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2)
이왕 미궁에 들어가는 거, 내친김에 모험가 길드에서 가벼운 퀘스트도 받아가기로 결정했다.
범죄길드의 길드 공헌도와 마찬가지로 모험가길드에도 실적 개념이 존재한다.
많은 실적을 쌓으면 보다 상급의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 하찮은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보스. 퀘스트 따위가 없어도 저는 강합니다.”
땡깡부리는 카이사르에게 나는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다.
“퀘스트를 완료한 이력이 있다는 건 이런 거다. 네가 누군가를 죽여서 강함을 증명하지 않아도, 너한테 개기면 죽는다는 걸 남들에게 알려주는 일종의 ‘증표’나 ‘훈장’인 셈이지.”
“과연. 그런 거라면 탐이 나는군요.”
이 저급한 살인광 녀석에게는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아니면 대화가 성립하지를 않아서 매번 번거롭다니깐.
이후로는 귀찮게 구는 일은 없었다.
모험가 길드를 지나 도시의 중심부로 향하자 몇 개인가의 격벽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거대한 성벽도 나타났다.
“신기하네. 보스는 꼭 미궁도시에 와본 적이 있어 보여.”
“없다.”
“그럼 어째서 궁금해 하지 않는 거야? 도시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안쪽에 가장 위험한 미궁 출입구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
시시한 질문이다.
“애초부터 미궁도시는 미궁출입구를 봉쇄하기 위해 세워진 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장기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시설이 만들어지고, 상권이 형성되고 모험가가 더해졌지.”
“헤에.”
“미궁도시의 주 역할은 도시로서의 기능을 이행하는 것 이전에 미궁의 봉쇄에 있다. 안쪽에 내성 따위를 쌓아버리면 유사시에 몬스터들이 내성에 농성할 위험을 만들 뿐이다.”
이건 외부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성벽과 격벽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라고 봐야 한다.
내부에서 올라올지 모를 몬스터에 대비한 방어체계이다.
“보스는 역시 대단해! 그런 군사적인 식견마저도 있을 줄이야. 역시 내 눈은 잘못되지 않았어. 난 대단해!”
내 칭찬을 하고 싶은 거냐, 자아도취를 하고 싶은 거냐.
헷갈리니까 둘 중 하나만 해라.
“의뢰는 이걸로 한다.”
[고블린 토벌(반복)] [난이도 : 최하급]
[개요 : 미궁의 초입지대에는 어째서인지 대량의 고블린이 꾸준히 나타난다. 숫자가 쌓인 고블린은 초보 모험자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바, 이에 토벌퀘스트를 내린다.]
[클리어 조건 : 고블린의 코를 베어올 것.]
[보상 : 고블린의 코 1개 당 5쿠퍼.]
코가 마법적 시약의 가치를 지니고 그딴 거 없다. 고블린 따위는 사실 아무리 죽여도 별 이득이 안 된다.
이건 정말 모험가 길드가 초보 모험가들의 안전을 지키고 경험을 쌓도록 만들기 위해서 만든 일종의 초보자 육성정책의 일환 같은 느낌의 퀘스트다.
보통 초보 모험가들은 미궁 초입에 들어가서 체력과 정신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고블린을 잡고 기진맥진해서 나온다. 잡는 수도 기껏해야 두 자리 수에 불과하다.
‘그건 힘도 딸리고 자른 코를 보관할 장소도 없기 때문이지만... 내 부하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
한 명은 힘만 무려 20이고, 다른 한 명은 아공간주머니까지 가지고 있다.
배낭이야 다른 모험가들의 눈속임을 위해 산거니까 미궁을 벗어날 즈음에만 아공간주머니에 옮겨둔 물품을 다시 배낭에 채워 넣으면 된다.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고블린 따위, 세 자리 수를 잡는 것도 별반 어렵지 않다. 덤으로 파티사냥의 결과로 균등분배 경험치를 습득하면 내 레벨도 자연스럽게 오른다.
‘완벽해! 흠결 하나 없는 우수한 계획이다!’
나 자신의 유능함이 두려워질 정도로군.
그래도 일하는 건 내가 아니라 부하들이지만.
그딴 거 알게 뭐야.
출입구로 가는 길에는 경비병력이 상주하고 있다.
유사시에 몬스터와 맞서기 위한 병력이다.
모험가 길드와 시장의 병사들도 평상시에는 불쌍한 모험가들 삥이나 뜯는 나쁜 놈들처럼 보이지만, 막상 위기사태가 발생하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입장인 건 마찬가지다.
“잠시 검문절차가 있겠습니다. 모험가 자격증을 보여주시고, 수정에 손을 올려주십시오.”
검문절차는 간단히 통과할 수 있었다. 악명 수치가 조금 쌓였다고 해도 경비대에 체포되거나 재판을 받은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간단하게 통과한 건 나와 리나 두 명 뿐이었고, 카이사르 앞에는 두 개의 창이 엑스 자를 그리며 진로를 가로막았다.
