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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하들이 미친듯이 유능하다-17화 (1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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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7)

야심한 밤. 새카만 암흑이 도시를 집어삼키며 공포심을 자극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 침상 앞에는 실시간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종말의 사제라고 불리는 놈이!

‘이건 대체 뭐하는 새끼야?’

이런 건 전작 미궁도시에서도 없었다. 미궁세계에 접어들면서 새로 생긴 존재라는 거다.

사제(Priest)는 드물게나마 볼 수 있지만 종말의 교단은 정말로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온 거였다.

어감만 들어도 좋은 예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선입견일지도 모르지.’

흉흉한 이름과 달리 엄청난 치유능력을 지녔을지도 몰라.

모든 병마의 종말을 가져온다, 라던가.

인간에게 닥치는 종말만 아니라면 딱히 나쁜 건 아니잖아?

“종말의 사제라. 교리를 들어도 되겠나?”

종말의 사제 루블릭은 흔쾌히 대답했다.

“세계멸망.”

단도직입적으로 모든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이건 틀림없이 악성향 교단이다!

“그래서... 그 종말의 교단이 내 병을 치료하겠다고?”

“그렇소. 신체의 일부를 죽이면 신체에 깃든 병도 함께 죽을 지어니. 종말이란 병마조차도 피해갈 수 없는 것...”

짜샤, 그럼 내 몸도 피해갈 수 없잖아.

필요 없다고 그딴 치료.

애초에 병 같은 거 걸리지도 않았으니까.

“그건 곤란하다.”

“음? 병이 낫지 않아도 괜찮소? 주독이 전신혈맥에 침투하여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다만.”

맥주 한 컵 마신다고 그딴 거 걸릴까보냐.

인간의 수준이 아니라고, 그거.

그렇게 심각하면 무균실 인큐베이터에 박혀있어야지. 여기 식으로 표현하자면 성스러운 교단의 신전 치료실에서 감금생활을 하는 건가.

“먼 길 오느라 고생하였다. 허나 치료를 위해 몸을 죽일 수는 없다. 내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정말로 괜찮겠소?”

“이까짓 건 별 것도 아니다. 부하가 호들갑을 떨어서 야심한 시각에 헛걸음을 하게 하였군. 교단의 사제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출장비는 제대로 지불하도록 하지.”

최대한 그럴싸하게 말하고 출장비로 20실버를 건네주는데, 어째서인지 루블릭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뭐지.

고작 20실버 따위만 준다는 게 빡친 건가.

“추가금을 원하는 건가?”

“사제. 보스의 앞에서 더 이상의 과욕은..”

“천만에! 이 루블릭, 교단의 명예를 드높이고자 권능을 베풀며 사례를 받은 건 생전 처음이오!”

어... 그거야 뭐, 그렇겠지.

종말의 교단이고.

종말을 하사받아봤자 기뻐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솔직히 악마랑 계약하는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었다고.

몸의 일부가 종말당하는 거잖아.

치료인지 뭔지 모를 행위까지 받았으면 더 찝찝했을 거다.

“돈은 받지 않아도 좋소. 당신에게라면 특별히 무료로 권능을 베풀어주지.”

그딴 혜택 필요 없어!

오히려 민폐잖아.

치료 받기 싫어서 돈을 준 거니까 돈 받고 꺼지라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허어. 혹시 본관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오?”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실력이 어떨지 궁금하기는 하군.”

루블릭의 얼굴에 사이한 웃음이 맺혔다.

“하면 보여드리지.”

“나한테 말고.”

루블릭이 고개를 휙 돌려 카이사르를 쳐다보았다.

“나도 싫다.”

이 싸이코패스가 지금 뭐라는 거야.

네놈이 데려온 사제잖아.

넌 지도 치료받기 싫은 사람을 나한테 데려온 거냐.

“음... 타협안으로 저기 저 사람은 어떤가.”

루블릭은 여관방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켰다.

제 3 자가 무슨 봉변을 당하든 관심없다.

나는 흔쾌히 니 맘대로 하라고 방관자의 자세를 취했다.

“좋소. 기도를 외우는 동안 절대로 건들지 마시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소.”

“...”

그딴 흉흉한 걸 내 몸에 걸려고 한 거냐.

그보다 저 사람 살아남을 수 있는 거냐.

말만 들어서는 그대로 살해당할 것 같잖아.

“앳된 생명을 탐하고 부덕한 생명의 욕망을 삼키는 자. 종말의 하수인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저자의 병마 위에 군림하라! 종말선언!!”

콰르릉!

암흑 속에서 한줄기 뇌전이 내리쳤다.

꽈과과과광!

눈부신 백색 섬광이 번뜩이며 시야를 새하얗게 뒤덮었다.

지근거리에서 섬광탄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찌이이이잉─

굉음에 놀란 고막이 이명을 흘리며 먹먹해졌다.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는 감각.

