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9화 (9/224)

00009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9)

감금 플레이가 시작된 지 두 시간이 경과했다.

“번호 1번, 사토시! 장기자랑 하겠습니다!”

“해봐.”

카이사르의 무뚝뚝한 말에 사토시가 침을 꼴깍 삼켰다.

무자비한 카이사르는 어떤 개그에도 웃지 않았다.

그렇다면 웃음을 공략하는 것보다는 다른 게 필요하다.

“제 클래스는 도적! 주특기는 기민한 손놀림! 이를 적극 반영한 단검 저글링!!”

샤샤샥!

“오오옷”

“대단해”

“단검 세 자루를 공중에 던지면서 전부 받고 있어. 그것도 날을 피해서 손잡이만 잡고 있잖아.”

모험가들은 사토시의 실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짝짝짝.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사토시는 슬쩍 웃었다.

일단 반응은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카이사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개 없는 놈들에 비하면 이건 좀 괜찮은 재주였다.

“단검 저글링이라. 나도 어릴 적에는 조금 했었지.”

카이사르는 허리춤에서 단검 일곱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는 하나씩 공중에 띄우며...

후두둑

“아.”

놓쳤다.

하나 놓치니까 손이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단검 중 하나는 팔을 찔렀다.

푹!

푸슈우우욱!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를 한 손으로 막더니, 카이사르는 묵묵히 떨어진 단검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싸늘해진 눈으로 도적 모험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모험가는 억울하다는 눈치였지만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우와.’

내심 감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쪼잔 해. 전적으로 네 잘못이잖아.

모험가는 일말의 기대를 담아 날 돌아봤다.

“하하. 거 재밌군.”

“역시 피를 보아야만 즐거우시군요. 보스다우십니다.”

“그런가.”

도적은 절망해야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려했다.

“앉아.”

도적은 헷갈리지 않을 수 있었다!

제대로 절망했다!

‘그러게 진즉에 웃어줄 때 반응했어야지.’

유감스럽게도 속이 좁은 건 카이사르뿐만이 아니다.

속 좁음으로 치자면 내가 한 수 위다.

이제 와서 그리 간단히 풀어줄 거라고는 생각지 마라!

“흐윽. 흑. 이제 이런 거 싫어.”

갑자기 모험가 한 명이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 치료비 벌어야 되는데. 엉엉. 이게 뭐야. 이러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엉엉.”

순식간에 압도적인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카이사르는 그래서 뭐 어쩌라는 표정이지만, 이런 것까지 저 놈의 장단에 맞춰주면 진짜 쓰레기가 된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명령하였다.

“그런 사정이 있다면 보내주지 않을 수 없군. 보내줘라.”

“알겠습니다, 보스.”

모험가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이렇게 간단히 보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무슨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마왕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보통은 풀어준다고. 저런 소리를 들으면 진짜 지독한 악당이 아니면 양심이 쿡쿡 쑤셔오잖아. 엉엉 울던 모험가는 하도 울어서 눈가도 빨개졌다고.

빈손으로 보내기도 뭣해서 다시금 명령했다.

“네 어머니의 치료비에 필요한 금액은 얼마인가.”

가벼운 감기비 정도라면 발을 묶은 게 미안하니까 조금 베풀어주자.

어차피 원래는 내 돈도 아니었던 거였고.

“백만 골드가 필요해요... 서, 설마 치료비를 내주시려고!?”

말 같지도 않은 거금이잖아 인마!

없어, 그런 돈 없어!

있어도 그렇게까지 거금이면 안 줘!

“밥값이나 하라고 1골드 줘라.”

“알겠습니다, 보스.”

모험가는 1골드나 받고도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어째서일까.

감사인사를 받아도 조금도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끼이익.

쿵.

모험가가 나간 뒤, 나는 여운에 잠겼다.

이 게임에 와서는 처음으로 한 선행이 아니던가.

아직 나란 인간이 답도 없이 글러먹은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응?’

근데 어째 모험가들의 표정이 어색하다.

다들 엄청나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잖아.

급기야 모험가 한 명이 어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가 신경 쓰이는데. 잠깐 확인하고 와도 됩니까?”

기가 막혀서 쳐다보고 있자니, 다른 모험가가 앗 하며 소리쳤다.

“네 고향은 여기서 반년이나 걸어가야 하잖아!”

“시끄러! 내 어머니를 향한 효심이 반년간의 걷기만도 못하다 이거냐!”

“그야 당연하지! 너네 동네 깡촌이라서 젊은 여자도 없고 농사짓고 살기 막막하다며 미궁도시까지 올라왔잖아!”

다른 모험가는 아예 내 앞에 와서 불쌍한 척을 했다.

“저... 이틀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뭐라도 먹으러 가고 싶어요. 그만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

“개소리 하지 마! 너 어제 비프 스테이...”

퍽! 퍼억! 퍽!

모험가는 야차 같은 얼굴이 되어 동료를 두들겨 팼다.

내부고발에 나서려던 동료는 순식간에 축 늘어졌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된 동료를 내던지더니, 다시금 두 손을 모아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원했다.

