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9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 =========================
#1 - 내 부하가 미친 듯이 유능하다(19)
나는 부하들의 착각이 마냥 거슬리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식사 시간이군.”
이렇게 한 마디만 해도 두 부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보스. 저 남자의 음식이 드시고 싶으십니까?”
“꼬치구이라. 맛있겠군. 가져와라.”
“예.”
카이사르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거기, 너.”
“네?”
“보스께서 그 꼬치를 원하신다. 내놔라.”
“뭐, 뭐야! 당신 미쳤.. 억!”
“건방지게 보스가 먹겠다는 음식을 내놓지 않다니. 순순히 내놓았으면 뺨을 맞을 일도 없었을 것을.”
나는 멍청한 카이사르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병신아.
누가 먹다 만 꼬치구이를 먹고 싶다고 했냐.
말귀 진짜 어둡네.
새 꼬치구이를 사와야 할 거 아냐.
“꺄르륵. 저 바보는 언제쯤 철이 들려나 몰라. 보스! 이럴 줄 알고 노점상에서 꼬치를 사왔지!”
“잘했다. 그런데 아직 너한테는 돈도 주지 않았다만.”
“응? 그런 거 딱히 없어도 돼. 다른 손님의 주머니를 단검으로 슥 베면 돈이 떨어지잖아. 땅에 떨어진 돈은 주인 없고, 주인 없는 돈은 먼저 주운 사람이 맞지?”
그건 던전 안에 떨어져있는 돈을 말하는 거고.
뭔 멀쩡히 주인 있는 돈을 주인 없게 세탁하는 거냐.
정도만 다르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는 짓은 같다.
“음.”
그래도 맛은 있네.
카이사르가 뺨을 때린 남자에게는 직접 사과를 했고, 주머니가 잘린 사람은 잘린 줄도 모르고 제 갈 길을 가버려서 잡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마음속으로만 미안해하자.
“보스. 어째서 그런 하찮고 전투력도 낮은 남자 따위에게 사과를 한 겁니까.”
“네 어리석은 행동이 내게 굴욕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그, 그런.”
“다음부터는 누군가의 뺨을 때리기 전에 허락을 맡아라.”
“명심하겠습니다. 보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춘다.
그게 최고의 성과였다.
요즘은 이렇게 꾸짖어도 눈을 부라리지 않는다.
‘환자한테는 띠꺼운 표정을 안 짓는 건가.’
그것만으로도 카이사르에게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리나야 원래 착한 아이니까 곁에 두기 좋았고.
덕분에 부담 없이 상점가에 나올 수 있었다.
“여기가 이 근방에서는 제일 평판이 좋은 가게야!”
리나는 헤헹 하고 의기양양해하며 눈을 감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는 칭찬의 의미로 리나의 턱을 긁어주었다.
“...저기. 이럴 때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아?”
“음? 전에 키운 애완동물은 턱을 긁는 걸 좋아했다.”
“난 사람이라고! 애완동물이 아니야!”
“으음? 그 녀석도 애완동물이었는데.”
“사람을 펫(Pet)으로 부렸어!?”
리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어째서인지 카이사르까지 선망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 펫은 어떤 애완동물이었습니까?”
“무릎 위에 올라오거나 품에서 잠들기를 좋아했지.”
“오오.”
“딱히 성적으로 학대한 건 아니다. 선물이랍시고 쥐를 물고 오기도 했으니까.”
“...사람인데 쥐를 물고 온다고요? 그거 그냥 고양이 아닙니까?”
아깝게 맞췄네.
“사람이면서 동시에 고양이였으니까.”
“아아, 수인족. 난 또 뭐라고.”
리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부분에서 안도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좀 신경 쓰이네.
카이사르는 수인족이라는 말을 듣고도 변함없이 선망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수인족은 어떻게 하면 펫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역시 산채로 두들겨 패서 복종시키면 됩니까?”
“그런 짓은 그만둬. 그놈들도 일단은 인간이라고.”
“역시 성가신 법이 녀석들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까. 더러운 귀족 새끼들. 언젠가 눈에 띄면 반드시 죽여주겠어. 그리고 노예는 전부 내가 가질 거다…….”
난 이 새끼의 미래가 벌써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귀족폭행죄는 확실하게 걸리겠어.
할 수만 있다면 알맹이인 이놈의 스킬과 특성, 장비만 리나한테 싹 다 옮겨 붙이고, 껍질인 카이사르 녀석은 내다버리고 싶다.