“살인광...!? 이런 미친. 브람 시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썩어간다고 생각했건만, 드디어 미궁에 드나드는 초보 모험가에게까지 손을 넓히려는 건가!?”
아, 이 녀석 글렀네.
배경설정이 완전 형편없게 짜여 있잖아.
나는 짜증스레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그 녀석은 내 부하다. 고삐 없는 야생마처럼 날뛰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하지만...!”
“애초에 모험가라는 족속은 종종 자신들만의 고유한 내력이 있는 법. 미궁도시 브람의 경비병들은 그 내력까지 검토하고 사람을 가려가면서 모험가를 받아왔는가?”
그럴 리가 없다. 어지간한 중범죄자라도 일단 모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받아들인다. 그게 모험가 길드의 방침이다.
뒤늦게 미궁 안에서 흉악범죄를 저지른 게 발각되면 수정에 손을 올릴 때에 경고음이 울린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카이사르는 미궁 안에서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를 막는다면 이는 모험가 길드를 향한 경비병들의 월권행위가 된다.
“크윽... 당신이 저 살인광을 제어할 수 있길 바라지.”
피식 웃고는 경비병을 지나쳤다.
“우와앗. 보스는 역시 대단해! 우리 같은 음지의 사람들은 보통 경비병 앞에서는 제대로 말도 못하는데.”
“호들갑 떨지 마라, 리나. 범죄길드의 눈은 안쪽에도 있을 텐데?”
“윽...”
검문을 통과하자 큼지막한 건물 몇 채와 상인들, 주변을 서성거리는 모험가들의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검문절차를 다시 밟기는 귀찮은 모험가들을 위해 보급품이나 대장간, 마도구점 따위에서 폭리에 가까운 값으로 물건을 파는 구간이다.
미궁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곳들인지라 돈에 연연하지 않거나 멀리 가기 귀찮고, 부주의한 녀석들은 대부분 이 장소를 애용한다.
“보스. 사람이 예상보다 적습니다. 전부 벌레처럼 몬스터들의 손에 당해버린 겁니까?”
“출입구가 많을 뿐이다. 이 근방에는 이런 출입구로 향하는 길이 열 개도 넘게 존재한다.”
자연히 이를 둘러싼 성벽과 격벽은 더욱 넓어졌고, 그 너머로 자리한 도시의 규모도 더욱 거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궁도시들의 규모는 하나같이 각 나라의 수도와 필적하거나 그보다 거대하게 된다.
귀족들이 괜히 미궁도시에 찝쩍거리며 시비를 걸거나 빨대를 꽂으려고 드는 게 아니다.
고오오오오오..
미궁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딛자 비명소리에 가까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던전(Dungeon)과는 월등히 급이 다른 거대한 미궁의 존재감이 그 편린이나마 발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신입 모험가들은 이런 불길함에 압도당해서 더러는 도망치기도 하고, 더러는 과하게 긴장하며 정신력을 팍팍 깎아가며 내려간다.
저벅. 저벅.
나? 짬이 몇 년인데 이딴 데에서 미적거리고 있으라고.
여기가 내 집인 것 마냥 당당하게 걸어 내려갔다.
그런 의연한 태도에 카이사르와 리나가 만족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찌지직!
계단이 끝나고 넓은 통로가 시작되는 길.
큼지막한 쥐새끼들이 쥐구멍에서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카이사르는 쥐구멍을 노려보더니 살기를 마구 뿜었다.
찌지지지직!
카이사르의 살기발산의 효과는 대단했다!
쥐새끼가 겁을 먹고 도망쳤다!
“장난치지 마라.”
“죄송합니다. 조금 심심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리나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뒤따라왔다.
통로를 조금 걷자, 피비린내가 났다.
카이사르는 무척이나 화색을 띄며 내게 말했다.
“인간의 시체가 있습니다. 멍청한 모험가가 무언가에 당해 죽은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미궁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강력한 몬스터입니까? 거인족의 말예로 취급되는 트롤이나 미노타우르스, 오우거가 나타난 겁니까?”
“바보냐 넌? 그런 괴물이 이딴 곳을 서성거리고 있으면 이미 모험가 길드에서 긴급퇴치 의뢰를 내리고, 초보모험가들의 출입을 엄중하게 막고 있을 거다.”
“아쉽군요. 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건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보스. 다음에 만날 거인족 중에 한 마리는 보스에게도 양보해드리겠습니다.”
그딴 배려심 필요 없어. 배려가 무겁다고.
무거운 걸 떠나서 순식간에 죽는다.
“끄겍, 끼겍!”
인간시체가 보일 즈음, 우리는 이변을 깨달았다.
시체에 매달려 게걸스레 팔을 뜯어먹고 있는 무언가.
