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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7화 (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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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7)

리나는 복종을 맹세하더니 자신감 있게 말했다.

“뒤처리는 제게 맡겨주시길! 두 분은 달리 갈 곳이 있으십니까?”

“모험가 길드에 갈 생각이다.”

원래 가려던 곳도 거기였었고.

사람까지 죽은 범죄길드에는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다.

“알겠습니다. 합류는 걱정 마시길. 보스와 살인광의 특징은 외웠으니 아무리 복잡한 인파 속에서라도 금방 찾을 수 있답니다.”

카이사르가 시비 거는 거냐며 눈을 부라리기에 나는 짜증스레 한 마디 했다.

“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 셈인가.”

“죄송합니다, 보스.”

리나의 동그랗게 변한 눈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범죄길드를 나섰다.

피비린내 나는 건물을 나와 습하고 불쾌한데다 어둡기까지 한 뒷골목을 벗어났다.

특별히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피로가 몰려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카이사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게 있다면, 내 행동이 조금만 변해도 제 멋대로 또라이 같은 추측을 하며 사고를 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예 무표정을 유지한 채 필요한 일은 말로 분명하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 가서 몸짓 한 번 잘못 했다가 “보스께서 네놈의 피를 원하신다!”라며 칼질 한 번 하면 그 뒤는 데드엔딩(Dead End)으로 직행이다.

캐릭터 시트지는 확 찢기고, 이 캐릭터는 사라진다.

카이사르와의 인연도 사라진다.

내 모든 걸 쏟아 부은 카이사르는 그냥 NPC가 된다.

다음 캐릭터 시트?

그건 미궁도시 할 때처럼 새로 키우는 거다.

전 랭커로서의 이득도 없이 말이다.

‘절대로 안 돼. 다음은 없어.’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치는 나라도 30억짜리 시트지가, 그것도 지난 10년간의 랭커활동의 결실이 더해진 하수인이 생판 처음 보는 남으로 변하는 꼴은 못 본다.

‘은근히 말은 잘 들으니까 의외로 세세하게 명령해도 잘 따라줄지 몰라.’

일단 카이사르의 걷잡을 수 없는 유혈본능부터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다.

광장거리에서 부모를 잃고 엉엉 우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좋은 계기가 되겠다 싶었다.

“카이사르. 저 아이가 보이는가.”

“예.”

“저 아이를 보면 무얼 하고 싶은가.”

자, 너도 나름 불우한 과거를 보냈을 거 아니냐.

상대는 아직 어린 아이다.

과거의 너처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라고.

너는 받지 못한 보살핌을 저 아이는 받을 수 있다.

바로 네가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말이다.

네 안의 선량함을 쥐어짜내서 유혈본능을 좀 죽여라!

“저런 어린 아이에게까지 앵벌이를 시키고 싶으십니까? 역시 보스는 냉혹하시군요.”

틀렸어.

이 녀석은 완전히 악성향이다.

“내 의사를 묻는 게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걸 말해라.”

“제 의사입니까. 굳이 한다면...”

카이사르는 아이를 빤히 노려보았다.

마치 할 수만 있다면 눈빛만으로 찢어죽이겠다는 것처럼.

어찌나 강렬한 시선인지 울던 아이가 경기를 일으켰다.

“시시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걸로 되었다.”

너한테 뭔가를 기대한 내가 멍청했지.

* * *

모험가 길드는 금방 도착했다.

워낙에 커다란 건물이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지라 못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은 주변의 도시와 잘 녹아들어있는데 외관 못지않게 길드 내부의 광경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간단위로 환산하자면 대략 1초가량은 말이다.

‘발전했네.’

건물 보고 오오, 거리기에는 VR게임을 너무 오래했다.

이런 걸로 일일이 놀라면 게임 못한다.

애초에 지금껏 지나쳐온 건물들이 백 개는 넘었다.

“아, 정말! 이번에도 의뢰 놓쳤냐고.”

“당연하지. 경쟁률이 치열한 의뢰니까. 애초에 너는 잠이 너무 많아서 그런 의뢰는 받을 수 없어.”

“뭐야! 지금 내 수면시간에 불만이 있다 이거냐!?”

...시답잖다.

초보 모험가들의 대화 따위는 정말 별 것 없구나.

