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8)
직업을 얻은 뒤, 우리는 모험가 길드의 휴게실에 눌러 앉았다.
범죄길드에서 뒤처리를 마친 뒤에 이쪽으로 오라고 했으니, 합류 전까지 시간을 때워야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가 오기 전까지는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던 초보자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
카이사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무지막지하게 흉험하다.
모험가들은 괜히 찍힐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대부분은 슬슬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가라, 가.
니네가 숨막혀하는 것도 이해한다.
나도 카이사르가 내 하수인만 아니었으면 여기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니까.
까득!
헌데 카이사르가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뚜두둑.
저거에 맞으면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지 않을까.
“네놈들. 지금 보스가 불편하다 이거냐.”
“아, 아니. 그런 건...”
“감히 변명을 내뱉으려는 거냐? 네놈의 턱뼈를─”
한숨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다.
나는 폭주하려는 카이사르를 만류하였다.
“카이사르.”
“걱정 마십시오, 보스. 목격자는 전부 살해하겠습니다.”
오해를 살 언동은 그만 둬, 이 멍청아.
이 녀석은 진심이겠지만.
아무튼 초보자들이 와들와들 떨고 있잖아.
“다른 자들의 영역에서는 뭘 하라고 했지?”
“존중... 실례했습니다. 저 정도 되는 인재가 보스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다니. 드래곤 슬레이어가 드래곤을 베지 못하는 정도의 치명적인 실책이었습니다.”
“…….”
자신을 드래곤 슬레이어에 빗대어 표현하다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하나만큼은 정말 엄청나구나.
여기서 사고 치면 모험가 길드의 최정예 모험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네 몸을 수십 토막 낼 거다.
검기를 넘어서 검강도 다루는 소드마스터(Sword Master)를 상대로 얘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네놈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가, 감사합니다.”
“뭘 감사한다는 거냐? 보스는 네놈들을 존중하라고 했다.”
근데 왜 눈알은 존나 야리고 있는 건데.
그게 존중하는 거냐.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놈들은 살려서 보내주겠다.”
순간 모든 모험가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는 건...
여길 벗어나지 못하는 놈들은 다 죽이겠다는 건가!?
“아, 아차. 은행에 돈을 맡겨야 했는데.”
한 모험가가 어색하게 핑계를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라스는 그 모험가의 멱살을 붙잡았다.
“얼마냐.”
“예, 예!? 저, 저... 1실버 30쿠퍼인데요.”
“은행에 돈을 맡기는 건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겠지?”
“예, 맞습니다만...”
“그럼 내가 맡아주겠다.”
모험가는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뭐냐, 그 표정은. 설마 내가 어디 가서 돈이나 뜯기고 다니는 병신처럼 보이는 거냐.”
“전혀 아닙니다!”
그렇겠지.
뜯기는 쪽이 아니라 뜯는 쪽이니까.
그것도 실시간으로.
“아니면 내가 네놈의 돈을 보관하지 않을 거란 말이냐?”
“소, 솔직히 그럴 것 같아서...요.”
모험가는 솔직했다!
카이사르는 모험가를 번쩍 들어 땅바닥에 내쳤다!
쾅!
“크악!”
모험가는 피를 토한 채 기절했다.
“건방진 녀석. 감히 보스의 부하인 나를 무시하다니. 이는 보스를 무시하는 것과 똑같다. 널 존중하는 의미에서 목숨만은 거두지 않는 걸 마지막 자비로 여겨라.”
이 순간, 나는 모험가들의 마음을 읽어냈다고 생각했다.
이 새끼 무서워.
다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꾹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차라리 한 명이라도 여기서 나가면...’
경비병을 부르겠지.
카이사르의 무자비한 횡포가 알려질 테고.
모험가 길드 출입이 힘들어질 거다.
“음.”
계산이 바로 섰다.
“카이사르.”
“예, 보스.”
“잘했다.”
조금 무서운 수준이면 길드에 꼰지르겠지.