“제발 부탁드려요.”

“이틀 굶은 놈의 주먹질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이건... 그러니까...”

모험가는 갑자기 큭, 하며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으윽, 봉인된 힘을 사용했더니 기혈이 꼬이기 시작했어... 이, 이대로는 죽고 말 거야. 어서 비프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지 않으면...”

아무말 대잔치냐.

야 이 멍청아, 좀 더 성의 있게 거짓말을 하라고.

“...됐어. 가.”

“감사합니다! 저도 1골드면 풍족한 식사를..”

“저놈은 통행료로 1실버 뜯어내.”

“알겠습니다, 보스.”

“으윽.”

대충 그런 소동을 거치며 한 놈씩 빠져나가기는 했다.

결국 12시간이 지나 새벽 3시가 되었을 무렵.

신나게 가지고 놀던 모험가는 둘만 빼고 다 탈출했다.

“저기... 저희는 어째서 여기 있는 건가요?”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요.”

카리스와 멜페.

아재개그를 치는 놈과 태클을 거는 역할의 두 명이다.

이놈들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딱히 없다.

‘심심하잖아.’

게다가 얘들이 나가면 이제 휴게실에는 나와 카이사르 둘만 남게 된다.

언제 올지도 모를 리나를 기다리면서 째깍거리는 시계초침 소리만 듣고 있어야 한다.

상상만 해도 숨 막히는 상황인지라 온갖 핑계를 대며 저 두 명만큼은 나가지 못하게 명령을 했다.

“너희들은 동료가 걱정되지도 않는가?”

나름 그럴싸한 핑계를 대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서 수건을 가지고 오는 간단한 역할도 12시간이 되도록 수행하지 못한 채 실종된 동료가 걱정되지도 않느냔 말이다.”

“그건... 그냥 도망친 거 아닐까요. 툭 까놓고 말해서 12시간이나 지났으면 적당한 여관 잡고 자고 있는 것 같은데요.”

“동료애가 없군!”

나의 단호한 외침에 카이사르가 두 눈을 희번뜩 떴다.

“벱니까?”

“히이익! 아, 아니에요! 실은 호론 녀석이 걱정 돼서 찾으러 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렇지, 멜버?”

“어... 네. 그런 겁니다. 호론 그놈, 지능이 좀 떨어지기는 하니까요. 어쩌면 화장실에서 수건을 찾지 못해서 자비를 들여 수건을 사려고 미궁을 내려가고 있지 않을까요.”

모험가 멜퍼의 말에는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수건을 사려고 미궁을 내려가?”

“네. 모험가 길드 정도나 되니까 양모로 된 수건을 화장실에 두지, 보통은 그런 귀한 물건은 한 집에 하나밖에 없잖아요? 보스에게 천쪼가리 수건을 들이밀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봤자 수건이잖아. 가격이 얼마나 한다고.”

“뭐... 보스한테야 50실버짜리 수건은 별 거 아니겠지만, 저희 같은 최하급 모험가는 하루 수익이 1실버도 안 되니까요. 그것도 두 세 명이 뭉쳐 다닌 뒤의 수익이죠.”

“…….”

뭐야 그거.

엄청 가난하잖아.

“50실버는 상당한 거금이에요. 미궁을 헤매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긴 끝에 실력이 상승하고, 몬스터의 전리품을 노리고 덤벼드는 모험가 킬러들과 격전을 치루고...”

“…….”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덜덜 떠는 손으로 들고 수건가게에 찾아가서, 네가 번 돈이 아니라 훔친 돈 아니냐며 추궁하는 주인에게 힘겹게 자기변호를 마쳐가면서...”

“…….”

“간신히 손에 넣은 수건을 노리고 덤벼드는 소매치기나 도둑들의 손길을 피해 모험가 길드로 뛰어가는 와중, 수건을 주면 하룻밤을 어울려주겠다는 여자들의 유혹을...”

“…….”

“뿌리치지 못해서 수건을 넘기고 다시 미궁에 들어간 뒤, 몇 년쯤 지나서 이런 일도 있었지, 하는 느낌으로 주머니에서 꺼내는 푼돈이 50실버라구요.”

길어, 게다가 유혹에 넘어갔어!

심지어 결과적으로는 가벼이 꺼내는 푼돈이 됐잖아!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였던 거야?

피식.

“아, 웃었다.”

“이제 진짜 보내주시면 안돼요? 오줌 지렸던 애도 냄새 나니까 꺼지라면서 돈 주고 내보냈잖아요.”

“맞아요. 호론 녀석이 이제 와서 수건을 가져온다고 해도 수건 같은 건 딱히 필요 없잖아요. 바닥에 묻은 피는 재수 없게 굴던 놈 옷으로 죄다 닦았고요.”

잠깐 조는 사이에 그런 일도 있었냐!?

아아, 뭐 됐어.

이렇게까지 하면 안 보내줄 수도 없다.

“카이사르.”

“마지막 목격자들을 제거합니까?”

