. 저 남자가 고용주이기라도 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실력의 남자가 여기까지 올 리는 없다. 허나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해서 들어보면 막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모두 길드 소속 의뢰를 수행하려고 왔다. 그것도 제공되는 임무의 난이도는 모두 신입 수준이다.
나른해 보이는 남자라면 모를까, 살인광에게 어울리는 수준의 임무가 아니다. 허나 살인광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남자의 명령을 따르며 함께 임무수행에 나섰다.
‘이상해.’
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저런 살인광을 부하처럼 부리며 허접한 의뢰를 맡고 있는 걸까. 남자들이 의뢰를 마친 뒤에 돌아온 뒤로도 계속해서 엿보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자로 350골드를 뜯어냈다고?”
“그렇다.”
“허... 허허. 허허허...”
일처리도 엄청나게 막장이다. 이건 숫제 범죄길드를 우습게 보는 행동이었다.
점원은 도와달라며 사인을 보냈지만 리나는 무시했다.
이 상황과 남자들의 행동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뒷골목에서 범죄길드의 역할이 뭔지는 알고 저러는 걸까.’
낮과 대로의 치안을 치안부대가 담당한다면 밤과 뒷골목의 치안은 범죄길드가 담당한다.
이 도시에서의 범죄활동은 대부분 범죄길드의 통제 하에 놓여있으며, 범죄길드를 적으로 두는 자는 도시를 떠나지 않는 한 반드시 후회한다는 말까지 존재한다.
미궁으로 단련된 모험가들이 대거 존재하는 미궁도시 브람. 이런 곳을 근거지로 둔 범죄자들의 총회나 다름없는 범죄길드에 저딴 불순한 행동을 보이는 건 자살행위와 똑같다.
‘근데 뭘 믿고 저러지?’
방금 전의 무례함에 열 받은 점원이 약간 장난질을 쳤다.
당해도 어쩔 수 없지,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살인광은 곧바로 사납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물어 뜯겨 죽고 싶은가?”
“...이용료는 무료일세.”
“그딴 푼돈은 관심 없다. 네놈은 지금 보스를 우롱하였다.”
보스라는 자는 한없이 나른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보스가 만족할만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보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운명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살인광이 작정하고 죽이려고 안달이 나 있다.
점원도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네, 도가 지나친 거 아닌가.”
“도가 지나쳐?”
녀석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음만 먹으면 점원은 바로 살해당했다.
범죄길드의 점원을 상대로 무려 경고를 한 것이다.
“글쎄. 도가 지나친 건 네놈인 것 같군.”
점원은 미친 듯이 테이블 아래의 호출종을 눌렀다.
미미한 진동이 대기실에 울린다.
더는 모르는 체 할 수도 없기에 리나는 천장문을 열고 아래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어이. 무슨 소란이야?”
“끼어들지 마라, 계집.”
“뭐? 계집?”
살인광은 스스로를 카이사르라고 밝혔다.
무례한 말버릇과 거만한 행동에는 개의치 않았다.
이 남자는 그럴만한 실력을 지녔으니까.
“루시라고 했는가.”
“리나라고 했는데?”
“…….”
뭔가 얼빠져 보이는 말을 내뱉었던 나른한 남자는, 보기와는 다르게 뼈가 담긴 말을 내뱉었다.
“가게의 점원이 무례를 범하면, 그건 가게의 잘못인가 점원의 잘못인가?”
“흐음.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지?”
“점원이 무례를 범하면, 손님은 점원의 잘못을 지적하고 사과와 그에 걸맞은 성의표시를 바랄 수 있다. 동의하나?”
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배지 얘기 들리던데. 너넨 정식 길드원 되려는 거잖아. 근데 왜 손님이야? 아직 정식 길드원도 아니니까 견습 길드원이면 밀대로 바닥 닦고 행주로 창문 닦는 알바생 아니야?”
손님으로 있고 싶으면 얌전히 손님 행세나 할 것이지, 왜 안 어울리게 범죄길드의 임무나 받고 있냐는 물음이었다.
단순히 깽판을 치려는 목적이라면 좀 재미난 해프닝이라 여기려던 참이었다.
남자는 돌연 나른한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냉엄한 어조로 대답했다.
“500골드가 넘는 거금을 지닌 아르바이트생을 봤는가?”
리나는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500골드면 점포 차리고 아르바이트 생 뽑아도 되잖아. 근데 왜 아르바이트생을 해?”
“큰 가게에는 그들만의 운영 노하우가 있지. 그런 경험과 소소한 팁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지혜의 영역이다.”
“헤…….”
진심으로 당황했다. 여기는 범죄길드다. 미궁도시 브람의 밤을 지배하는 이 도시의 거대조직 중 하나다.
저 남자는 지금 그런 조직의 노하우를 빼돌리고자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마치 범죄길드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투로 말이다.
“뭔가 멋져! 마음에 들었어. 보스라고 했던가. 이름은?”
“빌헬름 마이어.”
“크~. 이름까지 멋져! 더 마음에 들었어!”
리나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소매로 슥슥 닦더니 근엄한 체 하며 말했다.