모험가 길드는 워낙에 넓기에 초행자는 내부 안내도를 살펴보며 길을 찾아다녀야 한다.

물론 미궁도시의 플레이 경험이 있는 나는 간단하게 모험가 지망생들을 맞이하는 창구로 향했다.

창구에는 꼬마나 숙녀, 아가씨를 넘어서 전성기는 모두 지나친 중년의 아줌마가 있었다.

“어머나, 못 보던 분들이네요. 모험가 등록을 하러 오셨나요?”

카이사르는 직원의 말을 무시한 채 불만을 드러냈다.

“보스. 다른 카운터에는 젊은 미인 직원이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늙다리 점원에게 가는 겁니까.”

전부터 생각했지만 너 진짜 쓰레기구나.

보통 당사자 앞에서 그런 말 하냐.

뭐, 그래도 카이사르를 다루는 법은 조금이라면 익혔다.

“카이사르.”

“예. 보스.”

“입 닥치고 줄서.”

카이사르는 멍청하니 눈을 껌뻑거리다가 얌전히 내 뒤로 줄을 섰다.

“우오옷, 방금 봤어? 저 무시무시한 인상의 남자가 별 볼 일 없는 남자의 말을 들었어.”

“그만 둬. 알고 보면 엄청난 내력을 지녔을지도 몰라.”

“굉장하네. 난 저 사람이랑 눈만 마주쳐도 지릴 것 같던데. 확실히 뭔가가 있기는 한가봐.”

범죄길드랑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수군거림에 카이사르는 만족스레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역시 이 녀석은 내 부하지만 정말 이상하다니깐.

“등록금은 1 골드입니다.”

돈은 있다.

두 사람의 등록금을 지불하고 목줄과 주머니, 그 안에 담긴 동그란 회중시계 비슷한 걸 받았다.

“미궁도시 브람지부에서 사용하는 모험가 신분증이에요.”

“사용법은?”

“안내서를 드릴게요.”

...뭔가 잔뜩 설명을 듣게 되나 싶었는데, 안내서 한 장 받고 끝났다.

“그럼 다음 절차입니다. 회중시계에 피 한 방울을 묻힌 다음, 건네주세요. 상태창의 정보를 연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절차랍니다.”

피라는 말에 카이사르가 살기를 물씬 풍기며 나섰다.

“늙은 년이 감히 보스를 무시하는 거냐? 그깟 피 한 방울로 보스의 역량을 측정하려 들다니.”

“어... 원하신다면 더 묻혀도 괜찮아요.”

“좋군. 각오하고 있어라. 네년의 인생에서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새빨간 회중시계를 보여줄 테니까.”

...아니, 난 한 방울로 끝낼 건데.

회중시계 보기보다 크고.

이거 피 칠갑 하면 빈혈로는 끝나지 않는다고.

“카이사르. 닥치라는 말을 잊었나?”

천방지축 날뛰던 카이사르는 얌전히 손바닥에 단검을 그어 피를 만들었다.

후두두두둑.

악력을 가해 출혈량을 늘리더니 정말로 회중시계를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우와, 진짜 질리네 이 녀석. 점점 정이 떨어져.’

이쯤 되면 카이사르의 날 향한 충성도가 문제가 아니다.

내 카이사르를 향한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

“상태창의 정보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클래스 습득입니다. 두 분이 지닌 능력치와 스킬, 특성 등을 검토하여 통합시스템이 습득 가능한 직업을 산출합니다.”

“이쪽의 무례한 녀석은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해라. 불편해하는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불편해지는군.”

“히이익...”

어째서인지 내 말을 들은 중년의 직원이 더욱 필사적으로 단말을 두들겼다. 격려의 효과가 잘못된 것 같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땅바닥만 툭툭 걷어차고 있는 카이사르가 보였다. 어찌나 열심히 땅바닥을 걷어찼는지 바닥의 대리석이 박살나서 움푹 파인 모습이 보인다.

안보고 있을 때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보스가 불편하면 네 몸뚱이는 더 불편해질 거다’ 따위의 협박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 그럼 날 두려워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카리스마 능력치가 생겼다. 일반인은 1도 없는 확장 능력치를 4나 가지고 있으니 그 영향이라고 생각하자 납득이 갔다.