자그마한 몸체와 시체를 먹는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몬스터가 있었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어둠 속의 군림자 ‘드레드 원(Dread One)’입니까?”
“시체청소부 고블린(Goblin)이다.”
드레드 원은 뭐하는 괴물이냐.
그딴 존나 쌜 것 같은 이름의 괴물이 미궁 1층 초입부터 나타날 리가 없잖아.
소리도 뭔가 끄겍 끼겍 거리는 허접이었고.
“첫 실전이다. 치워라.”
카이사르는 흉험하게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런 잔챙이 따위, 제 앞에서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보여드리지요. 보스의 첫 번째 부하, 이 카이사르가 지닌 괴력을!”
“얍~”
퍽!
리나가 던진 단검이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풀썩!
힘없이 쓰러진 시체를 보며 리나가 피식 웃었다.
“뭘 기분 내고 있는 거야? 저런 잔챙이 상대로.”
“계집. 내 사냥감을 가로채지 마라!”
“잡고 싶으면 잡든지. 나보다 빠를 순 없겠지만? 베에~”
빠직.
카이사르의 이마 위로 혈관이 돋아났다.
통로에 걸린 횃불이 그의 얼굴에 음영을 그리며 한층 더 살벌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 말, 후회하게 해주지.”
이후로도 우리는 통로를 걸으며 종종 고블린을 발견했다.
숫자를 합치면 대략 열 마리는 넘을 거다.
그래도 누가 몇 마리를 잡았는지 셀 필요는 없었다.
카이사르와 리나의 사냥대결은 리나가 일방적으로 이겼다.
전승이다.
보이는 족족 ‘얍’이라거나 ‘에잇’이라거나 ‘짜잔’ 따위의 귀여운 기합소리를 내며 고블린을 즉사시켰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안 준다!”
피육!
검을 들고 뛰어가던 카이사르가 전략을 바꿔 품 속의 단검을 집어던졌다. 매섭게 날아가던 단검은 고블린의 머리에 꽂힐 것처럼 보였지만...
“빈틈 발견!”
팅! 데구르르.
리나가 던진 단검이 카이사르의 단검을 맞춰 경로를 틀었다.
단단히 빡친 카이사르가 남은 여섯 자루의 단검을 모두 집어던졌지만, 단검은 번번이 리나의 단검에 맞고 고블린의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끼에엑...”
겁에 질린 고블린은 선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다. 카이사르는 그 가엾은 고블린을 향해 돌멩이를 집어던졌지만, 돌멩이는 리나가 방해할 것도 없이 전부 빗나갔다.
“크아아악!!”
더 이상 빡칠 수 없을 정도로 격노한 카이사르가 검을 들고 달려갔지만 고블린은 이미 리나의 단검에 생을 마감한 뒤였다.
[리나가 고블린을 죽였습니다.]
[파티경험치로 극미량의 경험치를 습득했습니다.]
“음. 좋군.”
“헤헷. 보스가 칭찬해줬다? 누구랑은 다르게 칭찬받았다?”
촐싹거리고 방정맞기는 해도 역시 팀에 여자아이가 있으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뭐라고 할까.
“썩을 계집이……!”
카이사르의 넘실거리는 살기에 뒤덮여 아무 생각이 안 드는 분위기라고 할까.
존나 무섭잖아.
이제는 좀 적응됐다 싶었던 나도 눈을 못 마주치고 있다.
끼기겍! 끼겍!
꾸게게게겍!
그렇게 한가한 기분을 내며 사냥인지 유람인지 모를 미궁탐사를 이어나가던 도중, 다수의 고블린이 서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계집! 이번에도 방해하면 네년의 목을 베겠다!”
“알았어, 알았어. 너무 뺏으면 미안하니까. 이번 무리는 다 가져.”
“그 말을 어기는 순간이 네 생의 마지막이 될 거다.”
아니, 보통 저런 무리가 나타나면 사이 안 좋은 놈들도 조금 쫄면서 서로 협동하지 않아?
얘네는 몇 마리가 나올 줄 알고 이리 당당한 거냐.
‘그보다 난이도 올랐다고 하지 않았나?’
잠깐 고민해본 결과, 다른 게이머들과 내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걔들은 게이머가 몬스터를 잡느라 고생한 거였고, 나는 NPC가 몬스터를 잡느라 편한 거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걔들이랑은 다르게 나는 부하들의 무력에 힘입어 버스타고 다닐 수 있다 이거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에 힘입어 예상보다 빠르게 베스트 내에 작품이 보이기 시작했네요.
내일치 연재분의 예약시간을 두 개 모두 00 : 07로 맞췄습니다.
유입과 추천이 늘어나면 30화까지의 예약시간을 전부 앞당길 예정입니다.
아니면... 뭐 지금처럼 가는 거구여...
그냥 그렇다구여..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