“난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어.”
“리나! 길드 지부의 보호 임무를 거부하는 건가!?”
“응.”
“그,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가!”
“그럴 거 같은데? 당신은 눈치 없는 바보고, 나는 눈치 좋은 실력자인걸. 지부장도 날 더 좋아하지 않을까?”
점원은 곧바로 태세변환하며 사죄표시를 했다.
무려 100골드나 되는 금액이다.
허나 빌헬름은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부족하다.
좀 더 성의를 표시해라, 라고.
점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성능 좋은 검까지 내놓았다.
이미 뒷감당이 가능한 선을 넘었다.
저런 검까지 줬으니 조만간 검의 회수의뢰가 붙을 거다.
‘끝났네.’
살인광이 아무리 대단해도 보스의 무력은 미미해 보인다.
분명 암살자들의 습격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허나 검을 살펴본 보스의 반응은 다시금 예상을 초월했다.
“흠.”
그 입가에 슬며시 떠오르는 잔혹한 미소.
용서할 수 없다는 표현이었다.
살인광은 이를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점원의 목을 쳤다.
“이따위 하찮은 잡검을 들이밀고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다니. 주제도 모르는 건방진 녀석의 목을 쳤습니다. 부디 보스께서는 이 정도로 노여움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그제야 리나는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쓰레기들이나 점원이 그녀에 비해 형편없기는 해도 나름의 무력을 지닌 자들이다.
그런 자들조차도 저 살인광과 잠시라도 눈을 마주치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식은 땀을 흘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 나조차도 긴장감이 가시지를 않는데.’
보스 빌헬름 마이어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나른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 살기로는 권태를 해소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른한 햇볕 아래에 몸을 쬐는 고양이처럼 군다.
어째서?
의문은 끊이지 않았고, 리나는 그를 향한 노골적인 호기심을 숨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 살인광 카이사르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마침내 깨달았다.
“우와앗, 당신 보스 정말 무자비하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사람은 처음 봐.”
“당연한 말을 하지 마라, 계집. 보스는 장차 세상을 파멸시킬 암흑조직을 만들 거물이시다.”
“아하하, 그거 굉장한데.”
범죄길드를 능가하는, 나아가 세상을 파멸시킬 암흑조직의 결성.
양지와 음지.
미궁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을,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국가마저도 적으로 돌리고자 하는 포부.
그런 걸 진심으로 실현한다면 인류는 멸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암흑조직을 결성한다면 그 용도는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다.
‘마왕군!’
보스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인간을 등진 배덕한 존재들과 결탁해 세상을 멸망시키더라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보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보스? 범죄길드의 직원이 죽은 건 엄청난 일이라고. 놈들은 반드시 범인을 찾아서 피의 복수를 하려고 들 걸.”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딴 시시한 걸 논하지 말라는 투의 발언.
틀림없다.
빌헬름 마이어는 정말로 해보일 작정이다.
지상에서는 자취마저도 사라진 마왕군을 부활시키겠다고. 사마외도를 넘어선 비인외도의 길을 걷겠노라고.
암흑가의 사특함 따위로는 이 남자가 품은 마귀적인 갈망을 넘어설 수 없다.
정과 사, 옳고 그름을 넘어선 초월적인 악이 여기에 있다.
‘이 남자, 의심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잖아.’
거절하면 그들은 마왕군을 결성하고자 한다는 진의를 외부인에게 발각 당한다. 암살자는 죽이고 싶어도 멋대로 달아날 수 있다. 분명 엄청난 장애물이 될 거다.
저 살인광조차도 그녀를 경계하며 적으로 돌리기를 꺼려하고 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중대한 비밀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연신 보스의 눈치를 살피는 살인광의 모습에도 나른한 눈매가 변치 않는 걸로 보아, 보스는 리나가 무조건 그를 따를 것이라 여기고 있다.
마치 그녀 안의 어둠을 꿰뚫어본 것처럼.
나른한 눈매 너머에 감춰진 것이 무엇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형체를 잡을 수 없는 무형의 카리스마성에 리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암살자 리나. 등용 신청이야. 참고로 묻겠는데 보수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원하는 건 스스로 쟁취해라.”
“헤... 역시 대단해. 좋아, 지금부터 난 보스의 부하 2호야.”
이 세상에 품은 원한이 있다면 무엇이든 스스로 갚으라.
보수에 눈 먼 짐 따위는 짊어질 생각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보스의 오연함에 진심으로 감복했다.
‘이 남자, 이 보스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설령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도 말이다.
동족인 인간에게 애정 따위는 없다.
리나는 진심으로 빌헬름 마이어에게 충성을 바쳤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자신을 미혹에 빠뜨린 나른한 눈매나 몇몇 행동이 실은 동기화 비율 10% 이하인 게이머에게만 나타나는 부작용임을.
한 치의 속내도 읽을 수 없는 무심함은 일말의 감정조차도 전달되지 않는 동기화 비율이 무려 1%밖에 안 되는 게이머만이 지니는 부작용임을.
게이머 이호연.
그의 동기화 비율은 고작 1%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