‘훗. 나라는 녀석도 카이사르 같은 놈을 거느리다보니 저절로 관록이라는 게 붙기 시작하는 건가.’

내 잘난 맛에 으스대고 있자니 시무룩해진 중년의 직원이 산출된 결과표를 보여주었다.

묘하게 마법과 기술이 고루 발달해서 LED 모니터에 정보를 출력하는 것 같은 연출이다.

복잡한 가동원리를 파고드는 이공계 게이머들도 있지만 나는 그딴 건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

‘어디보자. 할 수 있는 직업이...’

[직업리스트]

1. 사기꾼

2. 협잡꾼

3. 무장 강도

뭐지 이건. 환각인가.

눈을 깜빡 거린 다음에 다시 확인해보았다.

[직업리스트]

1. 사기꾼

2. 협잡꾼

3. 무장 강도

조금도 변하지가 않았다. 엄청난 현실감이 나를 짓눌렀다.

“직원. 직업리스트가 잘못 산출될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정보의 누락으로 산출되지 않은 직업이 있을 수는 있어도, 잘못된 직업이 산출되지는 않습니다. 통상의 상태창에는 보이지 않는 명성 따위도 고려하니까요.”

“…….”

짚이는 게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껏 이 세계에 진입해서 한 일이 뭐였던가.

민간인 협박, 범죄자 폭행, 고물상 주인 살해, 범죄길드 점원 살해...를 한 카이사르의 보스 행세하기였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엄청나게 악명이 올라버렸다. 처음부터 이런 흉악한 직업들이 생겨도 할 말은 없는 셈이다.

“그래도 통합시스템에 산출된 정보는 최소한의 부분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모험가님들도 많기에 직접 설정을 조작하지 않으면 반영되지 않는 기능도 많답니다.”

“예를 들자면?”

“일반등급 이상의 모든 스킬과 특성, 자산수준 등이 포함됩니다.”

그거라면 하수인 정보도 기록되지 않았을 터.

나는 침착하게 기능의 일부를 공개하였다.

다시금 직업리스트를 받아보자 결과가 달라졌다.

[직업리스트]

1. 보스

2. 살인감독관

3. 킬러

무거워졌다. 세 개 다 전보다 심각해졌다고.

직원은 이제 눈도 안 마주치고 있잖아!

“보스의 직업리스트에 보스가 나타나다니. 이건 보스를 위한 직업이군요.”

살인감독관이나 킬러보다는 낫겠지.

하수인을 거느리는 입장에서 내 본연의 능력이 얼마나 상승하던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지휘계열 능력이 상승하는 보스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클래스는 보스로 선택하겠다.”

“네, 앗, 네…….”

중년 직원이 단말을 조작하자 잠시 뒤…….

[클래스 ‘보스’를 습득했습니다.]

[보스(Boss)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조직을 통솔하는 최고권력자이자 우두머리입니다. 보다 강력한 조직원을 모을수록 보스의 능력은 강력해집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당신의 조직을 미궁의 아득한 영역까지 펼쳐내십시오! 능력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보통의 모험가와는 비교도 안 될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클래스를 습득했다.

개인적으로는 적잖이 만족스러운 직업이다.

카이사르도 꽤나 흡족해하고 있었다.

“카이사르. 네 직업은 무엇이냐.”

“학살자입니다.”

“뭐...?”

무슨 직업 이름이 그따위로 흉흉할 수가 있냐.

보통은 전사나 도적, 궁수 따위잖아.

백보 양보해도 검사나 검투사, 광전사가 한계였다고.

‘정보열람.’

하수인의 상태창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클래스 : 학살자]

[설명 : 학살자는 무수한 생명을 꺼트림으로서 강해지는 존재입니다. 대량살인을 저지를수록 학살자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 생명을 말살하십시오!]

이거 이미 인간한테 생길 직업이 아닌 것 같은데.

몬스터 전용 직업 이런 거 아니냐.

광전사랑 비교해도 이쪽이 더 질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봐라.

광전사는 이성을 잃고 날뛰니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있지.

얜 제정신을 지닌 채 자신의 의지로 날뛴다는 거잖아.

“너 다운 직업을 얻었군.”

“감사합니다, 보스.”

칭찬 아니다 이 미친 새끼야.

씩 웃으면서 쳐다보는데 막 소름이 다 끼치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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