벽을 붙잡고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다.

“…….”

주문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은 로브를 입은 채 쓰러져있다.

“저거 죽은 거 아니야?”

“멀리서 보니 잘 모르겠군.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겠소.”

루블릭은 창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여기 3층인데.

신체능력치도 꽤 높은지 어디 하나 다치지도 않았다.

루블릭은 쓰러진 사람의 맥을 짚었다.

눈을 감으며 침묵하기를 잠시.

그는 큰소리로 우리를 향해 외쳤다.

“확실하게 죽었소!”

“!?”

아니 저 미친 새끼가.

그걸 왜 우리한테 존나 큰 소리로 알려주는 건데.

누가 들으면 오해당하기 딱 좋잖아.

“카이사르.”

“예, 보스.”

“야심한 밤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로 요란하게 사람을 살해한 루블릭이 우리에게 아는 척을 하고 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겠는가?”

적당히 구슬려서 멀찍이 떼어놓고 오라고.

카이사르는 귀찮은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대답했다.

“그거 꼭 해야 합니까?”

“……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네가 불러온 놈이잖아!

뭐냐, 그 태도는.

하다못해 치우는 정도는 성의껏 해내라고.

휙, 쾅!

카이사르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이 새끼들은 왜 멀쩡한 문은 내버려두고 죄다 창문으로 내려가는 거지.

아무튼 둘은 고급여관 주변의 조명을 받으며 마주섰다.

“프리스트. 큰 소리 치던 대로 실력은 대단했군. 허나 그딴 기술을 보스에게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 네놈이 한 건 치료가 아니다. 애초에 그 주문의 효과는 뭐였지?”

“병마가 죽을 때까지 생명력을 감소시키는 주문이오.”

“보스라면 네놈의 주문을 받고도 당연히 살아남으시겠지만, 네놈의 방식은 주변의 이목을 과하게 끌었다. 보스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아니, 틀림없이 죽을 건데.

번개 내리쳤고.

그딴 거 맞으면 저항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즉사인데.

“보스께서 명령하셨다. 네놈이 일으킨 짓의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그 말인 즉. 본관을 무력으로 위협하겠다는 것인가?”

“위협이라니. 지금 보스와 나를 우롱하는 건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쓰지 마라.”

카이사르는 두 눈으로 살광을 번뜩이며 외쳤다.

“네놈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푸흡!?”

멍청하니 구경하던 나는 깜짝 놀라 마시던 물을 뱉었다.

콰아앙!

카이사르의 괴력이 루블릭이 있던 자리를 내리쳤다.

‘아니 미친. 뭘 어떻게 들으면 저딴 결론이 나와!?’

내 당혹스러움과는 별개로 일은 이미 저질러졌다.

뿌연 먼지 너머, 빠르게 자리를 이탈한 루블릭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성스러운 사제를 탄압하다니, 어쩔 수 없군. 어쩔 수 없이 정당방위가 성립되었어. 이제는 싫어도 살기 위해서 네놈을 죽여야겠구나!”

“할 수 있다면 해봐라, 프리스트! 죽임 당하는 건 네놈이 될 테지만!!”

[카이사르가 종말의 사제 루블릭과 결전을 시작했다!]

아니, 뭘 멋대로 격전을 치르기 시작하는 거야!?

게다가 루블릭 강해!

카이사르의 검격이 하나도 정타로 적중하질 않고 있잖아!

‘아니, 잘 보니 공격은 적중했지만…….’

무형의 보호막이 공격을 튕겨내고 있다.

신성역장.

신에게 하사받은 신성력에 비례해 데미지를 흡수하는 힘.

둔중하게 번지는 파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카이사르의 힘은 강하다.

허나 루블릭이 지닌 신성력도 장난 아니게 많다!

쾅! 쾅! 쾅!

카이사르의 일격이 가해질 때마다 역장에 짓눌린 도로가 금이 가고, 짓눌리고, 산산이 터지며 가라앉았다.

허나 중심부에 자리한 루블릭은 두 눈을 샛노랗게 빛내며 한층 더 빠른 속도로 고속영창을 이어갔다.

고오오오오──.

카이사르의 맹공이 역장을 두들기는 와중에도 루블릭은 고속으로 주문을 중얼거리며 주문을 준비하고 있다.

몰려드는 검은 형체의 규모와 그로부터 느껴지는 사악함만 보더라도 보통 주문이 아니다.

행인을 무참히 살해했던 주문보다도 월등히 긴 영창시간만 보더라도 이번 주문이 적중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안 돼! 저거에 맞으면 카이사르라도 죽는다!’

항마력을 올리는 빌드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어차피 마력을 쓰는 적은 중반부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극 초반부터 악성향 사제와 싸우는 상황 자체가 이상한 거다.