“재미없는 농담은 그만 둬. 만족했으니 그만 보내라.”

결국 모험가 두 명도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수고했다는 의미로 5골드 씩 챙긴 뒤에 휴게실에서 나갔다.

재밌는 녀석들은 이왕이면 오래 살았으면 해서 특별히 5골드나 챙겨줬다.

역시 내 돈 아닌 걸로 생색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배고프군. 잠시 나가지.”

“알겠습니다, 보스.”

결국 우리도 휴게실에서 나왔다.

미궁에서 나오는 모험가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있는지라 모험가 길드는 밤에도 버젓이 운영된다.

워낙에 큰 건물에 휴게실도 한두 개가 아니라서 우리들이 여기에 있다가 나와도 딱히 신경 쓰는 사람들도 없다.

‘청소시간은 보통 새벽 5시니까.’

두 시간만 더 늦었어도 공포의 감금플레이가 적발당해서 길드 직원에게 엄청나게 꾸중 받았겠지.

새벽 3시의 거리는 제법 서늘했다.

옷깃을 여미며 유난 떨고 싶지만 지켜보는 카이사르의 시선 때문에 춥다는 내색도 할 수 없었다.

반면에 카이사르 녀석은 내가 직접 CP를 들여가며 입힌 장비 덕분에 엄청나게 따뜻해보였다. 하다못해 몸에 두른 흑색 망토라도 주지 않을까 싶어서 빤히 쳐다보았다.

“분부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보스.”

평소에는 눈치 빠른 척 다하더니 이럴 땐 눈치가 느리네.

망토 내놔, 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바람이 차군. 몸은 괜찮나?”

“괜찮습니다. 검을 든 자는 어떤 혹한 속에서라도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

저딴 말을 들어버리면 망토 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보다 혹한이라니.

그 정도로 춥다고 생각하면 망토 하나쯤 내놓으라고.

이쪽은 초보자 전용 복장이잖아.

딱 봐도 추워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보스는 대단하십니다.”

“뭐가 말이냐.”

“용케도 그런 구멍투성이 옷을 입고도 이 혹한의 추위 속에서 태연하시군요. 역시 보스답습니다.”

제 딴에는 감탄했다고 하는 말일 테지만, 내 귀에는 네놈이 내 보스로 남아있어서 살고 싶다면 징징거리지 말고 닥치라는 말로 들린다.

추위와 두려움 속에서 나는 몸을 떨지도 못한 채, 마음속으로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이런 혹한 속에서 리나 녀석은 일을 어떻게 처리하기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단 말인가. 짜증스레 길가의 쓰레기통을 걷어차는데, 안에서 금발의 리나가 굴러 나왔다.

“아, 보스”

“거기서 뭐하냐.”

리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험가 길드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스가 보이지 않아서... 날은 춥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서 피신을...”

“아니, 건물 안에 들어가면 되잖아.”

“범죄길드도 모험가길드에 버젓이 소속된 인원들이 대다수잖아. 함부로 돌아다니면 발각될 게 뻔하니 안쪽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아니, 잠깐.”

리나가 설마 하며 물었다.

“보스랑 살인광은 지금까지 건물 안에 있었어?”

“그렇다.”

“내가 추위와 악취에 시달리며 잠복하는 사이에?”

죄책감에 찔려 말문이 막힌 나를 대신해서 카이사르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줄곧 휴게실에 있었다. 나름 안락한 장소였었지.”

“잘도 그런 대담한 짓을... 범죄길드 녀석들에게 걸렸으면 분명 소란이 생겼을 텐데. 어째서 놈들이 휴게실을 살펴보지 않은 거지...?”

그야 안에서 실시간으로 감금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지.

가끔 안에 들어오려던 놈들은 제발 우리도 데려가 달라고 무언으로 외치는 모험가들의 시선을 마주치고는, 빛의 속도로 쾅 문을 닫고 달아났었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왠지 모르게 바깥에서도 휴게실의 문을 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뒤처리는 어떻게 되었지?”

“아, 그거? 망했당. 에헷?”

……뭐?

존나 당당하게 난 할 일을 다 했지만 보스가 보이지 않아서 추위에 떨고 있었어, 같은 분위기를 잡던 년은 어디 사는 누구였었냐.

나는 귀여운 척을 하는 리나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저 쓰레기를 다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알겠습니다, 보스.”

“뭣!? 잠깐, 쥐나서 움직일 수가, 보스! 그만둬어어!”

리나는 쥐가 나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다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졌다.

뚜껑을 닫자 쓰레기통이 잠시 꿈틀거렸지만, 어디선가 큼직한 돌을 구해온 카이사르가 뚜껑 위에 얹자 조금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만족스레 지나가려다가 흠칫 했다.

‘이거 그냥 사람 하나 죽여 버리는 짓이잖아.’

위험해, 이거.

카이사르한테 완전히 물들어가고 있잖아.

절대 내 인성이 글러먹은 게 아니야.

나쁜 건 카이사르다.

전부 카이사르가 나쁜 거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