하지만 압도적으로 무서운 수준이라면?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길드에 이르지는 못할 거다.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
여기서 이 새끼들의 기를 다 짓밟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뭐든 못하겠는가.
모험가들은 보스인 나마저 카이사르를 감싸고돌자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 저... 돈을 드리면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어린소녀 모험가가 울먹거리며 물었다.
현명하군.
저런 태도라면 길드에도 이르지 않겠지.
카이사르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명령했다.
“받아라.”
카이사르는 씨익 웃으며 어린소녀 모험가에게 돈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문으로 향하는 소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히이익!? 왜, 왜 이러세요!”
“보스의 뜻을 아직도 모르겠는가?”
카이사르는 잔혹한 얼굴을 지으며 소녀에게 말했다.
“성의를 표시해서 나가겠다면, 네년에게서 받을 수 있는 건 전부 받아내라는 거다. 이깟 푼돈뿐만 아니라 네년이 지닌 장비, 몸, 그리고 모험가로서의 미래까지도!”
“흐아아...”
소녀는 비틀거리더니 풀썩 쓰러졌다.
과도한 공포를 견디지 못해 그만 기절해버린 것이다.
“…….”
휴게실에는 숨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탈출을 시도한 한 명은 아직도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꿈틀거리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겁에 질려 기절했다.
심지어 묘하게 냄새가 난다 싶더라니, 어린소녀는 기절하면서 오줌까지 지렸다.
보다 못한 나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사르를 꾸짖었다.
“일 처리가 형편없군. 소녀가 오줌을 지린 게 안 보이는가?”
“죄송합니다, 보스.”
“그쪽의 너. 화장실에 가서 수건을 가져와라.”
방금 내가 지목한 놈은 동료로 보이는 녀석들과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남자였다.
분명 동료가 휴게실에 남아있으니 멋대로 혼자 도망치지는 않겠지.
남자는 덜덜 떨면서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휴게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잡아.”
“네.”
덥썩.
카이사르에게 팔을 붙잡힌 남자가 사색이 되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길드 안에서 뛰어다니면 위험하지.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텐가. 저런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이곳의 대리석 바닥은 워낙에 반짝거리도록 닦여있기에 마구 뛰어다녔다간 그대로 넘어지기 쉽다.
저쪽의 남자처럼 땅바닥에 매치기 당하는 고통은 느끼지 않겠지만, 그래도 넘어지면 아픈 건 아픈 거다.
내 자비어린 충고를 새겨들었는지 남자는 상체를 90도로 숙이며 외쳤다.
“가, 감사합니다! 절대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조심하면 다치지는 않을 거다.”
어째서인지 남자의 얼굴에 더욱 두려움이 번졌다.
아무튼 남자는 휴게실을 벗어났다.
조금만 기다리면 곧 수건을 들고 돌아올 거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휴게실을 가득 메운다.
정적 속의 초침소리는 거대한 종이 뎅뎅 울리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초침이 하나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산에 짓눌리는 것 같은 숨 막히는 압박감마저 몰아닥쳤다.
‘으으. 이건 너무 힘들어.’
나는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입을 열었다.
“방금 나간 녀석의 동료들.”
“카리스입니다!”
“멜페입니다!”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나 해봐라.”
“이야기... 말입니까?”
카리스와 멜페는 서로를 돌아보며 흠칫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뒤는 알아서 떠들며 분위기를 풀어보라는 거였다.
‘이런 때에 괜히 간섭하면 어색함만 더해지겠지.’
내가 있어도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던 때처럼 대화를 주고받으면 상황이 조금은 개선되겠지. 그런 계산대로 카리스와 멜페는 조금씩이나마 어색하게 말문을 열었다.
“호론 녀석, 늦네.”
“그러게. 하하.”
“설마 우릴 버리고 도망간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네놈들. 보스가 지루해하는 모습이 안 보이나?”
“히이익! 자, 잘못했어요!”
“어서 보스의 지루함을 풀 수 있는 재담을 풀란 말이다!”
카이사르의 윽박질에 모험가들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메, 멜페. 그거 알아?”
“뭐, 뭐가.”