저 녀석의 썩어빠진 인성도 알맹이 아니냐고?
그게 알맹이라면 썩은 부위일거다.
깔끔하게 도려내거나 오염된 부분은 그대로 버려야지.
“보스. 그럼 지금 그 펫은 어디에 있어?”
글쎄. 게임 내 설정으로는 한 백년 정도 지났고.
“죽었겠지.”
“죽었어!? 아니, 죽었겠지 라는 건. 죽는 모습은 직접 보지 못한 거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녀석의 마지막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도 죽었다는 건 확실하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미안해, 보스.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보스. 보스의 과거에 대해서는 저도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무례를 범했습니다.”
“되었다. 둘 다 이런 얘기일줄 알고 물어본 것도 아니니까. 죽은 녀석은 어찌되었건 상관없다. 그 대신에 지금은 너희가 있지 않는가.”
두 사람은 감격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리나의 표정은 기쁘지만 카이사르의 표정은 혐오스러웠다.
사내자식이 그딴 얼굴로 날 쳐다보지 마라.
“사내자식이 그딴 얼굴로 날 쳐다보지 마라.”
“!!”
아차.
하도 끔찍해서 그만 생각한 걸 그대로 입밖으로 내뱉었다.
어떻게 수습은 해야겠는데 뭐라고 하지.
어디보자. 평상시의 나대로 대응하려면 될 것 같은데.
뭐, 이런 느낌인가.
“생리적으로 혐오스럽다.”
“훗. 알겠습니다.”
어째서인지 다시 평상시의 재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이 얼굴이 어울린다.
언제나 그 뻔뻔한 낯짝으로 내 옆을 지켜달라고.
[카이사르의 충성도가 1 상승합니다.]
[리나의 충성도가 1 상승합니다.]
그런데 이놈들은 정말로 감격한 게 맞기는 한 건가?
언제나 그렇듯이 상승폭이 쥐꼬리만 한데.
보통 이런 분위기를 잡으면 한 번에 10쯤 오르지 않나.
“잡담은 되었다. 슬슬 그걸 구매한다.”
“성주를 암살할 비밀병기입니까?”
“신입모험가들을 위한 미궁 상층부 지도다.”
언제부터 우리가 성주암살을 목표로 하는 암살단이었냐.
리나랑 있더니 카이사르가 이상한 물이 들었어.
아니, 잠깐. 그럼 이젠 리나조차도 위험요소가 되는 건가!?
“지도 가격은...”
상점주인이 말했다.
“5골드.”
“비싸군. 하지만 돈은 많으니까.”
“잠깐! 보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싸잖아!”
리나가 버럭 소리치며 나섰다.
“오. 도적계 상위클래스답게 뭔가 발휘하는 거냐?”
드물기는 해도 상인클래스가 지닌 ‘흥정’을 도적클래스가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도적이라는 건 대인관계나 장물처리 관련으로도 이런저런 스킬이 필요하다.
딱히 이상하게 여길 건 아니다.
“가볍게 목부터 자르고 시작하는 게 어때?”
“이런데서 암살자 스킬을 쓰지 마라!”
“에에? 괘씸한데 심장도 찌르면 안 되는 거야?”
하마터면 상점 주인이 실시간으로 살해당할 뻔했다.
어쩔 수 없군.
이 파티의 유일한 양심인 내가 나서는 수밖에.
“내 부하가 바가지를 씌우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싫으면 사지 말든지.”
“원래 지도가 그 정도 가격인건 인정하지. 하지만 이건 딱 보기에도 결함품일 텐데?”
움찔.
상점주인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장비만 좋은 바보전사와 사람 죽이는 법만 아는 암살자가 낀 파티라고 우습게보지 마라. 이놈들이 할 수 없는 모든 일은 내가 맡고 있으니까.”
“으으.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노련한 모험가였군. 아니면 통찰력이 뛰어난 건가. 그 안목을 높이 평가해서라도 1골드에 판매해주지.”
상점주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이 초보모험가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악덕상인이라고 모험가 길드에 소문을 퍼뜨리면 어떨까.”
“그, 그건 곤란해! 에이잇, 날 강도 같으니! 50실버에 팔 테니까 그냥 가져가!”
“싫다. 잔돈이 없어서 구매할 수 없군. 그냥 소문을 퍼뜨리러 가겠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 교섭에 상점주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으으으! 돈은 받지 않아도 돼! 제발 지도를 받아줘!”