지금 게임 오픈한지 일주일도 안 됐잖아. 다른 놈들은 고블린이나 한 번 잡고 미궁 맛이나 한 번 본 참이라고.

‘무조건 주문을 끊어야 해!’

물리적인 방해는 역장에 가로막힌다.

그렇다면 역장에 막히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루블릭의 고속영창을 끊는 수밖에 없다.

뭔가 없을까.

저런 녀석이라도 주문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고민은 짧았고, 나는 빠르게 답을 찾았다.

“경비대가 나타났다!”

““!?””

역장을 부수기 위한 필살의 일격을 가하려던 카이사르와 그를 죽일 필살의 주문을 외우던 루블릭.

놀란 두 사람은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루블릭의 영창은 끊겼고, 경비대가 나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루블릭이 속았음을 깨닫고 재차 영창을 시전하려 할 때에는 늦었다.

“잡았다.”

“아, 잠ㄲ─”

빠각!

콰드드드득!

루블릭의 얼굴을 붙든 카이사르는 그대로 안면을 지면에 대고 갈아버렸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승리하였군.

“보스의 분부대로 건방진 사제를 처리했습니다.”

그딴 명령 시킨 적 없어.

그보다 저거 어쩔 거야.

고급여관 앞이 완전 초토화 당했잖아.

역장 짓눌리면서 터진 지면에는 직경 2m의 크레이터가 생겼고, 안면으로 갈아엎은 도로는 5m가량 움푹 파였다.

경이로운 건 카이사르의 저딴 괴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도 아직 살아있는 루블릭이지만.

도저히 전투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있기에 카이사르의 발에 짓밟혀있는 상태였다.

삐이익!

경비대의 호각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선빵을 날린 건? 카이사르다.

도로를 엎은 건? 카이사르다.

일방적으로 상대를 때린 건? 그것도 카이사르다.

지금 경비대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우선 행인 한 명이 멀찍이 쓰러져있고 도로는 초토화당했다.

피떡이 된 사제복 차림의 루블릭과 그를 짓밟고 선 채 두 주먹으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카이사르도 보인다.

이걸 보고 내릴 결론이 뭐겠는가.

당연히 하나밖에 없다.

“미궁도시 브람에서 공공시설 훼손과 성직자 살해를 저지르다니, 제대로 미친놈이 나타났군!”

“움직이지 마! 순순히 투항해라. 저항하면 죽인다!”

미궁도시 브람은 터프한 모험가들이 잔뜩 모여든다.

당연히 범죄가 터질 확률도 높다.

경비대가 뜨면 전부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다.

자연히 경비대의 실전경험도 많아지고, 수준도 높아진다.

싸워서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이 가세하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나는 얌전히 여관을 내려가서 경비대에게 다가갔다.

‘정상참작이라도 받을 수 있겠지.’

일단 침착하게 상황설명을 하자.

“거기, 당신. 접근하지 마십시오. 이 여관 앞에서 지금 막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 성직자는 안 죽었다. 그보다 성직자가 저쪽의 행인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고 했다.”

“예? 성직자가 말입니까?”

나는 솔직하게 진술했다.

“저놈은 종말의 사제다. 몸이 좋지 않아 사제의 치료를 받으려고 했건만, 하필이면 종말의 사제가 신분을 숨기고 접근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헉! 종말의 사제가 왜 이런 곳에... 아니, 그보다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그 정도로 위험한 새끼였냐, 저거.

아무튼 다행이다.

덕분에 나와 카이사르를 향한 의혹이 줄어든 것 같다.

벌컥!

바로 그 때였다.

내가 머무르던 방의 옆방 창문이 열리며 누군가 소리쳤다.

“거짓말이에요! 제 귀로 똑똑히 들었어요. 저 남자가 ‘보스’라고 불렸고, 저기 쓰러진 사람한테 주문을 사용하라고 말했어요!”

“보스...!? 설마, 암흑조직의 우두머리! 그것도 종말의 사제와 연관될 정도의 조직이란 말인가!”

“틀림없어. 분명 종말의 사제를 영입하려다가 내부분열로 거리에서 항쟁이 벌어진 거야!”

경비대는 무궁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결론은 확실했다.

“순순히 투항해라! 도망쳐도 소용없어. 곧 기사님들이 오실 거다!”

“아니, 그건 오해인데.”

“지금 저 귀부인이 거짓진술을 했다는 거냐!”

아니, 그것도 거짓말은 아닌데.

뭔가 잘못되었다고 할까.

“할 말이 있으면 경비대에서 해라!”

[카이사르가 경비대에 체포되었습니다.]

[빌헬름 마이어가 경비대에 체포되었습니다.]

카이사르와 나는 사이좋게 경비대에 붙잡혔다.

완전 억울하네.

난 그냥 맥주가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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