“맥주가 죽기 전에 남긴 말 말야.”
멜페는 어버버리다가 정색하며 화를 냈다.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유언비어(遺言beer).”
“풉.”
개 뜬금없는 아재개그에 멜페는 실소를 흘렸다.
카리스와 멜페는 이 정도면 됐겠지, 하며 슬그머니 카이사르의 눈치를 보았다.
카이사르는 존나 무서운 표정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아, 저거 망했네.’
딱 봐도 엄청나게 화나 보인다. 두 사람도 죽음을 직감했는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허나 카이사르는 고개를 젓고는 말없이 나를 가리켰다.
두 모험가는 끼긱 소리가 나지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고장난 기계처럼 어색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솔직히 안 웃겼는데. 여기서 안 웃으면 카이사르가 쟤네들을 확 죽여버릴 것 같아.’
나는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어째서인지 분위기가 한층 더 싸늘해졌다.
‘뭐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건가?’
깐깐하기는!
그래도 사람 두 명 살리는 셈 치고 좀 더 노력해보자.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마 게임에 들어온 이후로 가장 크게 입을 벌린 거다.
하지만 아무리 웃어도 분위기는 더욱 삭막해졌다.
심지어 두 모험가는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웃어줬잖아.
왜 우는 건데!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내가 웃는 게 존나 마음에 안 든다 이거냐!
용서하지 않겠다!
“보았는가! 보스의 네놈들의 재롱을 본 반응을!”
핫. 카이사르의 외침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
나는 뒤늦게 얼굴표정을 수습했다. 허나 개빡쳤을 때의 얼굴변화는 분명하게 봤을 테니 이미 뒤늦은 수습이었다.
이제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입 닥치고 눈치를 보던 모험가들까지 중풍 걸린 환자처럼 덜덜 떨었다. 카이사르는 아재개그를 펼친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다.”
“흐끅...?”
“보스가 웃는 모습은 처음으로 봤다. 네놈들은 훌륭한 재담꾼이군.”
“그, 그럼...!”
“나머지는 필요 없으니까 꺼져라. 너희 둘은 남고.”
희비가 엇갈렸다.
모험가들은 정말로 군말 않고 질서정연하게 걸어 나갔다.
두 눈에는 카리스와 멜페를 향한 고마움과 동정심을 가득 담은 채로.
‘이놈들 진짜 불쌍하네.’
왠지 모르게 방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열심히 웃을수록 점점 더 겁에 질려하던 놈들이 카이사르의 말에는 헤실 거리며 나가고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마음에 안 들었기에 나는 명령했다.
“누구 맘대로 내보내도 좋다고 했지?”
웃으며 나가려던 모험가들의 몸이 우뚝 굳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싸한 분위기가 되건 말건 이젠 알 바 아니다.
“전부 다 앉아.”
카이사르는 살벌하게 눈을 부릅 뜨며 말했다.
“보스께서 명하신다. 당장 착석해!”
모험가들은 죽을상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카이사르는 내게 물었다.
“저 자들은 재담도 떨지 못하고 분위기만 망치는 벌레들입니다. 내보내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이 자리에서 전부 죽이길 바라시는 겁니까?”
이왕 엿 먹일 생각이 들었다면 제대로 굴려줘야지.
“모험가답지 않은 저 꼴을 봐라. 저딴 놈들이 동업자라고 생각하면 절로 분이 치밀지 않는가.”
“확실히 그렇습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다. 그 정도도 해내지 못할 버러지들에게 휴게실을 나가는 일을 허락할 수는 없다.”
모험가들의 얼굴에 ‘넌 휴게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따위의 불만이 새겨졌지만, 그것도 이내 공포에 뒤덮여 사라졌다.
“나가고 싶으면 자격을 증명해라!”
나는 문을 가리킨 채 당당하게 선언했다.
카이사르는 듬직하게 문 앞을 가로막은 채 멋진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후 3시 15분.
모험가 두 명 기절, 한명 외출, 다섯 명 감금.
게임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그렇게 모험가 길드 휴게실의 감금플레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