“그 지도, 조금 냄새 나는 것 같지 않나?”
“타, 탈취제도 주겠어!”
“바보같이 탈취제 같은 걸 어디다가 써먹어?”
“젠장! 원하는 걸 말해!”
나는 도구점에서 요긴하겠다 싶은 물품은 싹 다 짚었다.
“가게가 망하는 게 낫겠어? 이걸 주는 게 낫겠어?”
“제길, 날강도 같으니!”
“이런 일을 겪기 싫으면 물건을 정직하게 팔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공짜로 물건을 마구 받았다.
[C급 업적 창조경제 달성!]
[당신은 상점에서 돈 한 푼 지불하지 않고 물건을 구매하는 대가로 더 많은 물건을 받았습니다.]
[흥정스킬을 습득합니다.]
[흥정스킬의 레벨이 업적달성에 의해 급격히 상승합니다.]
[흥정스킬의 숙련도가 상급 숙련이 되었습니다.]
숙련도가 기초, 하급 숙련, 중급 숙련을 넘어서 단번에 상급 숙련이 되었다. 이래서 자잘한 여러 번의 활약보다 한 번의 대단한 활약이 높은 스킬을 얻기에는 좋다니깐.
스스로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고 있자니 카이사르와 리나가 내게 다가와 마구 감탄해댔다.
“보스의 능력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설마 주인을 두들겨 패지 않고도 물건을 공짜로 받는 흥정법이 있을 줄이야……. 피 한 방울 튀지 않는 실로 세련된 흥정이었습니다.”
“와아! 대단해! 보스는 역시 최고야! 저기, 다음에는 옷가게에서도 이렇게 해주면 안 될까?”
“그건 무리다.”
옷가게에서 옷을 받는 대가로 옷을 더 많이 받아가라니.
대체 무슨 약점을 잡아야 가능한 상황인거냐.
폐점 직전의 옷가게도 그렇게 옷을 처분하지는 않겠다.
“뭐 요령은 난폭하게 굴지 않는 거다.”
“그런 겁니까.”
“그런 의미에서 넌 절대 이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겠지.”
내가 암살스킬을 못 배우는 거랑 같은 느낌이다.
카이사르에게 흥정스킬이라니.
안 되는 걸 넘어서 절대로 불가능하잖아 그거.
협박이라면 모를까.
오히려 협박이 아니면 나 의외의 사람과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보스!”
“그런가?”
“뭐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직접 해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의욕을 보인다면 한 번 맡겨보고 싶기도 하네.
틀림없이 바보짓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뭐, 보는 내 입장은 즐거우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그럼 저쪽의 레스토랑으로.”
“레, 레스토랑입니까.”
“뭐냐. 자신이 없는 거냐?”
솔직히 나도 자신 없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공짜로 먹는 대가로 다른 음식을 마구 받는 상황이라니.
그거 상한 요리나 태운 요리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흥정을 넘어서 구걸의 영역이라고.
그래도 지켜보는 입장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보스. 그럼 제가 3인분의 식사를 무료로 구매하는 대가로 다른 음식을 마구 대접받으면 어떡하실 겁니까?”
“상당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만. 그게 가능하다면 네가 원하는 걸 하나쯤은 들어줄 의향이 있다.”
“뭐든지 말입니까?”
“들어줄 수 있는 선 안에서라면.”
“좋습니다.”
카이사르는 비장한 표정으로 레스토랑 앞에 섰다.
옷매무리를 가다듬고, 검을 고쳐 매고.
무슨 전장에 나가는 비장함이 감돌기 시작했어.
“실례합니다, 손님. 본점은 지금 점심시간이라 이용이..”
“시끄러!!”
퍽!
앞을 가로막는 점원을 밀치고 가게에 들어갔다.
…….
…….
…….
보통 들어 가냐, 그런 상황에서.
흥정은커녕 평소보다 너 난폭해졌잖아.
모종의 박력까지 느껴졌다고.
“보스. 뭔가 시작부터 저 녀석 난폭하지 않아...?”
“음. 관계되기 싫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지만, 혼자 내버려두면 어떻게 폭주할지 모르니까. 적어도 시체를 치울 상황은 안 나오게 통제해야겠군.”
그런 느낌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리들은 의식을 잃은 레스토랑 점원을 지나쳐 가게 안으로 뒤따라 들어갔다.